# 243
#243화 집중과 선택 사이 (5)
사장님이 한 일은 딱 하나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찰을 보내면서 우리 본진이 치고 들어갈 방향만 알려주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동맹을 위한 포석이라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본진이 이동하면 빠르게 합류하라는 말과 함께.
화련의 지배자 연합에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다.
동맹이 아닌 우리 본진이 치고 들어가는 방향을 두텁게 만들지 않으면 삽시간에 뚫려 버리니까.
그렇게 뚫린 쪽으로 우리가 들어가고 나머지 방향에 동맹이 들어간다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번엔 전달을 안 할 수가 없을 거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장님의 확신 어린 표정.
그간 사장님이 준비했던 덫이 이제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다.
현역 여대생은 그렇다고 치고…….
수아나 해신이면 정말 문제인데.
그간 핵심 활동을 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이런 식으로 배신자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로 믿지 못하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신뢰의 문제.
우리야 최강 길드 길드원과 몇몇을 제외하곤 거의 교류가 없어 큰 문제가 없다지만 사장님 입장에서는 앞으로가 뼈아프다.
“그래도 할 건 하고 가야지.”
재중이 형이 담담한 표정으로 지배자 연합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그리고 정확하게 지배자 연합의 주축이 한쪽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엔 우리에게 사간 롱 블레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진짜 해신일 줄이야…….
케르베로스 때부터 재중이 형이 믿을 수 있다고 말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난데 믿기 힘들었다.
재중이 형도 표정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느낌이려나.
특히 그동안 해신과 같이 사냥하러 다녔던 슬이아빠, 아이꿍, 체리, 천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쪽은 정말 충격이 크겠네.
우리만큼이나 잘 맞는 파티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
난감하게 되었네.
사장님은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이나 한 것처럼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애초에 셋 중 하나라고 꽤 오래전부터 예상하셨을 거라, 충격이 덜하신 걸지도.
원래라면 벌써 치고 들어가야 했지만, 사장님은 현역여대생과 수아를 불러들였다.
“왜 안 움직여요 ”
돌아온 현역여대생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사장님께 물었는데 사장님은 그저 웃기만 하셨다.
조금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신가.
수아는 현역여대생의 말을 듣자마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눈치를 챈 듯 고개를 돌려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인 해신을 눈으로 좇았다.
진짜 눈치 빠르네.
평소 순하게 보이는 모습과 또 다르다.
“무슨 일인데요 ”
현역 여대생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는데 수아가 알려주었는지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뭐 정말 ”
현역여대생의 호들갑에 수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 저 오빠가 그랬다고 뭐 잘못된 것 아냐 아! 그리고 길마 오빠, 우리 몰래 이러면 어떻게 해요.”
“음, 이번엔 미안하구나.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현역여대생이 화난 표정을 짓곤 멀리 떨어져 버렸다.
기분이 많이 상했나 보네.
하긴 누구라도 대놓고 이런 식으로 의심을 하면서 상황을 살피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우려 섞인 표정으로 수아를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살짝 고개를 젓기만 했다.
자신은 괜찮다는 건가…….
확실히 눈치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주변 분위기를 확인하고 조용히 묻는 타입.
정반대인 현역여대생이 나쁘다고 하긴 또 어렵지.
자기가 피해 보는 자리에서 아무 말 안 하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역시 이런 문제는 어려워 보였다.
이런 일들을 컨트롤 하는 사장님이 대단해 보일 정도다.
“해신 형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
“아마 지금쯤이면 녀석도 다 알았겠지.”
한참 전에 전진을 했어야 했는데 해신이 우리가 오지 않으니 바로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알아차린 모양이다.
《 해신이 로그아웃했습니다. 》
《 해신이 공성전에서 탈락했습니다. 》
길드 창에 보이는 짧은 시스템 메시지가 이 모든 일의 끝을 알려줬다.
“역시 돈인가요 ”
화련과 연관 지으면 그것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자. 만약 제대로 된 답변이 아니라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손으로 처리해야겠지.”
그 말을 하는 재중이 형의 눈빛이 매서워 보였다.
“일단, 해야 할 일부터 먼저 처리하자꾸나. 이젠 보는 눈이 사라졌으니.”
사장님의 말에 다시 분위기가 돌아왔다.
“우리는 완전히 반대로 치고 들어간다.”
아까 해신에게 알려준 방향과 정반대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가지 외곽에서 움직여 버리면 화련은 절대 우리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걸 증명이나 하듯 서쪽 시가지의 주축 방어 인원이 많이 빠져 꽤 방어가 허술했다.
물론, 아예 다 빼버린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건드리면 바로 무너질 것 같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이왕 정보를 줬으니 역으로 이용해 먹어야지.”
지금쯤 화련도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형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다.
미리 우리 정보를 구한 것도 그런 이유일 테니까.
이미 지배자 연합과 몇몇 공성 측 길드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시가지 골목에 들어선 우리가 뒤에서부터 다가서자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고개를 돌렸다.
“신화하고 최강이잖아.”
“뒤에 달 길드다.”
“뭐야 지금 나서는 거야 ”
“쳇, 우리가 다 해놓은 건데.”
“또 재들이 싹 쓸어가려나.”
보니까 이런저런 불만이 많아 보인다.
지금껏 뒤에 있다가 이제야 나서는 우리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연합은 없겠지.
그런데 우리가 다가가자 오히려 자리를 벌려주는 길드들이 있었다.
“이건 무슨…….”
“지들 대신 길을 좀 뚫어달라는 거겠지. 이때까지 드잡이를 했어도 못 뚫었으니까.”
그 말이 틀리지 않은 지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비우고 옆으로 물러났다.
흐음, 이렇게까지 할 줄은…….
인원이야 이미 줄일 만큼 줄여놨으니까 괜찮으려나
갑자기 공성 병력이 빠지자 서쪽을 방어하는 사람들이 더 당황한 눈치다.
그러면서도 저쪽은 어차피 방어선을 지키는 것이 일이라 라인을 그대로 지키면서 병력을 지켰다.
그리고 우리와 최강, 달, 치맥 길드가 앞으로 나섰다.
“네가 먼저 할래 ”
재중이 형의 말에 이쁜소녀가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제가요 ”
“응, 그래. 가서 한 번 휘저어주고 와. 그걸로.”
“아! 네!”
재중이 형이 확신을 가지는 것은 다름 아닌 이쁜소녀가 새로 얻은 기술의 위력을 직접 봤었으니까.
먼저 이쁜소녀가 윙 배틀 액스를 꺼내 기술을 시전했다.
【 헤이스트! 】
【 피부강화! 】
헤이스트의 푸른빛과 피부 강화의 녹색 빛이 동시에 이쁜소녀의 몸을 회전하듯 감싸고 지나갔다.
기술들이 제대로 시전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던켈을 꺼냈다.
그것도 양손에 하나씩.
다만…….
문제가 생겼다.
“으…… 너무 무거워요.”
역시 양손으로 쓰는 배틀 액스를 이쁜소녀가 한 손으로 들기는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 한 개도 아닌 두 개나.
아마 힘이 부족할 때 억지로 들면 저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상태로 던켈들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바닥에 두 줄로 끌린 자국들을 남기면서.
그 기상천외한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쁜소녀에게 집중됐다.
저 자그맣고 가녀린 소녀가 자기 몸집만 한 던켈을 하나도 아닌 두 자루씩이나 질질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란 정말 언밸런스의 극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
“저 작은 몸으로 저걸 들 수나 있어 ”
“아무 준비 없이 들고 나왔을 것 같진 않은데 ”
“신화 애들이잖아. 일단 지켜보자. 뭔 짓을 할지 몰라.”
주변에서 연신 웅성거리면서 이쁜소녀에게 길을 터주는 데 반대로 수성 쪽에서는 다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미지의 어떤 것을 보면 사람들은 겁을 먹거나 거부하게 되는데 딱 지금이 그 꼴이다.
기상천외한 단 한 명의 소녀 때문에.
그러다 몇몇이 정신을 차렸는지 외쳤다.
“뭘 보고 있어 공격해!”
“한 명뿐이잖아. 쫄지 마.”
“궁수, 마법사들 공격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일제히 화살과 마법을 이쁜소녀에게 날려댔다.
【 블링크! 】
그때, 내가 이쁜소녀 바로 앞으로 블링크로 이동했다.
그리고 카스카라와 라이덴 블레이드로 비 오듯이 떨어져 내리는 화살과 마법들을 죄다 사방으로 쳐내 버렸다.
모든 마법과 화살을 쳐내고 난 뒤 뒤를 돌아보니 내 뒤쪽에서 걸어오던 이쁜소녀가 배시시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망연자실한 수성 측에서 어이없다는 말투가 이어졌다.
“뭐…… 저걸 다 쳐내 ”
“저게 진짜 인간이냐 ”
“또 주호야 ”
“대체 뭘 연습해야 화살을 쳐낼 수 있냐…….”
“마법은 또 뭔 수로 쳐낸 거야 ”
“마법 쳐내는 게 가능하긴 하나 ”
가능하니까 하지.
자……!
이제부터는 내 시간이 아니라 이쁜소녀의 타임이다.
방어 라인 근처까지 접근하자 내가 바로 뒤로 빠졌다.
솔직히 이건 나도 휘말릴 수 있으니까.
“그럼! 가요!”
【 휠 윈드! 】
이쁜소녀의 몸이 회전하면서 점점 가속을 붙이더니 두 개의 던켈도 역시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어 저건 ”
“오우거 로드가 쓰던 거잖아.”
“그걸 저 작은 애가 ”
어느 정도 속도가 붙자 돌풍이 일어나면서 소녀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오우거 로드와 이쁜소녀의 크기 차이가 있어 규모는 작지만 확실히 스킬은 동일하다.
그럼, 아마 스킬 능력도 동일할 것이다.
일정 수준 이하 스킬, 공격 무효화.
“주호 빠졌잖아. 보지만 말고 공격해!”
누군가의 외침에 다시 일제히 공격을 했는데 모든 공격이 이쁜소녀가 일으킨 돌풍에 휘말려 전부 사라져 버렸다.
“뭐 말도 안 돼.”
“저게 대체 뭐야.”
그리고 팽이처럼 변한 이쁜소녀의 빠른 전진에 범위 안에 들어 있던 모든 유저가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기면서 바로 죽음의 빛으로 녹아 사라져 버렸다.
이건 그냥 지우개로 지우듯, 쭉 밀고 들어가면서 밀고 가는 대로 쓱쓱, 지워졌다.
저런 것은 솔직히 나도 무리다.
무차별적인 학살.
저 작은 체구의 이쁜소녀가 전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었다.
“이건 뭐 우리가 나설 것도 없네.”
재중이 형이 약간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건 뭐 너무 강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수성 인원이 몰려 있던 방어선이 그대로 순삭 되면서 라인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저건 절대 복구 불가지.
이 기상천외한 광경에 넋 놓고 보던 공성 측 사람들이 어느샌가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다 경쟁자들이긴 하지만 여태껏 쭉 막혀 있던 것을 이쁜소녀가 한 번에 뚫어버리는 모습이 뇌리에 박혀 버린 모양이다.
정말 인기가 엄청 올라가겠는데
마력이 다 떨어진 듯 이쁜소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날 때 이쁜소녀의 눈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엄청나게 어지러운 모양이네.
다시 데려와야겠다.
아직은 적진 한가운데니까.
그때 챠밍이 블링크를 써서 이쁜소녀 옆에 나타나더니 이쁜소녀를 품에 안고는 다시 블링크를 써서 뒤로 빠져나왔다.
“……최강의 콤비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 얼이 빠졌는지 크게 웃어버렸다.
극강의 팽이와 신속의 회수라…….
최강의 콤비가 맞다.
“많이 어지러워 ”
“하, 하늘이…… 핑핑 돌아아앙.”
스탯이 어지러운 것까지 해결해주지 않는 것 같다.
“모두 일제히 진격!”
금이 간 방어선을 확실하게 찢기 위해 사장님이 최강과 달, 치맥 길드가 함께 전진해서 공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방어선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다.
“하, 오자마자 바로 방어선을 찢어버렸어.”
“진짜 나긴 난 놈들이다.”
그리고 그대로 기세를 타고 적들의 중심부를 향해 전진했다.
그제야 반대편으로 나갔던 지배자 연합의 주력 병력이 돌아왔다.
당연히 화련도 그사이에 보였고.
그러면서 화련이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우리 쪽을 보고 고함을 질러댔다.
“야!!!!!!!!! 또!!! 또!!!!!!!!!! 너희들이야!!!!!! 이씨!!!!!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어!!!!!!”
아까 귓말을 계속 듣고 있었으면 저 소리를 들었겠구나.
빨리 끊길 잘했네.
“독사! 혈검! 주호 잡아 와! 재 잡기만 하면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그 말에 하얀 머리의 독사와 붉은 머리의 혈검이 눈빛을 부라리며 앞으로 나섰다.
두 명이 동시에
랭커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한 적은 처음인데…….
“큭, 재밌겠네. 가서 눌러 주고 와.”
재중이 형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었다.
지금 나 혼자 상대하라는 것 맞지
“이거 참, 우린 뭐 보너스 없어요 ”
그 말에 듣고 있던 사장님이 바로 말을 꺼내셨다.
“그럼 난 피시방 평생 무료 이용권 준다. 너도 가서 잡아 와!”
사장님이 당당하게 팔짱을 끼면서 자랑스럽게 외치셨다.
큭, 스케일의 차이는 있지만.
뭐 어떤가.
두 명을 함께라…….
재밌겠네.
한판 붙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