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242화 집중과 선택 사이 (4)
귀청 떨어지겠네.
음성 모드로 해두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고함에 귀청이 찌르르 울렸다.
너무 방심했는데
이런 음파 공격이라니.
이전에 화련에게 받은 연락 이후로 따로 차단을 걸어놓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그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음성 귓말을 열었다가 제대로 당해 버렸다.
<주호> 귀 아파요.
<화련> 너, 너…….
화련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너라는 말만 반복했다.
거기다 화련이 씩씩대는 소리까지 모두 함께 들려왔다.
진짜 제대로 화난 모양이네.
영상으로 봤으면 아마 부들거리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으려나
뭐 화련 기분이 어떻든 나와는 상관없다.
<주호> 안 바쁘시면 끊죠 저희가 좀 바빠서.
<화련> 야! 너! 진짜!
뚝.
깔끔한 시스템 음과 함께 귓말이 바로 끊어졌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아니까…….
“누구 ”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성벽 위로 올라온 재중이 형이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아, 화련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진짜 대박이네. 너한테 연락이 왔었어 ”
“네, 귀 아파서 혼났어요.”
“크큭, 하긴 멀리서도 들리더라. 화련이 제대로 빡친 모양이네. 지금 날린 돈이 얼만지 생각하면.”
재중이 형과 화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나르샤부터 챠밍, 이쁜소녀, 그리고 방패전사가 차례로 성벽 위로 올라왔다.
이미 내가 정리를 해둔 것도 있고 가장 위협적이던 마법사 NPC를 무력화를 시켜놨으니까.
“누구예요 ”
“누구 ”
챠밍과 이쁜소녀도 혹시 들었나
대체 얼마나 소리가 컸던 것일까
귀가 아플 만도 했네.
챠밍, 이쁜소녀는 물론, 나르샤까지 궁금한 듯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날 바라봤다.
“아, 목소리 큰 여자가 있어요. 화련이라고.”
챠밍, 이쁜소녀를 잠시 바라봤다가 나르샤에게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더니 서로 한 번씩 쳐다보고는 내게 다시 물었다.
“그 여자가 왜요 ”
“왜 연락했어요 ”
챠밍하고 이쁜소녀가 똑같이 물어보는데 대답할 말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다짜고짜 고함부터 지르던데 못 들었어 ”
“아…….”
“그랬구나.”
멀리 있어서 목소리가 묻혔나 보네.
화련이 내게 고함지를 만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으니 바로 이해했는지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요 ”
“나 여기 있다.”
내가 사장님을 찾자마자 사장님도 로프를 걸고 성벽을 올라오셨다.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올라가냐. 이거 힘드네.”
사장님이 우리 팀을 바라보면서 말하는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스탯 차이가 있다 보니 이런 움직임이 완전히 다르다.
사장님을 필두로 모든 길드원이 차례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우리 목표가 바로 유적지를 먹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이런 여유가 가능했다.
대부분의 유저가 페르타 중앙을 향해 뛰고 있었으니까.
뚫릴 것이라는 예상을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값비싼 NPC들을 맹신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성벽에 많은 인원을 배치한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아버렸다.
다급하게 성벽을 지키고 있던 지배자 연합의 유저들도 우리가 성벽에 올라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중앙으로 뛰어들갔다.
거기다 남은 궁수와 마법사 NPC도 화련의 명령을 받았는지 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벽 아래로 빠르게 퇴장해 버렸다.
성벽 위는 북적거리던 그 성벽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텅 빈 채 휑한 상태였다.
“수고했다.”
사장님이 내게 와서 어깨를 두드리셨다.
“뭘요,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봤어요.”
“화련이 어지간히 놀랐나 보구나. 성벽 인원을 저렇게 급하게 빼는 것을 보니. 안쪽엔 방어 병력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지금쯤 난리 났겠구나.”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사장님이 껄껄거리며 웃으시는데 우리 역시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그냥 지금은 이 순간이 즐겁다.
그리고 어느새 올라온 최종병기가 내 등을 팡, 하고 쳤다.
“역시 우리 돌격대장인데 설마 진짜 혼자서 뚫어버릴 줄은 몰랐다.”
“운이 좋았어요.”
“크, 운으로 해결될 것 같으면 이 고생 안 하지.”
최종병기의 말에 그저 미소만 지었다.
사실 이렇게 잘 먹힐 줄 생각조차 못했다.
어느 정도 이목을 끌고 난 뒤에 추가로 오는 병력을 기다릴 생각이었지.
그런데 리틀 오우거 덕분에 모든 것이 변했다.
내가 구사하는 모든 스킬이 강해졌다.
딜이 조금씩 부족했던 스킬들의 대미지가 올랐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죠 스킬 위력이 어떻게 이 정도로 높아진 건지.”
“단순히 힘만 올라가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
재중이 형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리틀 오우거를 떠올리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내게 다시 리틀 오우거를 꺼내보라고 했다.
【 리틀 오우거 소환! 】
“그대로 나 한 번 스킬로 공격해 봐.”
“지금 여기서요 ”
“그래.”
어차피 당분간 할 것도 없겠다 싶어 바로 스킬을 썼다.
【 비월참! 】
예전엔 정말 자주 사용했지만, 지금은 더 강한 스킬이 많아 자주 사용하지 않는 비월참을 날렸더니 재중이 형이 라이덴 미늘창으로 비월참을 쳐내 버렸다.
진짜 실력 하나는 알아줘야겠다.
비월참을 튕겨내고 난 뒤에 잠시 눈을 찌푸린 재중이 형이 곧장 대답을 해줬다.
“너 차징 안 했지 ”
“네, 즉발로 바로 날렸어요.”
“이거 차징 수준인데 ”
“네 ”
“대미지가 차징 대미지처럼 나온다고. 물론, 풀 차징은 아니고…….”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리틀 오우거에게 돌아갔다.
미쳤네…….
리틀 오우거가 소환되어 있으면 풀 차징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킬을 즉발로 날려도 어느 정도 차징이 된 상태로 날아간다는 말이다.
즉, 대미지를 일정 부분 올려준다는 이야기.
“와, 사기 같은 놈을 더 사기로 만들어주네.”
최종병기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더니 주변 길드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퍼져나가면 골치 아프겠는데
***
쉽게 돌파가 되리라 생각했던 공성전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저력이 있었군.”
지배자 연합이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아 사장님을 필두로 결국 중앙 지점까지 모두 함께 이동을 했다.
성문과 성벽을 맡고 있던 지배자 연합이 퇴각하는 것을 보고 금방 무너질 줄 알았다.
우리가 이렇게 늦장을 부리면, 당연하게도 달 길드와 치맥 길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우리 근처에 모여 있다.
“어머 정말 아직까지 버티고 있네요 ”
스칼렛도 깜짝 놀랐는지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옆에 시립한 칼과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칼이 누군가와 잠시 연락하는 듯하더니 바로 스칼렛에서 정보를 넘겨줬다.
그걸 다 듣고 난 뒤 스칼렛이 우리에게 설명을 해줬다.
확실히 발이 넓긴 넓어.
“아, 서쪽과 동쪽을 막고 있던 적들이 성문을 포기하고 지원을 빠르게 하면서 무너지는 것을 막아냈다고 하네요. 아마 조금만 머뭇거렸어도 금방 뚫렸을 거예요. 적이지만 강단은 있네요.”
스칼렛은 화련과 설전을 주고받던 사이임에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모습이다.
“그런 전개인가 어설프게 이도 저도 아니게 따로 막다가 그냥 털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좋은 방법이네. 일단 중앙 광장 쪽으로만 어떻게든 먼저 들어가면 좁은 시가지로 블록을 짜고 버틸 수 있으니까. 화련이 선택을 잘했네.”
재중이 형도 스칼렛의 말에 바로 동의했다.
확실히 화련이 아주 돈만 부어대고 게임에 ‘게’자도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긴 게임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니까 저렇게 돈을 쏟아붓겠지.
그렇다고 좋게 보는 것은 또 아니다.
폭군에게 했던 것을 비춰 본다면 옆에 있으면 굉장히 피곤할 사람일 것이 분명하니까.
털어먹긴 좋은 데 가까이 하기 싫은 딱 그 정도 사이라고 해야 하나
막상 화련이 그만둔다고 하면 꽤 슬플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간이…… 애매하네.”
재중이 형이 공성전 시간을 재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상황은 원래 우리가 원했던 타임이 아니다.
원래라면 한두 번 정도는 뒤집히고 엎어지면서 주인이 두세 번은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너무 고착화되었다.
“개입할까요 ”
치고 들어갈지, 아님 이대로 지켜볼지.
지금은 뚫기 전 상황의 연장선이었다..
현재 지배자 연합이 전사와 궁수, 마법사 NPC를 축으로 해서 시가지 골목마다 틀어막으면서 잘 버티는 중이었다.
특히 마법사 NPC의 위력 때문에 쉽게 전진하지 못하고 아까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NPC가 너무 강해. 마냥 수성이 불리한 것은 아닌데 ”
최종병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시가지 전투를 바라봤다.
분명히 숫자는 공성 쪽이 월등한데 성벽을 끼지 않고 싸우고 있음에도 수성이 이기고 있었다.
훨씬 적은 숫자로.
그렇다고 또 지배자 연합이 숫자가 완전 적은 것도 아니다.
도합 길드 열 개는 합쳐놓은 규모다 보니 좁은 시가지 전에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거기다 레벨과 장비가 좋은 사람들을 빠르게 무너지는 곳으로 빠르게 옮기면서 전투에서 밀리지 않게 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숫자, 엄청난 위력의 NPC, 좁은 시가지와 화련의 지시 등.
작은 것이 모이자 뜻밖의 시너지가 생겨 접전이 되어버렸다.
“화련 저 여자, 오늘 대단하군.”
“솔직히 좀 무시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수호와 재중이 형이 전체적인 전투 상황을 지켜보면서 꽤 놀란 표정이다.
“그간 지켜보던 녀석들도 전부 참가했는데 말이지. 전혀 안 밀리는군.”
수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지켜보던 길드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저들도 우리처럼 마지막에 페르타를 차지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시간대가 좀 이상하게 됐다.
차지한 뒤에, 버티면 페르타를 차지할 수 있는 시간대로 접어들기에…….
반대로 한 번 삐끗하면 다시는 페르타를 접수할 수 없다.
화련 쪽은 시간을 어떻게든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이고, 공성 측은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 이런 접전이 가능해 보였다.
딱 지금.
우리가 참전하면 기세는 확 기울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재중이 형이 사장님과 계속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들어간다. 더는 못 기다려. 사장님 가죠.”
재중이 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선언하자 길드원 모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 전에 잠시.”
사장님이 잠시 몇 명을 부르더니 뭔가를 속삭였다.
뭐지
그러고는 세 명이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각자 전혀 다른 방위로.
정찰인가
지금 시점에서 굳이
사장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궁금한 점이 생겼지만, 생각 없이 움직이는 분은 아니니 일단 지켜봤다.
그런 뒤, 사장님은 나와 재중이 형만 따로 불러 몰래 이야기를 하셨다.
“자, 정찰을 빌미로 다른 정보를 쥐여주고 보내놨으니 이제 누가…… 배신자인지 한 번 보자꾸나.”
응
배신자 쁘락치
“세 명이라……. 제법 걸러내셨네요 ”
재중이 형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좀 했지. 여러 영상을 돌려보면서 상황을 끼워 맞추다 보니 많이 늦어졌다.”
그동안 바쁘셨던 것이 이걸 하고 계셨던 거였나
공성 준비도 해야 했던 것 같은데 이걸 병행하고 있었다니…….
새삼 사장님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 길드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피시방에서 강화에 숨을 몰아쉬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퍼져나간 세 명 중 한 명은.
현역 여대생.
중간에 합류하여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회에서 내 팬임을 자처하면서 들어왔으니까.
난 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충분히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
또 한 명은.
수아.
“이쪽은 좀 애매하지 않아요 ”
재중이 형이 이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변태한테서 구해주면서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재중이 형을 워낙 따라서 이해하기 힘들다.
“중간중간 알 수 없는 시간대가 좀 있어서 넣었다.”
사장님이 잠시 재중이 형을 보고 말을 하는데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썩 마음에 들어 하는 표정은 아닌데…….
옆에서 항상 지켜봐서 안다.
지금 엄청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들어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해신
이 형은 더 문제네.
초창기부터 같이 해오던 형인데…….
재중이 형이 이 형은 믿을 수 있다고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하아, 이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한 명은 내 팬이고, 한 명은 재중이 형을 엄청 따른다.
그리고 한명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고.
“기준에 안 맞는 사람이 셋뿐이야.”
사장님이 그렇다면 아마 그렇긴 할 것이다.
셋을 따로 보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련 쪽의 진형이 이상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전력을 한 쪽으로 몰아넣는 것 같은 기묘한 움직임.
이거였나
사장님이 이야기한 것이.
저 방향은…….
어이가 없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