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240화 집중과 선택 사이 (2)
주말 저녁이 되자 어김없이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접속을 못 할 뻔하기도 했고.
“설마 대기 인원이 또 생길 줄은 몰랐는데…….”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기인원은 정말 무섭다.
방패전사가 막타로 들어와서 그런지 아찔한 듯 식은땀을 닦는 포즈를 취했다.
만약 방패전사가 대기인원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다면 전력 누수가 심각했을 것이다.
거기다 나르샤까지 옆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사실 나르샤도 접속이 아슬아슬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팔짱을 끼고 혀를 찼다.
“못 들어왔으면 진짜 엉덩이를 걷어찼을 거야.”
“하하, 들어와서 다행입니다.”
“나도 걷어차려고 진짜야 아쉽네. 늦게 들어왔어야 했나 ”
“아, 좀 살려주라. 너한테 한 말이 아니고. 전사만.”
“봐줬어.”
재중이 형이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신나는데
나르샤는 우리 팀에서 재중이 형을 이겨먹는 유일한 여자다.
챠밍이야 딱히 따지질 않고, 이쁜소녀는 아예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기도 힘드니.
“흐음, 못 들어온 사람이 있나…….”
사장님이 길드 목록을 쭉 내려가면서 확인을 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재중이 형은 피닉스 길드를 버리고 우리 길드로 다시 들어왔다.
공선전의 영향으로 하르 원석도 가격이 오를 만큼 올라 시세에 따라 몇천이 넘어간다.
그걸 확인한 재중이 형이 1초의 고민 없이 피닉스 길드를 버렸다.
어차피 유적지는 1개만 먹을 생각이었고, 단 한 명이 참가하려고 그 비싼 하르 원석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아깝지 않아요 ”
“다시 사오면 돼.”
쿨하네.
길드 이름 엄청 마음에 들어 하더니.
목록에 모두 들어온 것을 확인한 사장님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준비는 다 됐구나.”
지금 있는 곳은 구 페르타 유적지 중심부다.
원래라면 하르 원석이 있어야 하는 기둥 자리이기도 하고.
지금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길드 사람들이 기둥을 눈앞에 두고 대기 중이었다.
“의외네요.”
“뭐가 ”
내 말에 방패전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요. 우리 움직임을 보고 피하려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길드 건물 앞에서 대기했었는데…….”
정말 예상한 것 이상으로 사람이 많았다.
우리끼리 농담조로 아무도 페르타로 안 오면 어쩌나 하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으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려본 거라면 ”
“……그럴 수도 있겠네요.”
“거기다 다른 이유도 있으려나 ”
“그게 무슨 ”
“결과가 이러면 이유가 뻔하잖아. 하르페나 에띠앙과 달리 페르타는 현재 주인이 없지.”
“흐음, 우리가 있다지만, 상대적으로 경쟁률도 적고 특이한 상황인 페르타를 먼저 선점하겠다는 건가요 ”
“다들 그럴 생각으로 모인 것 같은데 확실히 다른 두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게 모였잖아. 에띠앙이나 하르페는 수천이 아니라 수만이 모였을걸 ”
방패전사가 사방을 둘러보자 우리도 역시 따라서 사방을 바라봤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공성전이 시작하자마자 원석을 집어넣으면 바로 주인이 될 확률이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사달이 난 건가
현재 중앙부의 자리는 한정적인데 대기하고 있는 길드는 수백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 밀치고 밀어내고 하는 광경이 자주 펼쳐졌다.
“좀 떨어지지 시작 전부터 피 보고 싶어 ”
“너희야말로 떨어져.”
“지금 해보자는 거야 ”
“아! 좀 밀치지 맙시다.”
“저리 비켜. 우리가 먼저다.”
“웃기고 있네.”
언성이 높아지는 것은 예사고 벌써부터 무기를 꺼내 들고 준비하는 길드도 보였다.
그러면서도 서로 찌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것은 먼저 손을 썼다가 단체로 둘러싸이면 아무것도 못 해보고 아웃이다.
아직 공성전이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공성전을 시작해야 경험치와 드랍률 보정이 된다.
이 자리에서 먼저 손을 쓴다는 것은 다 같이 죽여 달라는 소리와 똑같다.
현재는 그저 조금 더 일찍 온 길드만이 화색이 도는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저거 정말 될까요 ”
“……글쎄 모르겠네.”
내 물음에 저 시장 바닥을 지켜보던 방패전사가 뭔가를 생각하다 그냥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우리야 시작점을 다르게 잡았으니까 상관없겠지. 쟤들끼리 실컷 뒹굴라고 해.”
방패전사 말대로 우린 같이 뒹굴 생각이 없다.
그저 좀 떨어진 곳에서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수성하는 입장이 얼마나 난이도가 높은지 이전 공성 때 겪어봐서 잘 안다.
그리고 우리가 세 개의 유적지를 가지고 있기에 수성이 유리한 패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영진이 우리에게 그 정도로 친절하진 않지.
시간이 흘러 8시가 되자마자 바로 신호가 울렸다.
《 기다리시던 공성전이 지금 시작됩니다. 》
《 5. 》
《 4. 》
《 3. 》
《 2. 》
《 1. 》
《 승자에게 축복을! 》
각 길드마다 하르 원석을 들고 기다리다 낭패한 표정들을 지었다.
대기하던 모든 인원에게 워프 이펙트가 생겼으니까.
그리고 몇 초가 지나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페르타 외곽으로 튕겨 나갔다.
시야가 복구된 장소는 페르타로부터 한참 떨어진 늪지대다.
“크큭, 역시 발로 뛰라는 소리네.”
방패전사가 자연스럽게 9강 안개 협곡 블레이드와 미스트 쉴드를 들고 우리 앞에 섰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유난히 눈에 띄는 녹색 빛을 내는 오우거 로드 플레이트에서 당당함이 느껴졌다.
다만 재중이 형이 바로 만류했다.
“아직 아냐. 당장 속도 싸움을 하면 우리가 당연히 이기겠지만…….”
재중이 형 말대로 라이덴이나 미스트 윙을 타고 날아가면 누구보다 빨리 중심부에 도착해 페르타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우리와 다르게 다른 길드들은 경쟁을 시작했다.
“늦으면 뺏긴다.”
“달려! 먼저 가는 쪽이 임자다.”
“우리가 먼저야!”
“가즈아! 가서 페르타를 먹즈아!”
수천이 탈것을 타고 날아오르는 광경이란…….
고도제한으로 높게 올라갈 수 없지만 지상의 장애물들을 넘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다.
이번 공성전의 가장 큰 변수기도 하고.
“어때 ”
방패전사 역시 공성전이 시작되자마자 내게 물었다.
“흐음, 역시나죠 ”
“너도 그러냐 ”
“네, 마찬가지죠 ”
내 말에 방패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살펴본 것은 라이덴.
공중 탈것이 공성전에서 어떻게 변화가 있을까 하는 점.
이놈의 운영진은 불친절하기 그지없어서 항상 유저가 직접 확인을 하게끔 만든다.
“……비행시간이 대폭 줄어들겠네요. 타고 있을 때 마력 소모가 기존의 다섯 배가 넘어요.”
“라이덴이나 미스트 윙이 이러면…… 쟤들은 재밌겠네.”
방패전사가 그 말을 내뱉기 무섭게 하늘에서 탈것을 타고 날아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처박혔다.
공중에 뜬 수천의 탈것이 역소환되어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광경이란…….
높이가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물약 한두 개로 안 끝난다.
갑옷, 무기 등 장비 아이템의 무게가 있으니까.
떨어지는 가속 자체가 다르다.
잘못 떨어지면 그냥 바로 죽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수십의 사람이 경쟁을 하듯 죽음의 빛을 남기고 바로 사라져 버렸다.
“다들 내려와! 비행시간 너무 짧아!”
“떨어진다! 빨리!”
그제야 허겁지겁 길드원들을 부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확실히 탈것을 타게 해준다고 했지.
오래 타게 한다고는 한 마디도 안 했다.
운영진들도 악취미네.
그 모습을 보던 재중이 형이 킬킬거리면서 웃어댔다.
저 형은 재밌나 보다.
……사실 나도 재밌다.
“네임드나 엘리트급이 아니면 벽을 넘어가는 것은 무리겠는데 노멀로는 성벽 구경만 하고 끝나겠다.”
방패전사가 비행시간과 고도를 맞춰보더니 말을 꺼냈다.
“우리 쪽은 다행히 문제가 없네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여차하면 라이덴이나 미스트 윙을 이용해 넘어갈 수 있으니까.
지금이야 반파된 폐허라 막 지나갈 수 있지만.
페르타를 먼저 먹어야 할까
공중 탈것에 이런 페널티가 생겼다면 고려해볼 만한 일이다.
눈앞에서 탈것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고려해 포기했는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먼저 먹어요 ”
“잠시만 생각 중.”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니 생각 외의 상황에 작전을 급히 변경하는 모양이다.
“성벽을 공성이 끝날 때까지 커버라…… 인원은…….”
지금 생각 중인 저 한마디 말에 공성전의 판도가 확 바뀔 수도 있다.
견적을 계속 재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건 안 된다는 건가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본다. 숫자가 좀 더 줄어들면…… 해야 할 것도 있고.”
“그렇게 해요.”
변수가 좀 있긴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가기로 한 모양이다.
오히려 이쪽이 좋을지도.
일단 사장님이 동맹들에게 전부 전달했다.
우리 좌우로 퍼져 있는 달 길드와 치맥 길드에게.
그리고 양쪽 다 괜찮다는 답변이 왔다.
지금은…….
누가 먹든지 먹게 둔다.
그렇게 페르타 중심부를 향해 뛰어드는 사람들과 달리 의외로 우리와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는 길드들이 보였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공부 열심히 했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아주 어중이떠중이만 모인 것은 아니라는 거겠죠.”
방패전사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냥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어떤 길드가 낚아챘는지 시스템 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 페르타의 메인 크리스털이 수복되었습니다. 》
《 지배자 길드가 페르타의 소유권을 가집니다. 》
《 지배자 연합이 페르타를 방어합니다. 》
《 현 시간부로 지배자 연합을 제외한 모든 유저들은 페르타 밖으로 순간이동 됩니다. 》
《 5. 》
《 4. 》
《 3. 》
《 2. 》
《 1. 》
《 승자에게 축복을! 》
지배자 길드
깜짝 놀라 재중이 형을 바라봤더니 재중이 형도 놀랐는지 나를 바라봤다.
우리 팀 전부, 아니 길드원들까지 모두 놀란 눈치다.
“화련 재주도 좋네.”
결국 재중이 형이 말을 꺼냈다.
“몰래 연합을 다시 살려놨네요.”
방패전사 역시 놀랐다.
“대체 언제 살린 거야 ”
이상한 것은 재중이 형이 언제 살렸다고만 말했지 어떻게 살렸는지는 따로 언급하지도 않았다.
“다른 건 안 궁금해요 ”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뻔하지 뭐, 너도 알면서 물어보냐.”
“……하긴 그렇겠네요.”
돈이 무섭긴 무섭네.
이번엔 또 얼마나 많은 길드를 포섭했으려나
그리고 페르타라…….
이건 우리에게 보내는 도전장이다.
“재밌겠어.”
재중이 형이 왠지 신난 모습이다.
도전하는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는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가급적 화련 저 여자랑은 엮이고 싶진 않은데.
굳이 오겠다면 또 털어줘야겠지.
내겐 좋다면 좋은 사람이다.
볼 때마다 수입이 팍팍 늘어나니까.
“덕분에 잘 됐구나,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갑자기 사장님이 따로 이야기를 하셨다.
전에 말한 그것인가
페르타가 지배자 연합에게 넘어가면서 페르타로 뛰어들었던 수많은 사람이 튕겨 나오면서 페르타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가 되었다.
분해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까워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일단, 페르타는 다른 유적지와 형식이 좀 다르다.
진입로는 세 곳 뿐.
벽을 넘어간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저기 그런데요…….”
그때, 이쁜소녀가 뭔가 생각났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잘못됐어 ”
내가 묻자 이쁜소녀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화련이 유적지를 먹으면 돈을 막 쓰지 않을까요 으음, 예를 들면 방어 NPC 같은…….”
***
얼마간의 정비시간을 주고는 바로 방어전이 다시 시작됐다.
역시나 화련이 포섭한 길드가 한둘이 아니다.
성벽을 다 둘러싸진 못했지만 다른 연합이라면 생각조차 힘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제법 많은 사람이 방어선을 치고 있기에 막상 올라가면 피해가 클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라인을 피해 수천의 사람이 각자의 사활을 걸고 성벽 방어 라인이 비어 있는 곳을 찾아 오르기 시작했다.
다 못 막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그런 움직임을 몇몇이 보이자 다른 길드들도 따라서 빈 곳을 찾아 올랐다.
우리가 제일 피곤해하는 상황이 저거다.
방어 병력의 부재.
그런데 갑자기 방어 병력이 비어 있던 성벽들 위로 누군가 우르르 나타났다.
추가 병력
“아니, 저건 NPC다.”
방패전사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바로 NPC라고 말했다.
석궁을 든 궁수들이 성벽을 기어오르는 사람들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으음, 저 정도 위력이 나오려면 등급이 꽤 높은 NPC일 건데…….
저게 얼마라더라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무려 마법사 NPC의 등장.
베네아에서 본 마법사보다 못하지만 불꽃이 이글거리는 광역 마법을 쏘아내서 성벽을 오르던 유저들을 죄다 통구이로 만들어버렸다.
그걸 본 방패전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게 얼마짜린데…… 완전 미친년 아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