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239화 집중과 선택 사이 (1)
이렇게 오래 접속을 못 한 기억이 있었나
서버 점검을 제외하고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하루 종일 접속 문제로 공식 홈페이지부터 각종 커뮤니티까지 시끄러웠는데, 밤 10시쯤이 되자, 열다섯 번째 서버가 새롭게 열렸다.
물론, 원래 계획에 있었던 것인지, 부랴부랴 준비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서버가 신설되었기 때문일까
오늘 들어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대기열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만 우리 서버는 미세한 변화만 보였다.
미쳤네.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우리 서버만 이렇지
상당히 많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30만에 달하는 대기열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승호> 정말 못 들어가네요.
<재중> 네 덕이지. 어찌나 홍보를 잘 했는지.
재중이 형도 이젠 포기했는지 편안한 목소리다.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네.
형의 예측이 완전히 들어맞았다.
<재중> 애초에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다른 서버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진 않겠지.
설마, 들어갈 때마다 이런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정말 치명적이다.
우리 팀은 시간을 맞춰 들어가곤 했는데, 이런 식으로 접속이 제한 당하면 답도 없다.
<재중> 음…… 곧 점검할 걸
재중이 형이 말하기 무섭게 홈페이지에 새로 공지가 떴다.
《 서버 증설로 인한 긴급 점검이 시작됩니다. 》
이러한 상황을 로스트 스카이 측에서도 알았는지, 대기열이 유독 심한 서버부터 점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승호> 살았네요.
<재중> 거봐, 신서버 만으로는 안 된다니까.
이 형 진짜 돗자리 깔아야 하는 것 아닌가
게임에 대해서는 못 맞추는 것이 없다.
<재중> 점검 한두 시간으로 될 건 아니니 쉬어둬. 내일부터 또 정신없어질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끝냈다.
어쩔 수 없이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다음날이 되어서야 서버 점검이 끝나 있었다.
졸지에 운영진들 죄다 밤을 새웠겠구나.
안 그래도 버겁다고 했는데 일거리를 막 머리 위에 올려줘 버린 것 같다.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미안하네.
그래도 서버창은 점검의 영향인지 여유가 넘쳤다.
물론, 우리 서버를 비롯한 몇몇 서버가 빨간색으로 표기가 되었지만.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66.
> 로딩 중…….
오우거 로드를 잡고 나서 레벨이 3이나 한 번에 올라갔다.
가뜩이나 사냥터에 비해 내 레벨이 너무 높다 보니 경험치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덕분에 당분간 레벨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길드 건물에 사람들이 하나둘 접속하는 것을 보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어제와 같은 일이 벌이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방패전사를 시작으로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차례대로 접속하고 사장님까지 모두 접속했다.
“오늘도 접속이 안 될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이쁜소녀가 주변에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챠밍 역시 마찬가지 표정이고.
매일 붙어 다니다 보니 하루를 안 봤을 뿐인데도 굉장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서버 인원을 엄청 늘린 모양이네. 재주도 좋아.”
재중이 형이 누군가를 생각하는지 흡족한 얼굴을 했다.
“지금도 사냥터가 비좁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대충 예상해 봐도 다른 서버보다 배 이상은 인원이 많을 건데 말이지.”
사장님이 어제 대기 사건으로 꽤 질린 표정이다.
우리가 없는 동안 사냥터 관리뿐만 아니라 신규 유저들까지 살펴본다고 손이 몇 개라도 모자랐다고 하셨던가.
“흠, 손은 하난데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구나.”
그리고 사장님이 길드원 몇 명 불러서 어디론가 바로 보내셨다.
“어디로 보냈어요 ”
“공성전 물품 구매. 무게 때문에 혼자서는 다 못 사니까. 하르도 추가로 더 구해야 하고, 압축 물약도 길드원들에게 줄 것까지 싹 구매해서 넘겨야 해. 거기다 장비도…… 거기다 초보존도 한 번 더 들려봐야 하고.”
역시 인원이 많다 보니 이것저것 해야 할 것이 많아 보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 공성전이 곧 시작됩니다. 》
《 공성전에 참여를 신청한 길드의 길드장이 소유한 하르 원석은 공성 증표로 변하며, 길드장 사망 시 높은 레벨의 길드원에게 증표가 전달되오니 유의 바랍니다. 》
《 하르페, 에띠앙, 페르타가 공성전 대상입니다. 》
《 각 도시 위로 공성전 중에는 비행 고도가 제한됩니다. 》
이번에 사람이 많이 유입되면서 접속을 못 했던 것과 별개로 공성전은 예정된 시간에 시작되었다.
1서버인 우리 서버는 세 곳, 다른 서버에선 에띠앙을 제외하고 두 곳 혹은 하르페만 공성에 들어가는 서버가 많았다.
전략을 짜기 위해 회의장에 프로 형들과 일부 길드원들까지만 참여를 했다.
“호수의 여왕은 결국 못 잡네요.”
“원래 운영진 예상엔 저 정도가 딱 맞았겠지. 우리가 너무 빨리 잡았을 뿐이야.”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공성을 세 곳에서 진행해서인지 우리 서버가 또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방송도 우리 서버 위주로 해설을 하는 중이기도 하고.
물론, 막상 공성에 들어가면 우리는 보지 못하겠지만.
“동맹은 어떻게 됐어요 ”
“이야기가 기묘하게 되었긴 한데…….”
내 말에 사장님이 약간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현재 상황은 꽤 애매하다.
오우거 로드의 등장으로 우리가 소유하던 한 곳이 날아갔고, 남은 두 곳을 우리의 소유로 시작해야 했다.
만약, 양쪽 다 방어할 생각이 있다면 적절한 인원을 양쪽에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페르타까지 먹을 생각을 한다면 인원이 훨씬 많이 필요했다.
“아무리 전략을 짜도 세 곳을 다 먹는 것은 무리더라.”
최종병기가 실망한 투로 고개를 저었다.
프로 형들이 재중이 형과 접속이 안 되는 동안 머리를 맞댔지만, 이 어마어마한 미션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두 곳도 아슬아슬해.”
수호도 마찬가지.
약한 소리를 안 하는 저 형들이 저러면 정말 방법이 없는 거다.
최종병기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거리. 각 도시의 거리가 너무 멀어. 텔레포트가 안 되니까 거리는 고정. 라이덴이나 미스트 윙이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도 소수만 이동시킬 수 있으니 전세 자체에는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것 같고.”
역시 거리가 문제네.
한 곳을 차지하고 우르르 몰려갈 수 있다면 남은 곳도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단체로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 없는 이상 그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차지한 곳을 비워두고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도 위험 부담을 상당히 떠안아야 한다.
인원이 엄청나게 많지 않은 이상 거점 한 곳을 버리고 다른 곳을 잡으러 가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결국, 한 곳 싸움이네요.”
“그래, 한 곳에 집중해야지. 여러 곳 모두 발을 놓았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되겠지.”
사장님도 똑같은 생각이시다.
확실히 한 곳만 한정한다면 이야기가 꽤 쉽게 돌아간다.
그리고.
회의실에 앉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페르타지.”
“페르타겠죠.”
“페르타.”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딱 한 곳을 잡아야 한다면 페르타라고.
사장님이 그 의견에 쐐기를 박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하르페의 세금이 1이라면 에띠앙은 3 정도, 페르타는 5다. 아무리 신규 유저가 늘어났더라도.”
결정이네.
저 정도로 차이 난다면 재고할 필요도 없다.
“동맹에선 전설은 빠진다고 연락이 왔다.”
“역시 그런가요 ”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전설이 누구 밑에서 일할 타입은 아니라고 재중이 형이 누누이 말해줬으니까.
뭐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금까지 엄청나게 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동안 간을 본다는 듯 지켜봤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확실히 자기 노선을 걷는 느낌이다.
“전설은 언젠가 떨어져 나갈 쪽이었지.”
사장님의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쪽은 어떻게 됐죠 ”
“달 길드는 이번에도 같이 한다고 하더구나.”
“소수정예하고 치맥은요 ”
“치맥은 같이 하고, 소수정예는 전설에 붙었다는군.”
“흠, 전설이 그냥 나가진 않네요.”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어느 길드가 어느 쪽에 붙었는지 하나씩 체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점검을 끝냈다.
***
공성전이 시작되기 전.
서로가 눈치 싸움으로 정신이 없었다.
유적지가 세 곳이다 보니 배치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게 다가왔다.
세 곳 중 어느 곳에 서는가에 따라서 유적지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될 수 있으니까.
최대한 강한 연합이 있는 곳을 피하는 것도 중요한지 연신 다른 길드의 동향을 살피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다.
특히, 우리 길드를 수시로 살피고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가 길드 건물에서 나가지도 않았는데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려고 아예 사생 팬이라도 된 것처럼 앞에서 진을 치고 돌아가지도 않았다.
“이거 꽤 주목받고 있네.”
방패전사가 창을 통해 길드 건물 바깥을 힐끔 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아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꼭 팬들 보는 것 같아요.”
챠밍도 이미 봤던 모양이다.
“저희 나갈 때까지 안 돌아가겠죠 ”
챠밍과 달리 이쁜소녀는 이런 상황이 낯선지 조금 불편해 보였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까 확실히 반응도 다르구나.
챠밍은 별 감흥도 없어 보이는 반면 이쁜소녀는 화들짝 놀라 창문을 힐끔거리는 것을 보니 확실히 다르다.
한번 봤는데 눈치 싸움이 장난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른 길드의 눈치를 볼 상황은 아니니까 저런 것은 생각도 못 했는데…….
대단하네.
저 사람들 상황에선 저게 최선이지.
일단, 미리 약속했던 대로 인원을 나누었다.
그리고 사장님을 포함한 최강 길드는 모두 페르타 쪽으로 미리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하르페는 포기다.”
“네, 알고 있어요.”
사장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띠앙도 포기죠.”
“그렇지.”
이번엔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냥 처음부터 싹 비운다.
전처럼 비우는 척하고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완벽히 계획에서 배제했다.
“우리가 이렇게 움직여야 다른 길드도 움직이지.”
사장님 말대로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길드들의 연쇄 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 길드 건물 바깥에 있는 저 많은 사람이 일제히 소식을 전할 테니까.
최강과 신화 길드가 가는 곳은 피해야 할 1순위다.
이건 우리가 한 말은 아니고 게시판에 이미 널리 퍼진 말이다.
최강, 신화가 가는 쪽은 먹기 힘드니까 그냥 다른 쪽으로 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설 쪽도 알아요 ”
“뭐, 따로 말해줬다. 그동안 같이 한 의리도 있고. 먼저 물어온 것도 있고.”
“어디로 간데요 ”
하르페 에띠앙
설마 페르타인가
진짜 우리랑 치고받을 생각은 아니겠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사장님이 웃으셨다.
“에띠앙으로 간다는구나.”
“흐음, 역시 그런가요.”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니까 전설도 우리와 푸닥거리를 하고 싶지는 않겠지.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는 녀석이니.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절대 붙고 싶지 않을 거다.”
“우리도 좀 꺼림칙하기는 하죠.”
전설을 몰랐을 땐 좀 쉽게 본 것도 있다.
그런데 저번 일로 생각이 싹 바뀌었다.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저력을 봤으니까.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 않나.
“스칼렛 쪽은 언제 합류한다고 해요 ”
사장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으셨다.
“아마 가던 도중에 만날 수 있을 거다.”
“큰 변수는 없겠죠 ”
“글쎄다, 자금력이 있는 세력이 많아 보이지만, 일단 해봐야 알겠지. 그리고 이번에 새로 유입된 세력들은 두각을 드러내려면 좀 기다려야 할 테고…….”
“그런가요.”
결국 부딪쳐봐야 하나.
다행은 우리 눈치를 본다고 여러 길드가 페르타에서 발을 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전보다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그러면서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이야기를 하셨다.
비밀
“……이번에 배신자를 확실히 걸러낸다.”
“정말 가능해요 ”
“이럴 때니까 가능하겠지. 어디 덫에 걸려들지 넘어갈지 한 번 두고 보자꾸나.”
솔직히 거의 잊고 있었는데 계속 신경 쓰고 계셨구나.
쥐새끼를 잡을 기회란 말이지.
가급적이면 아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비밀을 이야기하는 사장님의 눈빛이 스산하게 내리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