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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23화 (223/1,404)

# 223

#223화 통수와 통수 사이 (5)

원 사이드 게임.

당하는 쪽에선 답답하기 그지없는 그런 게임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반대로 이기는 쪽 입장에서는 더없이 행복한 그림이 된다.

지금처럼.

【 라이덴 하트! 】

내가 또 전깃줄을 꺼내자 주변에 있던 적들이 진저리를 쳤다.

“저 미친놈 좀 잡아!”

“공격을 다 피하는데 뭔 수로 잡어!”

“아, 진짜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또 온다! 피해!”

다시 시작된 대쉬와 헤이스트의 콜라보.

평소보다 한껏 높아진 반응속도에 부담감과 답답함이 한 꺼풀 벗겨진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놈의 감각은 아직도 민첩에 배고픈 모양이네.

이 정도로 가속을 붙였음에도 제어가 힘들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오히려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팔에는 전기가 흐르는 초강력 전깃줄.

다른 한 손에는 카스카라를 들고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도 날아오는 속성 화살과 마법을 쳐내면서 라이덴 하트로 소모되는 부족한 마력을 채워 넣었다.

한 번 더 주변을 싹 돌고 나니 또 수십의 사람이 바닥에 엎어져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이거 중독될 것 같아.

“차라리 네가 잡고 돌리는 편이 낫지 않냐?”

내 주변이 워낙 초토화되어 그런지 방패전사가 아무 부담 없이 옆에 다가와 섰다.

이 형, 진짜 할 게 없겠구나.

뭐 막을 것이 있어야 막지.

지금은 그냥 마실 나온 것처럼 편안하게 전장을 돌아다녔다.

주변을 보니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도 물 만난 고기처럼 사람들을 잡아내고 있었다.

방어를 굳이 할 필요가 없고, 공격력 하나는 최강이니 남들보다 잡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 보였다.

“아, 형 오셨어요?”

“뭐, 네가 워낙 잘 밀어놔서. 우리 쪽 애들도 거의 다 주변에서 사냥 중이고. 그냥 전깃줄을 달고 다니는데도 사람들이 저렇게 당할 줄은 몰랐네.”

“전기가 사방으로 퍼지니까요. 잘 못 피하는 사람도 많고.”

내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 전깃줄로 훑고 지나가는 순간 납작 엎드린다거나 점프를 해서 피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다만, 그렇게 못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피하는 사람, 못 피하는 사람으로 나뉘고 못 피한 사람들이 전깃줄에 걸리면서 사방으로 전기를 전이시켜 버렸다.

잘 피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도 있다.

잘 피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때문에 걸려서 쓰러지니까.

거기다 전깃줄을 흔드는 것까지 추가하니 줄이 요동치며 위아래로 웨이브가 걸려 생각보다 피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근데 그거 잘 하면 그냥 돌려도 될 것 같은데? 굳이 힘들게 그걸 잡고 달릴 필요가 있어? 네가 풍차처럼 돌리면 아예 못 피할 것 아냐.”

방패전사가 내가 하는 것을 보고는 의문이 생긴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게요.”

원래 처음엔 사람을 달고 난 뒤에 풍차처럼 돌리는 것도 해보려고 했었다.

전깃줄을 돌리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오우거 하트 있어서 힘이 부족하거나 하지는 않으니.

다만, 정작 갈고리 끝에 매달린 사람이 못 버틴다.

“제가 처음엔 돌려보려고 했는데 추 역할을 해줄 사람이 못 버텨요. 사람들하고 몇 번 부딪치면 바로 죽어버릴걸요? 충격만큼 대미지가 들어가니까.”

“중간에 죽어버리면 줄이 축 늘어지겠네.”

“뭐, 그렇죠. 지금도 그냥 끌고 다니기만 해도 금방 죽어버려서요. 새로 묶으려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라이덴 하트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적은데 사람 묶다가 시간을 다 보낼 수 없어서…….”

“으음, 어지간히 단단한 녀석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네, 아쉽죠 뭐. 체력이 아주 많은 그런 녀석으로 감으면 아마 될 것 같기는 한데…….”

내가 말해놓고도 잠시 움찔해 버렸다.

아주 체력이 많은…….

아주 체력이 많은?

아주…….

으음…….

“전사 형, 고마워요.”

“응? 뭐가?”

내 말에 방패전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내가 마주 웃었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으니까.

“제게 아주 단단한 녀석이 하나 있거든요.”

***

【 라이덴 소환! 】

어차피 타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하는 지상에선 애물단지인 녀석.

굳이 꺼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필요했다.

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라이덴의 몸체에 밧줄을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방패전사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단단한 녀석이 이 녀석이냐.”

“네, 엄청 단단해 보이지 않아요?”

“……단단하겠지.”

그러고는 방패전사가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라이덴만큼이나 미스트 윙도 체력이 많다.

지나칠 정도로.

심지어 라이덴은 전기 공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줄을 감고 있는다고 체력이 깎이는 일이 없다는 소리다.

“네 머릿속엔 대체 뭐가 있나 모르겠다.”

어느새 다가온 재중이 형이 신기한 것을 본다는 듯 옆에 서서 구경 중이었다.

“재밌어 보이죠?”

“쟤들은 하나도 안 재밌을걸?”

그러면서 아직도 블록을 유지하면서 버티고 있는 화련 연합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전깃줄을 이용해 쓸고 다니면서 전장의 외곽을 초토화시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다 쓸어버린 것은 아니다.

날 피해서 도망간 사람도 많고, 전기충격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도망간 사람도 많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화련 연합의 주축들과 뭉쳐 제법 단단한 라인을 형성하자 내가 차마 치고 들어가기 난감한 장소로 변해 버렸다.

내 체력도 무한한 것이 아니라, 저 정도로 빡빡하게 뭉쳐 있으면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우리 쪽 연합에서 화련 연합이 뭉친 외곽을 두들기며 야금야금 녹이곤 있지만 워낙 수가 많고 역공도 자주 나와 무턱대고 밀고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저렇게 몰려 있으면 회복마법이 엄청난 효율을 발휘해.”

“아, 확실히 그렇죠.”

“뭉쳐 있으면 힐이 전체로 다 들어가니까.”

“똑같이 마력을 써도 효율이 저쪽이 훨씬 좋다는 거네요.”

“그래, 그것 때문에 꽤 장기전이 될 거 같았는데…… 그것도 이제 끝이겠네.”

재중이 형이 나와 라이덴 그리고 화련 연합이 뭉쳐 있는 곳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재중이 형이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결과가 예상되나?

“드디어 화련을 볼 수 있겠군.”

재중이 형의 말에 나도 웃어버렸다.

어느 순간 안 보인다 싶더니 남은 연합을 모아서 단단한 블록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버렸으니까.

저 블록을 깎아야 화련을 볼 수 있다.

바로 라이덴도 라이덴 하트를 발동시켰다.

【 라이덴 하트! 】

그런데 의외의 일이 생겼다.

“어?”

라이덴에서 보내는 전기 충격이 초강력 갈고리를 타고 넘어와 내 마력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급격하게 떨어져야 하는 마력이 라이덴 덕분에 유지가 되었다.

미쳤네. 이건.

라이덴만 죽지 않으면 이건 무한인데?

그걸 재중이 형에게 말했더니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네.”

이거 방패전사에게 진짜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해야 할 것 같다.

잠시 라이덴과 멀어진 후 오우거 하트의 힘으로 초강력 전깃줄을 두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리자 전깃줄이 당겨졌다.

그 상태로 허리를 회전시켜 돌리기 시작했다.

전깃줄이 상당히 길어서 바닥에 닿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충분한 무게의 라이덴이 중심이 되자, 점점 가속이 붙더니 이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회전력이 생겼다.

“자! 갑니다!”

전깃줄 풍차.

아니, 라이덴 풍차.

한마디로 요약하면 딱 그거다.

내가 화련 연합 수백이 모여 있는 블록으로 이동하자 범위 안에 들어 있는 아군들이 일제히 내 주변에서 벗어났다.

“우아, 미친.”

“이젠 풍차도 하냐?”

“정말 적이 아닌 게 다행이다.”

“난 저놈은 못 이길 것 같아.”

“미친놈은 못 이기지.”

“그래, 미친놈은 이길 수 없어.”

“가라! 주호!”

“쓸어버려!”

우리 연합 쪽의 응원과 함께 전기 풍차가 굉음을 내면서 화련 연합의 블록으로 들이닥쳤다.

“으악! 피해!”

“저걸 무슨 수로 피해!”

“뒤에 좀 비켜!”

“위로 뛰란 말이야!”

“악! 사방으로 전기가 퍼진다!”

“젠장, 참가하는 게 아니었어…….”

아수라장.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라이덴과 회전 가속이 붙은 전깃줄을 막을 수 있을 리가…….

회전으로 들이닥치는 속도 자체가 다르다.

거기다 라이덴 자체도 전기 덩어리기도 하고.

저 정도로 뭉쳐 있으면 문제가 또 있다.

전기 전이.

한 명만 닿아도 주변에 전기를 퍼뜨리면서 죽을 맛인데 지금은 아예 우르르 뭉쳐 있었다.

어떻게든 살려고 뭉친 것이 지금은 최악의 수가 되어버렸다.

죽여 달라는 거지.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네.

전깃줄에 닿은 사람들이 전기에 당해 볏짚 쓰러지듯 픽픽 쓰러지자 전열이고 뭐고 없다.

그저 서로 밀치면서 도망가기 바쁠 뿐.

풍차가 밀고 들어갈 때마다 화련 연합이 한 움큼씩 사라져갔다.

“조금만 버텨! 저거 오래 못 쓴다!”

“그래, 아까도 금방 꺼졌어! 조금만 버티면 된다!”

화련 연합 안쪽에서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누군지 몰라도 아까 당했다가 도망간 사람들인가 보네.

근데 마력 부족?

이제 내게 그런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도 풍차가 끝나지 않자,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졌다.

“누가 저거 금방 꺼진다고 했어!”

“어떤 새끼야? 대가리 박아!”

라이덴 풍차가 꺼질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입을 모두 닫아버렸다.

그리고 화련 연합이 우르르 붕괴되기 시작했다.

블록 하나만 믿고 버텼는데 지금은 그냥 초토화다.

지우개로 지우듯 풍차가 지우고 들어가니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진영이 붕괴되고 사방으로 탈출 시도를 하는 것을 우리 연합 사람들이 포위해서 싹 녹여 버렸다.

대체 얼마나 돌린 걸까?

이것도 계속 돌리니 어지럽네…….

무한한 마력 때문에 계속 돌릴 순 있지만, 정작 내가 어지러워서 풍차를 멈춰 버렸다.

“고생했다.”

내가 풍차를 멈추자 재중이 형과 우리 팀이 모두 내게 다가왔다.

“완전 멋있었어요.”

이쁜소녀가 와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어댔다.

“사람들이 전부 오빠만 보네요.”

챠밍도 마치 우리 아들이 어디 가서 상 타온 것 같은 그런 포근한 미소로 날 바라봤다.

“정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네. 저길 혼자서 초토화시키다니…….”

표현을 잘 안 하는 나르샤도 감탄을 했다.

“쑥스럽네요.”

“그만큼 임팩트가 엄청났어, 이거 또 게시판이 들썩이겠구만.”

방패전사도 즐거운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다들 왜 여기에?”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끝났어. 너 풍차 돌린다고 정신이 없었나 보네.”

“네? 그게 무슨?”

“네가 싹 쓸어버렸다고.”

정신없이 돌린다고 몰랐는데 이미 화련 연합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내가 이 정도로 돌렸었나?

“크, 저기 하이라이트 남았다.”

초토화된 화련 연합 끝에 화련과 그 친위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남아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화련이 날 발견한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이씨! 너, 너, 너!! 진짜!!”

분함이 가득 담긴 어깨 떨림과 함께.

패배도 이런 대패가 없으니 말도 안 나오는 건가?

“딱히 유감은 없어요. 그냥 적이었으니 깨졌다고 생각하세요.”

진짜 화련에게 별 감정이 없다.

오히려 고마운 사람이지.

매번 아이템을 다발로 안겨주니까.

이번에도 살림살이가 많이 좋아질 것 같다.

이 말까지 하면 혈압 올라서 죽을지도 모르니 말을 아꼈다.

솔직히 다음에도 또 덤벼줬으면 좋겠네.

“끝은 내가 해도 되겠나?”

어느새 다가온 폭군이 내게 정중이 부탁을 했다.

아, 폭군인가?

꽤 당했다고 했지.

이 사람 입장에서는 이 일전이 한을 푸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딱히 막을 생각은 없고.

“뭐, 좋으실 대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다 양보하도록 하지. 고맙다.”

그렇게 화련의 친위대와 폭군의 길드와의 싸움을 지켜만 봤다.

“끝났네요.”

한참을 격돌하던 폭군이 화련의 목을 치면서 이 길어질 것 같았던 쟁이 완전히 끝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내 손으로 화련을 직접 잡은 경우는 한 번도 없네.

화련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기회가 없는 것 같다.

폭군이 화련의 목을 따자 우리 쪽 연합 사람들이 전장이 떠나가라 환호를 했다.

굳이 마무리까지 해결해 더 주목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실속만 챙기면 됐지.

폭군은 아마 더할 나위 없이 많은 것을 양보해 줄 거니까.

이제 정산하고 미뤄뒀던 강화를 좀 해야겠다.

지갑이 두둑해질 것 같으니까.

그때, 메신저로 뭔가 연락이 들어왔다.

송신이…….

화련?

죽어서 마을로 갔을 텐데 바로 연락을 하다니.

“형, 화련에게 연락이 왔는데요?”

“응? 욕이라도 잔뜩 적어서 보냈나?”

“그 말을 들으니 열어보기 더 겁나네요.”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네. 한 번 열어봐.”

뭐 욕이 적혔으면 그냥 삭제하면 되니까 바로 메일을 열었다.

<화련> 100억 줄게. 내 밑에서 일해.

응?

100억?

이 여자 미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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