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214화 일찍 나는 새가 많이 주워 먹는다. (1)
라미아 여왕의 심장.
이렇게 요란한 쇼를 하면서 이번 수송 작전을 벌인 목적이다.
가장 필요하고, 가장 갖고 싶었던 아이템.
방패전사가 건네주는 것을 받아 챠밍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받아.”
“그냥 받아요?”
챠밍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렸다.
너무 큰 것을 받으려니까 부담이 되는 눈치인 것 같다.
“언니, 그냥 받아. 언니 주려고 준비했잖아.”
“그래, 이번엔 네가 가져야지.”
이쁜소녀와 나르샤가 괜찮다고 말하자 자연스럽게 챠밍의 시선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너 말고는 쓸 수 있는 사람도 없어.”
방패전사의 말.
“난 안 쓰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
재중이 형은 그냥 다른 곳을 보면서 딴짓을 했다.
그리고.
“약속 지킨다고 했지?”
내가 한마디를 하자 챠밍이 그제야 환하게 미소 지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그런 밝은 미소다.
저 미소를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
“다들 정말 고마워요. 잘 쓸게요.”
그러면서 챠밍이 여왕의 심장을 사용하자 바닥에서부터 원형의 마법진이 생기며 수십 갈래의 빛이 위로 차올랐다.
그리고 그 빛이 모두 모여 챠밍의 심장 부근으로 흡수됐다.
심지어 옆에 있던 소녀 라미아까지 빛에 쌓이더니 눈빛이 좀 더 발갛게 변했다가 사라졌다.
뭔가 변화가 있는 건가?
“했어요.”
그리곤 인터페이스의 창을 열어 수치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으음……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에 챠밍의 인터페이스를 팀원이 전부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생각 이상이네.”
“버그 아니야?”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수치를 확인하고는 잘못 봤나 해서 눈을 비비는 모습에 나도 확인을 했다.
“이거 예상한 수치보다 높은데요?”
뭐지?
똑같은 심장인데.
나와 증폭 수치가 다르다.
내 것이 1.5배라면 챠밍의 것은 1.6배? 1.7배인가?
“왜 이렇죠?”
챠밍도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쟤 때문인 것 같은데?”
나르샤가 손가락으로 챠밍의 옆에 멀뚱멀뚱 서 있는 소녀 라미아를 가리켰다.
나르샤의 말에 이제야 모두 이해한 얼굴이다.
“확실히, 차이는 쟤밖에 없죠. 저와 챠밍이 따로 나눠가졌으니까 몰랐던 것이 당연했겠네요.”
어떤 형식으로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소녀 라미아와 심장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적용하는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소녀 라미아는 또 안 나왔어?”
재중이 형이 잊어버린 것을 갑자기 생각해내고는 드랍 물품을 바라봤다.
바닥에 둥둥 떠다니는 드랍 템들을 방패전사가 하나하나 다 확인하더니 방패전사가 고개를 저었다.
“없는데요?”
“없어?”
“네, 없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오버를 시켰는데도 없다고?”
재중이 형 말에 모두 혼란에 빠졌다.
분명히 오버를 시키면 드랍 확률이 최대치로 올라갈 텐데 그런데도 딱 하나가 없다.
이미 라미아 여왕을 처음으로 잡아봐서 나오는 템 목록을 모두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건 충격이다.
“드랍 확률이 높아져도 안 나올 정도로 확률이 아주 극악이라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방패전사가 곰곰이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아마 그렇겠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돼. 확률이 이 정도로 높아져도 안 나오는 템이라…….”
그 말을 들은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소녀 라미아 이건, 서버마다 단 하나밖에 없는 템이 될 것 같네.”
재중이 형이 거의 확실하다는 듯 결론을 지었다.
단 하나밖에 없는 템이라…….
이제껏 많은 네임드를 잡아 왔지만, 그런 템은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 경우가 최초이려나?
분명히 나올 확률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확률이 소수점에 수렴한다면?
“안 나온다는 소리지. 게임 문 닫을 때까지 주구장창 호수의 여왕만 잡는다면 또 모르지만.”
재중이 형의 말에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소녀 라미아에게 돌아갔다.
다시 얻을 확률이 거의 없는 템인데, 성능이 저렇게 좋다면 과연 저 녀석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제가 얘를 데리고 있어도 되나 모르겠어요.”
챠밍이 부담스럽다는 눈빛을 해 보였다.
“쓸 수 있는 사람이 쓰는 거야,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도 돼.”
내 기준엔 쓸 수 있는 사람이 쓰는 것이 가장 좋다.
내 말에 마음이 좀 편해졌는지 챠밍이 고개를 숙여 감사 표시를 했다.
“저쪽은요?”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호수의 여왕이 접근하기 힘든 패턴을 쓸 때마다 브락크를 조금씩 괴롭혀줬다.
일단, 두 마리가 다 있는데 한 마리만 먹고 빠지긴 아쉽지.
템이 적게 나오더라도 못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방패전사가 바로 확인을 했다.
“하나 나왔는데…… 이건 소녀 네가 써야겠는데?”
『 +0 포이즌 해머 / 출혈 8 타격 14
근력+2, 독성 전이 』
전에 헤이스트를 쓸 수 있는 윙 배틀 액스 때문에 굳이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던 물품 중 하나가 나왔다.
만약, 쓰려면 우리 중에는 이쁜소녀가 제일 좋아하는 성향의 무기이기도 하고.
“제가 해요?”
“내가 쓰기엔 좀 힘들지. 한 손으로 방패를 들고 싸우려면. 이건 양손 타입이니까.”
“으음, 그럼 이건요?”
『 +4 블랙 랙스 / 출혈 10 (6+4) 타격 20 (16+4)
근력+2, 피해 전이 』
『 +4 윙 배틀 액스 / 출혈 14 (10+4) 16 타격 (12+4)
민첩 +2 / 헤이스트, 체력, 마력 소모 1/2 』
블랙 랙스는 호수의 여왕을 잡아서 나온 제작 재료로 만든 것이고 썬더 와이번을 잡을 때 소녀가 정말 요긴하게 써먹었다.
타격치가 워낙 넘사벽이라서 때리는 족족 날개가 꺾였으니.
그리고 윙 배틀 액스는 헤이스트가 있어 두말하면 입 아프다.
블랙 랙스가 윙 배틀 액스에 밀려 인벤에 고이 잠들어 있을 정도로 윙 배틀 액스가 너무 좋다.
포이즌 해머도 좋긴 하지만 윙 배틀 액스에 비하면 좀 밀린다고 해야 하나?
그때 재중이 형이 이쁜소녀에게 귀띔을 해줬다.
“내가 윙 배틀 액스를 써봤는데 이렇게 해봐.”
재중이 형이 윙 배틀 액스로 헤이스트를 쓴 다음 집어넣고 바로 다른 무기를 꺼내서 휘두르는데 헤이스트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어때?”
“우와! 대박사건!”
대박사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워온 거지.
이쁜소녀가 놀라며 바로 해 보더니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나?
헤이스트를 걸고 윙 배틀 액스를 집어 넣어버리면 체력과 마력 1/2 효과를 보지 못하니까 손해가 있긴 해도 원하는 무기를 들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다.
얻어맞을 일이 많다면 블랙 랙스로 주변으로 피해를 전이시켜도 되고, 때릴 일이 많다면 포이즌 액스로 주변에 독을 퍼뜨리면 된다.
독성 전이라면 독을 사방으로 터뜨리니까, 보조 광역기로도 나쁘지 않을 거고.
무기 내장형 광역기 밖에 없는 이쁜소녀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겠네.
아쿠아 블레이드는 이쁜소녀에게도 한 자루를 넘겨주었다.
스위칭해서 쓸 기술이 더 필요하니까.
『 +0 검은 여왕의 로브 / 방어력 9
지력+2, 마력 회복+3 』
『 +0 검은 여왕의 서클릿 / 방어력 5
지력+3 』
전에 내가 이걸로 지력을 올리고 마력 악세로 세팅을 해야 해서 주지 못했는데 이번엔 전부 챠밍에게 몰아줬다.
그리고 네믈리드는 위기의 순간 탈출기를 하나 더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아서 나르샤에게 분배했다.
대쉬와 백스탭은 이쁜소녀와 나르샤가 나눠 가졌다.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는 몇 번 호수의 여왕을 잡으면서 대쉬와 백스탭을 이미 얻어놨으니까.
요즘 공중전만 한다고 쓸 일이 없었지만, 조만간 필요할 시간이 올 것이다.
그렇게 템을 하나씩 분배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슬슬 돌아가죠? 사람들이 몰린 것 같은데.”
방패전사가 주변을 둘러보기에 시선을 돌리니 멀리서 사람들이 차마 접근하진 못하고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이거 참, 계속 있으면 구경거리가 되겠는데? 가자.”
재중이 형의 신호에 우리를 구경하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모두 마을로 귀환을 했다.
***
<스칼렛> 처리하셨다면서요?
<주호> 덕분에 편하게 했죠.
정말 스칼렛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쉽게 잡았다.
호수의 여왕과 브락크가 붙어줘서 서로 죽이는 걸 우리는 숟가락만 올렸으니까.
<스칼렛> 고마워요. 우리도 좀 면이 서겠네요.
꽤 들뜬 음성이네.
서로 득을 봤으니 윈윈인가?
대가는 브락크 레이드를 늦춰달라는 것으로 퉁쳤으니까 이제 당분간 볼일은 없겠지.
<스칼렛> 아, 그리고 저쪽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는데…….
저쪽? 이상한 움직임?
<주호> 말씀해보시죠?
<스칼렛> 으음, 공짜로요?
<주호> 뭐, 그럼 안 들을게요. 바쁜 일 없으면 끊을게요.
<스칼렛> 에이, 농담한 걸 갖고. 사실 문제가 좀 생겼어요.
<주호> 문제라면?
<스칼렛> 화련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아요.
나와 스칼렛의 화상 채팅을 듣고 있던 우리 팀이 모두 시선을 내게 돌렸다.
으음, 지금 이 시점이라…….
<주호> 어떻게 아시죠?
<스칼렛> 우리 쪽에 장사를 좀 크게 하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어제부터 이상한 흐름이 있다고 하시네요. 예를 들면 고강 무기가 한 번에 팔려나간다던가 강화석이나 물약 등이 동시에 가격이 올랐다고 해요.
“보통은 공성전 전이나 혹은 어려운 레이드 정도인데……. 어지간해서는 변동이 없는 편이야.”
방패전사가 옆에서 듣다가 부연설명을 해줬다.
지금은 보통 경우가 아니라는 건가?
<스칼렛> 이상해서 꼬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까 화련 연합 쪽 길드 한 곳에서 무작위로 사들이고 있었어요. 처음엔 이번에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보상이라도 해주려나 하고 무시했는데 지켜보다 보니 너무 고강 위주로 템이 들어갔다고 하네요.
<주호> 그럼, 전쟁 준비네요.
<스칼렛> 십 중 팔구는 확실해요.
내가 재중이 형을 돌아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다는 거네.
<불멸> 이거, 빚을 진 건가?
완전히 모르고 있었으면 한 번에 휩쓸릴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쪽 거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뒤쪽 물품 거래로 정보를 잡아 올 수 있다니 대단하긴 하네.
<스칼렛> 어머? 아니에요. 빚으로 해주시면 저희야 좋겠지만, 어차피 우리 쪽도 타깃으로 들어갈 거니까 같이 준비하자는 이야기에요. 이번에 삼각 봉우리도 탈환해 주셨는데 이 정도야 싼 편이죠?
<불멸> 뭐, 그렇다면. 없는 걸로 치지.
아니라는데 굳이 빚을 늘릴 필요는 없다는 거네.
<주호> 저쪽, 수가 얼마나 되죠?
전에 삼각 봉우리에 있던 인원이 모두 참가하면 우리가 꽤 불리하다.
일당백도 한계는 있으니까.
길드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정도는 부담스럽다.
<스칼렛> 이번에 보상을 제대로 안 해줬나 봐요. 그래서 핵심 인원들 빼고는 다 빠져나간 모양이에요. 으음, 대략 500명? 남은 길드가 그 정도는 될걸요?
500명?
반이나 남았어?
전에 재중이 형이 공중에서 내려다봤을 때 규모가 천여 명 정도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어차피 미스트 윙이 대부분 잡아 인원 차이가 거의 안 느껴졌지만 필드로 나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불멸> 저쪽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스칼렛> 아마, 모를걸요? 저희도 우연히 알게 된 거라서요. 알았으면 지금 당장 움직였을지도 몰라요. 모른다고 봐야겠죠.
<불멸> 전설이나 다른 길마들은?
<스칼렛> 제일 먼저 이쪽에 연락해서 아직은 몰라요. 이제 연락해야겠죠?
그러면서 스칼렛이 재중이 형에게 살짝 눈웃음을 쳤다.
우리가 허락하면 바로 연락해서 움직인다는 이야기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재중이 형이 생각을 정리한 듯 무겁게 말을 꺼냈다.
<불멸> 연합에 전부 연락해. 준비하라고.
<스칼렛> 네, 그럴 줄 알았어요. 바로 준비할게요. 그럼, 자세한 정보는 추가로 들어오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이야기가 종료되자 재중이 형이 바로 사장님께 연락을 걸었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더니 의외의 말을 했다.
<불멸> 사장님, 따로 좀 알아봐 주셔야 할 것이 있는데요.
<카이저> 다른 문제가 또 있나?
<불멸> 스칼렛 저 여자 뒤 좀 파보실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카이저> 뭐, 어렵진 않겠지. 들키지 않는 선에서 한 번 파보마.
그렇게 재중이 형과 사장님과의 통화가 끝이 났다.
“방금 이야기는?”
“너무 쉽게 알았어. 상대방이 적대적인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피해복구도 안 된 상황에서 이렇게 치고 나온다라…… 아닐 수도 있지만 돌다리는 두드려보고 건너야지.”
스칼렛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후 사정을 확실히 보고 움직인다는 말이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말라고. 특히, 저 구렁이 백 마리쯤 되는 속 모르는 여자는.”
날 보고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너도 좀 빡세게 굴러야지.”
“말만 들어도 무섭네요.”
“엄살은.”
그 말에 결국 둘 다 웃어버렸다.
“어쩐지 요즘 너무 시비가 안 붙는가 싶더라. 너 오기 전에는 하루가 멀다고 싸움하러 다녔는데 말이지. 오랜만에 재밌겠다. 안 그래도 손이 근질근질했거든.”
그렇다고 일부러 시비 걸고 다니진 말아 주세요, 라는 말은 입안에 삼켰다.
정말 그러고 다닐 사람 같으니까.
“오랜만에 화련 얼굴이나 봐야겠네요.”
이번에도 깨지면 과연 무슨 표정을 지으려나?
갑자기 그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