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206화 하늘에서 춤을 (2)
화련이라…….
요즘 진짜 붉은 머리 여자들하고 얽히는 일이 많다.
뭐, 이쪽은 안 좋은 쪽으로 엮이는 거겠지만.
여 길마가 당돌함과 똘끼가 있었다면, 예지는 톡톡 쏘는 느낌이고, 화련은 여왕님 스타일인가?
그것도 개념 없고 돈만 많은 여왕님이다 보니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고.
일단,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탈것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쪽수가 좀 차이가 난다.
달, 전설, 치맥, 소수정예 쪽 길드가 밀려날 정도로.
재중이 형도 이것을 핵심으로 찍었다.
“어지간했다면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안 했을 거다. 자기들끼리 자력으로 해결하는 편이 훨씬 남는 것이 많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고스란히 빚이 된다는 소리입니다.”
방패전사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 우리에게 이야기하기 싫었을 거야. 안 그래도 격차가 벌어지는데 당장 해결할 만한 힘을 가진 곳이 그렇게 많지가 않으니.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했다가는 길드 위신만 떨어지는 문제도 있고. 전설 그 인간 표정 뚱한 것 봤지? 아마 떠밀려서 같이 왔을 걸.”
그래서 전설이 계속 풀 씹어 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나?
하긴 그 사람도 한때 랭킹 1위를 하던 사람인데 지금 상황이 달가울 리는 없을 것 같다.
“그 인간은 조심해야지. 언제 물어뜯을지 모르니까. 남 밑에서 오냐오냐하면서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야. 예전에 제우스처럼.”
“알면서도 데리고 가네요.”
“겉으로 보기엔 동맹이니까. 그리고 까다로운 적을 더 가까이 두는 편이 편하기도 하고.”
재중이 형이 그 말과 함께 날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저 형도 참 배포가 크다고 해야 할지…….
나 같으면 적이라 생각되는 사람들하고는 같이 일 못 할 것 같은데 당연하다는 듯 품으면서 일을 진행 중이다.
그때, 사장님이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 하던 말을 멈추고 사장님 말에 집중했다.
“자자, 우리가 가담하더라도 수가 많이 모자랄 테니. 정확한 사정을 봐야지 견적이 나올 것 같으니 한 번 다 가보자꾸나.”
사장님의 이어지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렛이 전해준 정보만으로는 작전을 세우기가 애매하니까.
가장 먼저, 현장부터 확인한다.
사장님이 일어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길드 건물을 빠져나갔다.
***
“흐음, 생각보다…….”
“많습니다.”
재중이 형이 멀리 있는 삼각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하자 방패전사도 역시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 와 있는 곳은 삼각 봉우리에서 조금 떨어진 봉우리 중 하나다.
이곳도 사냥터로 나쁘지는 않지만, 삼각 봉우리는 중간에 구릉지대도 어느 정도 있어서 타고 오르고 내리기가 너무 쉬운 구조다.
거기다 삼각 봉우리가 구릉을 감싼 상태라 진입로의 한 곳만 막아버리면 아주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 떨어져 내리지 않는 이상 접근하기 쉽지 않은 구조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현재 상황에서는 천혜의 요새군.”
재중이 형이 바로 주변을 더 살펴보더니 내린 결론이다.
지나칠 때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확실히 구조 자체가 방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조다.
방패전사가 인상을 쓰면서 말을 이었다.
“대체 저렇게 지형이 좋은데 어떻게 저곳을 뺏긴 겁니까? 입구 쪽만 잘 틀어막아도 지금 탈것 수준으로는 무조건 막아내겠는데요?”
사장님이 방패전사의 말에 바로 대답을 꺼내셨다.
“아무래도 너무 방심했던 모양이다. 자기들도 큰 연합인데 치고 들어올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 같구나. 방심한 거지.”
이 말을 스칼렛이나 전설이 옆에서 들었으면 지금쯤 쪽팔려서 고개를 떨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만큼 지형이 좋다.
아니, 너무 좋다.
방어하기에는.
“이러니 일반 유저들이 덤벼들어도 다 막아냈겠지. 쯧쯧.”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사장님이 혀를 차면서 말을 하자 방패전사가 바로 동의를 했다.
“유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은 분명히 저곳에서 사냥하려고 달려들었을 텐데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지형이 크겠죠.”
나도 게시판에서 보기로 여러 번 유저들이 진입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전부 무산됐다고 들었다.
“우리 섭은 날고 기는 길드가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통제 같은 것은 우르르 몰려가서 깰 수가 있어 보였는데 저건 힘들어 보이네. 확실히.”
재중이 형이 삼각 봉우리의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궁수 패거리와 마법사 부대를 보면서 그저 웃었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아주 재밌어.”
뭔가 막히는 상황이 와도 도전할 상대로 보는 건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웃음이다.
“어떻게 가능하겠냐?”
사장님이 재중이 형과 함께 삼각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한 번 쭉 둘러보죠. 견적을 내야겠어요. 수호, 최종병기, 방패전사 같이 가자.”
그렇게 재중이 형과 사장님, 수호, 최종병기, 방패전사가 따로 삼각 봉우리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스샷을 찍기 시작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작전을 짜는데 저 사람들이면 차고 넘친다.
평소에 하는 일이 저거니까.
그리고 제일 잘 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은 나와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는 딱히 할 것이 없는 관계로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나온 것은 촬영에 대한 이야기다.
“촬영 어땠어요?”
이쁜소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로 물어왔다.
“뭐, 그냥 옷 갈아입기의 연속?”
그 말과 함께 촬영하는 순서라든지 촬영하는 방법, 스태프들 장비 같은 것도 함께 이야기를 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이쁜소녀가 의외의 말을 물었다.
“예쁜 여배우하고 찍으셨다면서요……?”
아, 궁금한 것이 그거였나?
그 말에 챠밍, 나르샤도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내게 돌렸다.
챠밍은 뭐 촬영 자체를 궁금해할 것 같지는 않고, 나르샤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여배우 이야기가 나오니 바로 반응을 했다.
왠지 이건 대답을 잘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아, 그냥 좀…… 뭐라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말하기가 난해하네. 생각나는 건 4차원?”
“4차원요?”
“그냥 좀 내 입장에서는 그랬어. 미적 감각이 남들과 다르게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라이덴을 귀엽다고 쓰다듬은 이야기를 해주니까 다들 기겁을 했다.
“그게 뭐예요…….”
“왠지 무섭네. 그 여자.”
“그 언니, 취향이 남다르네요.”
거봐.
이게 정상이라니까?
이쁜소녀, 나르샤, 챠밍할 것 없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언니?
같은 회사 모델이니 본 적이 있긴 하겠네.
“친해?”
“아, 친하지는 않고 지나가면서 몇 번 마주친 정도예요. 어릴 때부터 연기해서 이쪽으로는 대선배 격이라. 우리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같은 소속사니까.”
흐음, 그렇단 말이지?
괜히 긁고 그러지는 말아야겠네.
챠밍이 불편할 수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재중이 형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다.
“어때요?”
“난감하게 됐어.”
난감?
재중이 형이 난감이라는 말을 쓸 때도 있었나?
“수가 너무 많아. 거기다 생각했던 대로 넓은 구릉으로 넘어갈 방법이 입구 밖에는 안 보이고. 우리야 고도를 높여서 타고 올라가 버리면 그만인데 일반 탈것으로는 절대 못 넘어가겠더라.”
“으음, 천혜의 요새가 맞네요. 확실히.”
“내가 미스트 윙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봤는데 안에 애들이 바글바글해.”
미스트 윙의 특수 능력.
안개가 아무리 끼어 있어도 훤한 대낮처럼 전부 볼 수 있다.
거기다 일반, 엘리트 탈것보다 HP와 MP 소모가 확 줄어들어 전투 수행 능력이 월등히 좋다.
지상 네임드처럼 HP와 MP를 채워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모량이 줄었다는 것만 해도 유지력에 큰 도움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남들은 다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혼자 유유히 날아다닐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안개 속에서 전투 수행 능력은 최고다.
정찰 능력 역시 두말하면 입 아프고.
시야 확보가 완벽하니까.
어떻게 보면 나보다 재중이 형에게 더 어울리는 네임드고 주인을 잘 찾아갔다고 생각한다.
높은 하늘에서 전장을 다 살피고 온 재중이 형이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면서 말을 이었다.
“적어도 스무 개가 넘는 길드가 뭉쳤어.”
거의 스무 개가 넘는 길드라고?
아무리 못해도 숫자만 천 명이 넘어간다.
그러니까 전설이나 스칼렛이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밀려났지.
애초에 숫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법사나 궁수가 입구만 틀어막아도 어지간한 병력으로는 접근조차 불가.
탈것이 격추당해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다.
“도움을 요청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래, 아주 삼각 봉우리 안이 바글바글하더라. 아예 자리를 딱 잡고 사냥하는데 이 상태라면 우리도 꽤 곤란해.”
재중이 형의 말에 방패전사도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략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저렇게 좋은 사냥터에서 꾸준하게 경험치를 쌓으면 문제입니다. 그것도 우리와 적대적인 길드들이 말이죠. 차라리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경험치를 쌓는 편이 낫지.”
“지금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나중에 알았으면 골치 아플 뻔했어.”
“우리가 단독으로 떨어져 내려서 싸우면 확률은?”
사장님이 물어보시는데 재중이 형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주호하고 내가 네임드 탈 것을 가지고 있어도 저 숫자는 무리죠. 말이 네임드 탈것이지 원판 네임드 자체가 아니니까. 길드원 전원이 엘리트 이상을 타고 올라가 같이 떨어지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것도 확률이 많이 낮아요. 적어도 두세 길드는 동시에 작업해야…….”
저 재중이 형이 불가능을 입에 담다니.
그만큼 상황이 복잡하다는 소리다.
어떻게 저 견고한 입구를 뚫고 시작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좋은 방법이 없나?
“확 돌덩이라도 던져서 밀어버리고 싶네.”
방패전사가 무심결에 지나가는 소리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뭔가가 계속 조립되어 간다.
뭔가 감이 탁, 하고 오면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 같다.
“형, 수정이 누나가 뭔가 임팩트가 필요하다고 했었죠?”
“응? 뭐, 그렇긴 한데…….”
“그 임팩트 한 번 더 주죠. 라이덴에 블랑 로고 좀 넣어달라고 하세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의 눈이 웃음기가 가득해졌다.
“이번에 아주 날뛰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돈 받은 값은 해야죠. 아, 그리고 보너스를 좀 더……?”
“이야기 해놓지. 이게 요령만 늘었어.”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죠. 하나만 더 부탁할게요. 전사 형?”
내가 부르자 방패전사의 날 바라봤다.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전에 그거 한 번 더 해주면 안 될까요?”
내 말에 방패전사가 이해했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예전에도 몇 번 써먹은 적이 있다.
방패전사가 조작은 기가 막히게 잘하니까.
“그리고 몇 가지 더 만들어야겠어요.”
우리가 날뛸 장소를 만들려면…….
***
“이걸 정말 만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 몰랐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돈 지랄이다.”
재중이 형이 돈 지랄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한 것과 같은 건가?
페르타의 무기 공방에 들려서 제작 NPC에게 몇 가지 물품을 확인한 후 제작에 들어갔다.
패치 내용에 있어 설마 했는데 진짜 네임드 제작 재료가 들어가다니…….
“네임드 제작 재료로 이런 것을 만들었다고 하면 욕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방패전사가 아깝다는 표정을 가득 드러냈다.
“필요하니까요.”
내 천진난만한 말에 방패전사가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호수의 여왕, 미스트 윙, 거대 지네에게서 나온 제작 재료 템.
원래는 무기나 방어구를 만드는 것이 제일 효율은 좋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것을 제작 중이다.
누가 봐도 돈 지랄을 하는 중이기도 하고.
“이 정도는 되어야 안 끊어지겠죠.”
***
네임드 제작 재료를 넣어서 만든 아이템.
초강력 갈고리.
패치 내용에 갈고리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가 높을수록 안 끊어진다고 되어 있었다.
이걸 만든 이유는 다를 것이 없다.
<주호> 형, 이제부터 좀 부탁할게요.
<불멸> 아, 진짜 미쳤어, 미쳤다고.
그러면서도 키득키득 웃는 것이 들렸다.
바로 삼각 봉우리를 칠 수 있음에도 이렇게 늦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어? 저게 뭐야?”
“무슨 안개 같은 것이 몰려오는데?”
“저 새까만 녀석은 또 뭐고?”
“안개가 아니야! 몹이다!”
“비상!”
삼각 봉우리 입구가 라이덴을 타고 나타난 나 때문에 난리가 났다.
아니, 나보단 내 뒤에 우르르 따라오는…….
<불멸> 진짜 넌…… 어휴. 미스트 윙을 끌고 오다니.
<주호> 전 여기까지임다!
<불멸> 수신 양호!
멀리서부터 미스트 윙과 안개 새 엘리트 떼를 몰고 온다고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입구에 다다르자 재중이 형이 어느새 날아와 내 옆으로 붙더니 미스트 윙의 목에 걸려 있던 초강력 갈고리를 넘겨받았다.
지금을 위해 네임드를 끌고 와도 절대 끊어지지 않을 최강의 갈고리가 필요했다.
“간다!”
그리고 스킬로 가속하자 미스트 윙이 확, 하고 딸려왔다.
가속 스킬로 잠시만 끌고 가면 된다.
아주 잠시만.
“쏴! 떨어뜨려!”
삼각 봉우리 앞으로 재중이 형의 미스트 윙과 원판 미스트 윙이 돌진하자 엄청나게 많은 화살과 마법이 빗발쳤다.
【 미스트 윙 안개화! 】
【 안개화! 】
그와 함께 미스트 윙과 재중이 형이 동시에 형체가 흐려지면서 안개처럼 변해 버렸다.
안개화.
모든 공격 일시 무효와 관통.
미스트 윙 심장의 능력이다.
그렇게 공격이 전부 재중이 형을 관통해 그 뒤에 따라오던 미스트 윙에게 맞기 시작하자 미스트 윙의 눈이 벌겋게 변하면서 괴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눈이 돌아간 미스트 윙이 재중이 형을 무시하고 바로 삼각 봉우리의 견고한 방어진으로 돌진해서 무차별 학살을 시작했다.
“으악! 이게 뭐야!”
“뭐해! 몸으로 막아!”
“이걸 어떻게 막아! 너나 막아!”
“시발, 이런 건 계약에 없었잖아.”
“다 튀어!”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키득키득 웃었다.
“재밌네.”
“재밌죠.”
“넌 미친놈이야. 진짜. 깽판도 이 정도면.”
나도 재중이 형을 바라보면서 마주 웃었다.
“화련은 제물이에요.”
오버를 위한 제물.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다.
화련,
어디 네임드까지 막을 수 있나 한번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