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98화 (198/1,404)

# 198

#198화 혼돈의 늪지대 (1)

“음? 로스트 스카이를?”

“오빠, 랭킹 1위잖아요. 제일 잘 하지 않아요?”

낯부끄럽게 ‘랭킹 1위’를 언급하며 날 바라보는 연지에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살짝 고개를 치밀었다.

하지만 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랭킹은 1등이긴 한데, 사실 프로게이머들이 경험이나 컨트롤이 훨씬 좋아…….”

당장 재중이 형만 봐도 세세한 컨트롤은 나보다 좋다.

각종 무기를 상황에 맞게 이용하는 기술은 아직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난 그것을 억지로 감각을 이용해 구현하는 수준이다.

기본기를 다지려면 내가 아니라 재중이 형이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잘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아는 사람한테 편하게 배우고 싶어요.”

피시방에서는 그렇게 나른한 눈빛으로 피곤하다는 듯 매일 엎어져 있다가 욕망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이러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초롱초롱한 눈빛도 처음이고.

정말 게임 하나가 사람을 바꿔놓는구나.

“……내가 일대일로 붙어서 알려주진 못할 거야, 음…… 약간의 도움으로 그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지금 선두권 싸움에서 애매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냥터와 최근 네임드를 잡아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이 상황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것을 조금이라도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타임에 연지가 계속 도움을 요청하면 솔직히 들어줄 자신이 없다.

랭킹이나 세력에 신경 쓰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범하게 즐기면서 시간이 많으니까 또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런 상황은 옛적에 지나갔으니까.

이미 달리는 열차에 올라탄 상황이라 내릴 수가 없다.

이대로 쭉 나아가야 할 뿐.

그리고 내가 다른 곳에 한눈파는 것을 절대 두고 보지 않을 재중이 형도 있고.

“알아요, 저도. 매일 영상을 봐요. 짐이 되지는 않을게요. 네? 네? 쪼금만 가르쳐주면 되여.”

뒤에 애교 섞인 말투로 간드러지게 말을 하는데 갑자기 팔에서 소름이 돋는다.

안 그러던 애가 이러니 더 무서운 것 같네.

요즘 여고생들 무서워…….

“알았으니까, 그거는 좀…….”

그 사장님에게서 어떻게 이런 딸이 나왔을까…….

사모님 덕이 크다. 진짜.

“정말 귀찮게 안 할게요.”

내 허락에 연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폰을 들여다보면서 한마디 했다.

“애들한테 자랑할 게 생겼네. 우리 반에 오빠 광팬이 많거든요.”

……이미 거기서부터 귀찮아질 것 같은데?

좋아하는 연지의 표정 때문에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그 말을 삼켰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

우여곡절 끝에 겨우 연지를 돌려보냈다.

사인 한다고 팔이 나가는 줄 알았네.

대체 그 많은 사인을 어디에 쓰려고…….

학교에서 내 사인을 원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가?

직접 눈으로 보지를 못 하니까 실감은 안 가는데 일단 해달라고 해서 최대한 열심히 해줬다.

이름을 길게 휘갈긴 사인을.

나중에 이거 사인 다르다고 항의 들어오는 거 아냐?

잘못하다간 현역여대생에게 해준 사인이 그대로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연지라는 폭풍이 물러간 뒤, 들쑥날쑥한 점검 시간을 그대로 기다리기 지루해 그대로 푹 잠들었다.

한두 시간 기다려서는 접속하지 못할 것이 뻔하니까.

다음날,

일어나보니 역시 밤새 점검을 진행했었다.

“역시 자는 게 남는 거지.”

이놈의 점검은 시대가 변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매번 이 모양이다.

접속하기 전 시간을 체크하고 유혜선 팀장이 짜준 메뉴대로 먹어보려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꺼내 식사를 했더니 묘한 만족감이 든다.

요새 무엇을 먹어도 그냥 ‘먹었다’였으니까.

먹는 것 자체도 사실 귀찮아 대충 때워 이러다 일 나겠다 싶었는데,

몇 마디의 말만 듣고 바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대략적인 것을 짜주다니 역시 전문가구나.

그런 상념을 뒤로 하고 VRS에 접속했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58.

> 로딩 중…….

접속과 함께 보이는 화면에서 보이는 로고와 영상이 전과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다.

이건…….

공중 탈것 광고인가?

탈것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상이 쭉 이어지는데 굳이 더 볼 필요가 없어서 바로 스킵했다.

이미 질리도록 타 봤으니까.

이번 패치 이후 아예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는 모양이다.

패치를 오래 한 이유가 있었네.

접속하자마자 레벨과 패치 내용부터 확인했다.

현재 58.

안개 협곡 사냥과 네임드 두 마리 막타를 통한 레벨업.

새로운 사냥터로 자리를 옮긴 것은 정말 잘한 신의 한수였다.

그대로 검은 호수에 남아 여유 있게 사냥을 했더라면 어쩌면 우리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에게 따라잡혔을지도 모르고.

[ 공지사항 ]

▷ 몬스터 총 HP의 일정 수준 이상을 공격해야 아이템이 드랍 되도록 변경됩니다.

▷ 대미지를 일정 수준 이상 주지 못하면 루팅할 수 없도록 변경됩니다.

▷ 대미지 수준은 몬스터마다 다르게 설정됩니다.

▷ 어스퀘이크가 지상에서만 쓸 수 있도록 수정됩니다.

▷ 블링크 시전 후 운동에너지를 유지하도록 변경됩니다.

▷ 블링크 이후 정지하는 것이 아닌 움직이던 모션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 낙하하는 도중 블링크를 사용해도 그대로 낙하하도록 수정합니다.

▷ 지력에 따라 블링크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변하도록 변경됩니다.

▷ 지력 수치에 따라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인원수가 달라집니다.

▷ 일정 이상의 고도에서 블링크를 사용할 수 없도록 패치합니다.

▷ 여러 종류의 갈고리를 제작 혹은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밧줄의 재질이 약한 경우 끊어질 수 있으니 유의 바랍니다.

▷ 보다 좋은 드랍 재료로 만든 밧줄이 강하게 버티도록 설정합니다.

▷ 물의 방패로 반사한 대미지는 반사한 상대에게 어그로가 끌리도록 변경합니다.

▷ 출혈과 타격, 관통에 따라 입는 대미지 수치가 변경됩니다.

▷ 안개 협곡을 전면 개방합니다.

▷ 안개 협곡과 공중 탈것에 대한 정보를 유적지의 NPC들을 통해 얻을 수 있도록 패치됩니다.

▷ 탈것 관리 NPC에게 퀘스트를 받아 수행하면 기본 탈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미개척 사냥터나 한 번도 잡히지 않았던 몬스터는 성장할 수 없도록 변경됩니다.

▷ 최초의 네임드 역시 성장할 수 없으며, 사냥 후 성장할 수 있도록 설정됩니다.

▷ 필드 네임드가 활동 폭이 보다 넓어집니다.

▷ 일부 네임드 템의 스탯을 등급에 맞게 수정합니다.

와, 진짜.

패치 내용의 절반 이상이 우리를 저격하려고 만든 패치인 것 같다.

미친 것 아냐?

일단, 네임드 두 마리를 싸움 붙인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

거기다 막타로 아이템을 싹 쓸어버리기까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최대한 이용한 플레이.

예전에 운영자가 패치했었던 내용 중에 어떻게든 대미지만 입히면 드랍이나 토글이 가능하도록 했던 부분이 있다.

일종의 말장난.

먹자를 방지하기 위해서 패치를 했었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었거든.

그걸 이번에 그대로 써먹었다.

막타만 곁들여서 두 마리의 네임드를 꿀꺽하는 것으로.

애초에 잘못은 그렇게 패치한 운영자들에게 있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 없다.

아마, 지금쯤 담당자의 정강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지 않았으려나?

자업자득이란 표현을 이럴 때 써야하는 건가.

자승자박이나…….

뭐, 이건 우리를 저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패치다.

예전에 오버된 여왕 라미아를 잡을 때 숟가락을 올리려던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식으로 대놓고 달려들 사람들은 사라진다는 소리다.

적어도 먹자를 하려면 앞으로는 일정 이상 대미지를 줘야 루팅을 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걸로 재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나중을 위해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저격 패치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어스퀘이크가 공중에서 막히면 이쁜소녀의 딜이 줄어들 거고, 블링크로 바닥에 내리꽂던 것도 더 이상 못하게 됐다.

블링크로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제한을 걸었고, 갈고리마저 지금처럼 일반 갈고리로 걸었다가는 백발백중 끊어질 것이 눈에 훤하다.

그걸 노려서 패치한 모양이니까.

거기다 네임드끼리 싸움을 붙일 수 있는 물의 방패까지 막아버렸으니…….

싸움이야 다른 방법으로도 붙일 수는 있다지만 제일 편한 방법을 두고 돌아가야 하는 수고가 있다.

이거 너무 한 거 아냐?

그리고 안개 협곡은 아마 준비가 될 된 상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넘어가자 부랴부랴 NPC를 통해 넘어갈 수 있도록 설정한 것을 보니.

일반 템을 네임드처럼 팔아먹던 꿀 장사도 이젠 끝났네…….

많이 해 먹기는 했는데 사람 마음이 해 먹을수록 더 해 먹고 싶은 것인 인지상정이라.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거기다 미개척 지역의 네임드가 오버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이건 뭐…….

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니 해도 괜찮은 패치라고 생각한다.

미개척 지역에 넘어갔는데 가자마자 오버된 네임드가 있으면, 그 맵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겠는가.

가뜩이나 잡기 힘든데 오버까지 되어 있으면 백이면 백, 절대 못 잡는다.

운영자들이 잘못된 것을 알고 패치를 하기 딱 그 전 시점에 우리가 오버 된 네임드 두 마리를 잡아버렸으니 기도 안 찼겠지.

부랴부랴 긴급 점검을 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을 것이다.

이건 운영자가 원하는 그림이 절대 아니었을 테니까.

여러 가지로…….

마지막으로 탈것도 퀘스트를 통해 공짜로 다 뿌렸다.

안개 협곡에서 좀 더 해 먹으려고 했는데 아쉽네. 진짜.

우리가 너무 격차를 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 이거지?

그래,

어디까지 막을 수 있나 한 번 해보자.

***

“패치 봤어요?”

“어, 봤지. 크크. 아주 우릴 죽이고 싶어서 난리가 난 모양이다. 패치 하나하나가 확확 마음에 꽂히네. 주옥같다. 진짜.”

“갈수록 견제가 심해지네요.”

“아아, 우리의 진짜 적은 운영자야.”

재중이 형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지 웃으면서 새로 얻은 아이템으로 세팅을 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

나도 그냥 웃어버렸다.

이미 패치가 되어버린 것, 지금은 손을 떠난 일이니 적응할 수밖에.

“며칠은 더 해 먹을 수 있겠죠?”

“뭐, 완제가 바로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당장 크게 타격받지는 않겠지.”

그리고 공중 탈것 퀘스트.

“새로운 바람이 불겠네요.”

“뭐, 처음 날아다니면 다들 신나겠지. 퀘스트로 뿌린다는 것 자체가 전부 날아다닐 수 있게 된다는 거니까.”

그때, 방패전사가 옆에 와서 몇 가지 영상을 보여줬다.

“방송에도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네요. 접속할 때도 영상으로 보여주더니…….”

“공중 탈것만으로도 충분한 광고가 되겠지. 그동안 하지 않던 사람들도 한 번씩은 해볼걸? 사람이 많이 늘겠는데?”

재중이 형의 말대로 사람이 더 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거기다 앞으로 학생들까지 몰려들 것을 생각하면…….

“미스트 윙은 충분히 잡아놓죠.”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다.

한 번 잡아봤고 정보도 있으니까 충분히 할만하다.

안개 협곡으로 사람이 더 몰리기 전에 최대한 많이 잡아서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해 먹어야 한다.

“전처럼 소수로 하는 것은 힘들 거야. 라이덴이 있으니 그 어려운 놈을 잡았지.”

“라이덴을 다시 잡을 수 있을까요?”

“모르겠다, 운영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또 둘을 붙여놓지는 않을 것 같고…… 외곽에서 날아 들어온 녀석이라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지.”

“어쩔 수 없네요. 그건.”

라이덴은 일단 포기인가…….

일부러 찾으러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다.

라이덴의 심장을 얻어놓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네.

오우거의 심장만큼이나 얻기 힘들겠지.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은요?”

“아, 지하 연습장. 다들 일찍 들어와서 세팅하러 갔어. 연습도 좀 하고.”

“내려가 보죠.”

지하 연습장에 내려가니 이쁜소녀가 라이덴 채찍을 들고 연습장 이곳저곳으로 휘두르는 중이었다.

푸른색 채찍이 바닥에 닿으면서 촤악, 촤악거리는데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찢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 닿을 때마다 짙푸른 스파크가 일어나 사방으로 전기를 흩뿌렸다.

저게 뇌전 전이인가?

거리도 그렇고 범위도 굉장히 좋다.

“괜찮네요. 위력이야 최상위 네임드니까 확실할 것 같고.”

중거리, 단거리 모두 커버할 수 있겠다.

이쁜소녀의 단점이 확실히 사라지겠네.

챠밍은 마법들을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사용하는데 네임드들이 쓰던 마법이 열화된 기술이다.

【 미스트 토네이도 】

기술을 쓰자 챠밍의 몸 주변에 강한 바람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보호막을 형성했다.

“저건 보호막이네요?”

“아, 그 미스트 윙에게 달라붙었을 때 쓰던 기술 같더라. 다가가기만 해도 대미지가 엄청나, 거기다 어지간한 스킬을 거의 다 막아주고.”

“확실히 좋네요.”

마법사에게 생존기나 탈출기는 더없이 소중하다.

탈출기는 블링크로 어떻게 한다지만 저건 언제나 쓸 수 있으니까 더없이 좋다.

나머지 마법이야 말해서 입 아프고,

최상위 마법이라…….

이거 나보다 사냥속도가 빨라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아이템도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다시 임시점검을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

뭐가 잘못됐나?

우리 팀이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스템 공지를 바라봤다.

《 제 3 유적지 - 페르타가 열립니다. 모든 유저분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5분 뒤 임시 서버 점검이 시작됩니다. 》

공지를 본 방패전사가 눈썹을 찡그리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늪지대를 먹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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