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72화 (172/1,404)

# 172

#172화 변화의 바람 (4)

나한테 까달라고?

연지는 작게 말했지만 옆에 있던 챠밍과 이쁜소녀가 그 말을 들었는지 어깨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돌려 연지를 바라봤다.

이건 듣기에 따라선 굉장히 미묘한 말처럼 들리는데…….

뭐, 까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다만, 말의 뉘앙스가 순간 내 손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연지가 잡고 있는 킹크랩 다리를 봤더니 꽤 이상한 모양으로 껍질이 깨져 있다.

거의 전부다.

다 먹지도 못했는데 내려놓은 것도 보이고.

엄청 불편하게 먹었네…….

한 번이면 살을 쏙 빼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다리 껍질이 여기저기 난도질이 되어 있었다.

쉽게 빼먹지 못하게.

뭐야, 왜 저렇게 된 거지?

내가 자신의 앞접시를 쳐다보자 연지가 살짝 한숨을 쉬면서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치 누군가가 듣지 못하도록.

속삭이듯.

“아빠가 너무 못 까요. 오빠는 완전 깔끔하게 해주잖아요. 진짜 맛있는데 못 먹고 있으니 화가 나서요.”

그러면서 챠밍과 이쁜소녀가 편하게 쏙쏙 빼먹는 다리를 부러운 듯 바라봤다.

으음, 이거 참…….

혼자 완전히 딴생각을 해버렸네.

말을 잘못 꺼냈으면 완전히 망신당할 뻔 했나?

가만히 있었던 것이 신의 한수였구나.

“으음? 지금 딴생각했죠?”

“아니, 전혀.”

귀신이네. 귀신이야.

아무렇지 않은 듯 연지에게도 다리를 손질해서 하나씩 주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야말로 폭풍 흡입.

그동안 못 먹었던 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눈앞의 게살을 순식간에 해치운 연지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저렇게 잘 먹는 것을…….

이때까지 참은 것도 용하네.

물론, 그걸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장님이 있었다는 것은 잊고 넘어가자.

그렇게 모두(?)가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는데 폭풍 식사를 한 연지가 리모컨을 가져오더니 TV를 틀었다.

드라마나 예능이라도 보려고 그러나?

시간을 보니까 한참 뭔가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채널을 계속 돌리더니 의외로 게임 방송 중 하나를 틀어놓고 리모콘을 내려놨다.

“이거 할 때가 돼서요. 다들 안 보세요?”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나 외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다 고개를 저었고.

우리야 플레이하는 입장이지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보는 입장이 아니어서 챙겨볼 시간이 없기도 하고, 그 외에는 딱히 볼 이유가 없으니까.

“인기 엄청 많아요, 재밌는데!”

로스트 스카이를 못하니까 그냥 방송만 찾아보는 건가?

마침 공성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잘됐네, 다른 서버는 어떻게 됐나 궁금했는데.”

재중이 형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TV에 집중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좀 궁금하긴 하네.

나오는 사람들은 전에 한번 봤던 사람들인가?

TV 속에서는 남성 MC와 여성 패널이 같이 게임 영상을 보면서 진행을 하고 있다.

『 로스트 스카이의 첫 공성전이 열렸죠. 서버 별로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참가해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

『 네, 저도 1서버에서 중계를 했죠. 하지만 오늘은 다른 서버의 영상 비교하면서 함께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

생방송을 했을 때는 우리는 게임 속이었으니까 볼 수가 없었고 지금 방송에서 보여주는 게임 영상 자체는 녹화여서 여러 서버의 것을 한꺼번에 비교하는 것 같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게 좋을 수도 있겠네.

다른 서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 굉장히 치열한 열기 속에 총 14개의 서버에서 승자가 나왔습니다. 특이한 것은 유일하게 1서버에서만 원주인이 다시 하르페를 차지했다는 것이죠. 굉장하지 않습니까? 수성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 1서버를 제가 취재한 것은 아시죠? 정말 굉장했어요. 』

그러면서 여자 패널이 몽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하하, 굉장히 인상 깊으셨던 모양입니다. 』

『 네, 영상을 보면서 같이 말씀드릴게요. 』

그러자 1서버 공성전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 우리다.”

이쁜소녀가 화면을 보자마자 알아차리고 작은 점으로 보이는 우리를 찾아냈다.

여자가 높은 하늘에서 날개 달린 슬라임을 타고 영상을 촬영하는데 바로 우리가 보였다.

처음 성을 수성하던 그 장면.

『 수성을 하려는 최강 길드와 신화 길드원들이 서 있어요. 저 아래 랭킹 1위 주호와 2위 불멸이 같이 서 있는 것이 보이나요? 』

『 네, 저 정도 인원으로 수성을 하려고 하다니 대단한 것 같습니다. 』

『 주호 플레이어가 제 방향으로 검을 들고 흔드네요. 절 보더니 인사까지 하는 여유가 보여요. 역시 랭킹 1위 답네요. 』

음…….

사실은 그거 내가 널 떨어뜨릴 수 없나 공격 범위를 확인하고 노렸던 거야.

알았으면 저런 해설은 못 했을 텐데.

그런 착각 속에 방송이 계속 이어졌다.

곧 공성이 시작되고 형형색색의 광역기가 끝없이 성벽 아래를 찢어발기는 영상은 그 자체로 영화나 다름없었다.

막상 보고 있으니 그때 치열했던 생각이 하나둘이 떠오른다.

이 정도로 현실 반영이 된 물리 엔진에 압도적인 전쟁 영상은 CG가 떡칠이 된 영화가 아니면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이런 장면에 매료된 것인지 사모님과 수정이 누나가 깜짝 놀라 화면을 바라봤다.

“이거 영화 아니지?”

사모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감탄을 하면서 물으셨다.

“네, 그냥 게임 플레이하는 거랑 똑같아요.”

그 감탄에 재중이 형이 바로 대답해줬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스케일 하나는 확실하네.

수천이 성벽을 두고 전쟁을 일으키는 장면이라.

『 여기 보시면 최강 길드의 모든 길드원이 광역기를 쏟아붓잖아요. 정말 준비가 잘 된 길드라고 생각했어요. 보통은 저런 식으로 할 수가 없거든요. 』

『 확실히 다른 서버 공성과는 다르군요. 애초에 한 길드 단독으로 하르페를 가지고 있던 경우도 1서버 밖에 없었으니까요. 최초이기도 하고, 유일하기도 하고 대단한 길드입니다. 』

『 네, 거기다 심지어 머리까지 좋은 사람이 있었나 봐요. 성벽이 불리하니까 일제히 빠지시는 것 보이죠? 동서남북 성벽 모두를 한 번에 비워 버렸어요. 』

『 네, 다른 서버에서는 거의 필사항쟁 수준으로 성벽에서 버티고 또 버틴 것에 비해 특이해도 너무 특이하게 진행했죠. 그리고 성벽을 지키면서 버티다가 밀린 길드는 다시 하르페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

『 계속 지켜보면서 역시 한 길드로는 하르페를 지킬 수 없구나, 최강 길드에서 무리수를 뒀다라고 생각했어요. 안쪽으로 들어가서 지키려는 생각인지 알고 계속 따라가 봤는데 거기서 정말 쇼크를 먹었어요. 』

『 무슨 일이 있었기에? 』

『 여기 봐요. 그냥 건물로 숨어들더니 아무것도 안 해요. 심지어 메인 크리스털이 부서지는 순간까지도요. 』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하르페 내부를 찍었지만, 전투가 한창인 곳에서도 오직 우리 길드만이 평온하게 건물 속에 숨어서 구경 중인 것이 방송에 나왔다.

그리고 중간에 창문을 통해 숨었다가 다시 나와 이쁜소녀가 손을 흔드는 장면까지.

“어라? 저 나왔어요!”

“단독으로 방송 탔네.”

방패전사가 그 모습을 보고 재밌어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역시 똑같이 재밌어하는 모습이다.

“으음, 저 너무 못나게 나오지 않았어요? 어쩌지?”

“예쁘게 나왔어, 걱정하지 마.”

이쁜소녀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안심시켜줬다.

“정말요?”

“아아, 정말.”

그제야 이쁜소녀가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충분히 예쁘게 잘 나왔는데 뭐가 걱정인지 모르겠네.

그런데 갑자기 연지에게서 들릴 듯 말 듯한 말이 흘러나왔다.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응? 뭐라고?”

연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보더니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음, 오늘 뭔가가 쉽지 않네.

연지 얘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 하하,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하는군요. 여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계획된 일이겠습니다. 』

『 결국, 최강 길드 측이 하르페를 접수했으니까요. 』

메인 크리스털이 깨지고 공수가 전환되면서 새 국면에 들어섰다.

『 공수가 바뀌면서 그만 최강 길드를 놓쳤어요. 듣기론 밖에서도 싸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못 찍었어요. 너무 아쉬워요. 』

『 곳곳에서 싸움이 있었으니까요. 다 찍지 못한 것을 탓할 순 없습니다. 자, 다음 보시면 성벽 문이 그냥 열리죠? 』

『 네, 하늘에서 촬영하다 저도 깜짝 놀랐었어요. 』

『 다른 서버도 배신과 지략이 난무했습니다. 좀 전에 적이었던 사람들과 바로 손을 잡기도 하고, 같은 편을 뒤통수치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하고요. 』

『 정말 사람들 속은 알 수가 없네요. 』

『 그게 묘미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볼거리도 풍성했습니다. 』

『 네, 저희 서버도 마찬가지였어요. 전설 길드가 최강 길드와 연합을 했거든요. 』

『 호, 그건 또 의외입니다. 』

『 네, 연합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두 길드를 투표한 결과에서도 최강과 전설이었는데요. 보란 듯 합쳤더라구요. 아! 이제 하이라이트가 나와요. 무려 주호 단독 영상이에요! 』

그 말과 동시에 우리 팀이 북쪽으로 빠져 건물에 올라가 화련을 저격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압도적인 한 방에 화련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곤 사람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완전 영웅이네?”

수정이 누나가 날 보더니 바로 이야기했다.

영웅이라…….

엄청 쑥스러운데?

“멋있다…….”

무심결에 연지도 그런 소리를 해버렸다.

근데 내가 봐도 저 장면은 괜찮아 보인다.

『 제가 엄청난 것을 찍었죠? 』

『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군요. 현재 이 영상은 조회수가 몇만 단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하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검을 쏘다니 전 서버에서 어디에도 없던 장면입니다. 』

『 계속 따라다니다 계 탄 기분이었다니까요. 죽을 때까지 이 장면은 잊지 못할 거예요. 』

그러면서 다시 몽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여자 표정이 좀 위험해 보이네.

그렇게 내가 수십 명의 사람들 틈에서 적을 난도질하는 장면과 챠밍이 단독으로 적진 한가운데 뛰어들어 시청자들 입장에서 처음 보는 마법들을 시전하면서 라인을 무력화시키는 장면이 연속으로 방송됐다.

수정이 누나는 챠밍이 맹활약을 하자 특히 더 좋아하는 모습이다.

챠밍은 꽤 부끄러워했고.

“너희 정말 재밌게 하는구나?”

수정이 누나가 어느새 끝난 게임 영상을 보고는 평을 내렸다.

막상 할 때는 몰랐는데 영상으로 보니 정말 재밌어 보인다.

남이 우리를 볼 때 저런 시선으로 보는구나 하는 것도 알겠고.

“으음, 생각을 바꿔야겠는데…….”

수정이 누나가 내 말에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재중이 형과 뭔가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말에 재중이 형도 계속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참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이 난 듯 수정이 누나가 날 보면서 말을 꺼냈다.

이전의 장난스러운 표정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승호는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알아?”

재중이 형에게서 딱히 들은 적이 없는데.

그냥 내게는 좋은 누나 정도로만 기억될 뿐.

“으음, 들은 적이 없어요.”

“특별히 비밀이라는 것도 없으니까. 미네뜨르라고 혹시 알아?”

미네뜨르라는 말에 오히려 연지와 이쁜소녀, 사모님이 먼저 반응을 했다.

음, 어디선가 지나다니면서 한 번씩은 들었던 것 같은데.

내 반응이 없자 오히려 주변에서 답답해하는 눈치다.

“유명한 명품 이름이에요.”

이쁜소녀가 내게 슬쩍 와서 말해줬다.

그런가?

내가 그쪽으로는 살 일이 없어 잘 모르는데 주위 반응을 보면 확실히 유명한 모양이다.

“내가 거기 디자이너야. 참고로 은하에게 협찬하고 있기도 하고.”

디자이너라…….

난 수정이 누나가 오히려 모델 쪽 일을 한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데.

놀랍네.

“의류 같은 부분은 상당 부분 협찬받고 있어요. 언니에게.”

“부럽다…….”

연지가 그 말에 금세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챠밍이야 걸그룹이니 협찬을 받는 거지 우리 같은 경우에는 그냥 돈 주고 사는 수밖엔 없다.

“사실 로스트 스카이에 우리 브랜드가 들어갈 거야.”

“네? 그게 무슨?”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브랜드를 가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대가 변하니 가상을 즐기는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4세대 VRS가 나오면서 현실 반영이 잘 되니까.”

굉장히 본격적이네.

“우리 말고도 다른 브랜드들도 준비 중이야. 식품, 가구, 인테리어, 생필품, 레저, 디지털, 가전 등 말로 다 하기도 힘드네. 아마, 유명 회사들은 다 로고를 넣으려고 할걸?”

“광고…… 인가요?”

“응, 로스트 스카이는 사람들이 많이 하잖아. 다른 말로 하면 노출이 잘 된다는 뜻이야. 그냥 지나치듯 한 번씩 보고만 지나가도 그게 전부 브랜드 이미지 상승에 도움이 되거든.”

수정이 누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이야기다.

그리고 그걸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는 소리고.

“사실 우리 브랜드가 남성 쪽은 이미지가 좀 약해, 그래서 시선을 돌린 것이 가상현실이야.”

“확실히 나쁘진 않네요.”

가상현실 게임만큼 남자들이 몰입하는 것을 찾기가 힘들다.

여기서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난 우리 승호가 메인 모델이 되어 줬으면 좋겠어.”

“네?”

“널 우리 회사의 메인 모델로 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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