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171화 변화의 바람 (3)
“언니가 왜 거기서…….”
“그러는 넌? 여기 어떻게?”
수정이 누나와 은하가 서로를 마주 보면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
언니라니…….
분명히 챠밍이 언니라고 했는데.
두 사람, 이미 구면이었던가?
서로 처음 보는 것이 맞을 텐데, 아는 사이라니.
그때, 이쁜소녀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아는 언니야?”
그 질문에 챠밍이 다시 수정이 누나를 쳐다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아니라는 표현.
일할 때 알던 인연인가?
아니면 학교 선후배나 그런 것일 수도…….
하지만 내 짐작과 다르게 이쁜소녀가 한 번에 핵심으로 가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 친언니?”
이쁜소녀의 말에 이번엔 챠밍이 수정이 누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와, 대박. 어떻게 여기서 만나?”
“그러네. 정말.”
챠밍도 대답을 하면서도 얼떨떨한 표정이다.
수정이 누나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챠밍, 이쁜소녀를 쭉 둘러보고는 한마디 했다.
“말이 되니, 이게.”
수정이 누나의 말에 챠밍도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서로 마주치는 것이 힘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 공간에 있으니 둘 다 혼랍스럽기는 마찬가지.
세상 참 좁구나.
설마하니 두 사람이 아는 사이도 모자라 가족이라니.
잘 보니까 확실히 눈매나 얼굴이 어느 정도 닮았다.
지금껏 왜 몰랐지?
수정이 누나를 본적이 오래돼서 기억이 흐릿해서 그랬나…….
막상 살펴보니 정말 자매가 맞는 것 같다.
그것도 엄청나게 우월한 미모의 유전자.
수정이 누나를 처음 봤을 때,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챠밍 역시, 옆에 있지만 전혀 떨어지는 것이 없다.
수정이 누나가 화려하게 돋보이는 꽃이라면, 챠밍은 수수하지만 단아한 매력이 갈무리 된 꽃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이쯤 되면 취향 차이로 갈라질 정도.
예쁘고 안 예쁘고의 수준은 아득히 넘어갔다고 해야 하나.
“언니가 어떻게 여기에?”
그때, 수정이 누나가 검지로 거실을 가리켰다.
“저쪽에 쭉 퍼져 있는 사람이 내 남친이라.”
아까 수정이 누나와 같이 도착했던 재중이 형이 거실에 죽은 듯 엎어져 있다가 이제야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대화를 듣자마자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 처제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 상황에 어떻게 바로 처제란 소리가 나오지?
진짜 순발력 하나는 끝내주네.
역시 프로게이머는 다른가?
“우리 집안에 연예인이 한 명 생기는 건가? 족보가 갑자기 좋아지는데?”
혼란에 빠진 우리와 다르게 재중이 형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는지 수정이 누나가 한숨을 쉬었다.
“누가 너랑 같이 산다고 했어?”
“아니야?”
“아니거든?”
그렇게 재중이 형과 수정이 누나가 티격태격하다가 다시 챠밍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재중이 하고 같이 다니는 사람이 너라는 거네?”
“응…….”
“진짜 세상이 좁긴 좁다. 그럼 네가 챠밍이고?”
“응…….”
“재중이가 보여줘서 나도 보긴 했는데,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바꿨니?”
“좀 많이 다르지?”
“그래, 내가 못 알아볼 정도면 아무도 못 알아봐. 매니저는 이거 알아?”
“응, 알기는 하는데……. 내가 챠밍인지는 몰라.”
“매니저가 알면 기절하겠네.”
그 말에 챠밍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부엌에 있던 사장님과 사모님, 연지까지 모두 나오자 거실이 순식간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앗! 연예인!”
확실히 고등학생인 만큼 보자마자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연지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기서 은하 본 건 비밀.”
수정이 누나가 연지에게 윙크를 하면서 입가에 검지를 대고 말하자, 연지가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어디 가서 이런 일들을 말하고 다닐 애는 아니니까.
괜찮겠지?
그리고 연예인이라는 말에 사장님과 사모님도 놀라는 모습이다.
사장님은…… 모르셨구나.
그러고 보니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챠밍이 연예인이라는 것을.
대회 때 있었던 일은 알게 모르게 우리끼리의 비밀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사모님도 어느 정도 놀라시긴 했지만 확실히 상대방을 배려해서인지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을 유도했다.
확실히 어른이라 우리보다는 이 상황에서 차분하신 느낌이다.
“자, 인사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하고 배고플 텐데 자리에 앉아요.”
자연스럽게 챠밍에게 몰려 있던 시선이 그 한 마디에 분산되면서 모두 거실로 가서 앉기 시작했다.
사모님 덕분에 불편할 수도 있었는데 잘 넘어갔다.
연예인이라는 것에 그렇게 불편해하는 모습도 아니고.
그것을 아는지 챠밍이 사모님에게 바로 고개를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예의 바른 아가씨네. 우리 남편 잘 좀 부탁해요.”
“아니에요. 저희가 더 신세 많이 지고 있는 걸요.”
“호호, 그래요. 이제 가요. 다들 기다리는데.”
“도와드릴게요.”
“아니에요. 이미 다 했어요. 가서 앉아요. 금방 들고 나갈 테니까.”
사모님이 괜찮다는 듯 이야기하자 챠밍이 머뭇거렸다.
“그래도…….”
“아, 그럼 저기 수저들 놓아줄래요?”
“네. 바로 할게요.”
“이쁜 아가씨가 참 싹싹하네.”
“아니에요.”
“언니, 나도.”
옆에 있던 이쁜소녀도 같이 돕기 위해 왔다.
“그럼 접시도 같이 좀 옮겨줘요. 아, 가위들도요.”
“네,”
사장님과 사모님이 킹크랩을 가지러 들어가신 사이에 챠밍, 이쁜소녀, 연지가 내게 물어보면서 하나씩 테이블을 세팅했다.
집에 식기가 부족하다 보니 대부분 일회용이다.
“혼자 사는 집이다 보니 이해해요.”
내 말에 방패전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중에 치우기 쉬워. 싹 다 쓸어서 버리면 되니까. 너 나중에 접시하고 집기 치우려고 생각해봐라. 그것도 일이야.”
방패전사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줬다.
확실히 그편이 훨씬 편하겠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과 모여서 밥을 먹어 본 적이 군대에 있을 때 말고는 기억에 없다.
생각해 보니 참 우울한데?
집이 시끌벅적하니까 왠지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고요함 그 자체인 집이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생기 넘치는 곳이 될 줄이야.
우리 집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때, 사장님이 부르는 소리에 같이 가서 킹크랩을 들고 왔다.
20kg가 가벼운 무게는 아니지.
집에 솥이 없어 사장님 댁에서 가져온 찜 솥에서 한 마리씩 꺼내 테이블에 올렸더니 접시가 작아 보일 정도였다.
“우와……! 엄청 커요.”
“대박 사건.”
이쁜소녀와 연지가 보고 감탄성을 흘렸다.
일반 대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두께나 굵기가 거의 두세 배는 되는 것 같은데.
뾰족한 돌기가 잔뜩 난 붉고 각진 등껍질에 날카로운 가시가 줄지어 세워진 굵직한 다리까지.
먹으려면 고생 좀 할 것 같다.
그 앞에서 킹크랩을 살피던 연지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지 바로 물었다.
“집게발이 하나만 엄청 크고 하나는 작아요.”
연지의 의문에 재중이 형이 바로 대답해줬다.
“그거 원래 그런 거야. 한쪽만 커. 짝짝이야.”
“진짜요? 속은 것 같아.”
솥에 정신없이 넣어서 몰랐는데 그랬나?
원래 그렇다니 뭐.
그렇게 생겼다는데 왜 그렇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와인도 사 왔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선물로 가져왔던 와인을 바로 꺼냈다.
“소주면 충분한데…….”
“분위기 내는 거지. 비싼 건 아냐.”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물론, 종이컵에.
종이컵에 따라주면서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어째 집에 컵이 달랑 몇 개밖에 없냐.”
“형도 혼자 사니까 알잖아요.”
“하긴, 나도 그랬지. 뭐, 종이컵이면 어때. 맛만 좋으면 됐지.”
그 말에 모두 똑같이 웃었다.
그래, 맛만 좋으면 됐지.
와인은 분위기로 마신다는 말이 있던데 다들 종이컵이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방패전사의 말을 시작으로 모두 잘 먹겠다는 소리를 했다.
“오늘 주인공은 승호인데 한 마디 해야지?”
사장님이 날 보면서 싱긋 웃으시면서 이야기 하셨다.
“네? 딱히 할 말이…….”
그러면서 주변을 보는데 전부 다 날 쳐다보고 있다.
부담 백배네.
솔직히 이런 것은 정말 자신이 없다.
“어…… 음, 오늘 오셔서 감사하고, 으음…… 맛있게 드세요.”
사람들이 뭔가 내가 더 이야기할 줄 알았는지 기다리다가 내가 짧게 끝내자 그제야 다들 박수를 쳤다.
“끝?”
“네…… 끝.”
“너도 참 게임 안이랑 밖이 왜 이렇게 다르냐. 안에서는 날아다니더니.”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
“이 녀석 게임 안에서는 사람들이 개떼처럼 우르르 포위하고 있어도 막 ‘드루와! 드루와! 안 덤벼? 내가 간다?’ 이러는 놈인데.”
“아악! 그만 해요!”
급하게 재중이 형의 입을 막으려고 다가가니 재중이 형이 피하면서 말을 꺼냈다.
“어제는 ‘뒤지고 싶은 놈들만 들어와라. 다 녹여줄 테니까.’ 이랬다니까요. 진짜, 안과 밖이 다른 남자여.”
재중이 형의 말에 주변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전부 폭소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
제발!!!
이렇게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꺄하하! 완전 대박.”
평소 장난기는 좀 있어도 저렇게 크게 웃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 했는데…….
연지 역시 손으로 억지로 입을 막고 버티다 못해 결국 웃다가 그 자리에서 자지러졌다.
수정이 누나도…….
날 보면서 등이 들썩거릴 정도로 웃음을 참다가 마찬가지로 터졌다.
“푸흡, 다 녹여준다니…… 아! 웃음이 안 멈춰져. 나 좀 살려줘.”
얼굴까지 빨개져서 바닥에 뒹굴면서 웃는데…….
심지어 정숙한 사모님조차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어깨를 들썩거리신다.
차마 앞에서 웃지는 못하시고.
아, 어디 들어가서 숨고 싶다. 진짜.
우리 팀 사람들이야 몇 번씩 봐서 그러려니 하는데, 막상 밖에서 같은 말을 들으니까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 젠장.
포기다.
한참을 웃다가 겨우 숨을 돌린 수정이 누나가 날 보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희 안에서 그러고 놀아? 완전 부끄러워서 말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런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는 거야? 거기 정말 재밌겠네. 나도 해보고 싶어. 나를 따르라! 내가 녹여주겠다!”
수정이 누나가 그런 말을 하면서 계속 키득거렸다.
“이제 살려주세요…….”
이 이상 부끄럽다가는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네.
그 상황, 그 분위기에서는 할 만하니까 했던 말이지 아무래도 일상에서 쓰기엔 말도 안 되는 멘트라 지금 여기서 다른 사람 입을 통해서 들으니까 너무 창피할 뿐이다.
“오늘 승호 이불 킥 좀 하겠네.”
“아! 진짜, 형 두고 봐요.”
“자자! 이제 실컷 웃었으니까 식사들 하지.”
역시 사장님밖에 없다.
다만 실컷 웃었다는 말이 왜 이렇게 슬프지.
집이 떠나가라 다들 웃어서 그런지 좀 어색했던 분위기가 아주 좋아지긴 했다.
날 제물로 삼긴 했다만.
그렇게 다 같이 와인을 건배하고 본격적으로 킹크랩 해체에 들어갔다.
“앗, 따거.”
방패전사가 등껍질을 벗기려다 등의 돌기에 손가락을 찔리고는 인상을 썼다.
“와, 이놈 껍질 들어내기 힘드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한 방에! 콱!”
쩌억, 벌어지는 소리와 함께 꽉 찬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다리는 이렇게 하고, 몸통은.”
재중이 형이 빠르게 손을 휘저으면서 순식간에 한 마리를 해체했다.
1인 1닭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2인 1킹크랩 수준으로 한두 사람이 같이 킹크랩을 해체하자 금세 뽀얀 속이 나왔다.
사장님은 다리를 까자마자 바로 연지에게 하나, 사모님에게 하나씩 먹기 좋게 발라주신다.
“여보 이거 먹어봐.”
껍질 까는 것을 힘들어하시던 사모님도 사장님이 계속 옆에서 까주시자 편안한 모습으로 만찬을 즐기셨다.
저러니 그렇게 게임방에 사셔도 사이는 좋으시지.
그리고 재중이 형은 계속 까는가 싶더니 아닌 척하면서 수정이 누나 앞에 말없이 다리 살을 발라서 올려놓았다.
수정이 누나도 마지못해 먹는 척 하나씩 쏙쏙 먹기 시작했다.
남자네, 남자야…….
챙길 때는 다 챙긴다.
수정이 누나가 계속 열심히 까는 재중이 형의 입에 살을 들어서 넣어주니까 입만 살짝 내밀어서 먹고 다시 까는 데 집중했다.
편안한 집안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챠밍이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아…….
언니라고 했지?
확실히 다른 때엔 저런 모습 보기가 힘들 건데.
그러고는 챠밍과 이쁜소녀가 둘만 들리게 뭔가를 작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괜히 궁금하네.
방패전사는…….
나르샤의 눈총을 받고는 까서 입에 넣어주려고 하다가 대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야!”
“장난이야. 장난.”
그러면서 또 장난을 쳤다가 결국 나르샤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저건 수정이 누나 전매특허인데 여기서 보게 되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다들 크게 웃었다.
나르샤가 얼굴이 빨개지더니 방패전사의 옆구리를 확 꼬집었다.
“아악!”
“너 나중에 봐.”
“잘못했어요.”
저기도 참 힘드네.
주변을 보니 전부 옆에서 남자들이 챙겨주고 있는 것을 보고 챠밍과 이쁜소녀는 내가 맡아서 다리와 집게를 깨서 하나씩 넘겨줬다.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오빠.”
아기 새처럼 열심히 쪽쪽거리면서 먹는데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어느 정도 까면서 나도 하나씩 입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
다리 살은 부드럽게 사르르 녹고, 집게 살은 쫄깃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몸통을 갈라서 속살을 먹어봤는데.
“뭐 이건 이렇게 달아요?”
깜짝 놀랐다.
살이 너무 달다.
“내장 찍어 봐라. 더 달다.”
재중이 형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한 사람씩 내장을 찍어 먹었는데 다들 표정이 화사하게 변하는 것이 정말 맛있는 모양이다.
“맛있네요.”
“달아서 너무 좋아요.”
챠밍이나 이쁜소녀나 다리 살을 찍어서 먹고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다시 변했다.
그런 옆에서 하나씩 다시 까주고 있는데 그때, 연지가 뾰로퉁한 얼굴로 나와 자기의 앞 접시를 번갈아 바라봤다.
쟤가 왜 저러나?
입맛에 안 맞나?
나와 시선이 마주친 연지가 앞에 있던 접시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주위에 잘 들리지 않게 나에게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나도 주세요.”
“응?”
“나도 오빠가 까준 거 먹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