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157화 지금은 준비할 때 (9)
총력전.
과거 시작하는 섬에서 했던 것처럼 수십여 번의 트라이를 통해 패턴을 알아낼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거기다 지금은 그때처럼 내부 분열이라는 일을 조심하지 않아도 되고.
그간 가장 부족했던 레벨 역시, 이틀 동안 충분히 꿀을 빨아 괜찮아졌다.
잠수함 패치가 없었다면 좀 더 해먹을 수 있겠지만 패치가 되었으니…….
몰이 사냥은 우선 그만두기로 했다.
획득하는 경험치가 낮아져서 더 얻을 것이 없으니까.
물론, 지금도 굉장히 경험치를 많이 주긴 하지만, 이미 길드원들의 레벨은 많이 올라 쩔은 필요 없을 것이다.
충분히 레벨을 올렸으니, 각자 사냥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재중이 형이 판단을 해 딱 끝내 버렸다.
더 길게 진행되었다면, 자신의 레벨과 스탯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이 생겼겠지만 서로 좋게 마무리가 되면서 사냥은 끝이 났다.
고민이 많았던 검은 호수 여왕 레이드에도 대다수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할 수 있을까요?”
“해야지. 최악의 경우 던켈을 가진 사람이 먼저 죽는 쪽으로 하고.”
혹시나 죽어서 던켈이 드랍 되면 다른 사람이 주울 수 있으니까.
잘못됐을 경우, 물의 성에 떨어뜨리고 올 확률을 최대한으로 줄이려는 생각이다.
오우거 벨트…… 이것도 떨어지면 대형 사고다.
도저히 공략이 안 된다고 여겨질 경우 내가 최우선 순위로 죽어야 한다.
“자자, 안 된다는 생각은 버리고. 반드시 깨고 온다는 생각으로 가자.”
그 말을 하며 마지막에 싸웠던 영상을 시연했다.
재중이 형이 영상을 짚어가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조심해야 하는 패턴은 물의 가시. 바닥에서 올라오는 가시가 사람을 묶어버린다. 그러면 점점 체력을 뺏기다가 아웃.”
그때, 사탕남이 손을 들어서 질문을 했다.
사탕남은 대회 3위를 해서 아이템을 하나 받긴 했는데 그게 오우거 벨트다.
우리가 몰이사냥을 하는 것을 보고는 던켈을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엄청나게 후회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던켈의 단점이 너무 드러나서 그랬다고 하는데 이미 골라 버린 것 바꿀 수도 없고.
오우거 벨트도 좋은 선택이었다고는 생각하는데 보기엔 부러웠나 보다.
“물의 가시를 깨는 방법은요?”
“보다시피 안에서 갇힌 사람이 이걸 깰 방법은 전무. 무조건 주변에서 깨줘야 해. 안 그러면 여왕에게 체력을 가져다 바칠 뿐이니까.”
그 말은 걸린 사람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잘해야 한다는 소리다.
협업이 무조건 필요한 패턴.
“그리고 물의 방패. 이건 스킬을 그대로 반사해. 사용 빈도가 얼마나 되는지 쿨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판단하기 힘드니까 실전에서 확인해야 하고.”
근접에서 딜을 넣다가 반사된 스킬을 그대로 맞으면 공략은 더더욱 힘들어진다.
“아쿠아 토네이도. 보다시피 광역 기술인 데다가 물의 가시와 같이 시전 되면 최악의 경우 전멸할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해서 죽은 케이스다.
점프를 할 수도 없고 바닥에서 버틸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숨겨진 페이즈나 기술이 적어도 몇 개는 더 있다고 가정하고 들어가야지.”
특히 마법형 네임드다 보니까 우리는 엄청나게 취약하다.
마법 방어력이 제대로 된 길드원은 마법 계열밖에 없으니까.
공성에서 사용하려고 그동안 갖고 있었던 매직 플레이트를 근접 계열의 사람들에게 싹 풀었다.
수호도 거금을 주고 매직 플레이트 아머와 팬츠를 세트로 가져갔다.
“좀 싸게 해주시죠?”
“돈도 많은 놈이 그냥 사. 그것도 싸게 준거야.”
재중이 형과 수호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친하긴 친한 모양이다.
케르베로스는 우리 팀이 한 마리씩 소유하고 남은 것은 마법 계열에게 대여를 했다.
이속이 중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마력 회복이 제일 쓰기 좋은 옵션이니까.
이제 준비는 끝이다.
***
물의 성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 몰이를 해서 물의 성 내부까지 들어갔다.
돌아오지 않고 바로 잡는다는 것만 빼면 똑같다.
“여기서부터 여왕의 영역입니다.”
방패전사가 사전에 확인한 라인 앞에 섰다.
지금 저 라인을 넘어가면 물기둥이 사방에 생기면서 나갈 길이 막힌다.
“그럼 가지?”
“가죠.”
사장님이 앞장서자 그 뒤를 재중이 형이 따랐다.
“흐읍! 저도 가요.”
“모두 힘내요.”
이쁜소녀와 챠밍도 라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길드원들이 하나둘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래,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사방에서 같이 걸어 들어가는 길드원들을 보니 든든한 기분이 든다.
내가 라인을 넘어가는 것을 끝으로 물기둥이 사방으로 올라와 퇴로를 막아섰다.
《 여기까지 들어올 줄이야. 》
멘트도 똑같네.
쪽수에서 오는 여유라고 해야 하나.
과거와 달리 이번엔 차근차근 위아래로 여왕을 살펴보았다.
늘씬한 몸매에 아슬아슬한 부위만 가리는 검은빛의 비늘, 두 개의 휘어진 검은 뿔에서 농밀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확실히 다르네.
그런데…….
“눈 돌려요.”
“변태.”
응?
시선을 돌리니 챠밍과 이쁜소녀가 눈을 부릅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 그런 거 아닙니다.”
한편에선 방패전사가 나르샤에게 옆구리를 맞고 쓰러졌고.
저건 진짜 아프겠는데.
사탕 커플은 말할 것도 없다.
남자 길드원들은 휘파람을 불고, 여자 길드원들은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날이 서 있는 모습이다.
“영상하고 완전 다르네요.”
“흠, 뭐. 괜찮네.”
최종병기와 수호도 여왕을 보면서 저러고 있으니.
“이래서 레이드를 할…….”
사장님이 시작도 전에 한숨을 쉬신다.
“자자! 긴장 좀 하자.”
재중이 형이 박수를 치자 그제야 다들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잡는다.
《 내 평온을 방해한 죄를. 물의 가시! 》
나와 나르샤만 있었을 때는 물의 가시가 몇 개 안 보였는데 지금은 어떨까?
라미아 여왕의 영창이 끝나자 거의 백여 개가 넘는 물의 가시가 동시에 바닥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해!”
누가 소리를 질렀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모두 자리를 박찼다.
미처 피하지 못한 십여 명의 길드원이 물의 가시에 걸려 갇혀 버렸다.
그것을 확인한 사장님의 오더가 떨어졌다.
—각 팀, 제일 가까운 것부터 제거.
나 역시 주변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달려들었다.
나르샤 때는 흠집 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 오우거 하트! 】
순식간에 다리와 팔이 팽창하는 기분과 함께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빠르고 강하게 내려쳤다.
까강!
이건 물이 아니라 완전히 쇠파이프다.
그래도 전엔 기술을 사용하여 가까스로 실금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대폭 올라간 힘 때문에 바로 금을 만들 수 있었다.
효과가 있네.
그리고 물의 가시를 치는데 마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마력 스탯이 높아지면서 올라간 회복 이상으로.
【 아쿠아 웨폰! 】
거기에 무기 인챈트를 사용하고 물의 가시를 다시 후려치자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이쁜소녀가 옆으로 달려왔다.
“제가 할게요!”
【 검은 가시! 】
새까맣게 변한 던켈로 물의 가시를 내려치자 물의 가시의 한 부분의 터져 나가면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잘했어.”
내 칭찬에 이쁜소녀가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고 다른 곳으로 다시 달려나갔다.
역시 이걸 깨려면 한방이 있는 편이 좋네.
“감사합니다.”
가시에 갇혔던 사람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여자 길드원이었다.
감사에 대한 답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고 다른 사람이 갇혀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 검은 가시! 】
까맣게 물든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로 물의 가시를 내려치자 단 한방에 물의 가시가 무너져 내렸다.
역시 검은 가시를 사용하니 확실하게 부술 수 있네.
다른 곳은?
다들 최선을 다해 두들기고 있지만, 아직도 여덟 개의 가시가 있었다.
물의 가시 하나당 여럿이 붙어 있음에도 가시는 꽤 느릿하게 부서졌다.
그렇게 다들 한참을 더 두드리니 하나둘 물의 가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물의 가시에서 나온 길드원들의 HP는 심한 사람이 절반 이상, 그나마 양호한 사람이 절반 정도가 깎여 있었다.
이건 그대로 여왕이 흡수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단단하네요.”
“그리고 많지.”
사람 수에 맞게 물의 가시가 올라오는 모양인데 이런 식이라면 물의 가시만 부수다가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때, 사장님이 빠르게 오더를 바꿨다.
—1팀과 2팀은 여왕에게 붙고 나머진 가시에 집중.
1팀은 사장님 팀이다.
그리고 2팀은 우리 팀.
원래 있던 팀에서 수호와 최종병기가 추가로 붙었다.
동시에 여왕에게 달려들자 여왕이 주문을 외웠다.
《 아이스 월! 》
그와 함께 우리가 달려들려던 곳이 전부 얼음으로 뒤덮였다.
“칫, 쉽게 붙지 못하게 하겠다는 건가.”
수호가 바로 혀를 찼다.
수호의 말대로 유저가 쓰는 아이스 월보다 월등히 큰 얼음벽이 우리와 여왕을 갈라놓았다.
방패전사가 달려나가다가 멈춰서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난처하긴 마찬가지고.
“어글을 먹어야 할 텐데 접근이 힘드네.”
“그땐 이런 건 없었는데 난감하네요.”
“아마 너 혼자였으니까.”
방패전사가 수호, 슬이아빠와 함께 주변을 돌면서 계속 접근을 시도했다.
원거리가 먼저 공격을 해도 되긴 하지만 표적이 잘못 잡히면 어글이 꼬여 버리게 된다.
“징벌의 사슬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방패전사 입장에서는 꽤 아쉬운 모양이다.
확실히 어글 잡기엔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까.
【 파이어 월! 】
챠밍과 아이꿍이 준비한 풀 차징 된 파이어 월을 날리자 범위에 들어가는 얼음은 바로 녹아내렸다.
얼음이 사라지자 방패전사와 수호, 슬이아빠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메인 탱커는 방패전사, 서브로 수호와 슬이아빠가 메인이 위험할 경우 끼어들기로 했다.
《 사라져라. 아쿠아 토네이도! 》
이런.
미처 접근하기 전에 또다시 수십 개의 물의 폭풍이 불면서 우리를 한꺼번에 잡아끌었다.
게다가.
《 물의 가시! 》
아쿠아 토네이도도 벅찬 상황에서 물의 가시까지 올라오자 길드원들은 깜짝 놀라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진짜!”
방패전사가 아쿠아 토네이도와 물의 가시가 펼쳐진 상황에서 가시를 피하려다 토네이도에 이끌려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마자 바로 팔을 뻗어서 방패전사를 잡아끌었다.
내 힘이라면 방패전사는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
“잡았어요.”
“아! 땡큐!”
“콤보가 진짜 엿 같죠?”
“당해보니.”
그나마 아쿠아 토네이도의 범위가 넓지 않아 다행이지 이게 맵 전체에 시전 되면 다 파리 목숨이다.
결국은 한 번은 끊어야 한다는 건데…….
벌써 사용해야 하나?
마력이 가득 찬 것을 확인하자 바로 데스 위버를 꺼냈다.
그대로 활을 들어서 혼자 꽤 바깥쪽으로 떨어져 여왕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여왕 주변은 아쿠아 토네이도 때문에 접근이 힘들었지만 이 정도로 떨어지면 시선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기동하면서 활을 다루는 스킬이나 노하우 같은 것은 나르샤보다 부족하지만.
다만, 딱 한 발.
제자리에서 딱 한 발만 집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검은 가시! 】
데스 위버가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장력을 상회하는 근력으로 끝까지 당기자 시위가 끊어질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
거기다 차징할수록 마력을 잡아먹는 검은 가시 특성상 마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강력해진다.
내 마력 수치는 마법사급.
근력은 올힘 캐릭터보다 강하다.
민첩은 궁수만큼 높아서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대로 말하면.
로스트 스카이에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단 한 발.
마력을 잡아먹을수록 점점 커지는 검은 가시가 내 마력을 전부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검은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시위가 진동하면서 터지려고 할 때 꽉 쥐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곧장 대기를 거칠게 찢고 나가는 검은 가시 한 발이 아름다운 선을 그리면서 더 이상 빠를 수 없다는 듯 라미아 여왕의 머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여왕이 이상을 느끼며 돌아서려는 순간,
검은 화살이 여왕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고 마력을 한계까지 담은 검은 가시가 터지면서 검은 스파크와 함께 강력한 후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가시의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채 그 견고하던 여왕이 그대로 튕겨나가 바닥에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대박!”
이쁜소녀가 좋아하면서 대박을 외친다.
“미쳤네, 네임드를 날려 버리다니.”
수호도 마찬가지.
“꺅! 역시 주호 님!”
현역여대생이 하이톤의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 역시 물의 가시와 아쿠아 토네이도가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봤다.
그런 그들을 향해 바로 한마디 했다.
“다들 뭐해요? 가서 두들겨 패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