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156화 지금은 준비할 때 (8)
<수호> 어쩐 일이십니까?
<최종병기> 무슨 일 있어요? 연락을 다 하고.
한참 사냥 중이었나 보네.
<주호> 혹시, 쩔 받을 생각 없으세요?
<수호> 음, 우리에겐 좋지만 부담되지 않습니까? 쩔을 할 정도의 여유는 없으실 텐데요. 상위 랭킹 유지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
쩔이라는 것은 친한 사람들이 아니면 잘 해주질 않는다.
거기다 우리 같이 시간을 쪼개가면서 사냥하는 사람들에게 경험치를 나눠준다는 것은 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주호> 아, 그게 좀 재밌는 상황이 생겨 버려서요. 아마 보시고 나면 이해할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부담되는 상황이 아니고.
한참 동안 답이 없다가 최종병기가 답변을 보내왔다.
<최종병기> 그러면 일단 갈게요.
일단 전직 프로게이머였던 수호, 최종병기와 제일 먼저 연락을 끝냈다.
그렇게 접속한 사람 위주로 쭉 연락을 돌리다 보니 어느새 꽤 많은 인원이 검은 호수 앞 상인촌으로 모였다.
심지어 접속하지 않은 인원도 앱으로 연락해 불러들였다.
그러는 동시에 템을 처분하고 물약을 구입하는 등 새롭게 정비하는 시간도 갖고 있었다.
“벌써 반응이 옵니다.”
방패전사가 기다리는 동안 잠시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다가 우리 이야기가 나온 글을 보여줬다.
—최강 애들 저주받은 숲에 자리 다 버리고 뜸.
—어? 진짜? 거기 완전 꿀 자리인데.
—악세 나오던 자리 아냐?
—쟁 났나 보지. 근데 쟁 나도 보통 자리는 지키지 않나?
—낮에도 검은 호수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던데 진짜 무슨 일 나는 것 아닐까?
—진짜 알 수 없는 길드네.
일단 게임에 접속한 길드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불러들였다.
심지어 저주받은 숲에서 자리를 잡고 사냥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자리 내놓은 게 충격적이긴 할 거다. 보통은 24시간 돌려가면서 잡으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길드의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 정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남들은 기를 쓰고 잡으려는 자리를 그냥 내줘 버렸다.
이래도 되려나.
“그렇다고 자리까지 모두 내놓아요?”
“어차피 공성 시작하면 엉망이 될 거야. 하루, 이틀 먼저 내놓아봐야 뭐. 그리고 이번에 레벨이 오르면 이 근처에서 사냥하게 될 테니까. 필요 없지 이젠.”
그 정도로 이번 공성에 사활을 걸었다.
얼마 뒤 수호, 최종병기, 사탕 커플을 필두로 전 길드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까지 합치면 거의 팔십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이자 꼭 정모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전부 모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네.
50레벨에 다다른 우리가 앞장서고 그 뒤로 10∼40레벨 사이의 길드원들이 줄줄이 소세지처럼 엮여서 따라왔다.
같은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가자 순식간에 상인촌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거 또 난리 나겠는데?
***
패턴은 똑같다.
내가 미로를 몰이로 뚫고 지나가면 끝.
그렇게 물의 성으로 가는 동안에도 몰이는 지속되었고, 결국 팔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물의 성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
다들 우리가 처음 봤을 때처럼 물의 성을 구경한다고 정신이 팔려 있는 중이다.
“자! 자! 지금부터 파티를 새로 짜겠습니다.”
사장님이 낮은 레벨인 사람들과 높은 레벨의 사람들을 적절히 섞어서 파티를 나누기 시작했다.
로스트 스카이의 장점은 좋은 무기나 아이템만 있으면 레벨에 상관없이 다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높은 레벨의 몹을 잡는다고 딱히 경험치 페널티라는 것이 없다.
그냥 능력 되면 잡으라는 소리지.
가능하다면…….
총 열 개의 파티를 만들어 입구에 자리를 배치하자 꽤 그럴싸한 포위진이 완성됐다.
멀티 샷은 바로 궁수 계열에게 나눠줬다.
몇 발 나가지 않더라도 레벨이 오름과 동시에 민첩이 오를 테니까.
그냥 멍하게 쩔 받는다는 느낌이 나지 않도록 줄 수 있는 스킬은 모두 쥐여줬다.
근접 격수들은 비월참, 마법사들은 아쿠아 캐논 으로 스킬을 분배했다.
“잘 적어놔.”
“예, 형님.”
재중이 형의 말에 방패전사가 꼼꼼하게 수량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같은 길드라도 공짜는 아니지.
템 지원도 어느 정도지.
이런 고급 스킬은 지금 밖으로 나돌면 값이 엄청나다.
“쩔을 해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 다른 길드는 쩔 해주면서 시간당 돈까지 받잖아. 이게 얼마나 혜자냐.”
“하하…….”
어딘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 있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라서 그저 웃고 말았다.
“다녀올게요.”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우리만 사냥하는 사냥터.
재중이 형이 늘 말하는 최고의 사냥터다.
빠르게 물의 성 내부를 뛰어다니면서 제일 가까이 있는 엘리트 라미아부터 찾아다녔다.
워낙 엘리트가 밀집된 공간이라 조금만 돌아다녔는데도 순식간에 몹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적당히 열 마리 정도?
자칫 피격되는 상황이 오면 바로 회피기를 써서 미끄러지듯 몹 사이를 피해 나와 입구로 돌아왔다.
“시작해요.”
【 어스 퀘이크! 】
내게 달려드는 엘리트 라미아들을 모두 눕히자 기다렸다는 듯 각양각색의 광역기가 눈이 부실 정도로 입구 쪽에서 쏘아졌다.
“1타 쏴.”
【 아이스 월! 】
【 포이즌 클라우드! 】
【 멀티샷! 】
【 비월참! 】
【 아쿠아 캐논! 】
【 파이어 월! 】
광역기가 한 번 터지고 난 뒤에 이쁜소녀와 재중이 형이 동시에 양쪽에서 던켈을 바닥에 찍었다.
【 어스 퀘이크! 】
그러자 사방에 퍼졌던 엘리트 라미아들이 다시 중앙으로 예쁘게 모이면서 경직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광역기.
“2타 쏴.”
1타 때와 마찬가지고 남은 인원이 광역기를 쏘자 엘리트 라미아들이 싹 녹았다.
그리고.
길드원 절반 이상이 레벨이 오르면서 엄청난 빛기둥이 퍼져나갔다.
너무 눈부셔서 차마 쳐다보기 힘들 정도.
“꺅! 5렙 했어.”
이건 사탕줄게따라와요.
사탕주면따라가요의 여친이기도 하다.
둘이 좋다고 껴안고 있는데…….
흠. 부럽지 않아. 결코.
“7렙…… 미쳤네.”
경험치 바를 확인한 수호의 한 마디.
“하아, 이때까지 쌔빠지게 업한 건 대체…….”
이번에 8렙이 오른 최종병기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단 몇 초 만에 수십 시간을 사냥해야 오를 경험치가 올라가니 새로 데리고 온 낮은 렙의 길드원들이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쩔이라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쉽고 빠르게 오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만족스러운 표정이네요.”
“그렇지? 이거 순식간에 전력을 올릴 수 있겠어.”
재중이 형이 고르고 골라서 받았지만, 레벨이 낮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대회에서 새롭게 받은 사람 대부분 다른 서버에서 넘어와 마찬가지고.
우리 길드 최악의 단점.
다른 상위 길드에 비하면 뎁스가 얇았는데, 이 방법이라면 그것을 따라잡고도 남는다.
“다녀올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챠밍이 걱정이 되는 듯 내게 말을 건넸다.
이쁜소녀도 무리하는 것이 아닌지 계속 쳐다보고 있고.
“뭐, 근처에 몹이 많아서 너무 오래 끌지 않아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고 다시 물의 성을 쓸기 시작했다.
한 번 오갈 때마다 빛기둥이 환하게 올라왔다.
레벨업을 하면 체력과 마력이 가득 찬다.
다른 말로 하면 당분간 무한 스킬이라는 소리.
고렙들은 테이밍한 케르베로스에 태워 회복하게 했다.
나?
저렙 길드원들이 경험치를 나눠 먹는다 해도 여전히 많은 경험치를 획득하고 있었다.
로스트 스카이 최초로 50렙을 찍었으니까.
다만 50렙이 넘어가자 필요한 경험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형, 이거 고장 난 것 아니죠?”
내가 경험치 바를 보여주자 재중이 형도 놀라서 다시 확인했다.
“미쳤네.”
“어라? 말도 안 돼요.”
“……이건 좀 너무 해요.”
방패전사, 이쁜소녀, 챠밍이 구경하다가 같이 깜짝 놀란다.
“여기서 얻는 경험치로는 대충 여기까지라는 소린가?”
그렇게 내가 잠시 정체하는 사이. 재중이 형,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도 빠르게 내 레벨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저 10렙에서 시작해서 어느새 30을 넘어가고 있는 길드원까지.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업이 빠르다.
로스트 스카이의 중렙이라 불리는 레벨로 올라선 길드원들이 스탯에도 투자를 시작하자 사냥 속도가 더 올라가 버렸다.
“안 되겠네. 나도 몰아와야겠어.”
재중이 형도 어느새 케르베로스를 타고 내 옆에 섰다.
“형도 가게요?”
“딸린 식구가 많잖아. 너 혼자 몰아와서는 반도 못 데리고 오던데.”
“확실히 그렇긴 하죠.”
내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물의 성 전부를 휩쓸고 다닐 수 없다.
지금도 좀 무리해서 15~20 정도 끌고 오는 중인데 아까 끌고 오다 죽을 뻔하기도 했다.
백스탭, 대쉬 연계가 없을 때 몰리면 나도 난감하니까.
“그럼 저도 갈게요.”
나르샤도 케르베로스를 타고 옆에 섰다.
그리고 방패전사도.
“실수하면 바로 죽어요.”
“몰이 경력만 십 년이다. 걱정 붙들어 매.”
“나도 몰이 꽤 잘해.”
방패전사와 나르샤가 그렇게 장담을 하자 좀 안심이 되네.
나와 다르게 오우거 벨트가 아닌 트롤 벨트를 차고 있으니 체력으로 곤란한 경우가 생기진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트롤 벨트를 찰 걸 그랬나?
힘 5가 떨어지면 엘리트를 한 방에 못 눕힐 것 같아서 이건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지금도 바깥쪽에 있는 녀석은 가끔 정신을 차리니까.
그렇게 나와 재중이 형, 방패전사. 나르샤가 몰이를 시작하니 한 번에 몰아오는 몹이 두 배로 늘어났다.
또다시 시작되는 레벨업의 향연.
좋기는 한데.
이래도 되는 걸까?
왜 자꾸 안지운 운영팀장이 생각나지.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냥 생각났다는 거지, 그렇다고 그만둘 건 아니라서.
그렇게 거의 하루 꼬박 몰이한 뒤.
입가심으로 케르베로스 다섯 마리를 테이밍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이제 이틀 남았나?
그리고…….
이때만 해도 이게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지는 전혀 몰랐다.
***
1위 50 주호 / 신화
2위 50 불멸 / 최강
3위 49 챠밍 / 신화 ▲ 19
4위 49 나르샤 / 신화 ▲ 23
5위 49 이쁜소녀 / 신화 ▲ 31
6위 49 방패전사 / 신화 ▲ 32
7위 48 아이꿍 / 최강 ▲ 51
8위 48 해신 / 최강 ▲ 72
9위 48 체리 / 최강 ▲ 79
10위 48 천둥 / 최강 ▲ 88
11…….
1…….
….
—오늘 자 랭킹 본 사람 손?
—봤다. 미쳤네.
—저 두 길드 대체 뭐하는 짓?
—로스트 스카이가 이렇게 레벨을 올리기 쉬운 게임이었음?
—1만 올리려고 해도 피똥 싼다. 쉽기는.
—한 마리 잡을 때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겨우 잡는데…… 대체 몇 마리를 잡아야 저렇게 렙이 올라감?
—적어도 하루 만에 올릴 레벨은 아님. 특히 고렙에서는 1렙 올리려고 며칠 간 피를 말리는데.
—주호 봐라. 벌써 50임.
—불멸도 50.
—이 새끼들 버그 쓰는 거 아냐?
—운영자는 바로 조사해라.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젠 못 참겠다.
—근데 니들 쟤네 사냥하는 걸 보면 그런 소리 못할 걸? 미로에서 라미아를 떼로 몰아서 잡던데.
—아씨, 그것만 있으면 말을 안 하지. 최강 애들 전부 몇십 렙 씩 올랐던데. 밑에 찾아봐라. 장난 아니다.
—이건 뭐야? 하루에 20? 20렙이 하루에 40렙이 가능?
—100위 안에 최강 애들이 서른 명이 넘어감.
—뭘 대체 어떻게 해야 이게 가능 하냐.
우리 팀만 올랐으면 그다지 문제가 안 됐을 텐데, 길드원 전부 미친 듯 레벨을 올리자 게시판을 타고 난리가 났다.
“형 봤어요?”
“아아, 신경 꺼. 부러워서 그러는 거겠지.”
“문제 생기는 거 아닐까요?”
“우리가 없는 시스템으로 사냥한 것도 아니고. 뭐하면 영상 그대로 보여줘도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어.”
재중이 형은 당당해 보인다.
듣고 있던 방패전사도 한 마디 했다.
“몰이를 막으면 모를까 이건 괜찮지. 버그를 쓴 것도 아니고.”
방패전사도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표정이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괜히 지금 시점에서 꼬투리를 잡히면 곤란하다.
예전에 사고를 하도 치고 다녔더니…….
지금도 케르베로스를 억지로 테이밍하고 있는데.
찔리는 곳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러니 안지운 운영팀장이 널 찾아와서 그렇게 말하지.”
“하하, 어쩌겠어요. 상황이 이런 걸.”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으로 할 뿐이다.
그렇게 하루 더 몰이를 해서 레벨을 51까지 올리고 길드원들의 레벨을 더욱 끌어올렸다.
“잠수함 패치 했네. 엘리트 라미아 경험치가 확 내려갔어. 어쩐지 잘 안 오르더라.”
“와, 진짜 얍삽하네요.”
“이렇게 뒤통수 칠 줄은…… 꽤 하네. 운영팀장도. 그나마 케르베로스는 안 막혀서 다행이지만.”
정말 다행이다.
혹시라도 막았다면 숫자가 상당히 부족할 뻔 했으니까.
“쉽게 막지 못할 걸. 두 명이 올라타는 걸로 막았다가는 테이밍 방해하기가 너무 쉬워지니까.”
“그렇긴 하네요.”
아직까지 할 수 있는 플레이로 간주하는 건가.
아니라고 해도 더 이상 올릴 시간도 방법도 없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마지막 하나만 남겨두고.
“그럼…… 이제 여왕을 잡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