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142화 별들의 전장 – 본선 (10)
<챠밍> 저랑 소녀랑 둘이 싸워요?
<이쁜소녀> 안돼요…….
<불멸> 제가 알기론 같은 조에서 올라온 사람끼리 맞붙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네요.
재중이 형 말대로 딱 그렇게 붙게 되었다.
애초에 5, 6위전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쩌다 팀킬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이야기한 단점이라는 것이 신경 쓰인다.
<방패전사> 안 그래도 해설자들이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방패전사의 말에 해설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1, 2위가 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3, 4위전 대진이 정해졌죠? 』
『 네, 그렇습니다. 각 조에서 떨어진 아랑과 사탕주면따라가요가 3, 4위를 다투게 되고, 아로하와 전설, 챠밍과 이쁜소녀가 5, 6위를 놓고 각각 대전을 벌이게 됩니다. 』
『 1, 2위전도 예전 한 길드로 활동했던 불멸과 주호가 만나게 됩니다만 5, 6위전도 흥미롭군요. 역시 같은 길드입니다. 』
『 운명의 장난인가요. 같은 팀이라도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왔습니다. 그것도 두 팀이나. 』
정말 상황이 묘하게 됐다.
<주호> 형, 양보해 달라고 하면 할 거예요?
<불멸> 미치지 않고서야. 넌 생각 없냐?
<주호> 전혀 없죠. 제가 이길 거니까.
<불멸> 예전엔 귀여웠는데 진짜.
<주호> 이기고 나면 다시 귀여워질 겁니다.
상금을 나누자고 하면?
글쎄다.
누가 이기든 1, 2위는 보장이니까 하자고 하면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의욕이 안 생긴다.
이런 마음가짐은 분명히 경기력에서 차이가 날 거다.
재중이 형도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 활활 타오르고 있을 거다.
분명히.
챠밍과 이쁜소녀는…….
모르겠네.
설마 저 둘이 붙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이쁜소녀> 언니, 이기는 쪽이 밥 사기!
<챠밍> 알았어, 이기는 쪽이 사는 걸로 해. 안 봐줄 거야.
<이쁜소녀> 나도!
저쪽도 뭐 양보할 생각이 없구나.
1억과 5천이라.
5천만 원짜리 밥 내기인가.
<주호> 우린 그런 거 없죠?
<불멸> 약한 소리 하기는. 당연히 1등이 회식비 쏴야지.
<주호> 그럼, 마음 편하게 한 판 붙죠.
***
제일 먼저 아로하와 전설이 시합을 했고,
결과는 아로하의 승.
아슬아슬하게 마지막까지 가서야 승패가 결정됐다.
<주호> 생각보다 박빙이었어요.
<불멸> 전설도 약간 방어형에 가까워서. 선공을 넘겨줬다가 고생을 했지. 차라리 치고받았으면 승부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만.
<주호> 방어 위주로만 해서는 이길 수 없으니까 뭐…….
<불멸> 너랑 붙어서 표시가 안 난 거지, 아로하 저 애 엄청 센 거다.
<주호> 지금 보니까 알겠네요.
전설 역시 컨트롤이 나쁘지 않다.
길드의 힘이 없었어도 랭킹을 잡고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과 박빙으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아로하도 대단하고.
전설이야 돈이 많다고 들었으니 상금에 그렇게 연연할 것 같지는 않은데…….
<불멸> 길마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계속 깨지는 것도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지. 뭐, 토너먼트라서 변수도 많으니까. 감안은 해야겠지만. 전설은 속이 영 별로일걸?
<주호> 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불멸> 아아, 자존심이 좀 강해.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아닌 척해도 지금 속으로 부글부글할 거다.
<주호> 그런가요.
물론, 지고 나면 반성은 해야겠다만.
졌다고 그렇게까지 마음 쓸 정도는 아닌데…….
사람마다 차이가 심하구나.
<불멸> 너하고는 성향은…… 잘 안 맞을 수도 있겠다. 전설은.
글쎄. 만나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이 그렇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사람 보는 눈은 꽤 정확하니까.
그렇게 아로하가 1억의 상금을 타내며 VRS를 나와 바로 퇴장했다.
『 자, 기다리던 대전이 또 나왔습니다. 』
『 이쁜소녀와 챠밍의 대결이죠. 』
『 같은 팀 동료라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쁜소녀를 한 번 더 볼 수 있어서 전 좋습니다. 』
『 하하, 전 챠밍이 더 좋습니다만. 예쁘지 않습니까. 』
두 캐스터가 양옆에서 편을 가르고 이야기하자 가운데 앉아 있던 해설자가 바로 정리를 했다.
『 자자, 두 분 취향이 완전 갈리는군요. 전 둘 다 마음에 듭니다. 많은 분이 이렇게 응원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 지금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
양쪽 VRS가 모두 준비가 끝나자 바로 대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중이 형이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게 됐다.
<주호> 으음, 이건 확실히 안 되겠네요.
<불멸> 그렇지? 나도 몰랐는데 몇 번 가르치다 보니 알게 되더라.
<주호> 저도 알고는 있던 건데 이렇게 돼버릴 줄은.
솔직히 알고는 있었는데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문제다.
굳이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없었으니까.
『 결정적인 한 방을 또 놓치는군요. 이쁜소녀가 핀치에 몰립니다. 』
『 움직임은 확실히 좋습니다만, 뭔가 다른 사람하고 붙을 때와는 다른 강력한 퍼포먼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
『 아무래도 챠밍의 공격은 거의 CC기에 집중되어 그런지 잘 붙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군요. 』
해설하는 사람들도 어렴풋이 느끼는 모양이다.
이쁜소녀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못한다는 것을.
<불멸> 이쁜소녀가 제대로 움직임을 끌어내려면 특유의 집중이 필요한데…… 지금은 좀 힘들지. 집중했을 때와 아닌 때 차이가 극과 극이더라. 주변 분위기에 따라서 확 차이가 나.
<주호>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불멸> 아무래도 아는 사람들 상대로는 힘들지.
전에 있던 서버에서 쟁이 났을 때 몰입해서 집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사방이 적이 몰린 상황이라 가진 실력 이상으로 능력을 끌어내 싸웠는데 지금은 그런 식의 집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챠밍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싸우고 있기는 한데 원거리 계열이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그렇게까지 영향을 받는 것 같지 않았다.
직격이 아니더라도 범위 마법을 던져놓고 피해 다녀도 HP는 소모되니까.
결국 대전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서로 끝내지 못하고 판정승으로 챠밍이 이겼다.
둘이 퇴장을 하고 나자 이어서 사탕주면따라가요와 아랑의 3, 4위전 세팅에 들어갔다.
<이쁜소녀> 졌어요. 힝.
<챠밍> 정말 고생했어.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서로 이상한 기분이겠는데.
특히, 챠밍은 이겨놓고도 좋아할 수 없는 입장이니까.
재중이 형이 말한 단점은…….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는 사람과 이렇게 싸울 일은 좀처럼 없을 테니까.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그사이 사탕주면따라가요와 아랑의 시합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아랑이 이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탕주면따라가요가 이겨 버렸다.
<불멸> 아랑은 진짜 미치고 팔딱 뛰겠는데.
<주호> 아, 4위는 보너스가 없죠.
보너스로 오우거 벨트 하나만 얻어가도 엄청난 차이다.
그걸 눈앞에서 놓쳤으니.
아랑은 왠지 욕심이 많아 보였는데 지금쯤 속에서 열불이 나겠는걸.
***
『 자!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 2일에 걸친 대회가 이제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
『 연속으로 해설을 진행하느라 목이 완전히 쉬었습니다만 마지막 경기를 놔두고 힘을 내야겠죠. 』
『 준비 중 VRS 설치 문제로 진행이 약간 지체되긴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매끄럽게 진행됐습니다. 』
『 다음 대회부터 이런 일이 없어야겠죠. 첫 대회라 걱정이 많았는데 잘 진행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
『 앞으로도 이런 4세대를 기반으로 하는 대회가 계속 준비될 것이라 믿습니다. 』
『 마지막 경기이니만큼 인터뷰가 가능한지 문의를 했었는데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죠. 』
『 자, 그럼 먼저 불멸을 만나보겠습니다. 』
해설자 중 가장 젊어 보이는 해설자가 일어나 재중이 형이 있는 부스로 들어갔다.
한참 인사를 하더니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은퇴 이후 공식적인로 대회에 다시 복귀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좋네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 좋습니다. 정식 종목은 아니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홀연히 떠나서 많은 팬이 안타까워했습니다.”
“더 큰 도약을 위한 잠시 쉬어가는 기간이었다고 해야 하나요. 보시다시피 지금은 이렇게 결승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프로로 복귀할 의향이 있다는 소리로 들립니다만?”
“그것은 아직 장담하기 힘들군요. 현재 로스트 스카이를 플레이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지금 같은 대회가 열리면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올라왔다는 것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동안 나누다가 다시 인사를 나누고 내가 있는 부스로 들어왔다.
그때 유혜선 팀장이 해설자에게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짧게 부탁드려요.”
“아, 알겠습니다.”
유혜선 팀장이 DS의 VRS기기 총괄 담당인 것을 해설자도 아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으로 이런 큰 대회의 결승에 오르게 됐는데 떨리진 않습니까?”
“생각보다 편안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러면서 유혜선 팀장을 잠시 바라봤더니 유혜선 팀장이 살짝 미소 짓는다.
“불멸 선수와는 같은 길드에서 상당히 오래 활동하신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상대 선수로 붙게 돼서 기분이 어떠십니까?”
“그냥 동네 형하고 대전 한 번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하하, 동네 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친하신 모양이군요.”
아니, 진짜 동네 형이다.
이런 건 굳이 말 안 해도 되겠지.
“로스트 스카이에서 현재 개인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데 실력으로 올랐다는 것을 이번 대회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주셨죠.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상대는 불멸입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자신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못했겠죠.”
“랭킹 1위다운 모습입니다. 불멸 선수와 다르게 정말 궁금한 것이 많지만 시합에 영향을 줄까 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꼭 이기시길 바랍니다.”
해설자가 돌아가고 몇 가지 멘트가 더 흘러나왔다.
『 두 선수 모두 준비가 끝났습니다. 』
『 그럼, 주호 대 불멸. 불멸 대 주호의 결승전 시합을 지금부터 시~ 작! 합니다! 』
해설자들의 멘트와 함께 사방에 응원 환호가 들리면서 VRS 커버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네.
시야가 검게 변했다가 밝은 빛으로 변하면서 사방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응?
여긴 또 어디야.
짙은 황토 바닥에 사방에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거기다 몇 곳은 용권풍이 일어서 주변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지형도 있었어?
가만히 서 있으면 점점 한쪽으로 몸이 밀려가 마음대로 자세를 잡기 힘든 그런 지형이다.
시야 반대편에서 재중이 형이 스파크 윙드 스피어를 한 손으로 쥐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솔직히 다른 무기를 들고나오기를 바랬는데.
제일 까다로운 창을 가지고 나왔다.
창도 구 네임드 밖에 없긴 하지만 포인트로 강화를 올려서 대미지 자체는 거의 같다.
“이거 참, 별 이상한 지형이 다 있네.”
“뭐, 그렇네요.”
“딱히 말 좀 한다고 탈락시키진 않겠지?”
“설마요.”
“상태는?”
“좋네요.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네.”
재중이 형이 창을 옆으로 눕히자 기세가 확 변하면서 오싹한 기분이 든다.
“그럼 제대로 하자. 많이 놀았잖아.”
군더더기가 없는 하나의 날카로운 무기 같은 기세를 보고 있으니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재중이 형의 신형이 순식간에 빨려들 듯 내게 밀려들었다.
그리고 재중이 형의 발목부터 허리, 팔, 손목에 이르는 모든 힘이 한 점에 집중된 강력한 일격.
날카롭게 휘어진 윙드 스피어의 창날이 공기를 찢으면서 내 이마를 향해 뻗어졌다.
큭.
대화를 한다고 방심한 사이 선공을 줘버렸다.
바로 뒤로 자세를 빼는 동시에 이마로 날아오는 창극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집중했다.
그리고 블러디아를 잡은 손과 팔을 비틀어 대각으로 휘두르면서 창극의 끝을 겨우 긁으면서 밀어냈다.
창극이 긁히자마자 마치 뱀처럼 휘어지듯 내 칼날을 다시 타면서 더 안쪽을 향해 바로 파고들었다.
다시 한 번 블러디아를 옆으로 비틀면서 옆으로 밀어냄과 동시에 카스카라로 창극의 날에 부딪치고 나서야 이마 바로 앞에서 창극이 멈췄다.
“제대로 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기 싫으면.”
시작부터 진심이네.
진짜 하나도 안 봐주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