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135화 별들의 전장 – 본선 (3)
<이쁜소녀> 저 대전 상대 아니에요!
<주호> 그럼?
뭐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 건가?
<이쁜소녀> 아까 기다리면서 혹시 보러 갈 수 있나 진행 아저씨한테 물어봤는데, 그냥 다른 참가자들을 모두 못 만나게 했어요.
<주호> 아, 진행 요원이 저한테도 그런 말을 하긴 했습니다. 그게 대전 상대만인줄 알았는데 전부 안 되는 거였군요.
아까 진행 요원이 이야기한 것에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제대로 착각했는데?
<이쁜소녀> 진짜 주호님이 대전 상대였으면 저 그냥 포기하고 바로 만나러 갔을 거예요.
<주호> 하하,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럼 대전 상대는 아직 모르는 겁니까?
눈 때문에 좀 늦게 왔더니 아직 정보가 없다.
원래라면 훨씬 일찍 도착했어야 했는데.
홈페이지에 봐도 대전표가 따로 나오지 않으니까.
<이쁜소녀> 네, 아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참가자들이 다 참석하면 알려준다고 하던데요?
<주호> 일단 한숨 돌렸습니다. 1차전부터 이러면 어쩌나 했네요.
<이쁜소녀> 저도요…….
적어도 6위까지 한 명이라도 더 올라가야 하는데 지금부터 맞붙어 버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5, 6위전까지는 가야 상금이 확 뛰니까.
3위까지 들어갈 수 있으면 베스트고.
<이쁜소녀> 아쉽다. 챠밍 언니하고 다른 사람들도 보고 싶었는데…….
<주호> 으음, 일단 본선이 끝나고 난 뒤에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안전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네요.
진행 요원이 경고를 한 것을 보면 이런 쪽으로는 확실히 통제를 하는 모양이다.
모른 척하고 돌아다니다가 진짜 자격 박탈이라도 하면 그만큼 어이없는 일도 없으니 그냥 조심하는 편이 훨씬 낫겠지.
<주호> 그럼,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하죠.
오면 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별도로 연락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주호> 다들 도착하셨나요? 저하고 형은 방금 도착했습니다.
<방패전사> 오셨습니까? 저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나르샤> 안녕하세요.
<챠밍> 어서 오세요.
다들 도착했네.
<주호> 이쁜소녀님하고 대전 상대인 줄 알고 깜짝 놀랐네요.
<방패전사> 하하, 저런. 저도 그런 줄 알고 깜빡 넘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다 똑같네요.
나만 당한 게 아니구나.
<주호> 대전표를 사전에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방패전사> 아, 그게…… 홈페이지에 공지 보셨죠?
<주호> 네, 무슨 문제라도?
<방패전사> 승부 조작 이력이 있던 사람들을 골라냈더니 중간에 공백이 생겨 대진표를 완전 새로 짜고 있다고 합니다. 협회에서 빼달라는 요청이 왔다니까.
<주호> 아, 그런 문제였군요.
어쩐지 대전표가 너무 늦게 나온다 했다.
기존에 빠진 자리에 넣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 돌리는 거라면.
<방패전사> 덕분에 지금 다 속았죠. 나르샤도 깜빡 속고.
<나르샤> 아니거든.
<방패전사> 너, 이쁜소녀님하고 대전 상대라고 어쩌나 하면서 한숨 푹푹 쉬었잖아.
<나르샤> ……너 나중에 보자.
<방패전사> 사, 살려주세요.
무섭네.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이 방패전사에게 다행인가.
<방패전사> 그래서 일단은 나중에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호> 뭐, 그건 어쩔 수 없죠.
상황이 이러니.
그때, 스마트폰이 울리면서 새로 연락이 왔다.
《 현재 대진표가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참가자분들은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
<방패전사> 문자 온 것 보셨습니까?
<주호> 네, 확인해 보죠.
<챠밍>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이쁜소녀> 저도 확인하러.
모두 확인한다는 글을 남기고 조용해졌다.
나도 대진 확인을 위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확인하니 예선 1위인만큼 내 위치는 변함이 없다.
제일 왼쪽에 있으니.
흐음, 일단…….
1회전 상대가 우리 팀이 아니라는 것이 만족스럽다.
<불멸> 너랑은 완전 끝과 끝이네.
<주호> 예상했었잖아요.
재중이 형과는 결승에 가서야 볼 수 있다.
오늘 만날 일은 없다는 소리.
그리고…….
***
《 1회전 128강 첫 번째 경기가 열립니다. 참가자분들은 안내 요원을 따라 VRS룸으로 이동해주세요. 》
스피커로 안내 음성이 울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은 여성 안내 요원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제가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오세요.”
사람이 매번 바뀌는 건가?
안내에 따라 긴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플래시가 마구 터지면서 환호 소리가 들린다.
“저 사람이 주호였어?”
“아! 나 아까 봤었는데!”
“이상한 고글을 쓰고 있어서 누군가 했더니.”
“1위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
고글이 아니었으면 굉장히 신경 쓰였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트리움이 들썩거렸다.
둘러보니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8개의 VRS룸이 있고, 총 4개의 커다란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운데는 해설자가 세 명 앉아서 진행을 하는 모양이고.
“동시 진행인가요?”
“네, 총 8분이 동시에 대전하시게 됩니다.”
여성 요원이 기다렸다는 듯 내 물음에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트리움을 가득 채운 사람을 뒤로하고 내게 지정된 VRS룸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어?”
“쉿!”
“여긴 어쩐 일로?”
“저 장비 총괄 스태프로 참여했어요.”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유혜선 팀장이 보랏빛 헤어를 뒤로 질끈 묶고 작업 유니폼을 입은 상태로 내 VRS룸에서 뭔가를 계속 조작 중이다.
“이건 무조건 제가 봐야 하거든요.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이걸 손댈 재주가 없어요. 위험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 집에서 떼어온 커스텀 VRS를 계속 손보고 있다.
“최적으로 맞춰놨어요. 방송 장비하고 호환이 잘 안 돼서 애를 먹었지만요.”
“바쁜데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이게 제 일이랍니다.”
유혜선 팀장이 날 보면서 엄지를 세우고 밝게 웃었다.
이건 너무 고마운데?
혹시 방송에선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싹 사라졌다.
전문가가 바로 붙어있으니.
검은 코팅이 된 VRS 커버가 열리고 내가 안에 들어가자 다시 커버가 닫히기 시작했다.
“잘 하고 오세요. 파이팅!”
“네, 이기고 올게요.”
***
《 128강 1차전 1경기 시작합니다. 》
오늘의 첫 경기다.
그리고 로스트 스카이 사상 첫 경기이기도 하고.
《 주호 VS 학살자 》
학살자라.
대전 명단을 볼 때부터 느낀 거지만 아이디들이 참…….
머리 위에 저런 아이디가 떠 있으면 느낌이 어떨까.
대전 장소는 고성.
케르베로스를 상대하던 그곳을 좀 더 축소해놓은 것 같은 장소다.
끝에서 대기하던 내가 발을 필드에 발을 들여놓자 반대편에서 상대방도 들어왔다.
진한 붉은 헤어에 덩치를 굉장히 크게 설정한 사람이다.
보기에는 누가 봐도 근접형인데…….
난 상대방을 잘 모른다.
반대로 상대방은 날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에 대한 영상이 많아 어지간해서는 날 모를 수가 없으니까.
이건 감수할 문제다.
바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상대방도 무기를 꺼내 든다.
흐음, 광아도 아니고.
던켈?
저거 포인트 어마어마할 텐데?
이쁜소녀가 사용하려다 방어구를 꽤 낮추는 것을 고민했을 정도로 포인트가 높다.
거기다, 파워글러브에…….
오우거 벨트까지.
분명히 나를 알 텐데?
미친 건가?
아님, 방법이 있다는 건지.
세팅을 봐서는 프로게이머는 아니다.
프로게이머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세팅을 할 리가 없으니까.
《 시작! 》
그때, 시작한다는 시스템 음이 울렸다.
무슨 꼼수가 있는지 모르니 거리를 어느 정도 좁힌 상태에서 학살자의 사방을 돌았다.
민첩을 극으로 올려서 그런지 내 움직임이 학살자보다 월등하게 빠르다.
【 아쿠아 웨폰! 】
상대방이 뭘 들고나올지 모르니 라이트 웨폰과 아쿠아 웨폰을 세팅했다.
한방이 강한 쪽이 적성에 맞기도 하고, 아쿠아 웨폰은 따로 쓸 곳이 많기도 하고.
학살자도 라이트 웨폰을 사용해 던켈을 감쌌다.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로 학살자에게 접근하자 내가 접근하는 방향으로 던켄을 넓게 잡아 돌리기 시작했다.
던켈의 크기를 생각하면 저런 식의 사용은 거의 방패처럼 사용할 수 있다.
선 방어, 후 공격하는 스타일인가?
학살자라는 아이디가 어울리지 않는데.
저걸 보니 재중이 형과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너, 네 재능을 제대로 못 살리고 있어.”
“네?”
“그 빠른 반응 속도로 매번 쳐내고 난 뒤에야 움직이잖아. 항상 보면 몬스터를 상대하든 사람을 상대하든 방어가 우선되더라.”
“그쪽이 빈틈을 만들기 더 좋으니…….”
“왜 손해를 보고 시작해. 공격이 최선의 수비다. 때론 수비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넌 무조건 수비 우선이야.”
“으음.”
“공격을 허용하지 말고 먼저 두들겨 패라. 너라면 정말 몰아두고 팰 수도 있어. 재능 낭비하지 말고.”
재중이 형과의 대화를 생각하며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꽉 잡았다.
그리고 무릎을 굽혔다가 펴면서 쏜살같이 학살자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교차로 강하게 휘두르니 학살자가 던켈을 옆으로 돌리면서 두 손으로 끝과 끝을 잡고 방어했다.
“상대방이 방어하게 만들어. 쉴 틈을 주지 마.”
블러디아로 던켈의 옆부분을 치자 쇠가 갈리는 소리가 나면서 학살자의 몸이 잠시 들썩거리다가 멈춘다.
느껴지는 반탄력으로 봐서는 악세까지 거의 힘에 맞춘 것 같다.
카스카라로 던켈의 날을 긁고 지나가면서 스텝을 밟아 횡으로 완전히 돌아가자 학살자가 내가 도는 방향으로 따라 돈다.
그리고 계속 휘몰아치듯 블러디아와 카스카라를 연속으로 그어대니 학살자가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시종일관 뒤로 밀려 나갔다.
완전히 방어만 하자는 건가?
버티기 모드.
오히려 라지 쉴드를 들고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히 막기만 했다.
힘에서는 밀리지만 던켈로 막을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
내가 주변을 돌면서 카스카라와 블러디아로 팔목, 허리, 발목을 계속 긁고 지나가자 대미지 마크가 학살자의 전신에 생겨났다.
던켈로 아무리 막아도 최대의 민첩으로 휘두르는 두 개의 검을 도저히 따라 올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반격하려고 저 무거운 던켈을 휘두르면 바로 사망이다.
내 검이 던켈을 휘두르고 난 뒤에 크게 열린 몸을 난자할 테니까.
방어구가 엄청나게 낮을 거라고 가정하고 일단 1/3 정도의 HP를 깎았다고 생각했다.
이래도 안 나와?
뭔가 꼼수가 있는데.
눈빛이 전혀 죽지 않았다.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도 눈은 계속 나를 따라붙는다.
상대가 반격하려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자 못 이기는 척 평소 공격하던 범위보다 좀 더 거리를 좁히고 들어갔다.
그러자 학살자의 눈빛이 변하며 한 손에 녹색 마법진이 돌아간다.
역시,
노리는 것이 있었구나.
【 바인드! 】
지능 4가 되면 쓸 수 있는 기본기와 같은 기술.
차징이 아닌 즉시 발동이라 아주 잠시 묶어둘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가까운 상황에서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 비월참! 】
바닥에서 녹색 넝쿨이 올라와 내 발을 묶으려고 하자 카스카라를 그대로 바닥에 찍으면서 비월참을 날렸다.
그러자 바닥이 깨지며 바인드 마법진이 통째로 일그러지며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뭣?”
“이런 건 몰랐나 보네.”
이것도 재중이 형이 가르쳐 준 기술이다.
마법진 깨기.
원래는 다른데 쓰려고 준비 중이었던 거지만.
“젠장!”
【 어스 퀘이크! 】
뭘 하려고 했는지 이제 알겠네.
내 높은 민첩 때문에 어스 퀘이크를 사용하지 못할까 봐, 바인드로 묶은 뒤에 공격하려 했구나
좋은 조합이긴 한데…….
사실 어스 퀘이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학살자가 던켈을 들어 올려 내려찍으려는 순간.
몸이 잠깐이지만, 크게 열렸다.
그 틈에 바로 품으로 파고들어 블러디아로 목을 강하게 관통하듯 찍어 넣었다.
【 비월참! 】
목에서 비월참이 터지자 학살자가 경련을 일으키면서 바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리고 바닥에 던켈이 떨어지면서 쇳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 라이트 웨폰! 】
그대로 빛나는 검으로 경직된 학살자의 목을 따버리자 학살자가 빛으로 변해 사라지면서 시합이 종료됐다.
시합이 끝나자 외곽의 풍경이 변하면서 해설자와 관중의 환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A조 첫 승자는 주호입니다. 』
『 이 무슨 퍼포먼스입니까.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
『 학살자가 주호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한 번도 넣지 못하고 KO 당했습니다. 』
『 기본적으로 이속과 공속이 너무 차이 나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시종일관 두들겨 패기만 할 줄은……. 』
『 민첩이 저 정도로 높은데도 두 검을 제 몸처럼 제어합니다. 엄청난 재능이죠. 저도 따라 해 봤는데 정말 힘들거든요. 아무나 소화하기 힘들죠. 』
『 주호의 영상을 보면 어지간해서는 맞상대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리다 보니 저런 전개로 가지 않았나 싶네요. 』
『 그리고 바인드를 깨버리다니…… 로스를 오래 하면서도 저런 것은 처음 봅니다. 』
『 1시합이라 다소 난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한 번에 날려 버리는 시합이네요. 경기력이 확실합니다. 』
해설자들의 열띤 음성이 귓가를 울린다.
그냥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너무 호들갑이네.
이제 64강인가?
VRS를 나오자 유혜선 팀장이 쪼그려 앉아 있다가 날 보더니 밝게 웃는다.
“역시네요.”
“누가 준비를 잘 해주셔서요.”
그때 다른 조의 시합이 진행 중인지 함성이 계속 들린다.
B, C조는 박빙인 모양이고.
제일 큰 함성이 들리는 D조 1경기는…….
이쁜소녀네.
대진이 완전히 갈려 결승까지 가지 않는 이상 이쁜소녀와 만날 일은 없다.
옆에서 유혜선 팀장이 재미있다는 눈으로 D조 영상을 봤다.
광아를 이용해 폭풍처럼 휘몰아치면서 상대방을 완전히 짓누르고 있었다.
저건 누가 봐도 이미 승부가 기울었네.
한참을 더 몰아치다가 마지막으로 광아를 크게 내려쳐 상대방의 머리를 찍어버리고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귀여운 미소녀가 자기 몸 크기의 배틀 액스로 거구의 남자를 찍어 누르는 모습에 아트리움이 떠나갈 듯 함성으로 가득 차 울리기 시작했다.
“와, 저 여자 시원시원하네요.”
유혜선 팀장이 이쁜소녀의 플레이에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을 했다.
같은 체구의 여자가 저렇게 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지.
데뷔전을 화끈하게 해버렸네.
“우리 팀 잘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