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4화 (134/1,404)

# 134

#134화 별들의 전장 – 본선 (2)

“너 내가 프로게이머 왜 그만뒀는지 알아?”

이제껏 재중이 형이 따로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프로게이머의 정점이었던 사람이 잘 나가던 본업을 그만둔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예전 검색했을 때 추측성 기사를 상당히 많이 봤지만 그렇다고 따로 물어본 적은 없다.

쉽게 물어볼 만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많이 궁금했다.

어떤 이유로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게 됐는지.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결코 질려서 그만둔 것 같지는 않으니까.

“때가 되면 말해주겠지 싶어서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는다.

“참을성 좋네.”

그 말에 이번엔 내가 웃었다.

서로에 대한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야지.

당사자가 말해주기 전까지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선을 잘 지켜왔기에 지금 형과 나의 관계가 어긋나지 않고 이어져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흐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근데 이거 이야기해도 괜찮나? 이거 그쪽 기밀 같은 거 아닌가 싶어서.”

재중이 형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유혜선 팀장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공식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 거예요. 기술부, 개발팀, 프로팀을 비롯한 어지간한 관계자는요.”

“뭐, 그런가…… 이야기해도 된다니까 말해줄게. RTP. 이건 무한한 자원의 보고 같은 것이 아니야.”

갑자기 왜 RTP를?

내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야기를 이었다.

“프로들은 말이야. 감각을 혹사당한다고 해야 하나? 하루의 연습량 자체가 상상을 초월해. 일정 시간 짜인 스케줄이 있지만 그걸 지키는 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각이 무뎌져.”

“그래요?”

전혀 몰랐던 이야기네.

“자신도 모르게 감각을 조금씩 좀먹어가는 거지. 물론, 그걸 확 느낄 정도로 알고 난 뒤에는 꽤 늦은 셈이고.”

“으음, 생각보다 심각한 거네요.”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 아니, 거의 모른다고 보면 되려나. 애초에 그렇게 가상현실을 파지도 않고, 일상적인 게임 환경에서는 프로처럼 집중할 필요도 없으니까.”

“반대로 집중할 일이 많다면 문제가 생긴다는 소리겠네요.”

“본인이 낼 수 있는 극한의 감각 속에서 시합을 하면 긴장감이 겹쳐 평소보다 훨씬 소모가 심하지, 거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로도가 쌓이는 수도 있고. 어쨌든 이런 요인들 때문에 RTP는 점점 떨어진다.”

“그럼, 형도?”

“아아, 난 정말 일찍 이 일을 시작했거든. 사실 은퇴하기 전에는 거의 만신창이였어. 술 없이 못 버틸 정도로……. 따라 올라오는 신인들은 쌩쌩하기도 하고. 힘들지. 뇌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어렵네요.”

“RTP라는 게 어떻게 보면 프로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이거든. 그게 떨어진다는 건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니까. 은퇴 전에도 좀 아슬아슬했었어. 중요한 승부처에 계속 잔 실수가 나오니까 그땐 안 되겠다 싶더라.”

은퇴한 이유가 있었구나.

최고의 자리에서 그렇게 쉽게 물러나는 것이 의아하기는 했다.

벌어들이는 수입.

영광의 자리.

어느 하나 그렇게 놓아버리기 힘든 일이다.

“크큭, 근데 다시 오른다니 웃기지 않냐?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이 다 내려놓고 나니까…….”

누구나 다 고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RTP 때문에 고생했던 것만큼이나.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프로로 복귀할 거냐는 말은 따로 묻진 않았다.

어쩌면 회복하는 중일 수도 있고.

일시적일 수도 있으니.

우리 둘 다 서로 그것에 대해서는 입에 담지 않았다.

“글쎄, 원인을 모르니까. 나도 당분간 혜선이에게 신세 좀 져야겠네.”

옆에서 듣고 있던 유혜선 팀장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붙잡아놓고 좀 알아보고 싶던 것이 있어요.”

저건 날 처음에 보던 그 눈빛과 흡사한데?

새로운 연구 거리를 발견한 과학자의 광기라고 해야 하나.

“아아, 당분간은 참아주라. 대회 참가해야 하거든.”

“지금 대회가 중요해요?”

“1등 하면 20억이야.”

“으음,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어림도 없다고 말리겠지만…….”

“그치?”

“제가 어지간해서는 여기 묶어두고 싶은데 안타깝네요. 저도 정말 바빠서요. 대회 끝나면 꼭 다시 오셔야 해요.”

“나도 뭐, 부탁하는 입장이라서.”

“그럼, 됐어요.”

마지막으로 간단한 검사만 하고 난 뒤에 DS 본사를 빠져나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뭐, 당장은. 좀 더 지켜봐야지. 일단은 대회부터 잘 치르고 보자.”

***

DS에 다녀온 지 다음 날.

본선이 열리는 아트리움으로 재중이 형의 차를 타고 같이 이동했다.

가는 길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변동사항이 있는지 체크하는데 의외의 공지가 떠 있다.

[ 공지사항 ]

▷ 많은 제보를 검토 및 확인한 결과 몇몇 유저에게 승부 조작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 본선 진출권을 박탈합니다.

이는 한국 가상현실 협회와 방송국의 협의 사항입니다.

▷ 총 3명의 본선 진출자는 진출을 박탈하며 자동으로 129위, 130위, 131위의 차 순위권 유저가 본선에 진출합니다.

참가하지 못할 경우 후 순위로 밀립니다.

▷ 미리 확인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며, 추후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나도 찌르려고 했는데 누가 했는지 몰라도 잘 했네.

—개인 방송에서 얼마나 나대던지, 본선 나간다고.

—맞아, 이미 1등 한 것처럼 나불거리던데?

—승부 조작 채팅창에 올리면 바로 강퇴 하더라ㅋㅋㅋㅋ

—세상이 다 아는데 쯧쯧.

—그만큼 다른 사람들 욕 먹였으면 이 바닥 좀 떠나지.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잖아. 당장 다른 거 한다고 나가면 금마 백수임.

—로스트 스카이는 언제부터 한 거야?

—모르지, 서버 보니까 1서버네.

—저런 애들은 1서버 밖에 못 함. 방송 특성상 1서버가 제일 돈 되니까. 보는 사람도 많고.

—진짜 질린다. 우리 서버는 아니라서 다행이네.

—재들 잘려서 올라가는 애들은 진짜 천운이네.

—개부럽, 천만 원 공짜로 생김.

—좋겠다. 좀만 더 잘리면 나도 나갈 수 있으려나.

—난 만 명쯤 잘리면 가능하네. 젠장.

“흐음, 형. 이 사람 잘렸는데요?”

“뭐? 누가?”

“형이 조심해야 한다는 사람요.”

“정말?”

“네, 누가 제보했다네요.”

“재밌네.”

“혹시 형이 찔렀어요?”

“에이, 설마. 방송 보는 시청자 중에 누가 찔렀겠지. 나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 아니다.”

하긴.

재중이 형이 누굴 뒤에서 찌르고 할 스타일은 아니지.

앞에서 처바르면 모를까.

“이 사람 1서버라는데요?”

“응? 그래?”

“네, 근데 왜 몰랐죠.”

“그러게, 조용하게 지낼 놈이 아닌데. 늦게 시작했나?”

재중이 형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는다.

“그놈 신경 쓸 때는 아니지.

“형은 D조네요?"

난 A조.

재중이 형과 내가 만나려면 마지막까지 이기고 올라가야 붙을 수 있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현재 128강이니까, 이틀 만에 끝내려면 복잡하니 나눴겠지. 아마 정말 정신없이 진행될 거다.”

“경기를 왜 이렇게 빠르게 하려고 해요? 제대로 구경도 못하겠어요.”

한 번에 다수의 경기가 열린다.

그렇게 진행이 되면 많은 경기를 놓치고, 정보 얻기도 힘들어진다.

“프로게이머만으로 대회를 하면 그 사람들은 생업이니 스케줄을 빼서 3, 4일 동안 치를 수도 있지만, 일반인은 그게 쉽지 않아. 최대한 편의를 봐준 거지.”

오늘 열리는 대회는 32강까지.

16강부터는 내일 열린다.

“16강부터는 대우가 다르네요. 호텔이라.”

“돈이 한두 푼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신경 쓴 거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아트리움까지 도착했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죠.”

“좋은 자세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니 잔뜩 내린 눈 위로 방송 차량부터 해서 구경 온 인파로 주변이 가득 차 있었다.

“눈이 이렇게 왔는데도 생각보다 훨씬 많네요.”

“그러게. 오히려 다른 대회보다 많네. 복잡해지기 전에 얼른 들어가자.”

머리에 고글을 쓰자 이상한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슬리고 북적거리던 주변 음성이 대폭 줄어들었고, 사람들의 모습 역시, 다소 투박한 느낌으로 다가와 눈이 굉장히 편해졌다.

“잘 어울리네. 톡톡 튀고. 액세서리 같은데?”

“얼른 가죠.”

솔직히 좀 부담스럽다.

선글라스도 아니고, 이런 고글이라.

주변을 지나자 사람들이 한 번씩 흘깃흘깃 쳐다본다.

역시…….

그런데 얼핏 쳐다보니 대부분 재중이 형을 보는 중이다.

“불멸 아냐?”

“맞는 것 같은데?”

“맞네. 어? 옆에는 누구지?”

“고글 때문에 잘 안 보이는데.”

“뭐, 어디 프로겠지.”

“그냥 매니저 아냐?”

“프로가 매니저도 쓰나?”

오히려 고글을 쓴 것이 다행인가?

본 모습과 가상의 모습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이게 없었으면 다 알아볼지도 모르겠다.

고마워해야겠네.

재중이 형에게 사인과 사진을 부탁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아예 이곳으로 사람들이 점점 몰리기 시작했다.

“늦어서 지나가겠습니다. 대회 일정 때문에 여기까지 할게요.”

재중이 형이 인파를 제치고 참가자 전용으로 만들어진 문으로 지나가자 검은 옷을 입은 진행 요원이 어느새 나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어떤 막대 같은 기구를 들어서 우리 홍채를 검색했다.

—A조 주호. 인식 완료.

—D조 불멸. 인식 완료.

“간단하네요.”

따로 신분을 묻지 않고 바로 우리를 대기 룸으로 데리고 간다.

“경기는 한 번에 4팀이 동시에 진행을 합니다. 아무래도 오늘 소화해야 할 경기 수가 많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뭐, 그건 괜찮습니다. 익숙해서.”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한다.

하긴, 형은 이런 걸 너무 많이 해봐서 그런지 마치 안방에 온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다.

이런 것도 대회에 영향을 미치려나?

긴장하면 평소 실력이 안 나올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는 프로가 굉장히 유리할 것 같다.

“아시다시피 상금도 상금이지만, 현재 사람이 많이 몰린 탓에 안전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대기는 개인적으로 별도의 공간에서 하게 됩니다. 특히, 대전 상대와의 사전 접촉은 철저하게 금지됩니다. 이것을 어기신다면 이유 불문하고 바로 탈락 처리가 됨을 알려드립니다.

“이해했습니다.”

재중이 형이 다시 고개를 끄덕거리자 이번엔 내게 설명을 해줬다.

“만약 근육질 아저씨와 여리여리한 여성 유저가 경기를 갖는데 아저씨가 협박이라도 하면 제대로 경기가 되겠냐. 가상현실에선 같은 스펙으로 싸우지만 현실은 아니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모니터 요원도 많지만 경기 시작 전까지 모든 인원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여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공지처럼 승부 조작 건도 있어 좀 민감한 문제이기에 이해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이쪽이 오히려 더 좋겠네요.”

혹시 대기룸에 수십 명을 박아놓고 기다리라고 했으면 그게 더 난감할 뻔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계속 흘깃거리는 불편한 자리라니…….

그건 이쪽에서 사양이다.

“다른 사람들하고는 바로 못 보겠네요.”

“뭐, 그렇긴 하네. 너 나름 기대하고 있지 않았냐?”

“그 정도는 아니고요.”

내가 부정하는 모습에 재중이 형이 내 옆구리를 툭 치고 지나간다.

“그럼, 나중에 보자.”

“네, 혹시 떨어지거나 하면 제대로 웃어줄 겁니다.”

“너나 잘해. 떨지 말고. 겁나면 톡하고.”

재중이 형이 손을 흔들면서 본인의 대기실로 이동했다.

나도 내 개인실에 들어가 보니 작은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벽면에는 티비가 걸려 있었다.

“정신 집중하기엔 나쁘지 않겠네.”

그때, 톡으로 연락이 왔다.

<이쁜소녀> 도착했어요?

<주호> 네, 방금 형하고 같이 도착했어요.

<이쁜소녀> 바로 보러 가려고 했었는데 진행 아저씨가 사전에 만나면 탈락이라고 해서.

<주호> 네? 혹시 제 대전 상대가?

설마?

이거 장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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