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화 검은 호수의 여왕 (1)
로스트 스카이는 중복되는 이름이 없다.
어떤 서버에 길드나, 케릭터를 만들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즉, 주호가 두 명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장님이 길드 이름 짓는 것에 민감하시잖아.”
“뭐, 좀 그렇긴 해요.”
사실, 최강도 사장님이 얼마나 고르고 골라서 만든 길드인지 모른다.
“새로 만들려고 보니까 어지간한 길드 이름은 거의 다 선점했더라고.”
“로스트 스카이가 나온 지 한참 됐으니까요.”
길드만 해도 수만 개가 넘어가는데 그중에 쓸 만한 이름은 거의 다 가져갔다고 보면 된다.
초창기에 만들었으면 모를까 지금 와서 원하는 길드 이름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혹은, 만들어 놓고 쓰지 않는 길드 이름도 꽤 많고.
“뭐, 마음대로 지을 것 같으면 어떻게든 지을 수 있겠지만.”
“사장님이 그건 원하지 않으시겠죠.”
“그래서 찾다 보니 전에 네가 해체한 길드가 생각나더라고.”
“추억의 길드죠.”
신화 길드.
애정은 아니지만, 추억이 있는 길드 이름이다.
로스트 스카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가입했던 길드.
백골에게 의뢰해 공중분해한 그 길드가 지금 재중이 형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샀다는 건 누가 쓰고 있었다는 소리에요?”
“여러 명이 가입해서 쓰고 있었으면 그냥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냥 만들어 놓고 묵혀두고 있더라고.”
누군가 손 빠른 사람이 만들었나 보네.
그때는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길드 이름을 차지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용케 찾으셨네요.”
“겨우 연락이 됐어. 길드 이름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쪽을 통해서 알아보니까 금방 찾아주더라고. 프리미엄까지 붙어 있더라. 두 글자에 오래된 길드라.”
“진짜 돈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네요.”
단순히 이름을 가지고 돈을 벌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길드를 확보했으니 이젠 진짜 시작인가?
“일단 사장님은 무조건 남아 계셔야겠네요.”
최강 길드의 길드장은 현재 하르페의 세금을 걷는 위치다.
배당을 주는 것은 순전히 길드장의 몫이기도 하고.
얼마가 들어오고 얼마가 나가고는 길드장 밖에 열람을 못 한다.
정말 길드장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100이 들어왔는데 10이 들어왔다고 하고 90을 먹어버리는 수가 있다.
길드장이 독하게 마음먹고 째 버리면 정말 답도 없다.
아니면 세금을 들고 나르거나 하르페 운영권을 다른 길드장에게 넘겨 버리면 완전히 개털이 될 수도 있고.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아무리 우리가 사람이 좋아도 그건 절대 무리다.
“세금이 적진 않죠.”
“영역권에 저주받은 숲이 있으니까”
사냥을 한다고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물품을 보급하거나 처분하기 위해 들리는 곳이 하르페다.
NPC에게 물품을 사고팔면 거기서 일정 퍼센트로 우리에게 세금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
혹은, 베네아로 향하는 텔레포트나 길드 건물을 쓰는 비용까지 모두 세금을 걷는다.
반대로 우린 세금으로 성벽을 유지, 보수하는 NPC나 지키는 NPC, 혹은 관리 NPC 등에게 돈을 줘야 하고.
“지금은 어때요?”
“이건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고, 지금 하루 수입이 거의 2천이야.”
“……정말요?”
보통 2주 동안 유적지를 가지고 있으니 거의 2억 8천인가?
“너, 이번에 배당금 돌아가는 거 보면 꽤 놀라겠는데?”
“그러고 보니, 저한테 1/4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을 하고 난 뒤에 잠시 몸이 굳었다.
하루 세금 2천의 1/4이면…….
내 몫은 5백인데?
일주일이면 3천 5백이다.
통상 한 번 유적지를 잡고 나면 2주는 버티니까 7천.
물론, 나중에는 내 배당이 적어져 줄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꽤 큰돈이다.
“……미쳤네요.”
로스트 스카이를 하면서 지금까지 쓰고 남은 돈을 계좌에 넣은 것이 7천5백인데, 유적지에서 2주 동안 7천이라니.
물론, 이번에 하르로 엄청난 재미를 보고 있기는 하다.
하르는 한 번에 끝나는 특수였지만, 유적지에서 벌어들인 세금은 상당한 금액이다.
“나도 아직은 많은지 적은지 감은 안 잡힌다. 일단 지금 섬에서 못 넘어온 사람도 꽤 많고, 베네아의 지하수로 때문에 하르페에 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 반대로 나중에 유적지가 여러 개로 늘어나면 사람이 분산되는 것도 있고.”
“변수가 많다는 거네요.”
“물약을 비롯해서 물품 가격, 텔비, 임대비가 나중에 더 올라가면 또 모르고. 거기다 지금 유적지에서는 퍼센트를 설정 못 해 걷어 들이는 것이 적기도 하고, 아직까진 정확하게 단정 짓기 어렵지.”
“세금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거네요?”
“반대로 줄어들 수도 있고. 그러니까 최대한 사람이 많이 접하는 유적지를 잡고 있어야 해. 하르페는 확실히 잡아야 하고. 그 이상 잡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준비 많이 해야겠네요.”
“그래, 다음 쟁탈전. 정말 피 튀기는 전쟁이 될 거다.”
***
《 신화 길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
데자뷰.
챠밍과 이쁜소녀가 예전에 봤던 이 시스템 메시지를 보더니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전부 첫 길드였던가.
첫 길드가 조각조각 찢어지는 걸 봤으니 그때, 느낌이 어땠을지는 우리만 공유하는 감정이다.
가입한다고 승인하자 내 머리 위의 길드 이름이 신화로 변경됐다.
챠밍, 이쁜소녀도 연속해서 바뀌고, 이어서 방패전사, 나르샤까지 팀원 모두 신화 길드에 소속되었다.
“왠지 기분이 묘해요.”
“다시 이 이름을 쓰게 될지는 몰랐는데.”
이쁜소녀와 챠밍이 감회에 젖은 얼굴로 길드 이름을 계속 올려다봤다.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일단 새 길드 마스터는 재중이 형이 맡았다.
“자, 그럼 당분간 고생해라. 필요한 것 있으면 바로 귓말하고.”
사장님이 저주받은 숲을 빠져나가는 우리를 배웅해줬다.
“왠지 쫓겨나는 기분이네요.”
“그런가? 홀가분하니 좋은데, 뭘.”
길드 총원 6명.
길드 평균 랭킹만 치면 최상위 길드다.
개인 랭킹 1위부터 6위까지 다 모여 있으니까.
일부러 이곳에서 길드 이름을 바꿨다.
하르페 안에서 바꿨다가는 정말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오도 가도 못 하고 길이 막힐 것이 분명하니까.
“보자, 이제 어쩐다.”
“선택해야죠.”
현재 선택지가 두 개가 있는데 아직도 결정을 못 했다.
북서쪽으로 한 시간 반 거리에 던전형 필드인 호수가 있다.
그리고 북동쪽으로 역시 같은 거리에 늪지대가 있고.
새 사냥터 자체의 위치 정보는 꽤 알려진 편이다.
사냥을 할 수 있느냐 없냐의 문제일 뿐.
단순한 위치 정도라면 그냥 탈것을 타고 달려가서 확인하면 되니까.
현재 하르페에서 가장 근접한 곳은 두 곳이다.
호수와 늪지대.
일단 가지고 있는 스킬과 아이템으로만 보면 늪지대가 맞는데…….
“저기, 우리…… 호수로 가면 안 돼요?”
이쁜소녀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와 재중이 형을 본다.
“저도 호수가 좋은 것 같아요.”
어지간해서 의견 표현을 잘 안 하는 나르샤까지 이번엔 이쁜소녀의 의견에 한쪽 팔을 거들었다.
심지어 챠밍도 손을 들어서 찬성한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하게 하고.
“이거 참.”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리 팀이 의견이 갈라지는 경우가 잘 없는데 이번만큼은 예외다.
솔직히 이것 때문에 아직도 어디로 갈지 결정하지 못했다.
수아를 비롯해서 몇 명이 새 사냥터 답사 후 한 말이 결정타가 됐다.
호수는 문제가 아닌데 늪지대에 나오는 몬스터가 문제다.
털이 숭숭 난 거대 거미.
사람보다 큰 사마귀.
사방에 기어 다니는 아나콘다.
팔뚝만 한 나방, 벌, 파리, 모기 등.
전부 독 속성이라 일단 포이즌 큐어를 가진 우리에게는 굉장히 유리한 사냥터인데 의견이 갈려서 갈 수가 없다.
나, 재중이 형, 방패전사는 사냥 효율을 봐서 늪지대를 선호하는 편이고.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는 절대로! 무조건! 호수를 외치는 중이다.
일단 호수는 우리가 가진 템으로 아무 이득을 볼 수 없는 곳이다.
그냥 맨땅에 헤딩한다는 기분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그래도 주호님 말이면 잘 따르지 않습니까. 한 번 설득해 보세요.”
방패전사는 좀 징그러울 뿐 못 잡는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내게 설득해 보라고 하는데 사냥 한 번 하고 평생 욕먹을 생각 아니면 이건 못 하지.
“방패전사님, 나르샤님하고 친하잖아요. 부탁하면 갈 것 같은데.”
“맞아 죽습니다.”
흐음, 여기도 맞고 사는 건가.
“뭐, 그냥 호수로 가죠.”
좀 효율이 낮으면 어떤가.
당장 내가 살아야지.
그리고 괜히 몹에게 위축되어 제대로 싸움을 못 하느니 그냥 편하게 싸울 수 있는 호수가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거기는 벌레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나도 늪지대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주호님, 최고!”
“믿고 있었어요.”
이쁜소녀와 챠밍의 연이은 환호에 방패전사가 한숨을 쉰다.
재중이 형은 그런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면서 웃고 있고.
“자자, 결정 났으면 움직이자고.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아.”
재중이 형이 바로 탈것을 타고 북서쪽을 향해 달리자 모두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북서쪽으로 산과 숲을 몇 개 넘으면서 한 시간 반을 달려가자 겨우 호수의 경계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훨씬 머네요. 물약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는 것만 해도 한참 걸릴 것 같은데.”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갈 때는 귀환을 해서 돌아간다고 치더라도 올 때는 무조건 달려와야 한다.
사냥할 때마다 한 시간 반 이상의 시간을 허비한다면 차라리 저주받은 숲이나 지하수로가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압축 물약을 가져왔잖아.”
재중이 형이 인벤에 가득한 압축 물약을 하나 꺼내서 흔들어 보인다.
두 배가 더 차고 열 배로 비싼 금값 물약.
색깔도 금처럼 딱 노란빛이 난다.
“진짜 세금으로 받는 돈 아니면 엄두도 못 내겠네요.”
압축 물약은 쟁을 할 때나 쓰는 건데 지금은 그냥 사냥에 쓰게 생겼다.
“사장님이 그냥 쓰라면서 꽉꽉 눌러 채워 주시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리시더라.”
재중이 형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왠지 그 모습이 상상이 가니까.
“한 번에 중심부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중간한 곳에서 물약이 떨어져 버리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펼쳐진다.
누군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물약을 들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시작하면 무조건 끝까지 돌파해야 한다.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일단 부딪쳐 봐야지.”
아직 누구도 호수 중심부까지 들어가 보지 못 했다.
다른 길드라고 왜 여기를 안 와 봤을까.
규모가 큰 길드들 역시, 이곳에 다녀갔는데 전부 쓴맛만 보고 돌아갔다.
가다가 전부 죽어서.
렙 차이에, 장비에…… 들어가는 동안 주변에서 몰려드는 몹들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해 다 누워 버렸다고 한다.
“호수 색깔이 정말 까매요.”
이쁜소녀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더니 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물색이 검은 기름에 오염된 것처럼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칙칙한 색이었다.
“몹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봐서는 그렇게 깊어 보이지는 않는데.”
호수라고 깊은 물만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평지 위에 물이 얇게 깔린 그런 지형이다.
사람들이 들어가 보지 못한 멀리 있는 곳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외곽은 얕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방패전사가 슬쩍 한 발을 내밀어 검은 물을 밟자 곧장 디버프가 걸렸다.
“흐음, 이게 그건가 봅니다.”
이곳에 도전했던 사람들을 모두 눕게 만든 주원인.
몹에게 피해를 주면 그 피해를 일부 돌려받는 디버프.
HP를 싹 말려버리는 최악의 디버프였다.
그것이 전 호수에 걸려 있었다.
물약이라도 공급받을 수 있다면 물약의 힘으로 커버를 해보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기에 상당히 까다롭다.
디버프 때문에 물약을 순식간에 다 써버리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는데…….
방법이 없으려나.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방패전사는 계속 호수의 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디로 들어가야 몹과 적게 만날지 길을 확인하고 있었다.
물에 디버프라…….
당장 생각나는 것은 물에서 탈 수 있는 레서 크라켄 정도인가?
레서 크라켄은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게 해줘서 체력이 안 깎이는 용도밖에는 없는데…….
근데 개구리도 물에서 타지던가?
지하수로의 땅 위에서 잡아서 그런지 땅에서 타진다고만 생각하고 깜빡 잊고 있었다.
“방패전사님, 개구리 한 번 타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