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8화 (88/1,404)

# 88

#88화 수면 아래 파고드는 그림자 (2)

《 최강 길드 독주. 이대로 괜찮은가? 》

—최강 길드 애들 레벨 봤음?

—다음 그룹하고 레벨이 더 벌어졌던데?

—버그 같은 것 쓰는 것 아냐?

—진짜 대단하긴 하다. 지금도 넘사벽인데 차이를 더 벌리네.

—이거 이러다가 최강 길드가 다 해먹는 것 아님?

—최강 길드에서 일부 몇 명만 레벨 높음. 나머지는 별 거 없던데?

—그 몇 명이 다 해먹으니까 그러지.

—본 대륙이 얼마나 넓은데 아직 초반이다.

—숨고르기 들어간 길드들 나오면 또 다 뒤집힘. 니들 레벨이나 신경 쓰세요.

아니나 다를까 일어나 확인한 게시판에 우리들 이야기가 제법 많이 올라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찬양하는 글이 많았는데 며칠 만에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지하수로에서 매일 하던 몰이 덕분에 다른 상위 그룹과의 차이가 더 벌어졌으니까.

본 대륙으로 큰 길드들이 넘어오면 차이가 금방 좁혀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확 뒤집어엎었으니 경각심을 가질 만도 하다.

나도 방패전사가 라이트 쉴드 하나 쥐어줬다고 그렇게 몰이를 잘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슨 버그를 써서 경험치를 쌓나 생각할 수도 있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37.

> 로딩 중…….

지난 일주일간 6렙이 올라서 이제 37렙이다.

정말 숨만 쉬고 온종일 몰이만 했다.

“오셨어요?”

챠밍이 밝은 미소로 제일 먼저 날 반겨준다.

“네, 푹 쉬셨나요?”

“잠은 푹 잤어요.”

밝은 표정을 보니 컨디션이 괜찮은 모양이다.

요즘 매일 바쁜 사냥 일정을 소화해서 그런지 전처럼 여유 있게 게임을 즐기진 못하고 있으니까.

일어나면 밥 먹고 VRS로 들어가서 해적선, 크라켄, 거대 개구리를 잡고 지하 수로에서 몰이를 하는 것이 일이다.

그리고 파김치가 되어 잠들고.

“우리 너무 레벨 업하고 게임에만 몰두하는 것 같죠?”

“으음, 사실 좀 그런 면이 있긴 해요. 아직까진 재미가 있긴 한데 자주 이렇게 하면 나중엔 조금 지칠 것 같아요.”

챠밍이 꽤 솔직한 답변을 준다.

“이번 일만 끝나면 좀 쉬어가면서 하죠. 경치 구경도 좀 다니고. 아마, 재밌는 장소가 꽤 많을 겁니다.”

“네, 아마 소녀랑 나르샤 언니도 좋아할 거예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현재 본 대륙에 넘어온 지 정확히 열흘이 지났다.

“앞으로 사흘만 더 하면 끝입니다.”

지금 페이스대로만 끌고 가면 사흘 정도면 충분히 원하는 바를 해결할 수가 있는 수준이다.

열흘.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동안에 꽤 많은 일이 생겼다.

우선, 본 대륙에 사람이 정말 엄청나게 늘어났다.

우리가 열어준 뱃길을 타고 코그선이 매일 같이 정박하더니 꾸역꾸역 사람들을 내뱉었고 굳이 우리가 섬에 가서 사람들을 싣고 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사람들이 꾸준하게 넘어오고 있는 중이다.

거기다 이미 섬과 본 대륙을 오가는 소형 카락들이 훨씬 늘어난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본 대륙에 빨리 입성한 선두 그룹의 길드들이 보다 좋은 장비를 가지고 삼일 전부터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섬으로 돌아가면서부터 게시판에 속속 케르베로스 레이드를 성공했다는 글과 인증 영상들이 올라왔으니까.

—드디어 케르베로스 레이드 성공!

—진짜 힘들었습니다. 길드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길드도 오늘 레이드 완료!

—진짜 개 힘들다. 이걸 본 대륙 장비도 없이 일주일 전에 깬 최강 길드 애들은 같은 인간이 맞긴 하냐?

—케르베로스 상대해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최강 길드랑 붙을 일 있으면 우리는 빠진다.

—케르베로스 테이밍 가능한 것 보고 오늘 충격 먹음.

—눈물 조각? 우리도 하나 먹긴 했는데 테이밍은 아직 어림도 없겠던데.

—최강 길드에 전체 랭킹 2위인 주호가 타고 다니던데 진짜 대단하긴 하다. 무슨 수로 테이밍 한 거지.

—나 어제 봤음. 베네아에서 케르베로스 타고 지나가는데 크! 포스가 장난 아님. 완전 부럽더라.

—거기다 케르베로스 잡으면 소형 캐러벨이 섬에서 프리 패스로 태워주던데? 코그선 타려고 그 악몽 같은 선착장 뚫고 온 걸 생각하니 눈물 났음.

—크, 악몽의 선착장. 추억 돋네.

케르베로스를 깨는 길드가 나오면서 본 대륙과 관련 된 선박 콘텐츠도 하나 둘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박을 산 길드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운송업.

처음엔 돈이 된다고 너도 나도 비싼 소형 카락을 잔뜩 사서 뛰어들었는데 이것도 처음에야 블루 오션이지 점점 선박이 늘어나고 정기선 일정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자 비싼 돈 주고 배를 타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져 레드 오션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시궁창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이고.

—아직 선박비도 못 뺐는데 미치겠다.

—초특가 세일로 모십니다. 안전 운행 보장!

—선박 침몰 시 보상금 지급. 일단 타세요. 30% 할인.

—3명 타시면 1명 무료.

—저희 배는 친구 데리고 오시면 1+1 해드립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운임을 대폭 낮추거나 이벤트를 해서 겨우 겨우 선박비를 매우는 길드들이 늘어나 사람들도 굳이 정기선을 기다리지 않고 싸게 배를 타고 넘어와 지금 베네아는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베네아에 입항하길 기다리는 선박이 현재도 어마어마하게 줄을 서고 있으니까.

부둣가는 정말 발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데다가 부두부터 광장까지 이어지는 대로는 빈틈 하나 없이 장사하는 좌판으로 가득한 상태다.

“정말 여기가 우리가 처음에 봤던 그 베네아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삼일 전까지만 해도 광장에는 우리만 서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미니맵을 보지 않으면 절대 다른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앞으로 약속 장소는 광장으로 하면 안 되겠네요.”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좌판이 눈 돌리는 모든 곳에 있고 골목길 마다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면서 지나갈 정도로 북적이고 있다.

전에 피난민 마을은 마치 시골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엄청난 인파에 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 약속 장소를 바꾸기는 애매해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까 우리 팀이 하나 둘 도착해서 하루 만에 엄청 활성화 된 광장 주변 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기, 노란 물약도 팔아요.”

“와……. 싸다!”

챠밍이 좌판을 보면서 구경중인데 이쁜소녀도 보더니 깜짝 놀란다.

하얀 물약의 한 단계 위의 노란 물약을 잡화점에서 팔긴 한다.

다만 워낙 값이 세서 어쩔 수 없이 비싸게 쓰는 중인데 2/3값에 파는 좌판들이 곳곳에 보인다.

“노란 물약을 어디서 저렇게?”

내 질문에 방패전사가 곧장 답변해준다.

“아! 베네아 제1 유적지 근처의 숲에서 어제부터 채집 붐이라고 합니다. 캐는 족족 사람들이 사가니까요. 현재 채집이 블루오션이죠.”

“잘 됐네요. 안 그래도 물약 값이 너무 비싸서 부담됐었는데.”

우리처럼 몰이를 해서 잡는 파티는 한 번에 물약이 쭉쭉 빠져나간다.

방패전사도 얼마 전에 블러디아를 얻어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약이 줄줄 새니까.

우리가 최대 무게로 들고 가서 보급해줘도 바닥나는 건 순식간이다.

그나마 여기가 베네아 도시 안이니 망정이지 조금만 멀리 떨어진 사냥터였으면 진짜 물약만 들고 나른다고 한참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1 유적지.

아는 사람들만 이렇게 부르는 지명으로 베네아에서 북쪽으로 한참을 탈것으로 타고 가면 나오는 숲인데 맵에는 저주받은 숲이라고 뜨기 때문에 보통 그렇게 부르는 편이다.

우리야 지금 지하수로에서 열렙 중이기 때문에 따로 저주받은 숲까지 왕복하기엔 무리여서 현재는 그냥 정보만 받고 있는 중이다.

“베네아에 도착한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 이 숲의 초입 부분에 몰려 있습니다. 근처에 아예 상인 촌까지 생겼다고 하던데요. 덕분에 상인으로 돌아선 사람들이 지금 완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루만 장사를 잘해도 검 하나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방패전사가 쉬는 동안 알아온 정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굉장하네요.”

“그만큼 사람이 많으니까요. 물약만 다 털어도 남는데 아이템까지 처분하면 장난 아니죠.”

“숲을 넘어간 사람은 없나요?”

사실 우리 길드 사람들이 이 숲을 길게 돌아서 넘어간 적은 있다.

다른 사냥터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

대부분 포기하고 돌아왔지만.

“사실 여기가 아니면 너무 멀기 때문에 물약 조달이 힘들어서 결국 대부분 저주받은 숲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애초에 사냥 자체가 안 되죠. 한 대도 안 맞고 버틸 수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요.”

결국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정답이라는 거다.

“거기다 지금 현재 숲에서 구 네임드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광석까지 채굴할 수 있으니까요. 구 네임드가 이젠 국민템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더 늦기 전에 플레임 소드는 팔아야겠네요.”

“다른 네임드에 비하면 다소 인기가 적긴 한데 7강이면 아직도 한 가격할 겁니다. 찾는 사람이 엄청 많아서요. 아직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더 큰 편이니까요. 7강 정도면 지금도 부르는 게 값입니다. 특히, 이렇게 수십만의 사람들이 베네아에 몰려 있다면요.”

그렇단 말이지.

블러디아가 딜에서 좀 밀리긴 해도 유틸성에서는 압도적이라 일단 팔고 나중에 싸지면 다시 구하던지 해야겠는데…….

6강 플레임 소드도 한 자루 있어서 더 싸지기 전에 7강은 처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경매로 하시죠. 제가 잘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공지하시고 공개 경매가 좀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거기다 광석을 캐면 간간히 하르 가루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필드에서도요? 많이 캘 수 있나요?”

“뭐,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캔다고는 하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캐니까 적진 않을 겁니다.”

“사들일까요?”

이쯤 되면 슬슬 유혹에 빠진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그런 유혹이.

아직까진 템을 전부 수수료를 주고 사용할 수 있는 베네아의 개인 창고 속에 쟁여놓고 있는 중인데 이걸 팔면 어느 정도 돈을 끌어올 수 있을 거다.

여차하면 7강 플레임 소드로 해결하면 되고.

“흠, 사실 그 생각도 안 해본 것은 아닌데.”

가만히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미 싹 쓸어갔어. 어떤 놈들이.”

“발 빠르네요. 진짜.”

“아마 한참 돌아다녀도 싼 매물이 하나도 없을 거다. 저기 좌판 보이지? 물건 사들이는 좌판?”

재중이 형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까 확실히 있다. 하르 가루를 사들이는 좌판들이.

아예 장사만 하는 캐릭터들.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좌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저런 식으로 하면 물건 사들이고 파는 것으로는 저들을 이겨먹을 수가 없다.

“대충 아는 놈들끼리 단합 좀 한 모양새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비슷한 가격대에 사들이고 있는 중이니까.

하나하나 보기에는 숫자가 적어보여도 저런 것들이 모이게 되면 엄청난 수량이 된다.

우리를 위협할 정도로.

4일이라…….

우리가 계산한 하르 조각 2만 개를 모으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말이지.

지금이 어떻게 보면 제일 불안정한 시점이다.

미칠 듯이 베네아에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그렇게 베네아에 도착한 사람들이 저주받은 숲에서 사냥하면서 엄청난 양의 아이템을 쏟아내고 있으며 그걸 사들일 저력이 있는 길드들이 즐비하다.

현재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길드를 얼마 지나지 않아 굉장한 기세로 추격할지도 모른다.

케르베로스를 잡은 길드들도 배를 사거나 정보를 모아가면서 잔뜩 기지개를 펴고 있고 그렇게 사들인 배가 수백 척 넘게 바다를 오가고 있는 중이고.

더 이상 바다는 우리의 앞마당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좋은 시절은 다 갔네.”

재중이 형도 이런 분위기를 당연히 알기에 좋은 시절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고.

그렇다고 해서 실망한 표정은 아니다.

두근두근 거리는 것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그런 표정이지.

이 상황을 즐기는 사람이라…….

“오히려 지금까지가 좀 밋밋했지. 지금 이 정도의 긴장감이 딱 좋아.”

하긴 이런 분위기에 휘둘릴 만큼 준비를 못한 것은 아니니까.

“그동안 너무 조용했지. 이제 슬슬 어디든 찔러올 때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카이저> 우리 사냥 자리에 문제가 생겼다. 길드 전체 소집할 거니까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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