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86화 지하수로 (5)
“거대 개구리라…….”
그냥 개구리도 아니고 이름조차 거대 개구리다.
거의 3m 높이의.
솔직히 내게 이런 몹이 제일 까다롭다.
“칼도 안 들어가겠네요.”
몹이 크면 클수록 공격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기는 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목과 눈을 비롯한 급소 부위가 한없이 높게 올라가 있어서 노리기가 진짜 어려워지니까.
딱히 목이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다리 관절 부분이 답인가…….”
재중이 형도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몹은 챠밍이나 나르샤가 공격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리고 리치가 긴 이쁜소녀나 재중이 형도 괜찮은 편이고.
“제가 문제네요.”
“너 비월참 있잖아. 뭐가 걱정이냐.”
“그걸 연달아 쓸 수 있으면 정말 걱정이 없겠네요.”
원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은 머리가 높게 있든 낮게 있든 유효한 타격을 넣을 수 있다는 말인데 이게 몇 발 쏘고 나면 쿨타임이 걸리고 마력이 바닥나니까 아쉽기만 하다.
“다른 무기 인챈트도 있겠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너 무슨 무지개 광선이라도 쏘려고 그러냐?”
“그야 쿨타임 돌려가면서 여러 발 쏘면 더 좋잖아요.”
“많이 모아라. 다 모으면 나도 좀 주고.”
“형도 있으면서 뭘 그래요.”
엘리트를 네 마리나 잡았음에도 포이즌 웨폰과 비월참이 딱 하나씩 밖에 안 나왔다.
그래서 그건 스탯상으로 당장 쓸 수 있는 재중이 형이 받았고.
세팅을 끝낸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와 함께 앞으로 나가서 섰다.
“방패전사님이 처음에 고생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패턴을 하나도 몰라서 힘들 겁니다.”
“늘 하는 일입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 라이트 쉴드! 】
방패전사가 큰 광장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 개구리가 곧장 고개를 돌려서 우리를 보고 그 육중한 덩치로 점프해서 우리가 모여 있던 곳에 날아와 바로 몸으로 내려 찍었다.
방패전사가 자세를 확 낮추고 그대로 카이트 쉴드를 들어서 개구리의 몸체를 막자 방패전사의 몸이 뒤로 확 밀려 나갔다.
그 때문에 바닥이 두 다리에 깊게 패여 나가 두 줄의 긴 고랑이 만들어졌다.
【 힐! 】
바로 이어지는 챠밍의 영창과 함께 우리 모두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챠밍은 달리면서 영창 하는 것에 익숙해졌는지 마법을 끊지 않고 풀 차징으로 방패전사에게 꾸준히 힐을 넣어주는 중이다.
HP가 점점 차오르면서 거대 개구리에 붙어 있던 방패전사가 베놈을 들어서 거대 개구리의 피부를 계속 내려치고 베어냈다.
어글을 쌓기 위해 방패전사가 먼저 공격하는 편인데 물론 이걸 무시하고 달려드는 네임드도 많다.
바로 지금처럼.
“챠밍님! 굴러요!”
“언니! 피해!”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에서 공격하던 방패전사를 싹 무시하고 돌아서더니 뒷다리를 굴러서 육중한 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달려나가 거리를 벌리던 챠밍을 덮쳤다.
그러자 챠밍이 옆으로 구르는 대신 아예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한다.
【 아이스 볼! 】
이 상황에서 무슨?
저런 공격마법을 쓴다고 밀어낼 정도의 덩치가 절대 아니다.
챠밍의 지팡이 끝에서 뻗어져 나간 아이스 볼이 달려가는 거대 개구리가 아닌 앞의 흩뿌려진 물줄기에 가서 닿더니 바닥이 싹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얼음 바닥을 밟은 거대 개구리의 뒷다리 중 하나가 쭉 미끄러지면서 달려가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 육중한 몸이 바닥에 통째로 굴러 버렸다.
“이야! 좀 대박인데.”
좀처럼 놀라는 일이 없는 재중이 형도 이번엔 꽤 놀랐는지 박수 칠 기세로 감탄을 한다.
그리고 챠밍이 엎어진 거대 개구리를 유유히 피해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무사히 빠져나갔다.
“너희 팀 애들은 매번 재밌네.”
“저도 저런 식으로 할 줄은 몰랐죠.”
챠밍이 거대 개구리에서 꽤 멀어져서 안전하다는 표시를 준다.
“제가 좀 더 어글을 쌓았어야 했는데.”
방패전사는 튀어나간 거대 개구리의 모습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 말을 곱씹으면서 방패전사가 다시 거대 개구리에게 달려들었다.
“일단 방패전사가 어글 쌓을 때까지 대기요. 좀 전엔 힐이 과도하게 들어가서 돌아본 것 같으니까.”
재중이 형이 방금 있었던 일들의 원인을 바로 분석해준다.
방패전사가 다시 달라붙자 거대 개구리가 자세를 낮추더니 오른쪽 앞발을 들어 곧장 바닥으로 내려쳤다.
그와 동시에 방패전사가 카이트 쉴드의 각도를 살짝 기울여 거대 개구리의 앞발이 쉴드의 정면으로 치지 못하게 흘려냈다.
저런 각도 하나 하나가 방패 컨의 품격을 보여준다.
방패전사의 머리 위로 다시 왼발이 떨어지고 이어서 몸을 크게 들었다 내리면서 양쪽 앞발을 강하게 내려쳤다.
이건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방패전사가 뒤로 빠지자 장애물이 없어진 거대 개구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르샤에게 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 이런 놈이.”
방패전사가 급하게 거대 개구리를 쫓아가는데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놈은 어글이 없는 건가?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나르샤에게 달려들지?
나르샤는 민첩이 높아 가볍게 피하면서 빠르게 거대 개구리와 거리를 벌려 멀리 빠졌다.
“형, 그냥 치죠. 어글이 없는 것 같아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전혀 다른 말을 꺼낸다.
“이건 어글이 없는 게 아니라 초기화 되는 거네. 분명히 방패전사가 잡고 있을 땐 그대로 보고 있었거든.”
한참 어글이 잡혀 있다가 초기화가 되고 아무나 덤벼든다는 건가? 그것도 아무것도 안하던 사람 위주로?
어글의 세계는 알 수 없네, 진짜.
“일단 그냥 치자. 이런 식으로는 어차피 금방 어글이 풀려버리니까. 다들 패턴에 주의하고 들어갑시다.”
무작위 돌진, 연타 모아서 내려찍기, 점프 후에 몸 공격 정도인가?
아직 까다로운 정도는 아니다.
재중이 형의 신호에 모두가 공격에 들어갔다.
어차피 풀릴 어글이라면 그냥 때려서 빨리 잡는 편이 낫다.
멀리서 나르샤가 풀 차징한 얼음 화살을 계속 날리고 챠밍도 역시 행동제어가 되는 아이스 볼 위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챠밍과 나르샤의 마법을 계속 얻어맞은 거대 개구리가 점점 느려지자 이쁜소녀가 옆으로 파고들어 온몸의 회전을 싣고 양손검을 풀 스윙했다.
퍼억!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저 육중한 거대 개구리의 몸이 통째로 들썩 거린다.
“휘유! 나이스!”
재중이 형의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거대 개구리에게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한 이쁜소녀를 바로 칭찬했다.
이쁜소녀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슬쩍 숙이더니 다시 온몸을 비틀어서 강하게 휘두르자 다시 한 번 북치는 소리와 함께 거대 개구리가 옆으로 밀려 나 방패전사를 내려치려고 하던 자세가 그대로 캔슬 되어 버렸다.
얼마나 대미지가 잘 들어가면 옆구리만 냅다 갈기는데도 저런 반응이 나오지?
작은 몹을 상대할 때 적절히 컨을 해서 조절해야 했던 것과 다르게 워낙 때릴 곳이 넓으니까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양손검을 휘두르니 저런 효과가 나는 모양이다.
내가 급소를 공격해서 캔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 그냥 저건 온몸을 비틀어서 터트리는 깡딜로 캔슬하는 중이다.
때릴 때마다 손맛이 착착 감기니 이쁜소녀가 더없이 흥분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거대 개구리의 옆구리를 그야말로 폭격해 버린다.
광전사가 돌아왔네.
파워글러브를 이쁜소녀 손에 쥐어주면 정말 재밌는 상황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방패전사가 항상 전방에서 대부분의 내려치기를 막아주고 돌진하거나 점프를 하면 모두 피하는 식으로 유지하면서 계속 대미지를 주자 연녹색이었던 거대 개구리의 몸이 진한 독색으로 물들어간다.
“페이즈 변했다.”
재중이 형이 거대 개구리 주위를 돌면서 공격하다가 곧장 뒤로 빠져나왔다.
진한 녹색으로 변한 거대 개구리의 눈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고개를 크게 들었다가 빠르게 내리면서 입에서 진한 녹색 침을 사방으로 가득 뱉어내기 시작했다.
“윽, 드러워.”
가까이 있던 방패전사가 깜짝 놀라서 주변으로 떨어지는 녹색 침들을 느린 발로 필사적으로 피했다.
저건 딱히 공격이라서 피한다기보다는 정말 더러운 것을 피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제발 이 공격은 스킬로 나오지 않길…….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를 슬쩍 보니까 정말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뭘 멍하니 보고 있어? 들어가자.”
“이번엔 형 혼자 가시면 안 돼요? 전 멀리서 비월참을 날리겠사옵니다.”
“되도 안한 소리 말고 얼른 따라와.”
이래서 고참이 무섭다.
최대한 피하던 방패전사가 계속 떨어지는 침의 비 때문에 피할 곳이 없어 바닥에 떨어진 있던 녹색 침을 어쩔 수 없이 밟았는데 밟자마자 방패전사 주변으로 다시 침이 터져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방패전사의 피부 전체가 녹색으로 물들어 버린다.
“회복이 안 됩니다.”
물약도 안 되는지 계속 HP가 내려가는 방패전사의 다급한 소리에 챠밍이 곧장 주문을 넣었다.
【 포이즌 큐어! 】
노란 원의 빛이 방패전사를 감싸면서 올라갔다 내려왔는데도 방패전사의 몸이 여전히 녹색 빛으로 물들어 있다.
“큐어로 못 풀어요.”
독이라 당연히 풀릴 줄 알았던 것이 안 풀리자 챠밍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단 빠지겠습니다.”
방패전사가 녹색 침들이 가득한 공간을 빠져나가자 거대 개구리가 다시 무작위로 날뛰면서 침을 뱉어낸다.
“저거 어떻게 못 멈추나?”
얼마나 싸돌아다니면서 뱉어내는지 광장 안에 발 디딜 곳이 없어질 지경이다.
“좀 지나면 사라지긴 하는데 뱉어내는 게 더 빠르네요.”
나와 재중이 형이 같이 도망 다니면서 거대 개구리를 살피는 중인데 피할 곳이 없어지니 난감하긴 마찬가지.
그렇다고 붙기에는 사방에 너무 침들이 많다.
“이건 사람이 많으면 더 힘들겠는데.”
“밟으면 사방으로 터지니까요.”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네임드를 상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든 패턴이 많다.
나르샤와 챠밍이 멀리서 계속 마법과 화살을 날리는 중인데 전혀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침을 뱉어냈다.
“흐음……. 이건 되려나.”
재중이 형이 거대 개구리의 고개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윙드 스피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간격을 재더니 스킬을 영창했다.
【 포이즌 웨폰! 】
【 비월참! 】
그리고 스피어의 세 개의 날에 녹색 기운이 강하게 압축되자 고개를 들었다가 침을 뱉기 위해 고개를 내리는 거대 개구리의 입을 향해 비월참을 빠르게 쏘아냈다.
막 고개를 내리면서 침을 뱉어내려던 입에 정확하게 비월참이 꽂히더니 입안에서 강하게 폭발이 일어나면서 거대 개구리가 그대로 쓰러졌다.
“되네.”
【 파이어 월! 】
쓰러지는 걸 보자마자 챠밍의 파이어 월이 쏟아져 다운된 거대 개구리를 태우기 시작했다.
재중이 형이 엎어져 타오르는 거대 개구리를 보고 나를 돌아보더니 씨익 웃는다.
“할 수 있지? 정확하게 입 중앙으로. 옆이나 근처도 안 되고.”
“아무렴요.”
다시 거대 개구리가 일어나서 고개를 올렸다가 빠르게 내리려하자 곧바로 스킬을 영창했다.
【 포이즌 웨폰! 】
【 비월참! 】
완벽한 타이밍에 비월참이 꽂혀 들어간 거대 개구리의 입안이 터지면서 다시 한 번 다리를 뻗고 쓰러졌다.
“나이스! 가자!”
두 번이나 막아내서 주변의 침이 많이 사라지자 이쁜소녀, 방패전사, 재중이 형, 나 할 것 없이 모두 달려들어 라이트 웨폰을 켜고 거대 개구리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터지는 빛의 검들의 크리티컬과 파이어 월, 나르샤의 풀 차징한 화살들이 꽂히면서 거대 개구리의 커다란 몸체가 들썩 들썩 거린다.
언제 이렇게 큰 몹을 마음대로 두들겨보겠는가.
우리 모두 아주 신난 표정으로 계속 두들기다가 보니 거대 개구리가 다시 일어났다.
이것도 되려나?
이번엔 거대 개구리의 정면에 서서 녀석이 일어나 고개를 살짝 들려고 하자마자 입안에 바로 비월참을 집어넣었다.
일어난 지 3초도 안 돼서 그대로 다시 엎어지는 거대 개구리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고개를 완전히 들 때까지 기다릴 필요 있나요?”
어떻게든 입안에 비월참을 집어넣기만 하면 되니까.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일어나기만 해라.
넌 이미 죽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