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8화 (68/1,404)

# 68

#68화 본대륙 (4)

―장난함? 코그선 그거 중간도 못가서 가라앉던데?

―해적선 미만 닥. 우린 가다가 해적선 만났음. 해적들 싸우는 거 장난 아님. 배 위에서 전멸함.

―크라켄 미만 닥. 장난 침? 바다에서 그걸 어떻게 잡아. 다리가 배 위에 척 올라오는데 빨리 못 걷어내면 망함. 차라리 해적선이 낫다.

―폭풍우 미만 닥. 마른하늘에 폭풍 분다. 미쳤어, 진짜.

―코그선 요금 비싸서 바로 갈지 알았는데 이게 로또임.

―우린 이따 새벽에 다시 시도함. 그래도 새벽엔 좀 사람 적겠지.

―다 그 생각할걸? 우린 만나지 맙시다.

―그냥 정기선 카락 기다려라. 답 없다.

―미친, 2주나 어떻게 기다려.

―그럼, 케르베로스 잡던가. 쯧쯧. 캐러벨 타면 프리패스다.

―그거 안 타지는 거 아닌가요? 선원이 우리 개무시하던데. 케르베로스 잡으면 타지나요?

―ㅇㅇ. 건너 들었는데 아는 길드가 케르베로스 깼음. 통행증 나온다더라.

―나 거기 앎. 최강 길드. 아까 캐러벨 올라타는 거 봤음.

―그 길드만 완전히 딴 세계 사네. 케르베로스 그걸 어떻게 잡아. 미쳤네.

―우리도 열 번 넘게 트라이 했는데 다 쳐 발림. 딜 안 나와서 못 깸.

―우리 길드 네임드 7강, 노멀 9강 가진 사람들이 해도 안 되던데.

―와…… 네임드 7강? 노멀 9강? 저게 대체 얼마야. 저렇게 해도 못 깸?

―몇 명만 들고 있겠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최강 길드 괴물들만 모아놨나? 대박이네.

―버그 쓴 거 아님?

―노노, 버그 썼으면 또 운영자가 뒤집어 놨을걸? 그거 잡아서 업데이트 다 했잖아.

―부럽다. 벌써 본대륙 가서 날고 있겠네. 최강 길드 어떻게 들어가요?

―하루에 현질 1천씩 하면 된다던데?

―노노, 랭킹 높은 사람만 받는다더라.

―진짜 거기 들어가고 싶네.

배가 도착하기 전에 할 게 정말 없어서 홈피를 열어 게시판을 확인하다 보니 별별 이야기들이 다 올라온다.

“재밌네요.”

그냥 게시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재밌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우린 이미 거의 다 도착해 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아등바등 씨름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냥 웃음이 난다.

“케르베로스를 잡고 타는 것도 아닌데 저 정도 고생은 해줘야 형평에 맞겠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 난이도가 맞다.

그냥 돈 좀 더 내고 바로 올라타서 똑같이 와버리면 우리가 한 일들은 개털이 되는 거니까.

“코그선이 침몰하는 건 너무 많이 태워서 그런 것 같아요. 아까 보니까 지나치게 사람들이 많이 탔던걸요?”

챠밍이 우리가 지나쳐온 코그선이 기억하고는 문제점을 짚어준다.

“확실히 너무 많이 올라탔죠. 적당한 인원이라면 도착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운이 따라줘야겠지만.”

방패전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코그선은 내가 보기엔 정상적인 운행은 아닌 것 같구나. 일종의 도박 느낌도 나고.”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정상적인 루트가 두 개나 있는 데 반해 코그선은 돈으로 우회해서 넘어가는 뒷길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그 돈을 내기 위해서 지금도 선착장에선 피 말리는 혈전이 일어나고 있다.

1서버 유저들이 돈이 없어서 코그선을 못 탄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금은 모두가 돈이 넘치는데 기회가 없어서 문제일 뿐이다. 그게 칼질로 이어지고 있고.

일단 타고나길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크라켄은 어떻게 생겼어요? 한번 보고 싶은데…….”

챠밍이 우리 이야기를 듣다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무심코 말을 꺼냈다.

“보기와 다르게 무서운 소리를 막 하네…….”

재중이 형이 챠밍의 말을 듣다가 깜짝 놀란 기색을 보인다.

“전 해적하고 싸워보고 싶어요.”

이쁜소녀도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양손검을 붕붕 휘두른다.

재중이 형이 챠밍과 이쁜소녀를 말을 듣고는 살짝 꺼림칙한 표정을 짓더니 날 데리고 난간으로 끌고 갔다.

“야, 너희 팀 애들 좀 많이 독특한데?”

“하하, 귀엽죠?”

“귀엽긴. 정말 크라켄이나 해적 보러 가자고 할까 봐 걱정이다.”

“으음, 그거 잡으면 보상 좋을까요?”

“에이, 똑같은 놈 데리고 내가 지금 뭐 하는지 모르겠네.”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남들은 피하려고 노력하는 크라켄이나 해적을 보러 가자는데 정상적이라면 무시하는 게 맞다.

근데 재중이 형도 정상적인 사람은 절대 아니지.

갑자기 재중이 형의 눈빛이 확 변했다.

“한 번 가볼까?”

역시 이래야 우리 형이지.

엄살 좀 부린 걸로 재중이 형을 오해할 뻔했네.

***

생각보다 방랑하는 섬과 본대륙인 테슬라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까지 먼 것은 아닌 모양이다.

소형 캐러벨이 바다를 가르면서 쭉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니까 전체 지도의 검은 부분이 점점 걷혀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나타나는 본대륙의 한 지점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음, 이건 해양 도시 같은 건가?”

“규모가 좀 있어 보이네요.”

“해안에 접한 부분이 상당히 길어.”

“성 같은 곳일까요? 아님 마을? 지도에 나오는 크기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여긴 부둣가인가 본데. 선착장하고는 또 다르구나.”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전체 맵이 조금씩 걷히면서 본대륙의 최남단의 바다와 접한 도시가 드러나자 아예 지도에서 눈을 뗄지를 모르고 분석에 들어갔다.

얼핏 옆에서 살펴보니 마을이라기엔 좀 큰 편이고 도시라고 보기에는 작아 보인다.

지도에 나타나는 축척만 보면 규모가 피난민 마을의 5배쯤 되어 보이는데 실제로 보기 전에는 정확히 알기 힘들 것 같다.

“저기, 슬슬 보이기 시작하네요.”

방패전사가 배 앞부분에서 혼자 타이타닉에 나오는 장면을 따라 하다가 제일 먼저 해안 도시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먼바다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해안 도시.

베네아.

도시 왼편으로 넓게 자리 잡은 부둣가와 해안을 따라 쭉 정박해 있는 다수의 배들이 떠 있고 내륙 쪽으로 다소 어지럽게 뻗어 있는 시가지들이 보인다.

그리고 도시를 쭉 둘러싸고 있는 돌로 된 성벽이 이 도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흐리고 날씨가 좋지 않은 도시 주변과 다르게 도시 중앙에서 구름을 환하게 뚫고 하늘로 쭉 뻗어 올라가는 기묘한 빛의 기둥이 인상적이다.

“예뻐요.”

이쁜소녀가 빛의 기둥을 보자마자 감탄을 한다.

빛기둥에서 뻗어 나오는 빛들이 도시와 주변 바다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다.

현실에서조차 보기 힘든 그런 경건함과 장엄함이 느껴진다.

“흡사 오크족장이나 케르베로스를 잡았을 때 내려오던 빛과 비슷해 보이네요.”

“네, 정말 비슷하네요. 도시가 너무 아름다워 보여요.”

챠밍의 말대로 주변의 어두컴컴한 풍경 속에서 이 도시 하나만은 정말 빛으로 보호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게임 시작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도시를 보네.”

재중이 형의 넋두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들 슬슬 내릴 준비 하자.”

사장님의 말에 모두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베네아에 발을 내디딘 재중이 형의 첫 감상이다.

부둣가는 아직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좀 한산한 느낌이긴 한데 대체로 정비가 잘되어 있고 선원들이 정해진 룰에 따라 계속 선박과 도로를 오가는 중이다.

부둣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곧장 도심으로 들어갈 정도로 해안과 상업지역이 맞닿아 있기도 하고.

“일단 정보가 최우선이다. 모두 흩어져서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아. 아직 이 지역을 잘 모르니까 2인 1조로.”

사장님의 지시에 각자 2명씩 나눠서 흩어졌다.

“다들 수고해요.”

“조금 있다가 봬요.”

방패전사는 제일 친한 나르샤와 움직이기로 하고, 챠밍과 이쁜소녀가 한 조, 그리고 나와 재중이 형이 같이 움직이기로 하고 떨어져 나갔다.

사장님 네 팀도 둘씩 나눠서 흩어지고.

퀘스트를 알아보기 위해 움직이는 조도 있고, 제작이 업데이트되어 어떤 식으로 변한 건지 확인하러 간 조도 있다.

상점가의 물품이나 가격을 알아보러 간 조, 도시 외곽의 성벽이나 경비 상태 등도 봐야 하기에 한 팀이 성벽 쪽으로 갔다.

“귀환 지점은 안 봐도 중앙의 저 빛기둥 쪽일 거고.”

“챠밍 님이 그쪽이죠?”

“어, 그거하고 주변에 마법 길드가 있는지 알아본다고 하더라.”

“도시가 넓어서 생각 외로 오래 걸리겠네요.”

“뭐, 필요한 것만 빠르게 알아보고 움직여야지. 우리도 움직이자.”

우리가 맡은 것은 해안 쪽에 접한 건물들이다.

부둣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들부터 확인해야 해서 다른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을 다 보고 난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만간 여기가 북적북적하겠네요.”

지금은 선원들 몇 명밖에 보이진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치 신대륙을 발견하고 금광을 찾듯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곳에 발자국을 찍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준비를 해야지. 일단, 조합부터 뒤지자.”

부둣가에서 선적을 위한 창고들을 빼고 여관, 주점 등을 거쳐 걸어가니 꽤 많은 선원들이 오가는 건물들을 발견했다.

생선이 그려져 있는 건물과 배가 그려져 있는 건물.

“오케이. 저거네.”

재중이 형이 한 치의 주저 없이 배가 그려진 건물로 앞장서자 곧장 따라서 3층으로 된 조합 건물로 들어갔다.

“옆에 건물은요?”

“딱 봐도 거긴 아냐.”

뭐가 아니라는 걸까.

생선은 관심 밖이라는 건가?

한 도시의 조합 건물이라 그런지 100여 명은 가볍게 들어와서 볼일을 볼 수 있도록 꽤 실내가 넓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배를 작게 만들어 둔 모형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용어들을 붙여놓은 간략한 설계 도면까지 벽에 붙여져 있어 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 쭉 둘러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잘 꾸며놓았다.

“디테일이 섬하고는 완전히 다르네요.”

“거긴 진짜 촌 동네고.”

너무 꾸며둔 것이 없어서 개발자들이 콘텐츠도 없이 놀면서 돈 받아먹는다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여길 오니까 얼마나 하나하나 정성 들여 수작업으로 꾸며놨는지 놀라울 정도다.

재중이 형과 한 편에 마련된 카운터로 가서 남자 점원과 여자 점원을 각각 맡아서 한참 정보를 캐다가 조합 밖으로 나왔다.

“배를 살 수 있다라…… 배를…….”

재중이 형이 점원과 이야기 하던 것을 계속 곱씹고 있는 중이다.

“승호야, 냄새가 나지 않냐?”

단둘이 있으니 이름을 부르네.

하긴, 둘이 있는 곳에서까지 아이디를 불러대면 서로 웃기긴 하다.

근데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지?

바다 냄새 같은 건 오래 맡아서 이상하지도 않은데.

“무슨 냄새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기대를 잔뜩 담은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날 바라봤다.

“대박이 터질 것 같은 그런 냄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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