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53화 여기가 도시섭? (9)
“그래서 어떻게 한 건데?”
재중이 형이 치즈가 잔뜩 눌어붙어 있는 가리비살을 입에 한가득 넣으면서 어서 말해보라는 듯 눈빛을 반짝이면서 날 바라본다.
방패전사도 그렇고 남자가 저런 눈빛으로 바라보면 아주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살짝 든다.
“먹던 건 마저 먹고 질문하시죠?”
“안 돼. 빨리 먹고 가야 푹 쉬지. 입이 놀 시간이 없네. 내일도 바싹 뛰어야 해. 오늘 너무 놀았다.”
그러면서 채 식지도 않은 다른 조개를 집어 든다. 저게 다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겠네.
“어떻게 된 거냐면요.”
재중이 형의 재촉에 재중이 형이 나가고 난 뒤에 1구역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알려줬다.
1구역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테이밍 시도해서 온 사냥터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부터 사람들이 몬스터 대란을 피해 사냥터 바깥으로 나온 점.
그사이에 우리가 1구역으로 들어가서 챠밍의 파이어월을 써서 몹 몰이를 한 것까지.
“거참, 하늘이 도운 건지 딱 니가 1구역을 가니 그런 일이 생기냐?”
재중이 형이 내 말을 모두 듣고 난 뒤에 꽤 재밌어하는 눈빛으로 날 본다. 신기함이 가득 담긴 그런 눈빛.
“저도 첨에 그냥 돌아서 나오려고 했는데 계속 어떤 촉이 와서요.”
“또 그 촉이냐? 멧돼지부터 시작해서 오크 족장 걸치기에 방어 인챈트 마법 중복까지 하더니 이젠 1구역 헬하운드 몰이라…… 진짜 꼼수란 꼼수는 다 쓰고 다니네. 너 혹시 ZUN사 사장 아들은 아니지?”
확실히 듣다 보니 전적이 좀 화려하긴 하네. 그래도 사장 아들은 아니지.
“에이, 아니에요. 제가 사장 아들이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
“나도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고.”
재중이 형도 자기가 물어놓고 자기가 어이없다는 듯 실없이 웃어 보인다.
“그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하냐?”
“음, 그런 것들은 그냥 그 상황이 되면 생각난다고 해야 하나요? 멍하게 있다 보면 그냥 떠올라요.”
“호오…… 그래? 그럼 담엔 형도 좀 같이해 먹자. 좋은 것 혼자 다 해 먹지 말고.”
“하는 거 봐서요?”
“야, 내가 얼마나 퍼다 주는데.”
“네네. 알고 있죠.”
하긴 그간 얻어먹은 것도 많은데 언제 한번 제대로 끼워드려야 하나.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당장 생각나는 꼼수도 없고.
지금은 이 상황이 최대한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는데.
“1구역 문제가 될까요?”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보니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 접속을 종료하면서 그렇게 다들 아쉬워했던 것이 이런 이유에 기인해서니까.
“흠, 내 생각엔 그거 내일 접속해 보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어 있을걸?”
“역시 그런가요?”
이건 내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너, 1서버 애들 물로 보지 마라. 다들 게임에서 날고 긴다는 녀석들이고 그런 놈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동네야. 여기에 아예 생계를 걸고 뛰는 놈들도 많이 있고. 너 정도는 아니겠지만 각자 자기 생각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골라서 움직여.”
하긴 전국에서 게임 잘한다 싶은 인간들이 다 모여 있으니.
“그럼 어떤 식으로요?”
“당장 내가 생각나는 것만 해도 그냥 사람들 몇 파티를 뭉치면 금방 해결돼. 헬하운드가 몰려다녀서 사냥이 안 되면 사람들도 몰려다니면 그만이거든. 분배 문제가 좀 까다롭긴 하겠지만. 내가 이렇게 금방 생각해낸 걸 사람들이 하루 종일 못할 리도 없고.”
듣고 보니 해결방법이 너무 쉬운데?
그냥 정말 몇 파티 몰려서 다니면 헬하운드가 아무리 세도 어떤 식으로든 사냥은 될 것 같다. 효율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니들처럼 몰아 잡고 그러진 못할 거다. 너 같은 놈이 없는 이상은. 그래도 사냥 자체는 할 수 있겠지.”
“좀 아쉽네요.”
“하긴, 니 입장에선 정말 아쉽긴 하겠네. 이건 뭐, 1구역 몹을 전부 몰아 잡을 수 있는데 하루도 안 돼서 끝나게 생겼으니.”
“진짜 접속 시간만 아니었어도…….”
“그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당분간은 써먹을 수 있겠죠?”
좀 몰려다니면서 잡는다고 해도 우리 잡을 것까지 싹 사라지진 않겠지.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했다가 대답해 준다.
“아마 테이밍 해보던 애들도 이제 빠질걸? 안 되는 걸 붙들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으니까. 그러고 있다가 진짜 모든 길드 애들한테 공적이라도 되면 손해도 그런 손해가 없어. 지금은 헬하운드를 테이밍해서 벌어들일 돈에 눈이 돌아간 것 같은데…… 한 마리도 잡혔다는 소리가 없는 걸 보면 걔들 입장에선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돈도 날리고 욕만 쳐 듣고. 이제 끝내겠지. 하루도 오래 버틴 거지.”
“일일천하네요.”
“뭐, 아니면 게임 회사에서 조치를 취하던가. 이쪽은 아마 패치가 되는 식일 거고. 유저들 선에서 정리가 안 되면 좀 지켜보다가 나서겠지.”
패치가 되는 것이 가장 깔끔하긴 한데…… 우리 입장에선 어쨌든 재앙이군.
이건 이제 내 손을 떠난 문제라 어쩔 수 없고. 그저 대처가 늦어지거나 패치가 좀 늦게 되길 빌 뿐이다.
“혹시 전에 플레임 소드 구해달라는 건 어떻게 됐어요?”
“아, 그거?”
“네,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몇 개나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흠, 일단 지금 이야기 중인 게 여섯 개.”
“생각보다 많네요.”
“이 근처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싹 쓸어온 거야. 더 구하려고 해도 당장은 못 구하지.”
플레임 소드 여섯 개라. 어차피 다 살 수는 없고, 그중 몇 개만 산다고 쳐도 천만 원은 가볍게 넘어가겠는데…….
“다만 이것들이 가격 가지고 질질 끄네. 어차피 지들도 필요 없으니 파는 걸 다 아는데 산다고 하니까 은근히 가격 좀 올려보려고 이리저리 재보네.”
역시 네임드를 쉽게는 못 구하네.
“부르는 가격 다 맞춰주면요?”
“야, 너 집 잘 살아? 그걸 다 맞춰주고 사는 건 호구도 그런 호구가 없다. 최대한 깎아서 사야지. 그렇게 부르는 가격에 막 사는 건 돈을 물 쓰듯이 쓰는 애들이나 가능한 거고.”
어딜 가나 돈이 문제네. 언제쯤 원하는 대로 펑펑 써보는 날이 올까.
“그럼, 좀 빠르게 구할 방법이 아예 없어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을 한다.
“음, 적당히 값어치가 있는 물품이 있으면 좀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네임드에 상응하는 물품이 잘 없지. 고강 템은 오히려 그쪽이 아까운 편이라.”
그 말에 잠시 또 어떤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값어치가 있는 물품이라…….
이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8.
> 로딩 중…….
* * *
이름 : 주호
레벨 : 18 ▲4
【근력 4 ▲1】 【민첩 5+4】 【체력 3+1 ▲1】
【지력 0+2】 【마력 1+1】
워 울프 팔찌 마력 +1 ◀ NEW
* * *
트윈 헤드 헬하운드의 마법을 쳐내다 보니 민첩도 중요하지만 체력과 마력 역시 뒷받침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겪고 난 뒤에 무기에 붙은 민첩 4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수치로 돌려놓았다.
마력은 라이트 소드를 유지하는데 필수고, 체력은 동시에 여러 발의 큰 마법을 쳐내다 보니 HP가 출렁거려서 챠밍이 급하게 힐을 넣어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바로 올렸다.
약속한 시간에 접속하니 이미 모두가 접속해서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 챗으로 인사를 나눈 뒤 먼저 궁금한 것부터 바로 물어봤다.
―상황이 어때요?
<방패전사> 생각보다 좋지는 않습니다.
―역시.
<방패전사> 아셨나요?
―아, 불멸 형이 나가서 이야기해줬어요.
<방패전사>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몰이는 아마 못할 것 같습니다. 저희 나가고 난 뒤에 우르르 몰려서 사냥하더니 몇 시간 뒤에 테이밍 시도하던 사람들이 귀신처럼 싹 사라졌다네요. 가끔 한둘 시도해본다고는 하는 데 남들을 방해할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일천하네요.
<방패전사>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정말 재중이 형네 말처럼 하루도 안 돼서 1구역이 정상화 되어버렸다.
어제 우리가 1구역서 몰이를 한 건 정말 신이 도운 셈이었네.
<챠밍> 저희 이제 어떻게 해요?
나 외엔 다 모여 있는 모양이라 챠밍에게서도 연락이 온다.
―몰이는 어쩔 수 없고…… 사실 오늘 할 일이 하나 있어요.
<챠밍> 어떤 일이에요?
―챗으로 설명 다 하기는 힘들고 지금 갈게요. 다들 어디 계세요?
<챠밍> 저희 지금 포탈 앞이에요.
―지금 갈게요.
템이야 접속 종료 전에 전부 처분을 한 상태라 바로 가면 된다.
덕분에 거의 현금으로 650만 원에 해당하는 아르를 현재 가지고 있다.
마을 안에서도 각 지점마다 포탈이 있어서 아르를 지불하고 빠르게 외부로 나가는 포탈 앞으로 갔다.
“오셨네요.”
주변을 둘러보던 나르샤가 먼저 날 발견하고 인사를 한다. 이어서 모두와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테이밍 할 생각입니다.
“네?”
“정말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궁금함과 당황함을 가득 담아 날 멀뚱히 쳐다봤다.
방패전사도 이해가 안 되는지 바로 질문부터 했다.
“그거 때문에 지금 난리인데 저희가 괜히 벌집을 쑤시는 꼴이 되지 않을까요? 올라타서 몹을 몰면 좋게 볼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요.”
“네, 그건 저도 생각했어요. 다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한 번 해보려고요.”
“아무리 주호 님이라고 해도 헬하운드를 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풀링을 하면서 봤는데 올라탄 사람에게 주변에 몰린 헬하운드가 무작위로 마법을 날려서 오래 타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거든요.”
나르샤가 듣고만 있다가 정말 오랜만에 의견을 내놓았다. 나르샤의 말만 들어보면 절대 지금의 유저 수준으로 타라고 만들어둔 녀석들이 아니다.
물론, 난 재중이 형에게 미리 들어서 그걸 알고 있는 상태고.
“그건 제가 생각해둔 것이 있어요. 일단 가보실까요?”
말을 끝까지 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포탈에 올라서자 일단 모두 같이 포탈에 올라섰다.
1구역으로 포탈로 이동한 다음에 현재 알려진 테이밍 몹 중 가장 빠르다는 블랙 울프를 각자 꺼내 올라타서 이동했다.
“정말 괜찮을까?”
직접 풀링을 하면서 헬하운드를 타는 것 자체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 눈으로 모두 확인했던 나르샤가 1구역으로 가는 길에 끝내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챠밍과 이쁜소녀에게 물었다.
“나르샤 언니, 주호 님이 저렇게 장담하고 가면 아마 괜찮을걸? 매번 그래왔으니까.”
“맞아, 언니, 주호 님이니까.”
거의 맹목적으로까지 들리는 챠밍과 이쁜소녀의 답변에 나르샤가 약간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다가 너무 확고한 믿음을 가진 챠밍과 이쁜소녀의 얼굴을 보자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울프의 이동속도가 빠른 만큼 금방 1구역 입구에 도착했다.
어제와는 다른 것이 우르르 몰려 있던 인원이 지금은 하나도 안 보인다.
사실상 전투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블랙 울프를 소환해제 시키고 생각해두었던 곳으로 모두를 데리고 들어갔다.
전에 나르샤와 봐두었던 2층 건물 두 개 사이로 난 골목길인데 한쪽이 무너진 잔해로 막혀서 진입로를 제외하고는 오갈 수 없는 장소다.
“주호 님이 헬하운드를 타시면 저희는 뭘 해야 합니까?”
방패전사가 당연히 내가 헬하운드를 탄다고 생각했는지 곧장 작전을 물어온다.
그 말에 내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실 헬하운드를 탈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네? 주호 님이 안 타세요? 그럼 누가?”
방패전사가 뜻밖의 소리를 들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패전사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에?”
“네?”
“이건?”
한 명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당사자가 좀 당황한 표정을 보인다. 평소에 저런 표정 보기 쉽지 않은데 오늘은 정말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 같네.
“제가요?”
나르샤가 많이 어색한 표정으로 검지를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네, 나르샤 님. 나르샤 님이 헬하운드에 올라타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