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52화 여기가 도시섭? (8)
【 파이어월! 】
챠밍이 두 손으로 꽉 쥐고 있는 스태프의 끝이 향한 흙바닥에서 거대한 불기둥들이 화려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터지는 파이어월의 장엄함을 느낄 새도 없이 트위 헤드 헬하운드의 크게 벌린 주둥이들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어리와 냉기가 풀풀 퍼져 나오는 얼음구가 생성되더니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챠밍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타이밍이 제대로 얽혔는지 이번에 무려 4마리가 동시에 화염 마법과 얼음 마법을 날렸다.
합계 총 8발.
진짜 갈수록 태산이네.
라이트 소드를 시전하자 양손에 쥔 아이스 소드와 플레임 소드에 새하얀 빛이 다시 맴돈다.
소드를 강하게 쥔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이 온몸에 퍼지면서 점점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시야가 가속되면서 화염과 얼음구의 궤적이 흐르는 방향이 손에 잡힐 듯이 라인이 그려져 머릿속에 흘러들어온다.
먼저 날아오는 화염구의 타오르는 불꽃 한 올 한 올이 전부 시야에 들어와 그 경계로 아이스 소드를 넣어 소드 끝만 살짝 비틀었다.
소드를 타고 흐를 듯이 밀리다가 소드가 기울어지면서 궤적이 살짝 틀어져서 밀리더니 그대로 조금 뒤에 날아오던 얼음구와 부딪쳐서 얽히다가 폭발했다.
이번엔 또 다른 얼음구를 옆으로 밀어내서 다른 화염구와 부딪치게 만들어서 터뜨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 이 방법을 쓸 수 없는 각기 다른 네 개의 마법 덩어리들은 그대로 바깥으로 쳐내서 날려버렸다.
“하…… 진심 괴물.”
챠밍에게 빠르게 날아가는 8개의 마법 덩어리들을 보고 깜짝 놀라 방패전사가 내 쪽을 무심코 봤다가 8개를 전부 날아가는 도중 서로 부딪치게 하고 멀리 쳐내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앞! 봐요!”
이쁜소녀가 양손검으로 힘겹게 트윈 헤드 헬하운드의 앞발을 쳐내면서 곧장 소리친다.
괜히 한눈팔다가 이쁜소녀에게 한소리들은 방패전사가 방패를 급격하게 기울이면서 다른 앞발을 쳐내고 난 뒤 어깨를 붙이고 방패 채로 챠징을 해서 헬하운드를 조금 밖으로 밀어냈다.
“올라오게 할 뻔했네. 죄송합니다.”
다시 방패전사가 굳은 표정으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지금 교회 건물 아래에 거의 열다섯이 넘어가는 헬하운드들이 피를 갈구하는 좀비들처럼 앞발을 들고 몸을 세워 교회 벽을 갉고 있는 중이다.
실수로 한 마리만 올려보내면 그 뒤로는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셈.
“조금만 더 버티면 돼요. 하나씩 쓰러져요.”
챠밍의 격려와 동시에 하얀빛의 가루들이 우리들 몸을 감싸듯 회전하면서 나타났다가 제 할 일을 다 하고는 사라졌다.
챠밍이 남은 마력으로 나와 방패전사, 이쁜소녀에게 돌아가면서 힐을 계속 퍼붓고 있는 중이다.
정말 이것만 버티면 끝나니까 아낌없이 써대는 중.
곧 헬하운드들이 찢어지는 울음소리를 내더니 풀썩풀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우리의 몸에서 레벨 업을 알려주는 밝은 빛의 회오리가 발끝부터 생겨나서 온몸을 감싼다.
“18!”
방패전사가 기쁜지 입 밖으로 그대로 레벨을 말했는데 그걸 들은 모두의 눈초리가 방패전사에게 확 돌아갔다.
모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순간 당황한 방패전사가 양손을 저으면서 해명을 한다.
“어…… 이거 욕 아닙니다.”
“열여덟요!”
이쁜소녀가 살짝 웃으면서 말을 정정해 준다.
방패전사도 이쁜소녀를 따라 멋쩍어하면서 웃어 보였다.
“진짜 하루 만에 따라잡았네요.”
“정말요.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네요.”
챠밍이 헬하운드가 다 죽고 난 뒤에야 겨우 긴장이 풀린 듯이 살짝 미소를 짓더니 이내 같이 감탄을 한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 일이 잘 풀릴지 몰랐으니까.
“나르샤 님이 원체 잘 몰아 오셔서.”
내가 나르샤를 보자 나르샤가 오랜만에 기쁜 표정을 해 보인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잘 몰아와서 전문적으로 몰이를 배운 건가 궁금할 정도였으니.
처음에 열 마리부터 시작하더니 점점 숫자를 더해 마지막엔 열다섯 마리까지.
이 근처에 헬하운드가 그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알뜰하게 싹싹 긁어서 데리고 왔다.
몰아오는 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잠시 정비하다 보면 우르르 데리고 와버리니 정말 쉴 틈 없이 잡았다.
“3세대 때 비슷하게 많이 해봤어요. 오랜만에 몰아보니 재밌네요.”
경험이 많다는 거네.
방패전사가 거기에 부연 설명을 해준다.
“나르샤가 원거리를 많이 하는 편이라서 몹을 여기저기서 빠르게 플링 해오면 제가 어글 스킬로 모으고 그랬죠. 뭐, 이렇게 원거리 몹은 잘 안 모는 편이긴 한데 지금은 좀 특수한 경우니까요.”
뭐, 딱히 몰아올 몹이 트윈 헤드 헬하운드 밖에 없기도 하고.
“주호 님 없었으면 이건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원거리 몹이 정말 몰기 힘들거든요. 모는 것까진 어떻게 한다고 해도 어글 스킬도 없는 마당에 전부 챠밍 님한테 공격이 집중되니까요.”
나도 내가 없었으면 이건 안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챠밍에게 날아오는 모든 마법 공격을 쳐내야 하는데 보통은 거기서 딱 막히니까. 쪽수로 해결할 수준은 아득히 넘어간다.
“저 말고도 각자 잘 해주셔서 오늘 정말 제대로 사냥해봤네요.”
정말 지금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없었으면 이건 실행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나르샤가 화살로 잔뜩 몰아오고 방패전사, 이쁜소녀가 한 마리도 못 올라오게 막아내고 챠밍이 딜링을 책임지고 내가 챠밍을 보호하는 이 구조가 안 나왔으면 성립이 안 되는 몰이다.
“다들 접속시간 얼마 안 남으셨죠?”
“네, 오늘 거의 다 쓴 것 같아요.”
챠밍이 오른쪽 상단의 시계표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거의 같은 시간대에 접속을 해서 아마 대부분 시간이 없을 거다.
VRS 하루 접속 제한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다른 것은 다 바꿔도 이것만큼은 무슨 짓을 해서도 바꿀 수 없다.
이건 뇌를 그만 혹사하고 나가서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잠도 자라는 소리다.
“더 하고 싶지만 여기서 접어야겠네요.”
“아쉽다…….”
이쁜소녀가 내심 아쉬운지 말을 삼킨다.
충분히 저 마음 이해한다. 나도 지금 엄청나게 아쉽거든.
이 몹들의 천국을 버리고 접속을 끊어야 한다니…… 이건 고문이지.
언제 이렇게 몰아서 제대로 사냥을 해보겠는가.
그간 한 마리씩 잡아 오던 시절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젠 몰이 안 하면 아쉽겠는데.
“제한 시간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죠.”
챠밍이 말은 저렇게 해도 아쉬운 건 역시 마찬가지 같아 보인다.
“내일도 이렇게 사냥 가능할까요?”
방패전사가 약간은 자신 없는 말로 물어본다.
뭐 딱히 답을 원해서 물어본 것은 아닌 것 같고.
“글쎄요. 저희가 나가 있는 동안에 패치를 할 수도 있고…… 아님, 사람들이 저희처럼 방법을 찾아서 사냥하던지, 변수야 많죠.”
“지금이 진짜 딱 좋은데…… 아흐. 아까워 죽겠네요.”
“어쩔 수 없죠. 그럼, 정리하고 들어가죠.”
“네, 드랍 템들 정리 좀 하겠습니다.”
“고생 좀 해주세요.”
이런 건 방패전사가 엄청 빠르고 정확하다.
솔직히 난 귀찮아서 못 하겠고.
시세를 저렇게 다 꿰고 다니는 건 정말…….
서버 바꾼 지 하루도 안 됐는데 가격별로 착착 나누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고 생각 밖에는 안 든다.
“나눠보니 개인당 거의 500 정도 나오네요. 낮에 7강 단검까지 팔면 600도 넘게 나올 겁니다.”
방패전사가 온라인용 계산기를 끌어와서 계산하다가 혀를 내두른다.
“엄청나네요.”
고작 몇 시간 몰이 사냥을 했을 뿐인데.
역시…… 사냥은 몰이가 진리구나.
챠밍과 이쁜소녀도 나르샤와 함께 지붕 위에 앉아서 방패전사가 아이템을 나누는 것을 구경하다가 깜짝 놀라는 모습이다.
“보스를 잡은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나와요?”
“엄청 많아요…….”
챠밍와 이쁜소녀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이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니까 방패전사가 한마디로 압축해줬다.
“저희가 2시간 동안 잡은 헬하운드 수가 거의 3일 동안 풀로 잡은 거랑 비슷할걸요?”
“아…… 우리가 정말 많이 잡았네요.”
“정신없이 막기만 해서 잘 몰랐어요.”
이해가 가는 것이 솔직히 나도 얼마나 잡았는지 전혀 몰랐다. 정리 좀 하려고 하면 나르샤가 몰아오고 잡는 것을 반복했으니까.
나중에 끝나고 생각해봐야지 했는데 정말 많이 잡은 셈이다. 3일 동안 잡아야 할 몹을 2시간 만에 다 잡다니.
오늘 정말 첫날부터 여러 가지로 버라이어티하네.
사냥터를 통째로 가로질러서 던전으로 직행하고 거기서 사냥터를 뺏으러 오는 놈들 한번 털어주고, 1구역 와서는 헬하운드가 난동을 부려서 그걸로 몰이사냥 하고.
확실히 도시섭이 재밌긴 하다.
아르쉴라 서버에서 여기 필리언 서버로 넘어오니 활기가 팍팍 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재중이 형 말대로 넘어오길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레벨을 복구하는데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걸 보란 듯이 깼다.
단 하루.
원래 서버에서 마지막 렙이었던 18렙을 하루 만에 찍었다.
접속해 있으면 말해줄 건데 재중이 형도 접속 제한 시간 때문에 한참 전에 나갔다.
나가서 재중이 형에게 말해주면 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지 벌써 궁금해지는데?
***
“이거 샤르르 녹는데?”
“그게 얼마짜린데 당연히 녹아야죠.”
둘이서 먹는데 해물탕 특자에 옆엔 각종 조개구이가 석쇠 위에 가득 있고 그 위에선 치즈가 지글지글 끓고 있는 중이다.
약속한 대로 이 근처에서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가장 큰 해물 가게로 재중이 형을 데리고 왔다.
벽면엔 그간 왔다 간 연예인들 사진과 사인이 잔뜩 걸려 있고, 어디 방송에서 왔다 갔다는 표지도 많이 붙어 있다.
어쩌다 정말 연예인들도 볼 수 있다는데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보통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가보면 맛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긴 그나마 선방하는 곳 중 하나다.
거기다 제일 좋은 점은 일단 집에서 가까우니까.
그래서 재중이 형하고 내가 가끔씩 찾는 곳이기도 하다.
재중이 형을 따라 치즈가 눌어붙어 뜨끈뜨끈하고 두툼한 조갯살을 한입에 넣으니 육즙이라고 해야 하나? 짭조름하고 해산물 특유의 쫄깃함이 입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이 맛에 여길 오는 거지.
술을 부르는 맛이다. 마실 순 없지만.
그게 아쉬운지 재중이 형도 술 대신 해물만 입에 우걱우걱 밀어 넣고 있는 중이고.
재중이 형이 두 손 가득 해물탕에서 건져 올린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를 해체하고 있고 입으로는 쫄깃한 관자를 우물거리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다가 내 렙을 듣더니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변해서 날 보고 있다.
“넌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18?”
마지막에 욕 같이 들렸는데 착각인가? 발음이 좀 세게 나온 것 같은데…….
주변에 왁자지껄한 소리에 묻히긴 했는데 누가 들으면 정말 욕으로 들릴지도.
“이거 욕 아니다?”
“알아요.”
“표정은 아닌데? 아무튼 뭔 짓을 했기에 하루 만에 18렙을 만들어?”
“그냥 사냥 좀 빡세게 했어요.”
“이게 좀이냐?”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사냥터가 없어서 고생할 줄 알고 일부러 2구역 사냥터까지 뺐다시피 내일 예약해놨는데…… 하루도 안 돼서 원래 렙을 복구해 버렸다라…… 이거 지금 실화냐?”
“이 정도는 해야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재중이 형에게 내가 싱긋 웃어 보였다.
“큰물에서 놀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