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여기가 도시섭? (5)
내가 어이없이 쟤들을 쳐다보다가 방패전사를 바라보니 방패전사가 한숨을 쉰다.
“저런 애들은 어딜 가나 있네요. 자기 자리라면서 내어달라는 애들요. 저희 숫자가 적으니까 만만해 보여서 저러는 겁니다.”
확실히 3세대를 하다 와서 그런지 이런 경험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챠밍, 이쁜소녀도 나처럼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고 나르샤는 그저 활만 만지작거리고 하고 있다.
나르샤는…… 방패전사처럼 비슷한 경험이 많겠네.
방패전사가 내게만 들릴 듯 살짝 이야기한다.
“일단, 그냥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재들 보니까 이미 마음먹은 것 같은데 쉽게 안 물러날 겁니다. 저희가 여기서 몇 시간 동안 사냥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모른 척할걸요.”
“진짜 뻔뻔하네요.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방패전사가 내 말에 그저 웃어 보인다. 방패전사도 지금 어이가 없겠지.
“여긴 뭐, 그냥 칼질 잘하는 놈이 법입니다. 명분 그런 건 일단 쥐어 패고 난 뒤에 생각해도 안 늦어요.”
“이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더 알 것 같네요.”
확실히 1서버로 건너오고 첫날부터 버라이어티하네.
재중이 형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쟁하러 간 상태고, 여긴 사냥하다 보니 파리 같은 애들이 들러붙고. 아르쉴라보다는 확실히 바빠질 것 같은 그런 예감이 가득 든다.
백골이 해준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구나.
방패전사가 앞으로 나서고 내가 챠밍에게 슬쩍 다가가서 미리 작전을 이야기해줬다.
“큰 거로 한 방 준비해요. 타이밍은 시작하자마자.”
내 말에 챠밍이 굳은 표정으로 곧장 고개를 끄덕인다.
“이쁜소녀 님은 방패전사 님이 커버 못 하는 곳으로 부탁드릴게요.”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나르샤 님은 가능하시면 챠밍 님과 함께 일점사요. 나머진 하시던 대로.”
나르샤는 접전을 앞두고 있음에도 담담한 모습이다. 평정심이 궁수에겐 중요하지. 조금만 흔들려도 화살이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니까.
“이야기 다 끝나셨으면 이제 좀 물러나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저희가 님들 때문에 사냥을 계속 못 하고 있네요.”
단검을 든 사내가 빈정거리듯이 다시 우리가 사냥터에서 나가기를 재촉한다.
철판이 저 정도면 완전히 전차에 들어가는 특수 강판 수준인데?
“뭐 말해도 알아먹을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가 여기서 사냥한 시간이 몇 시간이 넘어가거든. 요즘은 물약을 만들어서 사 오나? 몇 시간씩 걸리게. 그리고 멀쩡한 사냥터 놔두고 다 같이 물약 사러 가는 바보들이 어디에 있어?”
내 말을 바꿔서 들으면 너희들은 사냥터를 놔두고 단체로 물약을 사러 가는 머리가 모자란 바보들이라는 뜻이다.
내 말과 함께 우리가 전부 어이없다고 쳐다보니 뒤쪽의 여성 둘이 그래도 아주 약간의 양심은 남아 있는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돌린다.
쟤들도 지금 이게 얼마나 억지인지 아니까 저런 표정이 나오는 거다.
앞에 단검을 든 사내가 내가 비꼰 것이라는 것을 아는지 곧장 안색이 굳어진다.
“말로 해서는 안 듣네. 좋게 말할 때 물러나지. 그냥 쳐!”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단검을 든 사내가 신호를 하자 곧장 저놈들 뒤쪽에서 나를 노리고 화살이 튀어나왔다.
쟤들은 내가 누군지 알면 화살을 쏘고 그러진 않았을 텐데.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네.
곧장 플레임 소드로 날아오는 화살의 촉을 옆으로 쳐내니 화살이 힘을 잃고 바닥에 볼품없이 나가떨어졌다.
“뭐?!”
내가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을 그 자리에서 쳐내버리자 녀석들이 표정이 보기 좋게 변한다.
【 파이어월! 】
그리고 챠밍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파이어월을 날려서 녀석들이 몰려 있는 한가운데 꽂아 넣으니 입구 쪽에서 터져 올라오는 화려한 불기둥의 향연.
타이밍 좋고.
파이어월이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좁은 입구 쪽에 제대로 가서 꽂혔다.
“피해!”
좁은 공간에서 녀석들이 불기둥을 피한다고 우왕좌왕하다가 서로 밀치고 밀리고 난리가 났다.
선두에서 입을 털었던 쌍 단검을 역으로 쥔 남자가 불기둥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오더니 곧장 선두에 있던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단검에 라이트 소드까지 입힌 것을 보니 본인 스펙에 꽤 공을 들인 것 같은데.
【 라이트 소드! 】
똑같이 라이트 소드를 켜고 플레임 소드를 녀석의 목을 향해 정확하게 휘두르니 녀석이 급하게 스탭을 밟아 아슬아슬하게 뒤로 빠졌다.
전에 서버에서는 내 검을 피하던 녀석이 백골밖에 없었는데 여긴 오자마자 바로 보인다.
아마 화살을 튕겨낸 내 쪽이 제일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하고 빨리 처리하기 위해 제일 잘 싸우는 녀석이 붙은 모양이다.
내가 라이트 소드를 켜자 스펙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돌면서 빈틈을 노리려고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귀찮게 구는데.
집중을 더 끌어올리니 녀석의 발의 스탭과 나아가는 방향, 반동하는 위치, 힘, 가속 모든 것이 감각 속으로 들어와 정보로 변해 내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돌고 있는 녀석에게 따라붙어서 플레임 소드를 휘두르니 그걸 피해서 사이드로 빠져나가려는 것을 다리를 더욱 박차면서 허리를 강하게 회전시켜 몸의 중심을 녀석에게 기울였다.
동시에 몸의 회전을 그대로 실어서 비틀어져 나가는 팔과 손목의 스냅의 끝에서 아이스 소드가 춤을 추듯 쭉 뻗어져 나가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의 목을 정확하게 베고 지나갔다.
“뭐?!”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지 녀석이 안 움직여지는 몸을 애써 움직여보려고 아등바등하는데 될 리가 있나.
“다시 물약이나 사러 가라. 또 오면 더 고맙고.”
라이트 소드가 입혀진 아이스 소드와 플레임 소드를 전부 들었다가 녀석의 머리에 내리꽂으니 녀석이 죽음의 이펙트를 내면서 사라졌다.
녀석이 죽은 자리에 조금 전에 휘두르던 단검이 그대로 남아서 바닥에서 회전하는 중이다.
이건 나중에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파이어월이 펼쳐진 입구 부근에서는 여전히 난리가 나서 서로 밀치는 중에 챠밍의 바인드와 나르샤의 풀차징 화살에 맞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두 명의 HP가 순식간에 내려가서 죽어버렸다.
남은 사람 중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두 명은 뒤로 빠지고 근접격수인 세 명이 앞으로 튀어나와서 공격하는데 방패전사가 앞에서 막아주고 이쁜소녀가 라이트 소드를 켜고 옆을 커버해 버리니 아예 넘어오지도 못하고 있다.
원거리에 남아 있던 궁수와 마법사 여자가 지원한다고 계속 화살과 마법을 날렸는데 방패전사와 이쁜소녀가 쉽게 맞아주지 않으니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녀석들을 잡기 위해 뛰어들어가니 곧장 화살과 마법이 내게로 쏘는데 그걸 모조리 쳐내거나 빗겨내 버리니 질린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귀환해서 도망가 버렸다.
남은 세 명은 챠밍의 아이스볼과 나르샤의 정확한 헤드샷이 지원을 하니 순식간에 녹아 죽음의 빛으로 변했다.
자기편들이 도망간 것도 몰랐나? 불리해졌으면 그냥 도망가는 편이 나을 건데.
“여기 다 잡았어요.”
“저희 끝났어요.”
“이제 없어요.”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가 동시에 외친다.
“와…… 지들끼리 도망가네. 의리 진짜 없네요.”
방패전사가 도망간 두 명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도 입꼬리가 확 올라간 것이 쟤들이 떨어뜨리고 간 템들이 적지 않다.
“어디 보자. 오…… +7 워 울프 단검. +5 워 울프 부츠, 워 울프 반지도 떨어뜨리고 갔네요.”
응? 잘못 들었나? 7강?
“정말 7강짜리네요.”
챠밍이 옆에서 보다가 역시 깜짝 놀라고.
“와! 득템했어요!”
이쁜소녀 역시 같이 구경하다가 굉장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저거 거의 부가 효과 안 붙은 네임드랑 비슷한 값인데 전투 한 번으로 완전 대박을 건져 올렸다.
보스는 잡기라도 힘들지, 그놈은 그냥 지나다니는 잡몹보다 못한 수준인데…… 보물상자네. 완전.
“저기 우리 그냥 이쪽으로 진로 변경할까요?”
내가 농담 삼아서 그렇게 얘기하니 모두 웃어 보인다.
그만큼 대박이거든.
얼마쯤 나오려나? 이 서버는 시세가 비싸기도 하고 단검은 시세를 모르니. 적게 나와도 500만은 넘을 것 같은데?
“방패전사 님 이거 처분 가능하시죠?”
“네, 어떤 식으로 원하세요? 아르? 현금?”
“지금은 아르가 낫겠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아르가 나은 것 같아요. 저희 서버 옮긴다고 거의 무일푼이잖아요.”
챠밍이 주머니가 없지만, 양손으로 허리 아래 주머니를 잡는 시늉을 해 보이자 다시 모두 웃는다. 템 하나로 웃을 일이 많아서 좋네.
“저도요.”
이쁜소녀도 괜찮다고 손을 들고, 나르샤도 고개를 끄덕인다.
만장일치네.
“그럼, 방패전사 님이 이따가 아르로 처분해서 나눠주세요.”
“안 그래도 아르가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잘됐네요.”
넘어올 때 각자 조금씩 바꾸긴 했는데 수수료가 들다 보니 그렇게 많이 바꾸지는 않은 상태다.
“그놈들이 효자네요.”
“또 올까요?”
이쁜소녀가 불쑥 물어보니 방패전사가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당하고 또 오면 정말 바보죠. 템 찾으러 온다고 독기 품고 올 수도 있겠지만.”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이쁜소녀가 양손검을 슬쩍 휘둘러 보인다. 전에 켈베로스 길드랑 한판 붙을 때 뭔가에 눈을 뜬 느낌인데?
그때 엄청 집중하면서 싸우더니 컨트롤도 지나칠 정도로 좋아졌다, 싸울수록 강해지는 그런 느낌이려나.
“그럼, 다시 사냥하죠. 템 처분은 방패전사 님께 맡길게요.”
“단검이랑 반지는 판다고 하고, 부츠는 어떻게 할까요?”
부츠라…….
어차피 난 잘 안 맞기도 하고 신발은 이속이 붙은 네임드를 쓰고 있어서 굳이 필요가 없긴 하다.
부츠의 방어가 높다 보니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방패전사에게 간다.
“어…… 그럼, 제가 가격을 알아보고 사는 거로 하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방패전사에게 토스.
8마리가 다시 젠 되어 있어서 좀 귀찮긴 한데 방패전사와 이쁜소녀가 시선을 끌고 내가 따라다니면서 하나씩 경직시키거나 아이스 소드로 못 움직이게 만드니 챠밍과 나르샤가 하나씩 착실하게 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
솔직히 한 번 정도는 더 덤벼들지 알았는데 그 뒤로 한참을 사냥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어 우리를 조금 실망케 했다.
전에 자리를 넘겨준 팀이 다시 와서 자리를 내어주고 우리도 좀 쉬는 타임을 가졌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8마리 자리를 레벨이 낮은 5명이 하려면 정말 쉴 틈도 없이 사냥하는 수밖에는 없어서 다들 꽤 지친 상태니까.
그사이 재중이 형에게 귓말을 넣어봤다.
―형, 혹시 킹덤 길드라고 알아요?
<불멸> 걔들은 왜?
―아까 좀 충돌이 있어서요.
재중이 형에게 아까 늑대굴에서 있던 이야기를 해주니 곧장 답장이 온다.
<불멸> 오자마자 바로 재미 봤네. 뭐, 그런 애들 한둘이 아니라서 일일이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길드 정도인가?
<불멸> 귀찮을 것 같으면 내가 경고 한 번 날려줄까? 그럼, 아주 쥐 죽은 듯이 지낼 거다.
―아뇨, 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알아서 하죠.
이건 애들끼리 싸우고 부모에게 가서 이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 단번에 거절했다.
싸워도 내 손으로 끝내는 것이 모양이 좋지.
<불멸> 렙은 좀 올랐냐?
―14렙이요.
<불멸> 생각보다 훨씬 빠르네, 으음, 어쩐다. 사냥터는 좀 있어 봐. 어떻게든 구해줄게. 안 되면 2구역에라도 자리 빼줄 테니까.
―네, 일단 다른 데서 놀고 있죠, 뭐.
<불멸> 그래, 좀 이따가 보자.
시간을 보니 접속 종료 전까진 제법 시간이 남아 있다.
레벨은 하루 만에 14까지 올린 상태.
전에 이걸 몇 주 만에 올렸더라?
일단 우리가 열심히 사냥한 것도 있지만.
이건 진짜 돈질의 힘이다.
템이 안 받쳐줬으면 던전에서 사냥조차 못 했을 테니까.
“흠, 사냥터도 막혔고. 이제 뭐 할까요? 그냥 필드로 나갑니까?”
방패전사가 문득 날 바라보면서 물어본다.
던전에서 빠른 젠으로 사냥하다가 필드로 나가려면 좀 많이 아쉬운데.
사냥터가 없다라…….
어쩐다?
멍한 머릿속과는 별개로 나도 모르게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헬하운드가 1구역…… 1구역 한 번 가보죠?”
말해놓고 보니 그럴싸하다.
1구역은 딱히 자리 개념이 없으니까.
사냥만 가능하다면.
접속 첫날부터 외성 1구역으로 가자는 내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이 왠지 따갑게 느껴진다.
알아, 이건 내가 봐도 좀 미친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