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35화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9)
외성을 통과해 외성 1구역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트윈 헤드 헬하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싸우던 요령으로 곧장 달려들었다.
다들 잘 싸우네.
헬하운드는 이제 일반 몹 마냥 오는 족족 녹여주고 있다. 아예 순찰 통로에 딱 자리 잡고 오면 하나씩 잡아주니까 몹이 몰릴 일도 없고 순조롭게 사냥 중이다.
“여유가 꽤나 있네요.”
응? 분명히 이쯤에서 브레스가 나온다고 방패전사가 알려줄 때가 된 것 같은데? 혹시 잊어버렸나?
내가 딜을 하기 위해 약간 측면으로 처져 있었는데 그때 화염 브레스가 쏘아져 나와서 방패전사를 덮치기 시작했다.
너무 떨어져 있었던 탓에 저건 도저히 쳐내 줄 수가 없다. 방패전사가 버티기야 하겠지만…….
“어?”
【 힐! 】
방패전사의 온몸에서 하얀 광채가 이중으로 번쩍인다. 챠밍을 보니 챠밍도 힐을 주고 있긴 한데 마찬가지로 방패전사도 자신의 몸에 힐을 걸어서 물약 효과와 더불어 HP가 오히려 더욱 차오르고 있다.
방패전사가 방패로 헬하운드의 불꽃 브레스를 받아내면서 여유 있게 웃어 보인다.
“흐…… 이제 좀 탱 같은 느낌입니다.”
아까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모습이더니 금세 복구됐네. 콧대를 바싹 세우고 웃는 것이 이미 다 잊은 듯하다.
확실히 성격이 좋네. 그리고 난 그런 방패전사의 저런 모습이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계속 처져 있었으면 내가 불편했을지도.
방패전사가 하루 만에 또 다른 스타일로 변해서 왔다. 어제 호되게 당하더니 하루도 안 돼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파훼 법을 익혀왔다. 어차피 맞을 거라면 맞아가면서 본인이 자신에게 힐을 넣는 방법으로.
혼자서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고정관념을 깬 느낌이지.
* * *
이름 : 방패전사
레벨 : 19 ▲1
【근력 5】 【민첩 3+1】 【체력 4+2】
【지력 0+2】 【마력 1】
힐 ◀ NEW
3 트윈 헤드 워 울프 라지 쉴드 / 방어력 8+3
체력 +1
워 울프 반지 지력 +1 ◀ NEW
워 울프 팔찌 민첩 +1
워 울프 반지 지력 +1 ◀ NEW
워 울프 목걸이 체력 +1
* * *
근력과 체력 반지 두 개를 아예 지력으로 바꿔왔네. 민첩은 더 떨어지면 반응이 느려지니까 그냥 둔 것으로 보이고.
“이번 컨셉은 성기사입니다.”
방패전사가 빛무리에 번쩍이면서 두 손을 허리에 집고 화끈하게 웃어 재낀다.
뭐, 좋긴 한데 가끔 좀 쪽팔릴 때도 있는 것 같다. 저런 모습은…….
“정말 못 말리겠네요.”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까 브레스를 정면에서 맞으려는 것을 보고 피하지 못해서 맞는지 알고 깜짝 놀라서 달려가려 했던 내가 민망해질 정도.
챠밍, 이쁜소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나를 보면서 미소 짓는다. 혼자 몰래카메라를 찍힌 기분인데? 일부러 말 안 해줬구나.
서프라이즈 하려고.
“이게 기본 힐량이 있으니까요. 지팡이가 없어도 지금 단계에서 어느 정도는 힐량이 보장됩니다. 챠밍 님만큼 많이 채울 수는 없어도 말이죠. 그리고 마력을 전부 힐로 써버리면 그 양도 만만치 않거든요. 마력이야 다시 차니까 걸어 다니는 물약이죠.”
방패전사는 방패 덕에 방어 자체가 높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가 굉장히 방패를 잘 써서 강한 공격도 어느 정도 흘려내는 것도 수준급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HP가 훨씬 적게 닳기도 하고. 이번 마법 브레스 같은 경우가 마법 방어 때문에 특별히 많이 깎인 것이지 나머지 경우에서는 철벽같은 느낌까지 드니까.
아마 방패에 마법 방어 같은 것이 있었다면 브레스도 나처럼 빗겨내는 식으로 해서 대미지를 낮출지도 모르겠네. 방패 쓰는 기술 하나만은 진짜 장인급이다.
내가 당장 방패를 들어도 저 정도 퀼리티는 바로 따라 하기 힘들다. 저건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가 집약된 거 같으니.
아무튼, 이런 몰래카메라면 언제든 당해줄 수 있지.
더 이상 헬하운드가 브레스를 쏠 때 내가 그 순간을 포착해서 소드로 쳐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언제 브레스를 쏠지 계속 쳐다보는 것도 곤욕이라 이제 상당히 편해지겠네.
자리를 내 마음대로 옮기기가 힘드니 딜 하는데 제약이 좀 걸렸는데 방패전사가 저런 식으로 앞에서 딱 버텨주면 이제는 완전 프리하게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능을 올리면 힐을 배울 수는 있기는 한데. 현재 1단계로 분류되는 매직 애로우도 배울 수 있겠고. 나중에 지력을 올리게 되면 두 개 다 일단 배워놔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
“이제 늑대의 혼은 모을 필요도 없겠습니다.”
방금 죽은 헬하운드가 있던 자리에 완제 방어구가 둥둥 떠서 돌아가고 있다.
“정말 생각보다 잘 나오네요. 완제가.”
난 이미 다 모았으니 지금은 내 몫의 완제는 우리 팀원들에게 저렴하게 넘기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사냥하면 팀원들도 전부 풀셋으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들 구하다 보니까 늑대의 혼의 가격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하루에 여기서 사냥하면서 모으는 완제만 내다 팔아도 하루에 백만 원은 거뜬할 정도다.
그 때문인지 무리해서라도 슬슬 1구역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길드들이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분명히 어제는 한 명도 안 보이던 것이 지나가다 보니 가끔 몇 팀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컨이 좀 딸려도 장비와 수가 어느 정도 되면 죽는 것을 각오하고라도 잡을 수는 있으니까.
방패전사의 방패 컨과 내 아이스 소드가 없으면 제멋대로 날뛰는 헬하운드를 제대로 제어할 수가 없으니 물약을 다 쓸 것을 생각하고 잡으면 몇 마리는 잡을 순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바에는 그냥 2구역에서 착실하게 사냥하는 것이 나을 건데 좀 무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팀도 있다.
사람 욕심이란 참…… 끝이 없어 보인다.
***
이제 안정 되게 헬하운드 전방에서 탱을 하는 방패전사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빙 돌아 나와 이쁜소녀가 공격에 들어가고 곧 화살과 마법 지원이 쏟아지니 헬하운드가 생각보다 빠르게 쓰러졌다.
“이것도 자꾸 하니까 할 만하네요.”
방패전사가 방패를 두드리면서 말한다. 브레스 쿨타임과 모션을 잘 기억해서 제때 힐만 쓰면 나머진 근접 박투니까. 그건 방패전사의 전문이다.
한 마리씩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잡다 보니 꽤나 깊은 곳까지 들어와 버렸다.
“흠, 두 마리입니다. 어쩔까요?”
방패전사가 자세를 낮추고 물어온다.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도록.
보통은 두 마리면 피하는데 오늘은 목표를 보려면 좀 더 들어가야 하니까 여기서 피해서 뒤로 빠지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가는 길에 또 두 마리가 없다는 보장도 없고, 재수 없으면 세 마리에 쫓길지도 모르지.
일단 목표는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방패전사 님, 혹시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셨나요?”
그러면서 재중이 형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입니까? 라이트 소드가 으음…….”
방패전사의 눈이 번쩍거리는데? 이건 내 눈빛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욕심, 탐욕.
“사실 저도 딜량이 좀 문제가 있으니까요. 라이트 소드가 있으면 모자란 딜을 충분히 보충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이쁜소녀 님이 저렇게 펑펑 터뜨리는 것을 보고도 욕심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위험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초입이라 견딜 만한 것이지 더 들어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거…… 저희가 언제는 안 위험한 짓만 했나요? 주호 님이 매번 위험한 길로 끌어들여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전 괜찮습니다.”
방패전사 이 사람 나한테 너무 물들었네.
일단은 이 골목으로 지나가려면 지키고 있는 저 두 마리를 잡아야 한다.
팀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목표는 좀 더 들어가야 합니다. 다들 고생 좀 해주세요.”
“전 괜찮아요. 언제는 쉽게 갔나요.”
챠밍이 미소 지으면서 대답해 주고, 이쁜소녀는 아무 말 없이 글레이브를 꽈악 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르샤도 이미 정면을 주시하고 있고.
“제가 한 마리 잡고 버팁니다. 가시죠.”
내가 신호를 하자 방패전사가 두 마리 중 하나에게 빠르게 뛰쳐나갔다.
저쪽은 이제 어떻게든 잡을 것이다. 문제는 나고.
나 혼자서 반대쪽의 헬하운드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혼자 상대해 보는 것은 오랜만인데?
아이스 소드로 바로 날아드는 화염 브레스를 빗겨내면서 파고 들어가 브레스를 쏘고 난 뒤에 화염을 쏘아낸 머리의 목을 빠르게 갈랐다.
확실히 브레스를 쓰고 난 뒤에는 잠시지만 움직임이 느려진다.
거기에 아이스 소드의 결빙 효과도 더해져서 느릿느릿해진 머리를 일단 내버려 두고 곧장 얼음을 쏘는 머리를 플레임 소드로 가르면서 지나가고 바로 돌아서서 다시 목을 그었다.
화염 브레스는 당분간 신경을 안 써도 되니까 얼음 머리 쪽만 신경 쓰면 된다. 이렇게 거리가 가까울 땐 미리 준비 모션을 봐야 겨우 쳐낼 수 있으니까.
플레임 소드로 계속 날 따라서 빙빙 도는 얼음 머리의 목을 같은 곳만 계속 그으니까 이상할 정도로 경직이 빨리 찾아오더니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눈에 얼음 잔광이 사라져 버렸다.
뭐지? 이렇게 브레스 쓸 시간도 없이 빠르게 머리 하나가 죽을 리가 없는 데?
저건 경직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머리 하나가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다.
반대로 남은 화염 머리에 아이스 소드로 계속 머리를 그어봤는데 결빙 효과만 일어날 뿐 죽지는 않는다. 계속 피하면서 목을 갈라도 마찬가지.
지금껏 팀플레이를 위해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 수 있는 아이스 소드를 주로 쓰고 부가 플레임 소드다 보니 플레임 소드로 같은 곳을 그을 일이 잘 없었는데 혼자 잡다가 보니까 확실히 플레임 소드에 뭔가가 있어 보인다.
조금 늦게 반응을 보기 위해서 플레임 소드로 목이 아닌 몸통 부분의 같은 자리에 계속해서 그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트윈 헤드 헬하운드가 울음을 내더니 곧장 죽어버리면서 아이템을 토해놓고 사라졌다.
이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내가 헬하운드를 쓰러뜨리고 잠시 기다리니 방패전사가 맡은 헬하운드가 죽는 모습이 보인다. 곧장 날 돕기 위해 고개를 돌리던 방패전사가 깜짝 놀란 눈을 한다.
“뭡니까? 그게 왜 죽어 있습니까?”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역시 깜짝 놀란다.
“벌써 잡으셨어요?”
“어? 말도 안 돼요.”
“이건 좀…….”
놀랍지?
내가 더 놀랍다. 지금.
무심코 손에 들린 플레임 소드를 바라봤다. 아이스 소드에 밀려서 그저 좀 좋은 네임드 무기인 줄 알았던 녀석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대체 넌 뭐냐?
***
머릿속은 온통 플레임 소드에 대한 것으로 가득한 것과는 별개로 점점 외성 1구역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이거, 점점 몬스터들이 바뀌기 시작하네요.”
오는 길에 잡은 것이 거의 헬하운드였는데 어느 기점을 지나니까 멀리 궁수나 거대한 양손검을 든 다시 2족 직립형 라이칸스로프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저것들이 재중이 형이 말해준 엘리트 몹일 거다.
대부분이 모여서 움직이는데 반해 주변 길을 어슬렁거리며 단독으로 지나가는 아주 큰 라이칸스로프가 보인다.
확실히 모습이 좀 다르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이빨도 훨씬 길고 날카롭고 갈기 색도 훨씬 진하고 어둡다. 마치 흑기사라고 부를 정도로 검고 엄청나게 단단한 보이는 갑주를 입고 있다.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름이 완전 다르네요.”
챠밍의 물음에 이쁜소녀가 검붉은 라이칸스로프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느 정도인지 가늠을 하는 걸까.
묵직한 무쇠 갑옷 같은 무장에 양손에 각각 거대한 배틀 액스를 들고 있으면 누구나 강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냥 딱 봐도 엄청 세 보이거든.
“조금 강해 보여요.”
이미 눈빛은 저 몬스터에게 가 있구나. 이쁜소녀가 자신의 글레이브를 들었다 놨다 준비를 한다. 확실히 이럴 땐 믿을 만하다. 어떤 몹이 눈앞에 나타나도 결코 물러서지 않지.
“주호 님 저겁니까? 엘리트 몹이?”
“네, 이름을 보면 맞는 것 같네요. 저게 엘리트입니다. 흠, 저희가 싸운 헬하운드 있죠? 그거보다 좀 더 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재중이 형 말에 의하면 엘리트 위에 챔피언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 엄두도 안 나고.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다들 엘리트란 말은 처음 듣는지 의아해한다.
“엘리트라…… 그럼 강하겠네요?”
나르샤의 눈빛의 갸르릉거리는 야수의 눈빛으로 변해서 반짝인다.
“네, 아마도요. 다들 긴장하고 갑시다. 정말 셀 겁니다.”
내 말에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를 향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