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Lost Sky Online (2)
“운도 좀 따랐지. 노력도 좀 들어가고. 어제저녁부터 새벽까지 계속 점검했잖아.”
“네, 아까 공지 보니까 점검 진짜 많이 했던데요.”
“게시판 보니까 점검 끝나고 빨리 접속한 사람이 미친 듯이 달리면 벗어날 수 있다고 누가 올려놔서 그것도 시도해 봤는데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데 그게 될 리가 있나. 아무리 빨리 접속해도 안 돼. 무슨 게임을 이따위로 만들었나 싶어서 나가려는데 그때 보였지.”
“뭐가 보여요?”
“조금 옆에 어떤 남자 새끼가 다른 사람한테 밀리는 것도 아닌데 붐비는 지하철에서 은근슬쩍 몸을 미는 수준으로 앞에 있는 여자한테 자꾸 비비적거리는 게 보이는 거야. 뒤돌아보면 아닌 척하고. 여자가 사람들 사이로 벗어나려고 해도 자꾸 따라붙는 게 완전 진상이던데.”
“저런, 저 같으면 칼 꺼내서 바로 찔러버렸을 건데.”
“너…… 무서운 놈인데?”
“그렇지 않나요? 게임에다 칼 있겠다. 바로 칼침 놓아주면 되죠.”
“너 의외로 이 게임 잘하겠다. 이미 싹수가 보이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는다.
“여자가 몇 번 돌아보면서 그놈을 향해 뭐라고 소리쳐도 그 변태 놈이 모른 척하던데? 그놈이 딱 주변에 안 들킬 만큼 교묘하게 붙어서 신고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로그아웃 방법 찾는지 창 띄우고 찾는 분위기더라.”
“거지 같은 놈한테 걸렸네요. 근데 그냥 로그아웃했으면 이렇게 이야기 하실 리는 없고, 뭔가 하셨죠?”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뭐, 사람들 헤치고 따라붙어서 단검으로 녀석 머리를 그대로 찍어줬지. 와…… 오싹하던데?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괜찮더라. 찌를 때 느낌 자체는 없는 편이지만. 상처도 그냥 붉은색 실선으로 보이고 딱히 피가 튀는 것도 아니라 별로 잔인할 것도 없고.”
“이 무서운 사람…… 머리를 한 번에 찍어버리다니. 그래서 죽였어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다시 어깨를 으쓱한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 그냥 죽던데? 안전지대는 밀려서 벗어난 모양이고 그래도 HP가 있을 건데 한 번에 죽는 걸 보니 이거 뭔가 있겠다 싶더라. 그리고 한 명 죽이니까 머리 위에 아이디가 바로 빨갛게 변해 버리던데. 너 머리 위에 아이디 뜨는 건 알지?”
“네, 고개를 들면 보이긴 하던데요. 다른 사람들도 보이고.”
“첨에 보면 하얀색인데 한 명 죽였다고 바로 바껴. 뭐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있는 시스템이라 이상할 건 없는 데 문제는 너무 눈에 띄던데? 하얀 양들 사이에 붉은 늑대라고 해야 하나.”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늑대가 맞기 하죠. 옆에 예쁜 양 하나를 노리고 있었으니.”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뭐, 그 여자한테 로그아웃하는 법을 알려주고 그 밖에 알아야 하는 것 몇 개를 알려주다 보니까 주변 분위기가 별로인 것 같아서 여자 먼저 로그아웃시키고 좀 싸웠지.”
“눈에 띄긴 했네요. 정말.”
“내가 한 방에 죽이는 걸 본 애들이 옆에 있을 땐 안 덤비던데 다른 사람들하고 섞이고 나니까 개판 됐지.”
“결국, 죽었겠네요.”
“어, 다구리에 별수 있나. 근데 죽고 나니까 시작 지점이 아니야.”
“어디로 갔어요?”
“첨엔 몰랐지. 거기에 붉은 크리스탈이 있던데 문양 같은 것이 있는 게 거기가 마을은 아닌데 귀환 포인트였어.”
“새 포인트가 있었네요?”
“그래. 알고 보니 거기가 퀘스트 완료 지점이던데? 시작하면 퀘스트 주는데 도착 지점이니 공짜로 해결한 셈이지.”
“그래서요?”
“인벤에 보니까 방패를 떨궜는데 그나마 단검을 안 떨어뜨려서 다행이지. 망할 뻔했지. 그 뒤엔 뭐 별개 있겠나. 그 근처 돌아다니면서 몹 잡으면서 아이템이랑 돈 모으고 그랬지.”
“저도 써먹어 봐야겠네요. 조만간 퍼지려나?”
“글쎄다. 아는 애들은 절대 안 풀걸? 그거 풀어봐라. 개나 소나 다 귀환석으로 날아올 건데 그럼 개판 되는 거야. 게임에서 제일 좋은 사냥터가 어딘지 알아?”
“경험치와 돈 많이 주는 곳?”
“아니, 사람 없이 나 혼자 잡는 사냥터지. 그런 꿀을 알았는데 공개하면 그게 또라이지. 몇 분이라도 근처 사냥터 독식하면 사람들 몰려올 때 더 높은 사냥터로 빠지면 되니까. 일단 그 북적이는 곳을 빠져나왔다는 게 중요한 거야. 남들 서 있을 때 난 달리고 있으니까.”
작은 발걸음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건가?
“어쨌든 스탯이 2레벨에 1개씩이다 보니 2렙 찍고 첨엔 기본적으로 힘 1을 올렸지. 와! 근데 진짜 나 이 겜 사랑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그때 들던데?”
“왜요?”
“힘 올렸더니 진짜 힘이 세져. 내가 그간 수많은 가상현실 게임을 접했지만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네. 감각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건지 모르겠는데 힘이 세진 것이 느껴져. 당장 들고 있던 단검이 가볍게 느껴진다니까.”
“굉장하네요.”
스탯을 올리는 걸로 실제 감각이 달라진다니. 상상 이상인데?
단순히 게임 수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달리 생각해봐야겠다.
“민첩도 찍어 봤는데, 진짜 빨라지는데 그걸 내 몸이 알아. 심지어 달리기도 좀 빨라졌고. 그냥 몸 쓰는 모든 부분이 조금씩 나아진 기분이야. 정말 미묘한 부분까지 잘 살렸어.”
“사장님은요? 뭐 올린 데요?”
“모르겠네. 듣기로 검 쓰는 쪽 하신다는데 지금 봐서는 검사 쪽은 진짜 센스 엄청 필요할 것 같아서 말릴까 고민 중이다.”
“검사가 힘들어요?”
“이 게임 무기 제한도 전혀 없으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무 무기나 들 수는 있는데, 그걸 소화해낼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해. 너, 칼날로 찌르는 거랑 칼등으로 치는 거랑 뭐가 아플 것 같아?”
“당연히 칼날이죠?”
“그래, 그런 거, 무기의 부위마다 타격치가 다르고 휘두르는 힘, 속도, 원심력 등 모두 종합해서 대미지가 나오니까 센스 없는 사람은 근접 기사를 하면 진짜 개피 볼 거다. 반대로 센스나 감각 좋은 애들은 장난 아닐걸? 같은 대미지 칼을 들어도 전투 센스에 따라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날지도 모르겠네.”
“형,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아신 거예요? 몹 때리면 대미지가 숫자로 보여요?”
“아니, 그런 건 안 보이고 잡을 때마다 바꿔서 잡아보니까 대충 알겠던데?”
확실히 전직 프로게이머가 맞는 모양이다. 대미지가 숫자로 보이지도 않는데 하나씩 체크해가면서 알 수 있다니. 이건 RTP가 높은 것과는 별개의 기술이지. 내가 당장은 따라 하기 힘든 노하우다.
***
집에 들어와 간단하게 샤워하고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들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VRS에 들어가 누우니 금방 세상이 역전된다.
다른 서버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서 생성이 어려워 9서버인 아르쉴라와 10서버 포르네에서 고민하다가 9서버인 아르쉴라를 선택했다.
포르네는 어감이 별로라서.
내 몸을 스캔하고 있다는 시스템 음과 더불어 내 가상의 몸이 눈앞에 떠오른다.
이제 소년 끼가 거의 사라진 것 같은 날카로운 느낌의 살짝 짙은 눈매에 날 선 턱선. 짧게 쳐올린 헤어. 전체적으로 슬림한 체형의 남자가 스캔 되어 화면에 나타난다.
체격은 그대로.
헤어는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이 했던 소프트 투블럭펌을 선택해서 길이만 좀 조절했다.
색도 그냥 진한 블랙으로.
* * *
이름 : 주호
레벨 : 0
【근력 1】 【민첩 1】 【체력 1】 【지력 0】 【마력 1】
* * *
캐릭터 이름은 간단하게 내 이름을 줄여서 만들었다.
캐릭터 생성이 끝나니 정신이 사라지듯 화면이 넘어간다.
사라졌던 내 정신들과 감각들이 하나로 다시 이어질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아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0.
> 로딩 중…….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면 보이는 풍경이 지금 보인다. 아래는 온통 하얀 구름, 위에는 그냥 파란 하늘이고 지금 난 그사이에 떠 있다.
20초 정도의 로딩 바가 사라지자 하늘에 떠 있던 내가 지상으로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번개가 치는 구름 사이를 통과하자 저 멀리 아래 어딘가는 산이고 어딘가는 호수, 어딘가는 들판, 강물. 저 멀리는 용암 끌어 오르는 곳도 있고, 온통 비가 내리는 곳도 있다. 폭풍이 몰아치는 곳, 꽁꽁 얼어붙은 곳들이 저 멀리 보인다.
어느 정도 떨어져 내리다가 녹색 빛으로 가득한 숲 지대쯤에 가까워질 때쯤 속도가 줄더니 시야가 반전되면서 어느새 숲속 한곳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아마, 전체 맵을 보여주면서 스케일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확실히 내 인식에 박힌 걸 보면 성공적이라고 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발 디딘 곳 뒤에는 아주 큰 청색의 크리스탈이 땅에 박혀 높게 서 있고 주변은 상당히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 있다.
하늘을 가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따스한 빛이 내린다.
거기다 바람에 실려 오는 숲의 서늘하고 청량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풀 냄새가 느껴진다.
이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걸.
항상 주변에서 느껴지는 지나친 소음과 자극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벗어나 이런 곳에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언제 시간을 내서 이런 숲속을 거닐겠는가. 실상 이런 깊은 산속을 아무 준비 없이 이렇게 덩그러니 돌아다닐 수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 *
[ 공지사항 ]
* 시작지점을 10곳 더 추가합니다.
* 병목 현상에 대한 보상으로 모든 유저에게 하얀 물약 100개 지급해드립니다.
* 3시간 동안 경험치 획득 량이 두 배로 적용됩니다.
* 시작지점 근처의 모든 유저에게 가속 효과가 적용됩니다. 이 효과는 일정 구역을 지나면 해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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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병목 현상 때문인지 욕을 많이 먹긴 한 모양이다. 점검을 미친 듯이 하더니 결국 보상을 내놓았다.
일단 인벤을 열어서 소지품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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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초보자의 단검 / 공격력 1∼3
0 초보자의 단궁 / 공격력 1∼3
0 초보자의 창 / 공격력 1∼4
0 초보자의 가죽 상의 / 방어력 1
0 초보자의 가죽 하의 / 방어력 1
0 초보자의 가죽 신발 / 방어력 1
0 초보자의 나무 방패 / 방어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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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의 단검, 재중이 형에게 말을 들었지만, 진짜 진검이다. 숲속의 나무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반짝이는 칼날이 그대로 반사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검신이 40㎝ 정도 되고 양쪽의 날이 다 서 있는 단검의 손잡이는 황토색 가죽이 감겨 있는데 손바닥으로 쥐어보니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솔직히 이 정도 예기가 있는 무기를 눈앞에서 들이밀면 칼밥 먹는 사람이나 형사, 특수부대원 정도 아니면 다 쫄 것만 같다. 집에서 부엌칼만 들어도 조심하라고 난린데.
무기 확인은 됐고.
이제 어쩐다.
재중이 형 말처럼 누구를 죽여야 하나?
내 눈이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