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화 (2/1,404)

# 2

#2화 Lost Sky Online (1)

신나라 PC방.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과몰입 증후군이던 내게 이곳만큼 좋은 알바는 없었기에 3개월째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소음이 많거나 몸을 많이 쓴다거나 하는 곳은 전부 제외했어야 했으니까.

일단 VRS(가상현실 기기)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시체처럼 쥐 죽은 듯이 게임만 하니까.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 사장님이 아이템 강화할 때 운을 빌린다면서 내 손가락을 사장님 손가락 위에 슬쩍 올리고 클릭한 적이 있는데 그게 대박이 나버렸다.

그 덕분에 이제는 이곳이 거의 집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장님, 오셨어요?”

후덕한 인상의 우리 사장님이 헤실헤실한 표정으로 가게에 들어오면서 연신 손사래를 흔든다.

“어이구, 우리 복덩이, 앉아 있어. 뭘 일어나기까지 하나.”

확실히 며칠 전과는 다른 대접에 처음엔 어색했으나 이제는 저 모습이 아니면 불편할 것 같다. 사장과 알바에서 거의 절친 수준까지 변해 버렸다. 간이라도 내줄 기세다.

가게에 있는 부식을 마음대로 꺼내 먹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 심지어 이젠 청소 같은 건 확인조차 안 한다.

“사람들 많이 왔어?”

“네, 아직 점심인데 사람들 엄청 오네요.”

실제로 엄청나게 손님이 몰려들고 있다. 어떤 손님들은 예약까지 하고 간 상태.

“큰돈 들여서 4세대 VRS(가상현실 구현기기)로 싹 교체했는데 꽉 차야지. 당연히.”

4세대 VRS.

국내 가상현실 기기 개발업체인 PV 인더스트리와 DS 코퍼레이션에서 거의 하루 간격 차로 내세운 차세대 VRS다.

한계 RTP(가상현실 감각계수)가 기존 300P에서 200P 정도 더 향상된 500P의 최신 기기.

RTP는 가상으로 넘어가 뇌가 육체의 굴레를 벗으면 가상에서 느끼는 감각이 엄청나게 증폭된다고 하는 데 그걸 수치화한 것이다.

그렇게 측정된 내 수치가 당시 측정 한계인 500P였고 당시 2세대 200P가 한계였던 가상 기기에 접속했다가 리바운드(과도한 감각억류)가 일어나서 얼마간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도저히 접속할 엄두를 못 냈는데 한 달 전에 DS 코퍼레이션과 협의하에 검사를 시도했었다.

측정기기가 좋아졌다는 말에 다시 측정해 보니 600P를 아득히 넘겨 버려 문제가 생겼으나 현실의 육체를 인식하듯이 감각적인 고통을 씌워 RTP를 낮추는 방법을 이용해 겨우 500P로 둔화시켜 사용할 수 있는 내 전용의 커스텀 VRS도 제작됐다.

물론, 현실에서도 전기적 신호로 감각을 낮추는 기기를 팔목에 차고 있고.

지금 거리에 나가보면 온통 DS와 PV의 사외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제품은 만들어졌으니 이제는 누가 더 많이 파느냐의 싸움이다. 출시일도 겨우 하루 차이.

양쪽 홍보부와 판매부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전쟁 중이다. 하루 거르고 하루씩 점유율과 판매량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TV 광고, 신문 광고, 시내 전광판, 지하철, 전단지 할 것 없이 온통 두 회사 VRS 홍보로 가득하다.

그에 맞춰 새로 출시되는 4세대 가상현실게임

『 Lost Sky Online 』

그리고 우리 사장님은 오매불망 그 가상현실 게임만 나오길 기다리시는 중이다. 전에 하던 게임의 아이템은 전부 처분해 총알을 챙기셨다. 아마 다 합치면 거의 몇천만 원대의 총알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슬쩍 사장님이 자유 게시판에 글 쓰는 걸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는데.

* * *

―3년 동안 하던 게임 정리했다.

총알 1억 원 장전 완료. 1섭 통제 들어가겠습니다.

< 가입원 모집 + 사냥터 통제 >

))가입조건

하루 12시간 이상 접속 가능하신 분.

까톡 연락망 단톡 가능자.

만 20세 이상 4세대 VRS 소지 혹은 PC방 출근 가능자.

총알 500장 이상 가능자.

부주 구함 ― 24시간 풀로 돌림.

총군주 올림.

* * *

순간 왠지 쪽팔려서 PC방을 그만두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부끄럽다. 내가 본 거 알면 사장님 표정이 어떨까. 궁금해지네.

그 밑에 달린 댓글이 더 하다.

―웃기시네. 인증해라.

―ㅋㅋ 역시 게임 강국.

―아재 손가락은 굽혀집니까?

―형이 오늘 너 땜에 피식했다.

―1억에서 웃고 간다. 풉.

―뭐고. 1억 밖에 없나? ㅋㅋ 개 허접이네.

하아. 사장님도 쪽팔리고 댓글은 할 말이 없네. 진지하게 사모님한테 저 글 보여드리고 PC방 그만둘까?

사장님이 사모님께 맞아 죽는 것이 빠를까 쪽팔려서 죽는 것이 빠를까.

근데 저 글을 웃자고 올린 것인지 진심으로 올린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댓글 단 사람들은 웃겠지만 여윳돈으로 진짜 1억이 있으니 말이지.

로스트 스카이의 오픈 베타 기간은 총 7일.

그중 오늘은 오픈 베타 첫 번째 하루가 되는 날이다.

“남자라면 무조건 1서버지.”

서버는 현재 총 8개, 서버마다 100만 명의 예약 인원이 있다고 하고. 지금 현재 600만 명의 사전예약자들이 이 게임만 목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사장님이 게임 룸 앞에서 엄청 기합을 넣고 계신다.

들어보니 야간 뛰는 형도 사전신청을 이미 했다고 한다. 그것도 사장님과 같은 1서버에. 사장님과 뜻이 통했는지 의기투합한 모습이다.

1서버의 100만 명이 다 차는데 고작 20분이 걸렸단다. 것도 오전 6시에. 알 만한 사람은 죄다 그 시간에 버티고 서서 신청한 모양.

한국 사람들 진짜 게임에 대한 열정은 엄청나네.

“너도 같이하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있나요. 인원 제한 때문에 어차피 1섭은 못 해요. 그럼 사장님이 옮기실래요? 그럼 되겠네요.”

사장님이 그 말에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커트 친다. 좀 섭섭한데? 나름 복덩인데 말이지.

“난 원래 1섭 밖에 안 해. 그럼 딴 섭 좀 놀고 있다가 나중에 사람 좀 빠지면 1섭으로 넘어와. 팍팍 끌어올려 줄 테니까. 궁금한 거 있음 물어보고.”

오로지 1섭에서 시작하겠다는 저 자세에서 마치 전쟁에 참전하는 용사의 기백이 느껴진다.

“네, 나중에 궁금한 거 있음 물어볼게요.”

조금 이른 시간인 오후 5시가 되기 10분 전. 좀 전까지 모처럼 엄청나게 바빴다. PC방에 있는 VRS에 로스트 스카이를 전부 설치한다고.

원래 깔린 버전이 심각한 버그가 생겨서 급하게 공지가 뜨고 새로운 패키지를 받아서 설치한다고 진땀을 뺐다.

“고생하네.”

“아시면 좀 도와주시죠?”

그 말에 쪼르르 도망가신다. 입에 시원한 오렌지 주스 가득 물고서.

알바가 이렇게 서럽다.

“언제 들어가요?”

“지금.”

사장님이 마시고 있던 오렌지 주스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바로 1번 게임 룸으로 날아간다. 사장님 때문에 비워둔 제일 명당이다.

그때 PC방 입구 문이 열린다.

“손님, 자리가 다 차서…… 아니네.”

“아! 미안 좀 늦었다.”

“좀이 아닌데요? 형, 2번 열어놨어요. 들어가 봐요.”

“땡큐! 그리고 쏘리! 담에 밥 한 번 살게.”

원래 일찍 와서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일이 생겨 쏙 빠졌다.

방금 VRS로 날아가신 저 사람이 야간 알바 하는 형이다. 그냥 성격 털털하게 무난하며, 좀 잘 생겼다. 눈썹 짙고 콧날도 서고 턱선도 날렵하다.

사장님과 가끔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예전에 프로게이머였다고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지금도 프로필은 남아 있기도 하고. 개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기사도 상당히 많이 찾아냈다.

지금은 팀이 해체돼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사장님과는 과거의 인연이 있었는데 사실 무명시절에 여기서 연습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아마추어 대회도 그때 많이 나서기도 하고 PC방 대표로도 나가서 상을 타오기도 하고, 두 분 모두 추억을 가지고 있다. 사모님과도 잘 아는 사이기도 하고.

해체 이후에 무슨 이유에선지 프로로 복귀하지 않고 지금은 여기 와서 이러고 있다. 내가 알바 시작할 때 비슷하게 왔으니 대략 삼 개월은 넘어간다.

내게 장난도 잘 치고 사장님 딸보다는 재중이 형이 내 입장에선 더 대하기 편한 편이다.

다시 묘지기로 돌아갈 시간이다. 적막한 10분이 흘러간다. 에어컨 팬이랑, VRS 팬 돌아가는 소리만 울린다.

5시 3분쯤 됐나?

PC방에 있던 전 VRS의 케이스 커버가 일제히 올라간다.

“아! 뭐야!”

“장난쳐? 지금?”

“아놔…… 뭐 어쩌자는 거야.”

뭐지? 이런 사태는 예상에 없었는데. 일단 영어책을 덮고 일어났다. 손님들이 우왕좌왕하면서 PC 방이 순식간에 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1번, 2번 VRS 케이스도 동시에 열린다.

“무슨 일 났어요?”

“서버 뻗었다.”

“점검이란다.”

사장님과 재중이 형의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하아. 난리 났네. 저 손님들 다 어쩌나.

“뭐가 100만 명 수용이야. 2분도 안 돼서 뻗어버리는데.”

손님들 쪽에서도 불평불만이 계속 나온다.

“형, 언제까지 점검이래요?”

“몰라, 다시 공지 준다는데 답답하네.”

“사장님, 손님들 어쩔까요?”

사장님이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다. 뭐 본다고 딱히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환불 같은 건 절대 안 된다.”

“네네.”

“와…… 홈페이지도 맛 갔음. 못 들어가네.”

그 말에 사장님과 내 시선이 모니터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그냥 멈췄다.

“하! 진짜 첫날부터 대박이네. 이거 각 보니 4대 명검 나오겠다.”

4대 명검?

“그게 뭔데요?”

“전설의 정기 점검, 임시 점검, 연장 점검, 긴급 점검.”

“어이없네요.”

그냥 피식 웃을 수밖에 없네. 저런 말은 누가 만들어 낸 거야. 확실히 다 검으로 끝나긴 하네.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 하루 종일 어마어마한 점검의 퍼레이드를 보았다.

임시 점검이 30분 만에 끝나고 5분 뒤에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다시 20분이 지나 연장 점검 30분, 그 뒤로 점검, 점검, 점검. 그리고 점검. 또다시 점검.

로스트 스카이 자유게시판을 보니 대부분 비슷한 모양이다.

―점검 좀 그만요.

―무슨 점검을 하루 종일 하냐?

―5시간 기다려서 딱 20분 들어가 있었네.

―시작 지점 왜 이래요?

―들어가서 계속 제자리. 누가 좀 살려줘.

―형, 5레벨 찍었다. 질문받는다.

―뻥치시네. 무슨 수로 5렙을 찍어?

―ㅋㅋ니들이 모르는 걸로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잘 쓰겠습니다.

―님들 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네요.

퇴근하고 점검 때문에 계속 서버가 닫혀있어서 내 전용 커스텀 VRS를 시동조차 걸어보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

“나 왔어.”

카운터 PC 모니터로 뭔가 보고 있던 사장님 딸, 연지가 돌아보면서 인사한다.

조그마한 하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슬쩍 옆으로 밀어내니 젖살이 덜 빠진 뽀얀 얼굴이 드러난다. 그냥 얼굴 작고 눈 조금 크고 동글동글한 것이 순하게 생겼다.

얘가 우리 사장님 딸이다. 진짜 사장님 안 닮고 사모님 닮은 걸로 얘는 평생 쓸 운을 반쯤 끌어 쓰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사모님은 이쁘신 편이다.

“일찍 왔네요.”

“오늘은 별일 없었으니까. 사장님은? 들어가셨나?”

연지가 고개를 살짝 들어 눈짓으로 1번 VRS를 쳐다본다. 아직도 하고 계시는구나. 저래도 되는 건가.

“쭉 하고 계신 거야?”

“네, 집에 들어가면 엄마한테 맞을 것 같은데.”

저 무서운 말을 별로 큰일은 아니라는 듯이 평온하게 이야기한다.

“사모님이 오시기 전에 제 발로 보내드려야겠네.”

“냅둬요. 좀 혼나야 정신 차리실 거예요.”

왠지 연지가 더 어른 같아 보이는걸. 보통 어른이 애들 게임 많이 한다고 혼내는 걸 역할만 바꿔서 반대로 보는 기분이다.

“재중이 형은? 퇴근 안 했어?”

연지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이 양반들이 단체로 정신이 가출한 모양이다. 지금이 몇 신데.

“일단, 내가 둘 다 꺼내서 패서라도 재울게. 연지야, 고생했다. 퇴근해.”

“네, 오빠, 수고하세요.”

그렇게 연지가 정리하고 나가자마자 1번, 2번 VRS에 경고 신호를 보냈다. 여차하면 그냥 확 전원을 내려버려도 되는데 이건 사용자에게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혼수상태에 빠져봤던 난 무서워서라도 절대 저 방법은 쓰지 않는다.

“나오세요. 확 전원 내려 버리기 전에.”

쓰지는 않겠지만 협박은 가능하지.

그제야 1번, 2번 VRS 케이스 커버가 올라간다.

“겨우 좀 빠져나와서 자리 잡고 하고 있는데.”

재중이 형이 나를 보면서 투덜거리고.

“복덩이 언제 왔어? 시간이 이렇게 됐나?”

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신다.

“복덩아, 뒷정리 좀 부탁해. 나 들어간다.”

인사하기 무섭게 발바닥에 불이 나게 PC방을 빠져나가셨다.

재중이 형에게 시원한 생수를 하나 꺼내서 넘겨주었다.

“아! 땡큐.”

꼴깍꼴깍 삼키더니 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천상의 맛이 느껴진다는 말에 피식 웃었다.

“어땠어요? 할 만해요?”

“어, 진짜 괜찮더라. 너도 해봐. 진심 신세계다.”

“전 그냥 잤어요. 게시판 보니까 도저히 할 엄두가 안 나던데요.”

“니가 승자네. 스타팅 포인트를 고작 열 곳으로 해두니까 진행이 될 리가 있나. 안 그래도 치이는데 사람은 계속 생겨나지. 게임사 놈들 완전 상 변태 새끼들이야. 그걸 어떻게 뚫어?”

“그죠? 아까 보니까 공지로 사과문 올라오고 대책 마련 중이라고 하던데요. 형은 대체 어떻게 뚫고 지나간 거예요?”

“그게 꼼수가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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