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목숨
보통 작가가 작품을 제작할 때 감정이 움직일 때다. 모든 작가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태호는 그랬다.
한 달 전에 본 거칠게 목덜미가 뜯겨 나간 소머리는 꿈에서 나올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다. 태호는 그 장면을 잊기 위해 붓을 들었다.
3개월 뒤.
뉴 썬 갤러리에는 새로운 태호 작품이 전시됐다.
총 세 작품이 있었는데, 첫 두 작품은 목이 잔인하게 뜯겨 황소와 젖소 머리 2개가 상징적으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한 캔버스에 소머리 하나가 그려져 있었으며 두 그림이 세트였다.
두 그림 옆에는 한 아이가 얼룩소와 젖소 사이에 서 있는 그림이었는데 아이가 세라를 닮은 듯하기도 했고 그저 평범한 갓난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말 귀엽고 해맑게 웃는 모습에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옆에 그려져 있는 죽은 소머리 2개는 아이의 현재 모습이 마냥 긍정적으로 상상되지 않았다. 행복해 보이는 만큼 슬퍼 보이는 그림이기도 했다.
언뜻 보면 누구도 이해 못 할 그림이었으며 정말 누구도 사 가지 않을 것 같은 그림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사유에서 그렸는지 아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와 닫는 그림이었다. 완성된 그림을 제마에게 보여줬을 때 지금까지 그 유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녀조차 구슬프게 울었다. 너무 슬피 울어 태호는 괜히 그렸다며 후회할 정도였다.
며칠 전을 회상하며 갤러리에 걸린 그림 앞에 태호가 멍하니 서 있자 윌슨이 다가왔다.
"그림은 여전히 환상적이야."
"..."
"둘째를 잃었다니 유감이야."
"... 전에도 얘기하셨잖아요. 둘째라고 하기엔 너무 초기이기도 했고요."
"그림 속의 저 아이를 보니 자네가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알 수 있어서."
"... 어쩔 수 있나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덤덤히 얘기하는 태호의 목소리엔 아쉬움과 분노가 묻어나왔다.
"어떻게 도와줄까?"
늘 그래왔듯이 윌슨은 태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할 생각이고 그럴 능력도 있었다.
"이 그림···. 떠들썩하게 광고 해줘요. 전 세계 순회공연이라도 시킨 다음 한국에 들고 갈 생각이에요."
태호는 조금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설명했다. 자신이 당한 테러를 상징하기도 하는 그림이기에 기존 인기 작품들까지 묶어서 전 세계 유명 미술관에 전시할 생각을 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만큼 유명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다 끝나면 어디다 걸 건가? ST 관련 얘기는 언제 풀 거고?"
"나중에 한국에 짓고 있는 미술관이 완성되면 거기에 걸어야겠어요. ST 관련 이야기는 거기서 풀려고요. 시간이 맞았으면 좋겠네요."
"지금 미술관을 ST가 짓고 있다고 했나? 입찰도 200억이나 낮춰서 불렀다면서?"
"화해의 손길이라며 낮췄다는데, 그리고서 죽은 소머리를 받으니 당황스럽더라고요."
윌슨도 태호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소머리 대신 사람의 신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신체가 들어있다고 상상됐기 때문이다.
"완공되려면 한 2년 남았지?"
"네 그 정도요."
"2년 동안 사연을 숨기다가 ST 회장이라도 만나면 터트릴 생각인가 보군."
"그때쯤 되면 비트코인을 역추적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이 된다고 하네요. 한국이나 미국 모두 워낙에 자금추적에 능하니 흔적만 찾으면 역추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림을 바라보던 태호가 고개를 돌려 윌슨을 봤다.
"이렇게 그림으로 남기는 게 과연 ST에 타격을 줄 수 있을까요?"
태호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일말의 불안이 있었다.
"왜 그렇게 의심을 하나?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예술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돈밖에 모르는 재벌에게 그림을 들이밀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요."
태호가 지금까지 고민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돈밖에 모르는 재벌과는 돈으로 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신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더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예술은 마음을 움직이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지. 그 그림이 유명해질수록 그림에 담긴 사연도 같이 알려질 거야.
그럼, 사람들이 궁금해하겠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그리고 진범이 밝혀지면 전 세계 뉴스에 다 날거야. 그러면서 자네 그림이 뉴스에 같이 나오겠지.
게르니카가 그렇지 않은가? 나치나 스페인 내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그림이 배경 화면으로 쓰이잖아. 사연이 밝혀지면 자네 그림은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는 이야기를 전할 때 쓰이는 대표적인 시각 자료가 될 수 있어."
태호도 윌슨의 말이 지극히 정석이고 또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가지 해결책을 포기하기 힘들었다.
"윌슨. 내가 만약 ST 주식을 매입해서 그쪽 경영권을 위협한다면 어떨까요?"
"자네가 그럴 힘이 있다는 건 나도 알아. 자네가 알려준 정보 덕분에 나도 한 재산 모았으니까. 하지만 자네 같은 예술가가 굳이 돈으로 ST 같은 회사와 맞서는 건 그리 좋게 생각되지 않네. 예술가답게 싸워야지."
윌슨의 얘기는 알려준 적이 없는 LVMH의 아르노 회장의 얘기와 일맥상통했다. 나이를 들면 지혜가 늘어나는가 싶기도 했다. 윌슨의 말에 갖고 있었던 미련도 버리고 생각도 정리된 태호가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ST보다 자네가 들고 있는 주식이 더 전망이 좋다며? 뭐하러 돈 버려가며 그런 짓을 하나? 이해는 가지만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야."
"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
태호는 세라를 모티브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라가 원피스를 입고 풀밭 위를 아장아장 걷은 모습.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모습. 강아지와 노는 모습.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 등 다양한 장면이 캔버스로 옮겨졌다.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도 있지만 옛 화법에 맞춰서 그려진 그림도 있었다. 태호가 관련 작업을 많이 해 이제 옛 화법에 꽤 능숙한 덕분이었다.
아프게 사라진 둘째 때문에 그리기도 했고 한창 커가는 세라를 캔버스에 담고 싶어서 그리기도 했다.
그림을 그릴수록 건조되어 갤러리에 걸릴수록 관객들의 반향은 커졌다. 바로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홀로 있는 세라는 외로웠다. 늘 옆에는 누군가가 더 있어서 그 공간을 채워야 할 것 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그림에서 묻어나왔다.
세라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 짓다가도 그 옆의 빈자리는 텅 빈 듯 몹시도 허전해 입가의 웃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그림이 많았다.
완성된 그림을 본 제마가 둘째를 갖겠다며 난리를 친 건 물론이었고 아이가 하나인 제마의 큰 오빠 로이도 둘째를 가져야 하나 고민했다. 애가 벌써 5살인데도 그랬다. 둘째인 데이비드도 벨라 사이에서 애가 둘인데도, 그것도 이제 둘째가 갓 태어났는데 셋째를 고민할 정도였다.
홀로 있어 외로운 세라를 보는 사람마다 캔버스에 둘째를 그려 넣으라고 성화였다.
그러다 뉴욕 사람들이 그림에 붙여준 별명이 '베이비 메이커'.
"세라라는 태호 딸 그림을 보다 보니 홀로 있는 아이가 외로워 보였다. 동생을 만들어 주고자 둘째를 갖게 됐다."
가족계획을 독하게 먹은 사람들은 절대로 보면 안 되는 그림이었으며, 결혼한 아들딸이 아이를 갖지 않거나 하나만 낳겠다고 고집할 때 노부부가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했다.
돈 좀 있는 집안은 그림을 구매해 집안에 걸어두었다. 사랑스러운 세라의 모습을 본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보며 한숨 짓는다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뻔했다.
우연히 한 개인 산부인과 대기실에 걸린 세라의 그림을 본 예비 산모들이 높은 확률로 아기를 가졌고 다시 그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래서 뉴욕의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마성을 가진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져 태호의 그림은 더 정신없이 팔려나가 병원의 진료실이나 대기실에 걸리기 시작했다. 병원 수익 증대를 위한 마법의 그림 혹은 토템이었다.
*
태호가 젊은 뉴욕 사람들의 원성과 노년층과 산부인과 의사들의 환호를 받는 사이 태호가 '소의 죽음'이라고 이름 붙인 세 연작은 투어 돌듯 세계 여러 곳의 미술관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다른 그림들도 함께 전시되었는데 대부분 태호가 시간 되는 틈틈이 그린 그림들과 개인 소장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그림들이라 그 가치가 대단했다. 눈에 익은 그림이지만 지금까지 전시된 적은 없는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자네 혹시 작품 설명회를 해줄 수 있겠나?"
런던에서 전시가 한창 진행되던 중 윌슨에게서 연락이 왔다.
"도슨트요?"
"그래, 그거. 미술관에서 요청이 많다고 하더군."
"조금 늦었지만, 런던에서 하고 그다음 파리로 넘어가게. 자네가 왜 소의 죽음을 그렸는지 자세히 설명할 기회이지 않은가?"
윌슨의 제안을 태호가 받아들여 이뤄진 도슨트 행사는 각 미술관의 전시 기간 동안 최소 한번은 진행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그리 흔하지 않은 행사였고 거의 톱 작가 중엔 더 드물었기에 늘 사람들로 붐볐다.
태호는 '소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설명할 때 모티브가 되었던 사건을 비교적 가감 없이 설명했다.
"이 '소의 죽음'이라는 작품은 제 개인적인 아픔이 담긴 작품입니다. 반년 전 브루클린 근처에 있는 우리 집에 커다란 박스로 포장된 소포가 두 개가 배달되었습니다. 보낸 이는 있었지만 처음 보는 주소에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둘 다 무거웠고 좀 흔들렸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직감 같은 것였죠.
두려운 마음에 경찰까지 불러 상자를 개봉했더니 밀봉된 두꺼운 비닐봉지 안에 여기 그림에 보이는 이 가엾은 소들의 머리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충격에 아내가 유산까지 하는 고통을 겪었죠."
"그럼 소 사이에 있는 아이가···."
"그렇습니다. 제가 상상으로 그려낸 유산된 아이입니다. 저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려 세 목숨을 이렇게 덧없이 앗아갔습니다."
"범인이 잡혔습니까?"
"안타깝게도 범인은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여러분 사이를 활개 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 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런 증오 범죄에 연루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 정부는 범인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끝내는 범인이 잡힐 것이라 확신합니다."
런던에서의 행사가 성황리에 끝나자 윌슨과 태호는 이 행사를 확대했다. 태호는 유난히 한국 사람이 많은 방문하는 도시와 ST가 주력으로 삼는 마켓에 전시를 하며 언론과의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했다.
이번 전시회 이전에는 인터뷰를 그렇게 활발히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과 홍콩이나 일본에서도 그림 설명과 인터뷰를 자처하며 그림 홍보에 열을 올렸다.
2년의 시간이 거의 다 흐르자 전 세계에서 '소의 죽음'이라는 작품은 더는 존재 하지 않았다. 이름마저 바뀌어 '세 목숨'이라고 불리었다.
작품 '세 목숨'은 인간의 잔인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특히 동물 애호가와 동물 보호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것이 아니라도 터무니없이 잔인한 행위에 보는 사람마다 몸서리쳤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준 작품입니다.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범죄를 쫓고 있는 미국 정부의 관계자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전시장을 찾은 국가 정상들은 작품을 감상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으로 대부분의 정상이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태호의 적극적인 홍보와 윌슨의 도움. 거기에 작품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의 지원 속에 짧은 기간 안에 작품은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작 중의 대작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