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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촬영 - 프랑스 & 이탈리아 (119/181)

BBC 촬영 - 프랑스 & 이탈리아

공항에서 태호를 만난 촬영 팀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루브르로 향했다.

태호의 촬영은 루브르의 수장고에 남아있던 앙리 보나의 그림 2점과 루브르가 작년에 전 유럽을 다 뒤져서 찾은 그림 3점 이렇게 총 5점의 그림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5점 모두 캔버스 뒤편에 앙리 보나라는 사인이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들어가 있는 진품이었다.

Faceless 와는 비교할 순 없지만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와 전생의 기억에 태호는 조용히 그림 앞에 앉았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었기에 충분히 감상하고 머릿속에 되뇌었다.

루브르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 5점은 앙리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난 후 살롱에서 큰 성공을 거둔 시기 이후의 작품들이었다. 한창 잘 나갔을 때의 그림들로 전체적으로 그림들이 밝고 쾌활했으나 반대로 너무나도 정형화된 아카데미의 미술 공식을 수학 공식처럼 그대로 따라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야말로 사진 같은 그림들. 멋지고 예쁘고 밝고 명랑하지만, 앙리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해석은 거의 없는 그런 그림들이었다. 젊고 야심만만한 앙리의 전성기 시절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기나긴 어둠을 설명하는 전조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태호는 그림을 보면서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지난 6개월간 루브르와 빌바오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 마련했던 자료들을 다 살펴본 태호가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과 정보들을 곁들여서 설명하기 시작하자 루브르에서 나온 직원이 놀라는 표정으로 태호를 쳐다봤다. 태호가 불어로 하는 설명은 치밀했고 짜임새가 있었으며 전달하는 정보에는 깊이가 있었다.

'브누와 알마뉴'를 연상시키는 중저음의 듣기 좋은 음색과 현대 불어와 19세기 불어를 오고 가며 각각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태호의 모습은 뉴욕의 핫 셀럽이 아닌 정통 프랑스 미술 사학자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루브르에 시작된 촬영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으로 이어졌다. 원래 파리 5대학의 도서관에 있던 자료도 앙리의 시신기증서 자료도 국립 도서관으로 이전이 되어 있었다.

태호는 시신기증서에 쓰여 있는 앙리의 사인을 보며 서글픈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눈가가 붉어지고 목이 메며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 되자 잠시 문서에서 떨어져서 스태프가 마련해준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시신기증서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후회와 마지막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건 곧 태호 안으로 들어와 폭탄이 터지듯 터져버렸다.

촬영 준비가 다 끝났지만 모든 스태프는 태호만 쳐다보고 있었다. 태호가 의자에 앉아있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아무도 태호를 깨울 생각을 못했는데, 그 정도로 태호의 표정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촬영은 진행되어야 하기에 그나마 여러번 촬영을 한 적이 있는 BBC의 찰스 오스틴이 태호에게 다가가 깨웠다. 그러자 태호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고 지연에 대해 사과를 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태호의 입학서류와 추천서는 태호가 직접 찾은 것이기에 이 서류를 어떻게 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저는 한 가지 사실과 두 가지 가정을 가지고 Faceless의 원작자를 찾았습니다. 한 가지 사실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Faceless의 뒷면을 보면 Theo 라는 작가의 아명이 있습니다. 첫 가정은 Faceless 그림 상태를 보면 이 작품이 제작자의 유고작이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가정은 Faceless는 아카데미 출신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Faceless의 작가를 찾았다는 설명에, 호기심에 따라온 그리고 이미 논문의 다른 저자인 루브르 직원이 크게 놀랐다.

"화면에 지금 두 개의 사인이 띄워져 있을 겁니다. 왼쪽은 Faceless 뒤편에 적혀있는 Theo라는 사인이며, 오른쪽은 시신기증서에 쓰여있는 앙리 보나의 사인입니다. 앙리 보나의 사인은 정말 유려하죠?

동 아시아의 캘리그래피에 비교할 만합니다. 반대로 Theo 사인을 보면 잔 떨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앙리 보나의 사인과 비교할 수 없죠.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면 건강의 상태가 무척이나 안 좋았다는 얘기입니다."

태호는 죽음을 앞둔 앙리 보나가 그 안 좋은 건강상태였음에도 Faceless를 제작한 예술혼을 찬양했다. 그리고 무엇이 앙리 보나가 Faceless를 제작하게 만들었는지 자신의 견해와 논문에 있는 내용을 섞어서 말했다.

다음 촬영지는 지금은 재개발되고 자료로만 남아있는 19세기 파리의 빈민가 자리였다. 이런 빈민가 연구에 정통한 한 대학교수와 촬영을 함께했다. 태호도 ‘Faceless를 그리는 앙리 보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읽어 본 적이 있는 논문이었기에 반갑게 노교수를 맞이했다.

둘은 옛날 빈민가 자리를 더듬으며 그 허름하기 짝이 없던 당시 빈민가 내부의 구조를 설명하며 앙리가 어떤 환경에서 Faceless를 그렸는지 설명했다.

"지금이야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파리의 빈민가는 도로에는 사람과 동물의 대소변으로 악취가 들끓었습니다. 한 집도 거주하는 사람도 많았기에 집 구조도 엉망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남의 집을 통해야만 자신의 집으로 향할 수 있을 정도였죠."

"Faceless의 그림도 광원이 단 하나였습니다. 이런 좁고 비좁은 집에 살았을 것이 분명한 앙리 보나는 조그만 창으로 들어온 빛에 의지해 그림을 그렸겠죠."

주로 노교수가 말하는 쪽이었고 태호가 듣는 입장이었지만 둘은 너무 쉽게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빈민가 촬영이 끝나자 Faceless가 있던 원래 자리로 이동했다. 파리 대성당은 구겐하임이 프랑스에서 Faceless를 가지고 올 당시 그림이 있던 마지막 장소였다. 지금은 말끔히 보수가 되어 2차대전 때의 폭격 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성당을 관리하는 신부가 나와 그림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와 그때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태호는 빌바오에서 봤던 그림의 현재 상태와 신부가 묘사하는 당시 상황을 교차 점검하면서 폭탄이 어떻게 그림을 파손시켰는지 보조 설명했다. 태호는 그 그림을 파손한 폭탄의 종류와 특징까지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태호의 설명은 거의 사실에 가깝게 느껴졌다.

얼마지 않아 프랑스에서의 촬영은 끝이 났고 다음 장소인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로 넘어갔다. 여기는 19세기 프랑스의 아카데미에서 로마대상이라고 하는 상을 받은 특별한 인재들이 유학을 와서 이탈리아 예술의 정수를 공부하던 장소였다.

여기에서도 최근 앙리의 발자취가 발견되어 촬영에 들어갔는데 태호는 메디치가의 한 궁전에서 보관 중인 자료를 보고 놀라다 못해 기절할 뻔했다. 하나는 그리스도와 십이 사도의 이야기를 담은 스케치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지금까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앙리 보나의 얼굴이 담긴 자화상이 있었다.

태호가 앙리의 자화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있자 혹시나 건강이 안 좋은 건가 싶어서 BBC의 테리가 다가와 물어봤다.

“태호, 건강은 괜찮은 건가? 몸이 안 좋으면 좀 쉬었다가 오후에 촬영해도 괜찮네.”

“아니에요, 테리씨. 몸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앙리의 얼굴을 보고 좀 많이 놀랐네요.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뭐가 달랐다는 건가?”

“상상한 적이 있어요. 앙리가 어떤 모습이었을까? 외모가 그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왜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비참하게 끝마칠 수 밖에 없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많은 답을 이 그림이 설명해주고 있어요.”

태호가 가리키는 손끝에는 앙리의 자화상이 있었다. 날렵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감자에 구멍만 뚫어놓은 것 같은 코, 튀어나온 방울만 한 눈, 대칭조차 안 되는 수제비처럼 쭈글쭈글한 귀, 개구리같이 쭉 찢어진 입은, 신이 그를 만들면서 그의 외모에 아무런 스탯을 할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했다.

아니, 아마 외모에 스탯을 빼서 예술에 더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키도 작았을거라고 생각하는 태호였다. 이걸 보니 비로소 왜 앙리가 자화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 자화상에 사인도 없는 걸 보니 정말 제출조차 하기 싫었던 그림이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그림도 과제로 내는 것이기에 제출한 것이지 아니었으면 절대로 남아있지 않았을 그림이었다. 태호는 이런 사실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는데 그림에 담긴 앙리의 감정은 혐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런 외모면 아마 평생을 콤플렉스에 몸부림치면서 살았을 거 같아요. 그래서 아름다움에 무척이나 집착했을 거 같고요.”

태호를 지금 혼란케 하는 것은 그가 꿈에서 봤던 앙리의 모습이었다. 얼굴은 모두 흐릿해 기억이 안 났지만 대부분 밝았던 분위기 때문에 앙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진 그 열등감은 전혀 알아챌 수가 없었다.

“테리. 캔버스와 미술 도구 좀 구할 수 있을까요? 물감은 오일말고 아크릴이 나을 거 같아요.”

태호의 얼굴을 보니 그림을 그리려는거 같아 테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직원에게 필요한 준비를 할 것을 지시했다.

나중에 가로세로 1m가 채 되지 않는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이 도착했을 때 태호는 이젤 앞에 앉아 앙리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캔버스에 스케치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태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촬영하던 팀은 그날 저녁 촬영을 종료했지만 태호는 그대로 남아 밤새 그림을 완성해 버렸다.

촬영팀이 다음날 메디치가에 도착했을 때 태호는 얼굴과 머리에 기름이 줄줄 흐르는 모습으로 그림의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었다. 촬영팀이 도착하자 하품을 하며 촬영팀을 맞이했다.

“태호, 밤새 작업한 건가?”

“네.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자꾸 앙리가 수정해 달라고 해서.”

“앙리가 뭘 해달라고?”

“이 그림 좀 보세요.”

태호가 보여주는 그림을 보는 테리는 스케치와 비교해 봤다.

“이거 비슷하면서도 정말 많이 다른데?”

“포토샵 좀 했어요. 그래도 거의 비슷하지 않아요?”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하지. 느낌만.”

뒤에 '이건 다른 사람이야'라는 표현은 빠졌다.

“그럼 됐어요. 들어가서 좀 씻고 나올게요.”

태호는 택시를 타고 호텔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다시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태프들은 촬영준비를 다 마치고 지금은 태호가 그린 그림을 촬영하고 있었다.

“태호,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필요해. 바로 시작하지.”

태호는 큐 사인이 나자 자신이 밤에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두 그림이 같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 태호도 실없이 웃으며 설명을 했다.

“하지만 만약 앙리가 옆에 있다면 저에게 분명히 자신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좀 고쳤죠. 좀 더 잘생기게요. 실제 그의 피부톤은 이 그림으로 알 수가 없지만 피부톤도 좀 밝게 했고 머리카락도 좀 더 다듬어줬어요. 앙리도 좀 패션 감각이 떨어졌을 거 같은데 이런 얼굴일수록 가리지 말고 가릴 거 가리면서 자신만의 특징으로 삼아야 하는데 말이죠.”

태호는 원본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 그림은 웬만하면 대중에게 공개하지 마시죠. 여기 이 그림 관계자 계신가요? 만약 저 그림을 제게 주시면 제가 여기 이 그림과 빛의 마리아 미니 에디션 하나 그려서 기증할게요. 여기에 추가 조건은 저 원본의 사본도 여기에 남기지 않으며 여기에 이와 관련된 어떤 그림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입니다.”

태호의 제안에 메디치가 측은 논의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태호는 바로 거절하고 빠른 결론을 달라고 재촉했다.

“태호, 이 그림을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이 그림이 이탈리아를 떠난다면 우리는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호씨도 이 소문이 돌 경우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테고요.”

태호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곧 결론을 냈다.

“그림은 피렌체 시립 도서관에 기증하겠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제외한다면 일반 개인에게는 공개해도 좋습니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도서관까지 가서 보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다만 도서관이 다른 곳에 넘기지 않는다는 조건 정도야 걸 겁니다. 아, 사진 찍는 것도 제한해야 하고요.”

태호는 촬영이 끝난 후 메디치가에 남아서 하루에 18시간 이상을 일주일 동안 작업한 끝에 그림을 완성했으며, 끝내 그림을 받아낸 후 시립 도서관에 기증했다.

기증까지 한 후에야 태호는 마크와 협업을 파리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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