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시1 (1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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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는 작업실에서 거의 일 년을 꼬박 이 작업에만 매달렸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교수님들이 찾아와서 채색에 대한 조언을 하고 갔다.

강 교수는 계속해서 발해 대에서 먼저 전시해야 된다고 툴툴거리다가 갔다.

그림은 한 번에 다 그리는 게 아니라 질감을 살리기 위해 계속 덧칠을 했는데, 덧칠을 할 경우 잘 안 마르기 때문에 빠른 그림 건조를 위해 한겨울에도 환기를 자주 시켰고 방을 가능하면 건조하게 유지했다.

사계절이 바뀌고 다시 초여름이 되어서야 그림은 완성이 되었는데 그림이 완성될 무렵에는 두 교수들이 더 자주 방문을 해서 마무리 작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그림들을 살피고 지나갔다.

그림들이 아무래도 크고 계속된 덧칠에 크랙이 생길 수도 있어서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꼼꼼히 챙겨 본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두 교수는 근처 커피숍에 가 잠깐 커피를 같이 마셨다.

"그림 좋은데? 생각보다 훨씬 좋아. 지금은 같은 위치에 놓여 있지만 저 상단 그림이 실제로 위로 올라가면 느낌이 확실히 다를 거야." 강 교수가 말한다.

옆에서 김 교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위 그림이야 창기 니가 더 잘 알겠지. 아미타불 태우의 형식을 띄고는 있지만 그렇게 탱화처럼은 보이지도 않아. 위쪽은 정의의 사도 혹은 천병처럼 보일 테고, 밑은 미남 미녀들이 관객을 유혹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아래가 나쁜 놈들이겠군.

위의 부처와 보살들이 마치 아래는 가짜니까 속지 말아라라고 하는 듯 하단 말이야. 하단 그림의 관세음보살은 예상은 했지만 정말 미남이군. 아니 미녀에 가까운가? 젖가슴만 없다 뿐이지 여자와 뭐가 달라."

"여러 가지 구도를 차용해 왔지만 정말 자기 스타일로 잘 소화를 시켰어. 왜 태호가 처음에 그림 크기로 그렇게 고민했는지 잘 알겠어.

하단부 관세음보살이 실제 사람의 크기 정도로 커졌고 상단 그림도 같은 비율로 커졌다면 작품에서 받는 느낌이 훨씬 더 강렬했을 거야.

아쉽긴 해도 이런 제대로 된 대작을 만나본 지 참 오랜만이야. 사람의 노동력을 극한으로 요구하는 작품이 있어도 이렇게 잘 나오기는 쉽지 않잖아?"

"동의해. 태호가 벌써부터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믿기지가 않아. 지금도 6학년밖에 안 되잖아? 하하. 누가 믿겠어?"

"여기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누가 아니라고 하겠어."

"너 이거 언제부터 전시할 수 있어?"

"학교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자꾸 욕심이 나는데. 학교에서 몇 명에게만 전시되어서는 안 되는 작품이야."

"같은 생각이야. 얼마나 전시할 거야?"

"계속 두고 싶지만 한 달 정도 하고 네가 가져가서 걸어."

"땡큐. 하지만 나도 한 달 정도만 걸고 다른 데로 옮겨야겠어. 학교에 찾아오는 사람들 수가 그리 많지는 않으니. 너 혹시 조계사에 아는 사람 있나?"

"거기 아는 스님들이 있긴 하지. 왜?"

"그쪽이 뜨끈 미지 근하게 반응하면 명동 성당에 먼저 전시해버리겠다고 할 거야."

"저 그림을 왜 명동성당에 전시할 생각을 해?"

"이 그림은 해석하기에 따라서지만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해. 그 동네가 좋아할 테마이지. 또 둘 사이가 나쁘지도 않잖아?"

"재밌긴 하겠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군."

"오케이. 그럼 난 명동 성당 쪽에 넌지시 얘기해 볼테니까 넌 조계사 쪽에 연락해 봐."

"그렇게 하지."

그 두 사람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림은 엉뚱한 곳에서 즐겁지 않은 방법으로 유명해졌다.

*

김창기 교수는 근 10년 내에 이렇게 일에 열중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태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먼저 미술관에 전시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도서관 6층에 위치한 학교 미술관은 한국 최고 대학의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남들에게 내놓기 부끄럽게도 규모도 작고 소장품의 퀄리티도 낮았다.

별도의 미술관을 짓기 위해 얼마 전에 모금운동을 시작했지만 아직 반응은 시원찮았다.

아마도 차기 총장이 정부나 독지가에게 큰 기부를 받기 전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대한대 미술관 전시라는 타이틀은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명예다. 김 교수에게는 어린 제자에게 꼭 주고 싶은 선물이기도 하다.

미술관 전시에 대한 승인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았다. 대형으로 출력한 사진을 가지고 학과장에게 제출하고 그 담담하면서도 치밀하고 되새길수록 화려한 언변으로 학과장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학교 학생들도 잘 찾지 않는 미술관이기에 그 무게감이 없었기도 했다. 일단 승인을 받자 며칠 후 다음 수순을 시작했다. 모든 큰 설득은 작은 설득의 성공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학장님, 이번 달에 도서관에 특별 전시하기로 한 작품이 생각보다 더 커서 전시 장소를 좀 옮겨야 될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도서관 1층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김 교수님, 우리 학교 도서관 1층에 그림 걸 곳이 있습니까?"

"도서관 출입구가 어떨까 싶습니다."

잠시 말이 없던 학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곳은 우리 학교에 얼굴 같은 곳입니다. 전시의 무게감이 달라요. 작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우리 학교 졸업생도 아닌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의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 학교에 전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그림을 그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학생입니다. 몇 년 후 우리 학교에 와야 할 학생이기도 합니다. 먼저 호의를 베풀어 우리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 교수의 모든 계획과 설득의 시작은 여기서 시작했다. 바깥세상의 미친듯한 변화 속도와는 따로 노는 듯한 이 한국의 고리타분한 예술계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는 바로 학연이었으니 말이다.

"난 잘 모르겠어요. 그 아이의 미래를 확신하는 김 교수를 보니 나도 설득이 되긴 하는데, 아무래도 내 독단으로 결정하기에는 사안이 작지는 않은 듯하군요.

총장님의 승인을 얻으세요. 그러면 나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학장님. 제가 총장님에게도 말씀드려 승인을 구해보겠습니다."

설득 작업 중 큰 산 하나는 넘었다. 기존까지의 빌드 업은 이 대답을 듣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단지 그림 하나 전시하려고 바쁜 총장을 만나려는 게 아니었다. 김 교수의 목적은 그 바쁜 총장을 태호의 그림 앞으로 오게 만들기 위함이고 그 자리에서 태호를 총장과 매스컴에 소개하기 위함이다.

애제자를 동문으로 만들려는 김 교수에겐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저 발해 대 강 교수도 결국은 대한대 출신 아닌가?

대한대 총장은 국무총리 급의 무게를 지닌 자리다. 김 교수 개인적으로 행정과 경영 경험이 부족한 교수 출신 총리를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몇 년 간 대한대 총장에서 국무총리를 꾸준히 배출한 까닭에 그렇게 되어버렸다.

즉 만나기 너무 힘들고 더 권위적이어서 설득하기 힘들 수 있다는 얘기였다. 몇 달 스케줄을 미리 짜놓은 총장 일정 상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안면이 있는 총장 비서의 도움으로 10분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작품이 미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경제학도인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사진만으로도 대작이라는 것은 바로 알겠군요. 너무나도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김 교수님, 이런 종교화를 대학에 전시하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의 판단은 '아닌 거 같다'에요.''

사실 가장 큰 난관은 총장의 스케줄이 아니라 이런 정치적 스탠스다. 마치 이미 대선주자가 된 듯 모든 것을 정치공학적으로 필터링을 하려 하고 판단의 많은 근거 되고 있다.

지금도 대학에 종교화를 걸 때 나올 구설수에 대한 걱정을 먼저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제작한 사람은 종교인도 아니고 심지어 어른도 아닙니다. 국민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가 우연히 영감을 얻어 제작하게 된 작품입니다.

우리는 백남준 이후 한국 최고의 아티스트가 될 가능성이 지닌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지, 고작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의 학예 작품을 발표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전시를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재의 선점입니다. 총장님도 석사과정은 여기서 하셨지만 결국 Ph.D는 미국에서 하셨죠. 이 친구도 결국은 미국으로 갈 겁니다.

거기가 가장 큰 시장이 있는 곳이니까요. 이 예술계가 워낙에 대성할 확률이 낮은 분야이기는 하지만 전 이 친구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소더비나 크리스티에 작품을 판매되는 작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때 즉 20-30년 후, 아니 10-20년 후에 한국의 대형 아티스트를 소개할 때 대한 대가 빠진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자 대한대의 명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훌륭한 인재를 선점한다고 생각하고 학교의 아량을 보여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만연한 학벌주의를 너무나도 혐오하지만 이렇게라도 총장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설명하지 않으면 설득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속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떨까요?"

김 교수는 총장에게 미칠 리스크를 최대한 자신에게 돌리는 방향의 전시 계획을 제안했다.

"전시를 시작한 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바로 전시를 중단하면 됩니다. 제가 책임지고 뒤 수습까지 하겠습니다."

김 교수는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나열했고, 그 해결책 또한 제시했다.

설명을 다 들은 총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이렇게까지 하시는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물었다.

"대한대 교수 김창기보다 태호의 스승 김창기라는 타이틀이 더 매력적이더라고요."

김 교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총장의 승인이 떨어지자 그 후는 일사천리였다. 도서관 1층 입구를 싹 비우고 2점의 작품을 상하로 배치 시켰다.

학생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걸고 수위실에 문의하여 감시인을 한 명 두기로 했다.

이 훌륭한 작품에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칼침을 놓을 정신병자는 학력 수준과 상관없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더군다나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이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

*

도서관의 대문 또는 현관이나 다름없는 곳에 작품을 전시하자 입소문을 타고 그림을 관람하는 관람객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전시가 시작된 날부터,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기는 학생들은 잠시나마 시선을 빼앗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 앞에서 있는 학생들과 교수들 수는 하나 둘 늘어났고 몇 명은 그림 앞에 의자나 깔개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그림을 관람했다.

미대생들을 중심으로 그림 앞에 서서 구경하는 학생들이 늘었는데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의 입소문까지 겹쳐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더 학교 밖으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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