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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동화사2 (17/181)

///// 팔공산 동화사2

태호는 다음날 꽤 큰 스케치북과 연필과 파스텔 등을 들고 염불암까지 다시 올라왔다.

할머니가 찔러준 돈으로 시주를 하고 절 밥도 얻어먹으며 아침부터 오후까지 앉아 있었지만 어제 봤던 부처는 다시 태호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앉아 있다가 지쳐서 잠시 졸았을 때도 암자에서 일하는 보살님이 깨워서 일어났을 뿐 어제처럼 꿈을 꾸거나 하지는 않았다.

태호는 제법 실망이 컸지만 오늘 밤에 다시 서울에 올라가야 했기에 해 떨어지기 전 절을 떠나야 했다.

간이 의자를 돌려드리고 스케치북과 연필 등을 다시 챙겨서 내려가려고 준비할 때 머리에 섬광처럼 장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봤던 그 부처의 모습이었다. 같은 표정이라고 생각은 들면서도 왠지 비웃음이 담긴 듯한 표정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마치, '그거 하고 내려갈 거니?'라고 묻는 듯한 기분이었다. 태호는 바로 동화사로 내려가 버스와 택시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갔다.

"엄마. 나 여기 좀 더 있다가 갈게."

"너, 갑자기 무슨 얘기니?"

엄마도 할머니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호를 쳐다봤다.

"나 그 관세음보살을 오늘도 봤어. 그런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보지는 못했거든. 내일 또 가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태호야. 너 서울 가서 과외 잡아놓은 것도 해야 되고 교수님들이랑 수업도 해야 되지 않니? 그걸 다 미루고 가면 어떻게 하겠다고?"

"엄마. 지금 이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야. 과외나 교수님들이랑 수업하는 건 좀 나중에 할 수 있는데, 이건 지금 안 하면 평생 못할 거 같아. 그냥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날아가 버릴 거 같아. 지금 그 부처는 분명하게 나한테 자기를 그려달라고 얘기를 하고 있거든."

"태호야."

"태호 어미야. 이번에 태호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겠니? 우리 태호가 이렇게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데 난 들어줬으면 하는구나."

잠시 고민을 하던 숙영은 곧 허락을 하고 기간을 물어봤다.

"얼마나 걸릴 거 같니?"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나 오래?"

"평일에 나 혼자 서울 가는 거보다야 엄마 내려와서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아?"

"그래, 그럼. 일단 일주일 후에 보자. 과외 뒤로 미루고 교수님들에게는 내가 연락하마. 너도 내일 연락해야 한다. 알았지? 교수님들 전화번호 알지?"

"어. 알아. 전화할게."

"그래. 어머니. 그럼 태호 좀 부탁드려요."

"태호 걱정 말고 올라가."

다음날 태호는 할머니에게 시주 돈을 받아 동화사에 갔다가 다시 염불암에 갔지만 이날은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심지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난 가는 것도 없었다. 그 다음날도 아무 소득이 없자, 태호는 뭔가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날처럼 동화사 대웅전에 가서 향을 올리고 염불암에 와 극락전에 들러 향을 올렸다. 극락구품도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후 다시 마애여례좌상 앞에 섰다.

태호는 마치 몇 년 전 발매된 원숭이 섬의 비밀이란 어드벤처 게임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퀘스트를 깨기 위해 일련의 문제들을 올바르게 해결해야지만 다음으로 진행할 수 있는 그런 게임 말이다. 태호는 오기로 그 마애 여래 좌상 앞에서 108배를 했다.

국민학교 학생처럼 보이는 아이가 절을 하니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퀘스트를 깨야 하는 태호에게는 주위 시선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108배를 하고 잠시 쉬기 위해 앉았는데 여러 가지 안 하던 짓들을 했더니 눈꺼풀이 살짝 감겼다.

그리고 '빵'하고 한 장면이 지나가듯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졸다가 깬 태호는 스케치북에 자기가 본 장면을 정신없이 스케치하고 색칠을 하고 생각나는 데로 주석을 달았다.

일주일에 끝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마애 여래 좌상은 마치 퍼즐을 맞춰야 하듯 단편적인 장면만을 보여줬다.

그때마다 스케치에 받아 그린 장면은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그와 더불어 태호가 스스로 만든 퀘스트는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팔공산 꼭대기 갓바위는 물론 약수암 내원암 양진암 등 온갖 동화사 산내 암자를 다 돌아다녀야 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팔공산 정기 받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산행을 많이 해 건강에는 매우 좋겠지만, 반대로 성격은 배배 꼬여만 갔다.

그러길 2달 남짓. 태호는 마침내 폭발했다. 부슬부슬 안개비가 내리던 날 태호는 온몸이 다 젖어가며 마애여래좌상 앞에서 절을 하다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야! 내 더러워서 안 그린다! 너 안 그려 준다고. 너 계속 그 바위 속에서 살아! 내가 힘드냐? 니가 힘들지. 아오."

마침내 폭발한 태호는 가방을 챙기고 우산을 쓰고 내려가려는 찰나 평소와는 다르게 긴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말 찰나의 시간 동안 억겁 같은 고민을 한 태호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했다.

그 첫날 본 장면을 도저히 놓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그림의 노예로 돌변한 태호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와 다시 정신없이 스케치에 몰두했다.

그 다음날부터는 108배까지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절은 기본적으로 했다. 그리고 90일을 넘기고 나서는 마치 잘못 그린 장면을 수정을 하라고 하는 듯 여러 장면이 떠올라 기존 스케치를 수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108일이 되었을 때 더 이상 부처는 태호의 눈앞에 떠오르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리고 쌓인 스케치북을 떠올린 태호는 대부분의 장면을 자세히 묘사했다고 확신을 할 수 있었다.

태호는 마래여래좌상 앞에서 한마디를 더 던지고 하산을 했다.

"108 더럽게 좋아하네."

*

손자를 이렇게 오랫동안 데리고 살아보지 못했던 태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눈물로 손자를 배웅했고, 태호 아빠와 엄마는 기차를 타고 내려와 태호를 데리고 서울 집으로 향했다.

서울에 온 태호는 자기 방의 한쪽 벽면을 싹 비우고, 근처 화방에서 구할 수 있고 자기 방에 걸 수 있는 제일 큰 캔버스를 두 개 걸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가져온 50권이 넘는 스케치북에 담긴 천장이 넘는 그림들을 퍼즐 맞추듯 정리해 캔버스에 다시 그렸다.

컴퓨터로 이 짜깁기 작업을 했으면 훨씬 작업이 간단했을 수 있었을 텐데 컴퓨터로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작업을 반 이상 진행하고 나서였고, 컴퓨터 가격도 만만치 않았기에 포기했다.

이 한 달이 넘는 작업을 통해 그림의 전체적인 좌우 비율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대한 큰 설계가 완성되었다.

영준과 숙영은 아들의 지난 넉 달이 넘는 작업의 결과를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하나는 하단 다른 하나는 상단에 위치할 그림이라는 걸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아직 채색은 되지 않았지만 캔버스에 그려진 스케치 만으로도 이 그림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될 것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태호가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뒤져서 사 온 불교 서적을 통해 배운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림에 위치한 부처와 보살 그리고 나찰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줬기 때문이다.

특히나 상단부 중앙에 위치한 삼존불 중 가운데 석가모니불은 양옆의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게 묘사가 되어 있었고 양옆의 두 보살은 석가모니불보다는 작았지만 그 주위의 다른 보살들이나 아라한, 사천왕보다는 크게 묘사되어 있었다.

하단부에는 관세음보살이 좌상을 한 채 중앙에 위치하고 그 뒤로 많은 수의 보살들이 서있었는데 관세음보살을 둘러싸듯 한 배치였다.

그들은 다들 자신이 보살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인을 하던가, 아니면 보리수 줄기, 호리병 등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둘은 태호의 설명을 듣다가 자신들이 아는 탱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평면적인 일반적인 탱화와는 다르게 태호가 설명하는 탱화는 무척이나 입체적이었고, 상단에 위치할 그림은 복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탱화의 형태를 따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단에 위치할 그림은 관세음보살을 빼면 처음 보는 보살들이었다. 아니 이걸 보살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더군다나 알려진 보살들은 웬만하면 다 상단 그림에 위치해 있었다.

보살의 원래 의미가 전생의 붓다를 지칭하는 말에서 대승불교의 수행자를 뜻하는 말로도 쓰이고, 한국에서는 여성 평신도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인다지만, 이 여성 평신도들이 지나치게 이뻤다.

채색이 되어 있지 않아 짐작만 할 뿐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남성 잡지에 나오는 섹스 심벌인 남성을 가운데 두고 수많은 여자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추파를 던지는 모습까지 상상이 되었다.

또 다른 비교 가능한 진행자를 가운데 둔 미인 선발 대회의 한 장면 같았다.

아니, 미인 선발 대회에서도 과도한 장신구는 하지 않기에, 이 장면은 마치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 들어가면 하는 바로 그런 모습 같기도 했다.

태호는 그릴 장소가 필요하다며 작업실을 마련해 달라고 졸랐을 때 영준와 숙영은 태호가 생각하는 그림의 크기에 놀랐다.

방에 걸려 있는 캔버스도 작은 크기는 아니었지만 태호가 원하는 캔버스의 크기가 3미터나 2미터가 넘었기 때문이다.

태호는 그것보다 더 큰 크기를 원하는 듯했지만 저 크기가 넘어가면 이동에 제약이 많기에 스스로 자제를 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큰 캔버스에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넓은 공간의 확보, 이동의 편의성 등을 고려해서 집 근처 영준 명의의 상가 3층에 위치한 공실을 아들에게 주기로 했다.

거긴 얼마 전 학원이 있던 자리가 비워져 다른 입주자를 찾는 중이었는데 그깟 돈 몇 푼에 손자를 멀리 보낼 수 없다는 원래 소유자인 할아버지의 강력한 주장에, 물론 할머니의 입김이 더 컸지만, 거기로 결정이 되었다.

새 전화기와 중고 선반도 구매해 가져다 놓았고, 3면에 캔버스를 걸기 용이하도록 내부 인테리어도 해 누가 보더라도 화가의 아틀리에 (작업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비싼 동부 이촌동의 상가 건물 안에 들어선 작업실이니 원로 화가들도 누리기 힘든 사치였고 돈 지랄이었다.

태호는 2.8m x 1.9m, 2.8m x 2.5m의 캔버스를 주문 제작을 의뢰했는데 그게 작업실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크기였다.

탱화처럼 제작하면 더 크게도 제작이 가능하겠지만 태호가 본 장면들은 캔버스에 유화가 아니면 구현할 수 없는 색채와 질감을 필요로 했다.

제일 좁은 면에는 태호가 자기방에서 작업하던 캔버스 두 개를 가지고 와 걸었고 채색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매우 빨리 끝났는데 태호는 색칠한 후의 모습에 대한 감만 잡으려고 한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그림조차도 대단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참고 자료로 쓸 그림이 거의 완성되었다. 이제 본 그림을 그릴 차례다.

*

아미타불탱

아미타불과 보살들, 아라한 · 사천왕 등이 묘사되는 복잡한 형식(동화사극락전아미타후불탱 · 장곡사아미타후불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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