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큰스님 (14/181)
  • ///// 큰스님

    부처님 오신 날 때쯤에, 태호네 식구들은 합천 해인사로 향했다.

    대구의 친할머니가 힘들게 마련한 자리라고 꼭 내려오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간 자리였다.

    유명한 큰 스님에게 손자를 소개해 주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요청에 태호네 식구는 휴가까지 내서 대구로 향했다.

    큰 스님은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도 절을 하고 자신을 만나라고 할 정도로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하던 분이었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긴 인연을 바탕으로 어렵게 자리를 마련하셨다.

    해인사 초입에서 그리 멀지는 않으나 태호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온 탓에 천천히 큰 스님이 계신 암자까지 올라갔다.

    암자까지의 길은 가야산에서 제일 절경이기도 했다.

    백련암 일주문 앞의 돌계단을 올라가자 마침내 대웅전이 보였다.

    태호 할머니는 열심히 대웅전과 약사전을 오가며 향을 올리고 스님들과 인사를 나눈다고 바빴고 태호 아빠는 그런 할머니를 쫓아 같이 절을 하고 시주를 도왔다.

    워낙에 젊었을 때부터 연이 있던 태호 할머니이기에 3천 배는 하지 않아도 스님을 만나 뵐 수 있지만 그래도 예의가 아니라며 태호까지 붙잡고 108배까지 마쳤다.

    얼떨결에 절을 하고는 있지만 태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대웅전 불상 뒤를 둘러싼 탱화였다.

    눈에 힘을 주고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자 탱화의 보살들이 자신을 보고 웃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환영한다는 느낌이었다.

    살짝 오싹한 느낌이 들어 태호는 영준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절에서의 기본 행사가 끝나자 태호의 할머니는 종무소 (사찰의 사무를 보는 사무실)로 향했고, 거기서 큰 스님의 제자 중 하나인 원강 스님을 만났다.

    "큰 스님은 언제쯤 오십니까?"

    "아침 자시고 산에 가셨으니 지금 시간이 11시니 슬슬 오실 때가 됐습니다."

    다행히 시간을 맞춘 보람이 있어 얼마 후 산에서 내려오는 큰 스님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정숙이 왔네? 허허, 거사 님도 오셨고?"

    태호 할머니는 처녀 시절부터 다니던 절에서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잘 아는 사이였다.

    큰 스님이 태호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늘자 '정숙아, 이제 내가 니 보살님이라고 불러주까?'라는 농담에 태호 할머니가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하며 거부했다.

    그래서 지금껏 큰 스님이 지금껏 할머니 이름을 그냥 부르고 있다고 했다.

    태호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던 큰 스님은 태호를 보더니,

    "얘가 태호지? 아이고 정숙이 복도 많아. 손자가 이렇게나 잘생겼고. 아들인데 뭐가 이리 곱노?"

    큰 스님은 태호와 눈 높이를 같이 하며 말을 이어갔다.

    "니 내가 누군지 아나?"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태호를 보며 더 크게 웃는 큰 스님이다.

    "내가 여기서 젤 높은 사람이 데이. 이 절도 그렇게 니가 산에 올라오는 산 입구에서 봤던 절도 그렇게 내보다 높은 사람 없다."

    태호는 큰 스님의 얘기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반들반들한 머리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태호는 그런 큰 스님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머리카락이 없는 스님의 머리가 달라 보였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갔다.

    "태호야!" 놀란 태호 엄마가 외침을 뒤로하고 큰 스님은 오히려 고개를 낮춰 태호가 머리를 더 잘 만지게 했다.

    "괘안타. 태호야. 내 머리가 어떻노?"

    "반들반들해요."

    "그렇제? 왜 내가 머리카락이 없는줄 아나? 할아버지는 머리카락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잘라 버렸다. 아나?"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태호를 보던 큰 스님은 한 번 더 웃으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 쪼끄만 녀석이 눈이 아주 살아 있네. 나중에 아주 큰일을 하겠어. 허허"

    "큰 스님,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습니꺼?" 태호 할머니가 부탁했다.

    "와? 니 내랑 찍은 사진 좀 있지 않나?"

    "태호가 없지 않습니꺼?"

    "그렇네. 그래, 하나 찍자."

    태호 할머니는 온 식구들을 큰 스님 옆에 두고 태호 아빠를 재촉해 사진을 찍게 했다.

    "니가 가서 하나 찍어라. 자가 찍게 하지 말고."

    큰 스님은 옆에 있는 행장 스님을 재촉해 사진을 찍게 해서 이 사진이 가족사진이 될 수 있게 하셨다.

    사진을 찍은 후에도 태호는 스님을 유심히 쳐다봤다.

    스님이 산과 절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다시 큰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큰 스님은 빙긋 웃더니 태호에게 다가와서 물어봤다.

    “니 내가 할 말 있나?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인데?”

    “할아버지 그림을 그려도 되나요?”

    “그림? 무슨 그림? 내? 니 그림 잘 그리나?”

    큰 스님의 얘기를 들은 할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태호가 그림을 좀 잘 그립니다, 스님.

    보통 식구 외에 다른 사람을 잘 그리지 않는데 스님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태호가 스님을 많이 좋아하는가봐예. 태호야 그렇제?”

    태호는 할머니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크게 끄떡 하는 것으로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그 모습을 귀엽다고 생각했는지 큰 스님은 크게 웃고는 태호에게 다가가 그 큰손의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니 내랑 약속하나 하면 그림 그리는거 허락해 줄께.”

    “그게 뭔데요?”

    “그림이 완성되면 나에게 꼭 가져와서 보여줘야 한데이. 약속!”

    “네, 그럴께요.” 태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며 큰 스님의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제이.” 큰 스님은 태호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웃으며 태호 일행과 멀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이었음에도 낯선 느낌보다는 친숙한 느낌이 더 컸던 스님이었다.

    그러면서도 강렬했다. 특히 부리부리 하고 조금은 사나워 보이는 눈매는 이 분이 왜 가야산 호랑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보다 옆에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자아가 태호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는 예민한 태호를 흔들어놨다.

    그걸 그림에 담고 싶었다.

    백련암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태호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엄마, 아까 같이 사진 찍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야?"

    "어른에게는 분이라고 표현해야 된다. 저분은 스님이야."

    "스님이 뭔데? 어떤 사람인데?"

    "스님은 부처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인데, 저렇게 절에 살면서 부처님에 대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야."

    "부처님이 뭔데?"

    "부처님은 성당에서 그리스도 같은 사람이야. 절에서 본 큰 금으로 된 상 있지? 그게 부처님을 표현한 거야."

    엄마의 설명을 들어도 태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부처님 상은 왜 이렇게 머리가 커? 그리고 몸은 금으로 되어 있어?"

    순간 숙영은 당황했지만 침착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부처님이 머리가 왜 큰지는 엄마도 잘 모르겠어.

    금칠이 된 이유는 사람은 가장 귀한 걸 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

    자신이 귀하게 여기기에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존중의 의미로 금을 덧 씌우는 거지."

    "성당의 예수님은 금으로 안 되어 있잖아?"

    "그건 종교적 해석의 차이야.

    태호 전에 집 근처에 제일 교회에 가본적 있지?

    아파트 입구 쪽에 있는 큰 교회.

    거기에는 성모상도 없어. 나무로 된 십자가만 있다.

    그러니까 종교마다 차이가 있는 거야."

    "그럼 아까 절 입구에 있던 그 무섭게 생긴 상은 뭐야?"

    "그건 사천왕이라고 절에 나쁜 귀신이나 기운으로부터 절을 지키고 절을 방문하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의미로 있는 거야."

    영준이 설명했다.

    "무섭게 생겼지?" 숙영이 물어봤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이상하게 생겼어. 막 눈이 튀어 나올 것 같았고."

    "보통은 조각상이 있는데 해인사는 사천왕이 그림으로 되어 있어서 그럴지도 몰라."

    "다른 절은 달라?"

    "절마다 다 달라. 아마 태호가 보기에 다른 절에 있는 사천왕도 다 이상하게 생겼을 거야."

    "그런데 사람들을 그렇게 표현해야 돼? 아빠, 난 사람은 사람처럼 그리는 게 좋아."

    "태호가 나중에 한번 그려보렴. 넌 그림을 잘 그려서 아마 사천왕도 잘 그릴 거 같아."

    태호는 영준을 졸라 사천왕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 다음날 저녁 아빠를 졸라 사진을 현상해 받았다.

    손에 든 사진에는 해인사, 백련암, 사천왕과 큰 스님과 찍은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태호는 학원의 한쪽 벽면에 미리 주문한 1.6m x 1.8m 크기의 캔버스를 걸어 놓고 미리 생각해 놓은 스케치를 시작했다.

    가운데에는 부처가 좌선 자세로 앉아 그림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다리 아래에는 대웅전과 극락전 약사전 등 해인사의 건물들과 백련암의 건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좌우로는 사천왕들이 칼과 비파를 들고 마치 스님 옆을 지키듯 서 있었는데 절들보다 훨씬 더 크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부처의 머리 제일 위에서는 빛 무더기가 쏟아져 내려와 사방을 환하게 밝히는데 그 주위는 마치 상서로운 기운과 구름이 움직이듯 표현이 되어 있었다.

    채색은 부처의 모습을 제외한 대부분은 점묘법으로 표현 했다.

    사천왕들이 든 무기와 악기는 점묘법이 아닌 사실적으로 묘사를 해서 칼이 막 튀어나올 듯했고 손에 든 비파에서는 음악이 흐를 듯했다.

    부처님 머리 근처의 광배까지 달무리 같은 짙은 노란색 점으로 표현을 했지만, 부처의 그림은 다르게 표현했다.

    캔버스 위를 회반죽을 발라 하얀 질감을 표현했는데 마치 대리석을 쪼아 만든 부처상처럼 양각이 된 듯이 만들었다.

    다행히도 회반죽이 잘 입혀져 조선시대 달 항아리처럼 이쁘게 캔버스 위에 자리 잡았다.

    회반죽이 마른 뒤 태호는 미세한 붓으로 얼굴과 머리를 색을 입혔다.

    눈은 크고 뚜렷했는데 특히 눈동자에 힘이 있었다.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으며 가사는 조심스럽게 덧칠을 해 표현했는데 마치 돌부처에 얇은 가사를 입힌 듯 투명하게 비춰 시쓰루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부처님을 그린 그림 하고는 다른 차이점은 부처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봐오던 부처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의 불상에서 보이는, 이게 올바른 신체 비율이 맞는지 늘 의문을 표하게 되는 신체 비율도 정상적인 사람의 크기로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만약 누가 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그림이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의 부처가 태호가 얼마 전 만난 백련암의 큰 스님과 닮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또 다른 특징으로는 매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준 적이 드물다고 알려졌지만, 태호에게는 보여주었던 큰 스님의 환한 웃음이 담겨 있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걸 처음부터 지켜본 원장은 그림이 완성되어 갈수록 점점 기가 막힌 느낌이었다.

    이제 국민학교 3학년 정도의 아이가 점묘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캔버스에 회반죽을 발라 입체감까지 드러냈다.

    클림트가 자주 썼던 테크닉을 태호가 썼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회반죽을 쓰는 걸 어떻게 배운 건지도 신기했다.

    구도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에 쉽게 이해가 되고 더욱더 가슴에 다가왔다.

    그림에 담긴 모든 걸 다 의도하고 표현한 것처럼 보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건지 판단이 안 섰다.

    르네상스 때의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같은 천재의 재림을 보는 듯했다.

    대학에서 예술은 천재들이 주도한다는 이론을 철저히 부정하는 교육을 받았던 원장과 강사들은 자괴감에 빠졌다. 붓을 꺾고 싶어졌다.

    *

    태호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자 학원의 작업실은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원장의 영업에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되어준 영숙의 초상화는 태호 할아버지의 보관 창고에 들어갔기에 새로운 작품이 필요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원장은 소문이 더 잘 퍼지도록 작업실을 더 공개적으로 개방했다.

    깨끗이 청소를 하고, 인스턴트커피와 종이컵을 준비했다.

    태호의 작품이 눈에 더 잘 보이도록 건조 중이던 유화까지 다 벽에 걸었다.

    빛을 쫓아온 나방처럼 원장의 거미줄에 하나 둘 걸려들었다.

    약간의 부작용은 있었다.

    "쟤가 그 태호에요? 정말 많이 컸네요."

    "인물이 더 좋아졌어요?"

    "그림 실력은 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네요."

    "이번에는 뭘 그린대요?"

    "절을 그리네요? 배경이 절인 것 같은데. 가운데는 부처상 같고요."

    "아이고, 이거 탱화에요?"

    "탱화는 아닌 것 같은데..."

    "부처님 나오면 탱화지 뭐가 탱화에요. 이거 우리 어머님이 좋아하실 텐데, 모셔와야겠어요."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며느리와 상가 2층에 위치한 미술 학원을 찾은 노인은 아픈 무릎을 연신 주무르면서도 그림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 "

    앉은 자리에서 반야심경을 한번 쭉 읊은 노인은 단박에 그림 전체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저거 해인사여. 옆에 백련암도 있고. 사천왕도 있고. 딱 보면 알지."

    "어머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내 해인사 다닌 게 하루 이틀이여? 소싯적부터 다닌 절인데 모를 수가 없지."

    "가운데 부처 상은 누구일까요?"

    며느리는 이 동네 최고 난이도 혹은 핫 한 퀴즈를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글쎄... 일반 부처는 아니야. 보통 저렇게 생기시질 않았지.

    머리가 더 크고 귀도 더 크고 그러잖어. 저건 사람을 그린 거 같은데?"

    태호가 학원에 없어 그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어휴. 이거 큰 스님이네 큰 스님."

    "큰 스님이오? 누굴 얘기하시는지?"

    "워낙 유명한 스님이어서, 아가 너도 들어는 봤을 거야. 성철 스님이라고."

    "네? 그분이요? 그분 그림을 그 학생이 왜 그려요? 그려도 되긴 해요? 초상권 이런 거 걸리지 않아요?"

    며느리는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자 바싹 시어머니 얘기에 집중했다.

    "큰 스님이 아시면 경을 칠 일인데 어린 학생이 그냥 했겠어? 허락을 받았겠지. 어쩜 이렇게 스님을 잘 그려놨을꼬."

    시어머니는 얼굴을 바짝 대고 그림을 살폈다.

    "완성되면 다시 보고 싶구먼. 가능할까?"

    "그럼요, 어머니. 제가 완성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다시 여기로 모시고 올게요."

    *

    그림의 전체적인 모습은 3개월 만에 완성이 되었지만 태호는 그림이 다 되었다고 선언하지 않고 세세하게 수정을 해 거의 일 년이 다 되어서야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이 완성되자 태호는 할머니에게 연락을 해 그림이 완성되었음을 알렸고, 태호 할머니는 해인사와 얼마전 큰 스님의 허락을 얻은 후 좋은 날을 받아 인부들을 고용해 그림을 트럭에 싣고 옮겨 퇴설당까지 운반했다.

    큰 스님은 얼마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백련암에서 내려와 해인사 근처의 퇴설당이라는 곳에서 지내셨다.

    유화 자체야 가볍지만 크기가 있고 회반죽으로 표현된 부분이 약하기 때문에 프레임이 특별히 튼튼했고 또 무거웠다. 그래서 인부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큰 스님은 2명의 인부가 커다란 그림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이게 뭐꼬?"

    "태호가 그린 그림 입니더."

    방장인 원영 스님이 대답했다.

    태호 할머니는 그림을 소개하기 위해 그림과 같이 해인사를 찾았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자리에서 앉아 그림을 살펴봤다.

    "그 아이가 그림을 이리 잘 그렸던가?"

    "손자 팔불출이라 하시겠지만,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 합니더."

    한참을 그림을 쳐다보던 스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이게 보통 불화가 아니네?" 하고 말했다.

    "알아 보시겠는교?"

    "좀 더 가까이 가져와 봐라."

    인부들이 그림을 스님에게 더 가까이 가져오자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니가 이 그림을 왜 보여주나 했더니 가운데 부처 그림 때문에 그렇제. 허허. 이 녀석."

    한참을 생각하던 큰 스님은 당부하듯 말했다.

    "내가 부처 모델이 되었다고 뭐가 문제가 되겠노.

    이 그림이 내가 아닌 듯 나도 이 그림이 아닌데.

    다만 정숙아. 나중에 이 그림 보고 절 하는 사람은 없게 하래이.

    이게 탱화는 아니지 않나?"

    "네 스님. 그렇게 하지요. 감사합니다. 스님."

    "내도 고맙데이. 이렇게 잘 그린 그림을 보게 해줘서.

    그리고 이 그림은 좀 두고 갈수 있겠나? 그림이 참 재밌네"

    "당연하지예. 놔두고 보이소."

    그 뒤로 몇 년 뒤.

    큰 스님이 열반하시고 스님에 대한 추모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간 3개월 후, 큰 스님의 막내 제자인 원영 스님의 연락으로 태호의 할머니는 다시 일꾼들과 함께 해인사로 향했다.

    큰 스님 물건은 이미 다 태울건 태우고 나눌 건 나눠 없고 이제 이 물건만 남아 원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난 원영 스님은 큰 스님과 그림과 있었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림은 퇴설당 근처에서, 평소에는 흰 천으로 쌓여 있다가 가끔씩 스님이 부르면 퇴설당 한쪽에 놓여있었고 큰 스님이 한동안 쳐다봤다.

    "이 그림, 요물이야."

    "예? 스님?"

    "아니다. 원영아. 내 한동안 이 그림을 봤으니 그림 본 값은 해야겠제?"

    큰 스님은 막내 제자에게 글을 쓸 준비를 시켰다.

    "여기 액자 뒷면에다가 글을 써도 되나?"

    "괜찮을 겁니다. 그림에만 안 하면 되지 예. 액자야 나중에 바꿀 수도 있는 기고 예."

    태호 할머니는 반색하며 대답했다.

    스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시는 듯하시더니 단순에 당신의 유명한 화두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야보 스님의 시구 전체를 한시로 적었다.

    산시산(山是山) 수시수(水是水) 불재 하처(佛在何處)’(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라는 야보(冶父) 스님의 시구로 아마 큰 스님이 남긴 몇 안 되는 친필이었다.

    "이 정도면 내는 그림 본 값은 했데이.

    차고도 넘치는구먼. 원영아.

    너는 나중에 저 그림이 세상에 다시 나와도 큰 관심 두지 말그레이.

    그림은 엄연히 정숙이 손자 거다.

    괜히 여기저기 절에 걸게 하지 말라고 하레이."

    그리고 스님은 그림을 퇴월당에서 치우라고 하셨다고 한다.

    다비식이 끝난 이후 이 그림의 존재에 대해 아는 몇몇 스님들이 그림을 해인사에서 보관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자신이 간곡히 반대의 의견을 내셨다고 했다.

    "내도 이 그림을 보내려고 하니 약간 섭섭하네.

    하하. 아마 이래서 큰 스님도 돌려보내라고 하신 듯해. 미련이 남는다고."

    원영 스님은 그림이 포장되고 옮겨지는 것을 끝까지 살핀 후 태호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스님은 남아있는 미련을 끊어내듯 단호하게 뒤돌아서 절로 돌아갔다.

    태호의 그림은 포장된 채로 태호 할아버지의 공장 창고에 마련된 그림 보관소로 옮겨졌고 한동안 개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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