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학교1
태호가 도서관 다니는 걸 그만두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볼만한 책은 다 봤다는 것이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았고 말이다.
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내용은 다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걸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하는 것은 다른 얘기겠지만.
원체 예술이 정도나 정답이란 없는 분야고 이미 지난 100년간 변하고 변하여 지나가는 개가 똥오줌 싼 자국도 예술이 되는 시기라, 자신이 공부하며 느낀 바를 물어보고 의견을 공유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스승 같은 거창한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일도 아니었고 부모가 이쪽 방면 사람들도 아니기에 더더욱 이런 사람을 소개받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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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해 기초 상식 이상의 조예가 없는 사람이 미술사를 공부하면 알타미라 동굴에서 시작하는 원시인의 낙서부터 19세기 말 등장한 신고전주의니, 인상주의 같은 미술사조까지는 잘 이해하지만, 마르셀 뒤샹이 출현하기 시작한 이후로부터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
뒤샹은 미국에서 자신까지 참여해 만든 독립 미술협회를 엿 먹이기 위해 멀쩡한 소변기를 놓고 샘 (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출품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철학으로 포장해 잡지에 투고함으로써 화가를 장인 (Artisan)에서 예술가 (Artist)로 탈바꿈시키는 논쟁에 불을 붙였다.
태호는 이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강렬하게 거부한다. 추함도 미학이 되는 시대라지만 태호에게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읽어내고 그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 어떤 사물에서도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찾아 그것을 표현해 내는 것이 예술가들의 지상과제라고 믿는다. 이건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오브제 (Object)라는 이름을 남발하며 입만 산 사기꾼들을 예술가로 떠받들고 그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연필로 동그라미나 곧은 선 하나 제대로 못 그리는 자들이, 그림이나 조각에 담아야 할 사상을 입으로 텍스트로 떠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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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태호의 어리고 연약한 목덜미를 잡게 만든 건 행위예술이었다. 단순 묘사만으로 19금을 가뿐히 넘나드는 그들의 예술은 누구도 전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일들은 천연덕스럽게 해냈다. 한 예로 그들은... 진짜로 똥오줌을 먹기도 했다.
문화적 충격에 한동안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도 중단했다. 자신이 알던 모든 예술이라는 게 부정당하는 느낌까지 들어 한동안 멍했다.
"태호야. 왜 그림은 그리지 않는 거니? 재미가 없니?"
예술 관련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실제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 아들을 이상하게 여긴 숙영이 아들에게 물어봤다.
"엄마. 소변기가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숙영도 대학 다닐 적 미술사는 배웠기에 요즘 아들이 뭘 물어보는지 바로 깨달았다.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배웠지."
"이걸 학교에서 배워?"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야. 현대 미술의 시작으로 보니까."
"원근법을 최초로 적용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가 아니고요?"
그 뒤로 잠시 태호는 말이 없었다.
아들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던 숙영은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 얼마 전에 집으로 날아온 입학 통지서 꺼내 아들에게 보여줬다. 미술과 철학을 아들과 논하기엔 오늘 하루가 이미 충분히 피곤했다.
"이제 국민학교 가야지."
"국민학교? 거기 어린애들이 가는 데 아니야?"
"그래. 너같이 어린이가 가는 곳이 국민학교야."
아들이 뭔가 맘에 안 드는 표정을 하자 숙영은 태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물어봤다.
"태호는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같이 놀고 공부하고 싶지 않아?"
"아니요. 굳이 그 코흘리개들과 뭐 하러? 거기서 배울 것도 없고."
태호는 손가락으로 옆에 읽고 있던 영어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읽는 애가 정말 국민학교를 가야 돼?"
어렸을 때부터 자폐아인 줄 알고 애간장을 녹이더니,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너무나도 좋아져 이젠 점점 말발만 느는 아들을 보고 숙영은 한숨을 지었다. 어렸을 때 매로 다스리지 못한 여파가 이렇게 나타났다. 어릴 적 제발 평범한 아이만큼만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는데 평범이 아닌 비범하게 변한 아들을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건 배운 여자인 숙영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는 의무 교육이기 때문에 꼭 다녀야 하는 거야."
"안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런 방법은 없을걸?"
"내가 찾아봐서 있으면 그렇게 해도 돼?"
"태호야. 어떻게 학교를 안 다니려고 하니?"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들 얘기는 종종 들었지만, 막상 그게 내 자식이라니 숙영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엄마. 난 내 또래 애들이랑 학교 다니는 게 싫어. 난 걔들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 울고 떠들고 침 묻히고. 내가 왜 그런 애들하고 같이 지내야 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야'라고 소리치려다 그 말을 목 끝에서 삼킨 숙영은 화를 가라앉히고 더욱 타일렀다.
"나라에서 강제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이어서 의무교육이라고 부르는 거야."
"안 할 방법은 없어?"
"없어."
"있으면?"
"하아... 있겠지. 찾으면. 그게 엄마와 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거라 그렇지."
"지금처럼 내가 앉아서 공부하면 되는데 왜 엄마를 힘들게 해?"
"그게 태호야. 국민학교는 의무교육이라 부모의 동의와 상관없이 중간에 그만둘 수 없어."
"엄마가 동의해 주면 안 돼?"
숙영은 아들에게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도 검정고시 등의 대안까지 함께 설명했다.
"엄마, 대학은 나중에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친구들은?"
"저 코흘리개들 친구 삼아서 뭐 하게?"
"그런 애들이 커서 너랑 친해지고 평생 친구가 되고 그런 거야."
"엄마는 국민학교 친구 만나?"
"그럼 만나지."
"몇 명이나 만나?"
"보자. 4명이랑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네."
"친구 4명 만들려고 6년을 낭비하라는 말이야?"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는 숙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엷어지는 게 친구 사이이고 인맥이라는 허울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필요할 때 내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는 손에 꼽히기 마련이다.
“가까운 친구 4명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고, 6년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맘에 맞는 친구 4명을 사귀게 된 거야.”
"엄마는 한 반에 몇 명이나 있었어?"
"한 50~60명 사이? 왜?"
"그럼 6년 동안 300명에서 360명 사이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중 4명이랑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거네? 그 사람들이랑 일 년에 몇 번이나 만나? 난 엄마가 친구들 만나는 거 거의 못 봤는데?"
"가끔 연락하고 지내지.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그래도 보고."
"그걸 위해서 내가 6년을 보내야 해? 학교에서 배울 것도 없는 내가? 커서 그런 친구를 만나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외국 보내주면 안 돼?"
"아빠가 너 조기유학은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어."
"그럼 어떻게 하라고?"
숙영은 아들을 자신의 혼자 힘으로는 설득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바톤을 남편에게 넘겼다. 물론... 잘 처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저녁에 아빠까지 같이 얘기해 보자."
그날 저녁, 영준까지 세 식구가 의논을 해봤지만, 쳇바퀴 돌듯 의견은 돌고 돌았다. 영준은 아내 의견에 동조하다가도 아들 얘기가 나오면 아들 얘기에도 수긍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숙영이 다시 도끼눈을 뜨면 다시 아내 편을 드는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자 태호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 아빠. 나 거기 다니면 머리 아플 거 같아."
태호는 검지로 옆머리를 콕콕 찍으며 말했다. 태호는 그 꼬맹이들과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게 끔찍하다는 의미에서 한 동작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핵폭탄 같은 발언이었다.
"태호야, 너 요즘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안 좋거나 그러니?"
"지금 그런 건 아닌데 학교에 가면 그럴 거 같아. 학교라는 곳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숨 막혀."
귀한 자식이 저토록 학교 가기를 죽어라 거부하니 다 사람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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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하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숙영아, 아무리 그래도 국민학교는 보내야 하지 않겠니?"
"애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그렇지, 엄마 아빠가 얘기하는데 안 듣겠어?"
"내가 올라가서 한번 얘기해 볼까?"
남들이 알면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몰라 식구들에게만 살짝 얘기해 봤는데 이 난리였다.
"내가 혹시 태호에게 신경을 못 써서 애가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는 걸까?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돌보면 학교에 갈지도 모르잖아." 숙영은 남편에게 물었다.
"아닌 거 같아. 태호는 그냥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거야."
"배울 게 없어서 다니기 싫다고 하는 게 본심이라고 생각해?"
"태호가 괜히 거짓말하는 애는 아니니까."
"학교를 안 보내면 어떻게 해야 해? 검정고시 아님 홈스쿨링? 그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내가 집에서 봐줘야 하는 거잖아."
"우리나라에 홈스쿨링을 하는 게 있어? 그런 개념도 없을걸? 그냥 학원 보내면 되는 거 아니야?"
"홈스쿨링 같은 거 해주는 학교나 학원이 있어?"
"우리나라에는 없을걸?"
"있다고 해도 태호는 안 갈 거 같아. 유치원 때도 애들이랑 같이 있는 그 자체를 싫어하던데."
"홈스쿨링 자체도 싫어할지 몰라. 태호랑 얘기해 보고 결정하자."
"방법이 없는 거야? 과태료 내고 말아?"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일단 학교에 가고 나서 자퇴하는 거야."
"그 방법도 아이에게 너무 상처가 될 텐데... 어쩌지?"
"일단 태호에게 얘기해 보고 결정하자. 아이의 선택에 맞춰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