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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는 아이 (6/181)

///// 도서관 가는 아이

태호는 유치원도 가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영호와 숙영이 보내보려고 시도했다가 무산되었다.

숙영이 태호를 데리고 유치원에 간 첫날 태호는 세상 다 산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호랑지옥'이었다. 지장보살이 오시던, 대천사가 오시던, 청각을 갉아먹는 이 소음 지옥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원했다.

다음날 아침, 영준은 일이 있어 일찍 출근을 했고 숙영이 태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하려는 참이었다.

"엄마, 나 정말 유치원 가기 싫은데... 꼭 가야 돼?"

숙영은 깜짝 놀랐지만 곧 차분하게 가기 싫은 이유를 물어봤다.

“태호야. 왜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거야?”

“유치원에서 배울 게 없어.”

“유치원에서는 태호에게 한글도 가르쳐줄 거고, 산수도 가르쳐 줄 거야. 그리고 너 또래 애들이랑 놀 수도 있잖아.”

“이미 다 아는 걸?”

“뭘 다 안다는 거야?”

“한글이랑 산수랑. 나 구구단도 외울 수 있어.”

태호는 언제 외웠는지 모를 구구단을 1단부터 9단까지 외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0단부터는 10곱하기 9로 가는 게 아니라 10 곱하기 19까지 외웠다. 그렇게 19단까지 외우자 숙영은 산수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더 할 말이 없었다.

“구구단은 외울 수 있지만 국어는 어떻게 할 거야?”

“엄마는 나처럼 말 잘하는 5살짜리를 본 적이 있어? 엄마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 영어도 알고 불어도 할 줄 알아.”

"Je vais devenir fou avec les cris des enfants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미쳐 버릴 것 같아요.)"

"The cries of kids make me crazy. Mom, can you please allow me not to go there? (애들 우는 소리가 날 미쳐버리게 해요. 엄마, 나 유치원 안 가면 안 돼요?)"

태호는 양손의 모든 손가락을 똑바로 펴서 모아 놓고 위아래로 흔들며 불어와 영어로 열변을 토했다.

숙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앞에 아들이 쏼라한 불어처럼 들리는 언어는 이해도 못 했다.

하지만 뒤의 영어는 그래도 알아 들었다. 이렇게 아들이, 욕은 아닌 듯하지만, 손가락을 모아 흔들며 열변을 토하는 걸 본 적도 없었다. 이 이탈리아나 프랑스 사람들이나 할 손동작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숙영은 얼떨떨한 표정을 제대로 감추지도 못 한 체 아들을 달래려 했다.

“그렇긴 하네. 친구들은? 태호는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건 재미없니? 같이 장난감 가지고 놀면 재미있을 거야.”

“엄마. 난 유치원 애들하고 노는 것도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걔들이랑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은 더 재미없을 것 같아. 내가 엄마 아빠한테 장난감 사달라고 안 하잖아.”

확고한 아들의 대답에 숙영은 일단 지금 위기만은 넘기기로 했다. 이렇게 끌려가다간 지각이다.

"태호야, 엄마가 바로 출근을 해야 되어서 오늘은 유치원에 꼭 가야 돼. 엄마 아빠 퇴근하고 다시 얘기하자."

숙영은 아들에 대해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남편이 퇴근한 저녁에 다시 아들을 설득하기로 하고 출근을 서둘렀다. 다행히 태호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숙영의 말에 동의했다.

영준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듣고 난 후 조심스레 아들에게 물어봤다.

“태호는 유치원 안 가면 뭘 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어 보고 싶어.”

“무슨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미술 책들. 화가 나 그림, 예술 관련 책들을 읽을 거야.” 읽고 싶다가 아니라 읽을 거라고 단정 지어서 얘기하는 아들을 보며 설득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다.

"엄마가 미술 책들 많이 사줬잖아."

태호는 부모님 앞이기에 최대한 예의를 갖춰 얘기했다.

"그 책들은 재미가 정말 없어." 태호는 못 볼 책들을 봤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림을 그려서 성공했데. 화가가 그림 그려서 성공했으니까 화가지 아니면 뭐야?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태호는 뭐가 알고 싶은데?" 숙영이 물어봤다.

"난 그 사람들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실패를 경험했으며, 그 실패에서 무엇을 배워 성공을 했는지 알고 싶어."

숙영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5세 정도가 되면 아이가 꽤 긴 문 장을 사용하고 가끔씩은 어렵고 복잡한 문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알았다. 하지만 태호가 구사하는 수준의 문장을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건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너 또래의 아이들은 보통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걸 좋아해. 태호는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그 꼬맹이들이랑 노는 게 즐겁지 않아. 책을 보는 게 즐겁지. 방송에서 보니까 아이들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된다고 하던데, 난 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어?”

영준도 태호의 문장 구사 능력에 감탄을 했다. 도저히 5살 아이의 표현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 말로는 영어와 불어로 얘기했다고 하던데 언제 외국어를 배웠는지 신통방통 했다.

영준은 아들이 굳이 유치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했다.

태호의 유치원 등원은 단 하루 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태호는 도서관에 가고 싶다는 말로 엄마를 들들 볶았다.

출근을 위해서는 아들을 등원 시켜야 했던 숙영은 결국 출퇴근 아줌마를 하나 고용하고, 태호를 도서관에 출퇴근 시키는 것으로 결정했다.

기존에 생각했던 모든 계획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부부는 주위에 아들 교육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

동부 이촌동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태호는 늘 출근 시간이 지나면 이 버스를 타고 국회도서관에 가서 퇴근 시간 직전까지 머무르며 책을 봤다. 보는 책들은 예술 관련 책과 잡지들이었다.

국회도서관은 국내에서 발행하는 모든 출판물과 많은 해외 발행 출판물을 비치해 두었지만, 태호가 찾는 예술이나 미술 쪽 자료가 많은 건 아니었다.

자료 자체가 많지 않았을 뿐 더러, 있는 책들도 대부분 미술사와 미학에 대한 책들이었다.

여기에 겨우 있는 자료도 영문서적이나 일본 서적을 국한문혼용체로 번역한 자료이거나 아니면 애초에 국한문혼용체로 쓰인 글이었다.

영문서적을 국한문혼용체로 번역한 자료는 거의 외계어에 준했는데 이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옥편에서 단어를 찾아가며 읽어야 했다.

작은 옥편을 들고 다녔지만 가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데스크에서 큰 옥편을 빌려 가며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어려웠다. 태호가 집은 책들은 대학생이 봐야 그나마 온전히 이해할 수준이었다. 태호는 자신이 예술을 공부하는 것인지 언어를 공부하는 것인지 국어를 공부하는 것인지 영어 혹은 일어를 공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태호의 머리를 떠나지 않은 화두는 '어떻게 유명해질 것인가?'였다.

작품 활동을 하고 이를 전시하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 곧 쓰레기통에 폐기 처분 되었지만 말이다.

태호의 눈은 60-70년대 미국에서 가장 핫 한 예술가였던 앤디 워홀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책으로 접한 앤디 워홀은 사기꾼과 예술가의 경계에서 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몇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그것들이 태호의 마음으로부터의 우러나오는 경계심을 허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배울 점이 보였다. 그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의 작품을 파는데 접목 시켰다.

워홀에 대해 알아가다 우연히 접한 한 문장이 태호가 지금까지 찾았던 바로 그 문장 같아 보였다.

“Being good in business is the most fascinating kind of art. Making money is art and working is art and good business is the best art.” (Warhol, 1970s)

"사업을 잘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예술이다.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

워홀이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장은 마치 예술로 돈 버는 것에 떳떳하라는 면죄부 같았다. 워홀을 더 파고들자 좀 더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My idea of a good picture is one that's in focus and of a famous person." (Warhol, 1979)

"내 생각에 좋은 사진이란 초점이 맞춰진 유명한 사람의 사진입니다."

태호는 이를 대중의 눈에 익은 작품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성공하라는 메세지로 해석했다.

*

국회 도서관.

태호는 옥편을 빌리러 도서관 데스크에 찾아갔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옥편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부르땡 같은 시장 아동복 메이커가 아닌 뉴월드 백화점에서 산 카본 블랙 바지에, 가슴에는 팩맨을 닮은 박민재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마티스 블루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태호는 두손을 모으고 곱게 인사를 했다.

"오늘도 왔구나. 아줌마가 아니라 누나라고 불러야지."

도서관의 사서는 토일 빼고 10시반쯤 출근도장을 찍는 꼬마가 나타나자, 따사로운 햇살같은 미소와 함께 잘못된 호칭을 정정해줬다.

자신은 이 시대에는 드문 비혼주의지만 이런 잘생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면 결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태호를 위해 별도로 준비해 둔 옥편을 꺼내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아줌마"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는 옥편이고 비싸지도 않았지만 태호가 옥편을 빌리는 이유는 일단 옥편이 무겁고 또 옥편을 살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다니기 전 실용한자 3천자는 깨치고 왔고, 가끔 모르거나 이해가 안 되는 해석 불가의 외계어를 이해하려고 빌리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도서관에 와서 옥편이나 사전을 뒤져가며 책을 읽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수개월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어본 결과 태호는 이런 식의 공부가 효율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옥편을 사서에게 돌려주며 인사를 건냈다.

"옥편 돌려드릴께요. 잘 썼습니다. 그 동안 옥편 빌려주셔서 감사했어요." 꾸벅 인사를 건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놀란 사서는 그동안 얼굴봐서 즐거웠다는 얘기를 찬찬히 풀어서 얘기했다. 그러면서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혹시 이름이 뭐니? 아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혹시나 나중에 TV에서 널 보면 나중에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데..."

사서는 유괴범이 많은 험한 세상에 혹시나 신고가 들어가면 공무원 생활에 애로가 꽃피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길게 늘어놓는다.

"태호에요. 권태호."

"혹시 나이가?"

"7살이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이제 7살이라니? 지금까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종종 대출 리스트를 확인해 본 사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호가 읽은 책들은 절대 국민학생이 읽을 수준이 아니다.

The Story of Art (예술 이야기)

Way of Seeing (어떻게 볼 것인가)

History of Modern Art (현대 미술사)

George Dickie’s Art and the Aesthetic (조지 디키의 예술과 미학)

"..."

사서는 버스를 타러 떠나는 태호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

소설을 읽어보면 가끔 이런 책들이 있다. 어떤 범재 혹은 둔재가 도서관에서 타임 슬립에 빠져 수십 년의 기간 동안 책을 읽는다. 도서관의 모든 지식을 습득한 후 세상에 나와 커다란 성공을 이룬다는 얘기들이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술 분야는 이런 성공 방정식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았다. 무제한의 시간이 제공된다면 그림 실력은 늘 수 있겠지만 지식이나 그림 실력이 미술가로서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과거의 화가들은 이미 당시 사회에서도 매우 성공한 예술가였다.

사후 유명해진 대표적인 화가로 반 고흐가 있지만, 그가 자살을 하지 않고 10년만 더 살았어도 반 고흐는 생전에도 유명한 화가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을 것이다.

독창성이 있다면 대중 매체가 발달한 지금 적어도 작품을 알리지 못해 잊혀진 작가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였다. 그 중에서도 태호의 가슴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은 건 바로 책의 첫 문장이었다.

'예술은 정말로 사람이 이끌어 가는 것이다.'

태호는 이 문장을 읽고 난 후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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