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56화 (156/165)

제 156화

과정 (5)

회의를 마친 뒤.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케이크 포장 좀 하려고요. 여기, 딸기 올라간 거로.”

나는 근처의 유명한 디저트 전문점을 찾아 케이크 한 상자를 구매하였다.

설주희가 좋아하는 딸기가 듬뿍 올라간 케이크로.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수고하세요.”

그렇게 포장한 케이크를 조수석에 고이 모셔놓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혹여 케이크가 망가질세라, 평소보다 조심스레 운전하며 앞선 회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그럭저럭 써먹을 순 있으려나.’

마티아스 폽과의 짧은 신경전이 오간 후, 회의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연합군이 준비하고 있던 전략과 단계적으로 실행할 예정인 계획에 대해 엿보게 됐는데….

서해 침공 당시를 참고한 연합군은 주요 전력인 S급 헌터들을 제외하고, C급 이상의 헌터들을 모집하기 위한 계획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들어보니 예산도 나름 꼼꼼하게 챙긴 거 같던데, 역시 배운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해서 그런가 꽤 그럴듯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 연합군에 관해선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으리라.

‘진짜 나만 잘하면 되겠네.’

일전에 나는 팀 서울시청과 퀸즈에게 ‘왕자님 구하기’라는 작전을 미리 공지하였다.

물론 계획을 살펴본 팀원들이 너무 위험하다며 반발하긴 했으나….

나는 꿋꿋이 밀고 나가며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녀들이 이 작전의 위험성을 인지할수록 성공 확률이 올라가기에.

퀸즈나, 팀 서울시청이나, 김나래를 제외하면 모두 내 여자친구들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나는 그녀들의 극단적인 면에 주목하였다.

방한나와 진서원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두 사람은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로, 능력의 한계가 올라갈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하였다.

이는 두 사람에게만 유효한 효과가 아니며, 이미 한계까지 성장을 이룬 퀸즈의 멤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즉, 그녀들의 감정을 자극하면 일종의 부스트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단 뜻이다.

사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거나 다름없기에, 쓰레기라 욕해도 할 말은 없지만….

원래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쓰레기가 가장 앞서는 법이다.

‘언제 다녀올까.’

팀원들에겐 먼저 마왕을 치겠다고 말한 것과 달리, 솔직히 마왕과 1:1로 붙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마왕은 원작에서도 설주희와 동료들을 단신으로 상대한 규격 외 괴물이다.

그런 존재와 지금의 내가 1:1로 맞선다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

애초에 1:1로 붙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기에, 조만간 원작에 등장한 어떤 아이템을 구하러 다녀오려고 한다.

삑─ 삑─ 삑─ 삑─

그렇게 어느덧 도착한 아파트.

철컥─

한 손에 케이크를 든 채로 집안에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설주희가 쪼르르 달려와 맞이해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하도 안 와서, 내가 직접 잡으러 나갈 뻔했잖아!”

책망하는 말투와 다르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한껏 올라간 입꼬리.

엉덩이에 꼬리가 달렸다면, 아마 힘차게 흔들리며 반가움을 표현했으리라.

“회의가 좀 길어져서. 이거, 오는 길에 사왔어.”

“…뭔데?”

설주희는 멍하니 케이크 상자를 건네받곤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왔다.

“너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

“…뭐?”

“그냥 오는 길에 너 생각나서 사왔어. 저녁 아직 안 먹었지? 다 먹고 같이 먹자.”

“…치사해.”

“뭐가.”

“이러면 내가 늦었다고 잔소리를 못 하잖아!”

잔뜩 기뻐 보이는 얼굴로 툴툴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무심코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허리에 슬쩍 손을 두르곤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씻고 나올 테니까, 냉장고에 넣어둬.”

“…몰라…!”

참 귀엽기 그지없었다.

“후….”

그렇게 안방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 나오자, 왠지 부엌 쪽에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설주희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응? 설주희가 직접 요리를 했다고?’

당연히 내가 직접 요리할 생각이었던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설주희의 요리에 살짝 놀라며 재빨리 부엌으로 향해보았다.

“뭐해?”

“다 씻었어?”

언젠가 임아린이 사뒀던 앞치마를 두른 채로 작은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서 있던 설주희는….

“…그거 뭐야?”

“밀푀유나베.”

웬 1회용 용기에서 음식을 꺼내어 냄비에 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미리 배달을 시켜둔 것 같았다.

“시킨 거야?”

“응. 밀키트로. 아까 너 오기 전에 미리 받아뒀어.”

자세히 보니, 설주희가 옮기고 있던 건 아직 조리가 안 된 식재료들이었다.

그녀의 처참한 요리 실력을 생각해보면, 나름 고심해서 선택한 방법이리라.

“그냥 둬도 괜찮은데. 사실 내가 직접 해주려고 했거든.”

“됐어. 주말까지 일한 사람한테 밥 차려달라 할 정도로 한심한 여잔 아니거든?”

“…역시 주희밖에 없네. 이건 뭐야?”

“장어. 초벌로 구운 거라 대충 굽기만 하면 된대.”

“이거는?”

“굴 튀김. 에어 프라이어에 데우면 돼.”

뭔가 메뉴들의 영양소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지만, 어쨌든 나를 생각해줬다는 점은 매우 감사해야 할 일.

거기에 모든 메뉴가 설주희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녀가 차렸다고 볼 수 있다.

“맛있겠네. 혹시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

“됐으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가서 쉬고 있어.”

“같이 하면 좋잖아. 굴, 이거 에어 프라이어에 넣는다?”

“…그럼, 그것만 넣어주고 가.”

그렇게 굴 튀김을 기계에 집어넣은 후.

나는 아직도 켜켜이 쌓인 야채와 고기를 냄비에 구겨 넣던 설주희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장어는 어디다 볶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꺼져.”

설주희는 나를 흘끔 노려보며 돕지 말라는 뉘앙스를 풍겨왔다.

은근슬쩍 도우려는 걸 들킨 모양이다.

“에이…. 그러지 말고.”

“나 이거 하는 중이잖아.”

“진짜 장어까지만 도와줄게. 응?”

그녀가 매고 있던 앞치마의 뒤로 손을 쑤욱 집어넣은 나는, 얇은 옷감 너머로 생생히 느껴지는 흉부를 주무르며 살짝 드러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해도 되지?”

“아, 이따 만지라고…!”

분명 잠깐 주물렀을 뿐인데, 손가락 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고작 이런 스킨십에 반응하는 걸 보면, 참 어지간히 민감한 거 같다.

“진짜 딱 장어까지만 볶을게.”

“…하든가 말든가….”

“나도 사랑해.”

결국, 설주희와 나란히 차리게 된 저녁 식사.

“잘 먹겠습니다.”

그녀와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어때?”

“음…. 맛있는데?”

“진짜?”

“꼭 집에서 한 거 같아.”

“집에서 한 거 맞거든?”

그렇게 설주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 먹을까?”

“아니, 조금 있다가 먹을래.”

나는 설주희가 설거지를 끝내는 사이, 거실 소파에 늘어져 TV를 보고 있었다.

‘저 사람, 엄청 크네. …넣은 건가?’

바로 그때.

스윽─

어느덧 설거지를 마치고 조용히 다가온 설주희가 내게 무언가를 들이밀어 왔다.

“…뭐야?”

그녀가 건네온 건 마치 자양강장제와 비슷한 모양의 작은 유리병이었는데….

“마셔.”

설주희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마시기를 권해왔다.

“…이게 뭔데?”

“좋은 거니까, 그냥 마시라고.”

이내 강제로 병을 손에 쥔 나는, 팔짱을 꼬고 내려다보는 설주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빛에 단호함이 묻어나오는 게, 마시지 않으면 강제로 먹일 것만 같았다.

‘뭐…. 괜찮겠지. 설마 독이라도 줬겠어?’

이내 의심을 거두곤 내용물을 단숨에 털어 넣은 직후.

“푸하….”

“병 줘.”

설주희는 자신이 버려주겠다며 내게 병을 받아갔는데….

‘맛이 영 이상하네.’

나는 마치 비약을 먹었을 때처럼 입안에 감도는 묘한 비릿함에 인상을 쓰며 슬쩍 물어보았다.

“근데, 이거 뭐야?”

“정력제.”

“…어?”

“80대 할아버지도 그거 먹고 늦둥이 나으셨대.”

“뭐, 뭐라고?”

설주희는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병을 버리러 사라져버렸고,

‘…괜히 자극했나?’

나는 그녀를 괜히 자극해버린 스스로의 행동을 살짝 후회하고 말았다.

*

얼마 후.

또다시 돌아온 토요일 아침.

“준비 다 됐어…?”

“응.”

어느새 로테이션으로 주말 양일을 차지한 임아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다.

“진짜 혼자 가도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위험한 곳도 아닌데, 뭐.”

그동안 임아린의 로테이션이 돌기만 기다렸던 나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여 지방에 출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무슨 일 있을 거 같으면 꼭 전화해야 해…? 도착하자마자 꼭 전화하고…!”

“알았어.”

“진짜 톡 답장 안 하면, 바로 찾아갈 거야…!”

“꼬박꼬박 답장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의외로 임아린은 흔쾌히 출장을 허락해주었다.

그녀로선 5주에 한번 돌아오는 기회였지만, 지금껏 쌓아온 업보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마왕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라고 설명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곱게 보내주었다.

“그럼, 다녀올게.”

“으응…. 조심히 다녀와….”

그렇게 배웅해주던 임아린과 입맞춤을 나누고 집을 나선 나는, 휴대폰으로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대충 내일 아침엔 돌아올 수 있겠지.’

어쨌든 오랜만에 임아린과 단둘이 지내고 싶은 것도 사실.

막말로 월요일은 자유의 몸이니, 다른 여자친구들에겐 비밀로 임아린과 지내도 된다.

‘아마 들키면 진짜 큰일 나겠지.’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일 처리를 끝내기로 마음먹으며 휴대폰을 품에 집어넣었고,

띵─

이윽고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마왕과의 결전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구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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