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55화 (155/165)

제 155화

과정 (4)

더블 팀 프로젝트.

거창한 이름과 다르게 내용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 팀으로 움직인다.”

퀸즈는 퀸즈대로. 서울시청은 서울시청대로.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 팀이 동시에 움직이는, 이른바 양동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여태 해온 방식과 크게 바뀌진 않을 거야. 아예 6인 체제로 움직이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팀워크를 맞춰온 걸 생각하면 셋씩 움직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나는 미리 준비해둔 발표 자료를 넘기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두 팀에게 강조하였다.

“상부상조(相扶相助). 서로를 위해 싸워라.”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퀸즈와 서울시청이 서로를 보조하는 것.

물론 단순히 능력과 수준만 놓고 보면 공격력이 가장 뛰어난 설주희나 진서원을 밀어주는 게 맞다.

실제로 두 사람에게 공격 기회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합을 맞출 생각이기에, 어찌 보면 나머지가 두 사람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목표는 평범한 토벌전이 아니다.

사방팔방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 속에서, 오직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드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그녀들이라 해도 시시각각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는 법.

따로 움직이되, 동료의 뒤를 봐줘 가며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다.

“훈련은 세종에 있는 A급 게이트를 이용할 거야. 조금 멀긴 하지만, 환경이 가장 비슷해. 훈련은 한 주에 두 번씩 치를 예정이고,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설명할게. 다음으로….”

“질문.”

그때, 설주희가 슬쩍 손을 들며 넌지시 끼어들었다.

“……?”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설주희에게로 모여들었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무심히 바라보며 물어왔다.

“현장 지휘는 누가 하는데?”

다름 아닌 현장 지휘에 관한 이야기였다.

“좋은 질문이야.”

앞서 벌어진 서해 침공 당시엔, 후방의 본부와 현장의 내가 교차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이번엔 따로 현장 지휘가 없어. 그래서 너희가 서로에게 지시를 내려줘야 해.”

“어…. 저희가요…? 그럼, 프로듀서님은요…?”

“설마, 혼자 따로 움직이겠단 건 아니겠지?”

나는 리더인 방한나와 홍유라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발표 자료를 넘겨, 다음 장을 스크린에 띄우곤 대답했다.

“나는 먼저 마왕을 치고 있을 거야.”

“……네?”

“뭐라고…?”

머지않아 다가올 최후의 전투에서, 팀 서울시청과 퀸즈가 이뤄야 할 목표는 바로….

“그러니까, 내가 죽기 전에 너희가 빨리 도우러 오면 돼.”

왕자님 구하기.

*

얼마 후.

“데이비드 오빠!! 사랑해요!!!”

“켈리 누나아!!!”

“요코상!!! 여기 봐주세요!!!”

연합군이 창설됨과 동시에, 세계 각국의 S급 헌터들이 한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이 퀸즈 같은 최정상급 인재들은 아니었지만, 일반인의 기준으론 모니터나 스크린으로 봐온 특급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프랑스의 영웅 앙투안 “한식이 너무 좋아.” 극찬 ]

[ 美의 여신, 켈리 “한국 사랑해요.” 애정 밝혀…… ]

[ 몸값만 2000억…. S급 영화배우 데이비드 내한 “한국은 내가 지킨다.” ]

[ 일본 S랭크 헌터 요코 “한국 남자 만나러 왔다.” 한국 귀화 암시? ]

그렇게 며칠에 걸쳐 이어진 헌터들의 입국이 모두 끝나고.

“프로듀서님! 연합군에서 회의 참석해달라고 연락 왔는데요?”

“참가하겠다 전하고, 일정 좀 정리해서 보내주세요.”

“넵!”

드디어 연합군 주최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 이 주말에?”

“굳이 주말에 하시겠다는 걸 내가 어쩌겠어.”

“지금 장난해? 걔넨 공무원 아냐? 무슨 회의를 토요일 대낮에 하냐고!”

그 영향으로 때 아닌 시간 손해를 입어버린 설주희는 크게 분노하였는데….

“이 개 같은 놈들이 감히 내 신혼살림을 망쳐…? 내가 싹 다 죽여버릴 거야!”

“신혼은 무슨 신혼. 제발 설치지 말고,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가 없는데 집에 있어서 뭐해?!”

세상 억울하단 모습으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곤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가지마! 어차피 같이 안 할 거라면서!”

“작전은 같이 안 해도, 정보 공유는 해야지. 걔네가 뭘 얼마나 준비했는지 봐야 할 거 아냐.”

“차라리 나도 데리고 가! 그딴 싸가지 없는 연놈들만 모아둔 곳에 경호 하나 없이 가는 게 말이 돼?!”

“경호는 무슨…. 그리고 너 데려가면, 걔네 기죽어서 안 돼.”

그렇게 겨우겨우 설주희를 달래어 집을 나선 후.

나는 회의가 진행될 천화 길드의 사옥으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천화 길드의 사옥은 다른 길드와 달리, 건물을 따로 쓰지 않고 최고층 빌딩에 입주해있다.

뉴스에서 듣기론 국내로 모인 S급 헌터들도 같은 건물의 호텔에서 묵는다고 들었는데….

이번 일로 제대로 재기를 노리는 건지, 천화 그룹에서 힘을 좀 쓴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렇게 도착한 사옥. 나는 미리 대기하던 직원의 의전을 받아 회의장으로 향했다.

“오시는 순서대로 앞쪽부터 앉으시면 됩니다.”

주최 측에선 자존심 강한 헌터들의 성향을 고려한 듯 아예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하였는데, 일찍 온 사람들이 꽤 여럿 있어서 적당히 중간 즈음에 자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 여성이 살짝 어눌한 한국어로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 여자는….’

갈색에 가까운 적발에 새하얀 피부와 초록색 눈동자.

말괄량이 같은 외모를 지닌 영국의 S랭크 헌터, 리즈 틴달이었다.

“아. 오랜만에 뵙네요. 반갑습니다.”

그녀와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

약 3년 전, 퀸즈의 프로듀서로 일할 당시 친선전을 붙었던 기억이 있다.

“유명한 사람 옆에 앉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운이 좋았네요.”

리즈는 번역 아이템을 사용한 듯 금세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처음에 건네왔던 인사는 아마 번역을 거치지 않은 한국어였던 것 같다.

“제가 유명해 봤자, 리즈보단 더 유명하겠습니까? 최근에 드래곤 둥지 토벌한 거 잘 봤습니다. 전보다 더 실력이 느신 거 같은데요?”

“실력이 늘긴 했죠! 임아린 양 자료를 많이 분석했어요. 거기 토벌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글쎄 아이템이 다 녹아버려서, 전부 새로 맞췄다니까요?”

리즈 틴달은 꽤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곧이어 모든 자리가 채워지며 곧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회의 진행을 맡은 연합군 참모부 소속 최방준입니다.”

이번 회의는 실질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S급 헌터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연합군에선 전투 유형에 따라 소대를 나눠 전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시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제 잘난 맛에 사는 S랭크 헌터들의 마음을 한곳에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

심지어 이 중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있기에, 자연스레 훨씬 더 강한 헌터의 주장에 무게가 쏠렸다.

“소대를 이룬다고 했는데, 그럼 누가 우리를 지휘하는 겁니까?”

“그건 저희 연합군 측에서 선발한 지휘관이….”

“혹시 그 지휘관이 전투 경험도 없는 멍청이는 아니겠죠?”

“아닙니다. 충분히 전투를 거쳐온 전문가들로 후보를 추려놨습니다.”

“그 후보 중에서 제일 높은 랭크가 뭡니까?”

“…A랭크입니다.”

“세상에. A랭크요?”

독일의 S급 헌터 마티아스 폽은 사뭇 공격적인 발언으로 연합군을 힐난했다.

“세상에 어느 A랭크 헌터가 S랭크 헌터를 지휘합니까? 그들이 우리가 싸우는 방식을 이해하긴 합니까?”

“헌터 팀의 사례를 생각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그건 스포츠고, 이건 전쟁이라고요! 무능한 지휘관의 선택이 유능한 병사들을 죽이는 겁니다. 저는 최소한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S랭크 헌터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요컨대, 자신이 지휘관을 맡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싸우기 귀찮다 이거구만.’

이곳에 모인 모든 헌터들이 마족과 싸워서 세계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한국에 온 건 아니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물론 아닌 사람도 여럿 있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이곳에 모인 것이다.

게이트 토벌조차 스포츠라 표현하는 사람인데, 더 말해 뭐하겠는가?

“저는 반대합니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리즈 틴달이 불쑥 끼어들었다.

“S급 헌터면 마이크 앞이 아니라, 전장에 있어야죠! 지휘는 힘이 아닌 머리로 하는 겁니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녀는 마티아스 폽의 주장에 맹렬히 반대했는데….

“여기, 도지혁 프로듀서를 보세요!”

“…?”

뜬금없이 나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S랭크 헌터가 아님에도, 최강의 팀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

“이렇게 검증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맡겨도 좋다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의견에 반응이 갈리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맞은편에서 나를 응시하던 마티아스 폽이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흘리며 반박해왔다.

“도지혁은 이제 최강의 팀을 지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에 참여하지도 않는 사람이 왜 여기 앉아있습니까?”

보아하니, 홍유라에게 깨진 걸로 아직까지 꽁해 있는 모양이었다.

‘시비가 걸렸는데 가만있을 순 없지.’

모여드는 시선에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테이블에 설치된 마이크를 켠 나는, 마티아스 폽의 시선을 받아치며 차분히 대답했다.

“외국에서 오다 보니 정보가 느린 거 같은데, 저는 다시 퀸즈와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찾아온 건 연합군 측에서 먼저 초대해주신 거고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는 마티아스 폽.

“추가로 앞서 말씀하신 ‘지휘’에 대해 덧붙이자면. 대체로 S랭크 헌터들은 지휘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능력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힘들기 때문이죠. 힘만 센 멍청한 지휘관이 어떻게 제대로 된 지시를 내리겠습니까?”

“뭐라고요!?”

“두분 다 진정하시고….”

그는 자신을 돌려 깐 걸 이해한 듯 발끈하며 일어서더니, 막무가내로 목소릴 높이며 따져왔다.

“연합군으로 참여하지도 않는 주제에 그런 말을 합니까? 지금 여기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S급 헌터들이 모여있습니다!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사리사욕 채우며 따로 노는 게 정상입니까?”

“제가 사리사욕을 채운다고요?”

“이번 기회로 한몫 단단히 챙길 생각 아닙니까!”

아무래도 내가 연합군에 들지 않은 걸 개인의 이득 때문이라고 선동할 생각인 것 같았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타국의 S랭크 헌터들은 선동에 말려들어, 내게 묘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런 애들을 데리고 뭘 하겠다고….’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마이크를 켜며 차분히 반박했다.

“제가 연합군에 굳이 합류하지 않은 건, 조직이 클수록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는 얼마든지 연합군에게 협력할 생각이 있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오늘 참석한 것도 그런 이유고요.”

“잘 이해가 안 되네요.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니요? 오히려 이렇게 많은 인재를 활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고작 편하자고 대의를 져버리는 겁니까?”

웅성웅성─ 웅성웅성─

다시 한번 시선을 보내오며 웅성거리는 사람들.

살짝 순화해서 설명했더니,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뭔가 착각하신 거 같은데, 제 기준으론 여기에 인재는 없습니다.”

“뭐, 뭐라고요!?”

나는 능력을 켜고 주변을 쓱 돌아보며, 회장에 모인 헌터들의 수준을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강한 확신을 품으며 마이크에 대고 넌지시 말했다.

“자신이 설주희와 붙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만 손들어주십시오.”

순간 회장에 내려앉는 무거운 적막.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분하다는 듯 바라보던 마티아스 폽은 이내 입을 꾹 다물며 조용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고,

“그, 그럼….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사뭇 얌전해진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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