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3화
과정 (2)
언젠가 주변에 있는 기혼자들로부터 아이를 키울 땐 아이가 인터넷에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성장이 덜 된 상태에서 자극적인 것에 빠져들면 중독되기 쉽다고.
지금까진 육아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곤 했는데, 지금 보니 진서원이 딱 그런 꼴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극에 중독돼 있었다.
“서원아. 이제 이거 그만 보자.”
“…왜?”
그녀는 마우스를 꼭 쥐며 슬쩍 고개를 돌려왔다.
살짝 벌려진 앙증맞은 입술에선 달콤한 한숨이 계속해서 새어 나왔고, 은근히 풀린 눈가엔 흥분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여기서 섣부르게 다그치면 반발할 수 있으니, 살살 달래서 건전한 컨텐츠로 유도하는 게 나으리라.
“컴퓨터도 재밌긴 한데, 몸을 좀 움직이고 싶어서. 이참에 같이 운동이라도 할까?”
“…운동?”
운동이란 이야기에 순간 눈가를 찌푸리는 그녀.
나는 그녀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은근슬쩍 미끼를 내던졌다.
“운동 싫어?”
“…응. 재미없어.”
“같이하면 좀 재밌지 않을까?”
“…같이?”
“서로 스트레칭도 좀 도와주고…. 자세도 봐주고. 그러면 좋잖아.”
“…….”
그러자 진서원은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나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그녀의 몸을 꾹꾹 주무르며 운동을 졸라댔다.
“기분 좋게 땀도 빼고, 같이 샤워도 같이 하자. 응? 하자.”
“…하고 싶어?”
“응. 서원이랑 같이 하고 싶어.”
조르는 모습을 처음 본 진서원은 묘한 표정으로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해왔다.
“…할게.”
“역시 서원이밖에 없다니까? 고마워.”
그렇게 진서원을 꾀어내어 시작된 홈 트레이닝.
“옷 다 입었어?”
“…응.”
가볍게 운동복을 입고 거실로 나가자, 식탁에서 태블릿을 만지던 임아린이 우리를 지켜보며 넌지시 물어왔다.
“운동하게…?”
“가볍게 운동이나 좀 하고 씻으려고. 같이 할래?”
“나도 같이…?”
임아린은 시선을 옮겨, 진서원을 흘끔 바라보았다.
“…….”
먼저 몸을 풀고 있던 진서원은 말없이 그녀의 시선을 받아쳤는데….
“…아냐, 오늘은 안 할래.”
짧은 시선 교환 끝에 임아린이 곱게 물러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둘이 시간을 나누기로 했던 부분이 걸린 모양이었다.
‘아쉽네.’
내심 두 사람이 함께하길 원했던 나는 괜히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고, 이내 임아린을 뒤로한 채 TV 앞에 매트를 깔곤 운동을 시작하였다.
“일단 스트레칭으로 몸부터 풀어보자.”
“…응.”
홍유라와의 홈 트레이닝 경험은 매우 유용했다.
“자. 눌러 줄 테니까, 어서 내려가.”
“…으윽….”
“더. 더 내려가야지.”
“…아파아….”
“끝나고 가볍게 마사지해줄 테니까, 더 내려가.”
“…으에엑….”
진서원은 처음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으며 내내 하기 싫단 반응을 보여왔으나.
“복근에 힘주고.”
“…응흣…. 간지러….”
“어어 힘 풀린다. 힘 풀린다! 힘!”
“…흐읏…!”
막상 운동을 시작하자, 조금씩 몰입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잡아줘.”
“…응.”
“후우…. 다 흔들리잖아.”
“…그럼, 어떡해?”
“조금 더 꽉 끌어안고, 엉덩이로 아예 발등을 눌러.”
“…이렇게?”
커플 운동의 진짜 핵심은 운동 효과보단 친밀감 형성에 있다.
자연스레 살결을 맞대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운동과 동시에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다.
“할 만해?”
“…조금?”
“아픈 곳은 없고?”
“…여기.”
“거긴 거의 하지도 않았…. 아니다, 앉아봐. 주물러 줄게.”
“…응.”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허벅지 안쪽을 가리키는 진서원에게 잠자코 속아주며, 회색 레깅스로 꽁꽁 싸인 그녀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주물러주던 도중….
‘…응?’
활짝 벌린 다리 사이, 파고든 그녀의 둔덕이 진하게 물든 걸 발견하고 말았다.
‘…세상에….’
어쩐지 속옷 라인이 안 보인다 싶더라니, 처음부터 아예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빠.”
“……어?”
바로 그때.
덥석─
진서원이 멈칫거린 내 손을 붙잡더니, 점점 더 축축하게 배어드는 비부에 꾹꾹 문지르며 나지막이 속삭여왔다.
“…여기도, 마사지해줘.”
명백한 신호였다.
“야. 그건….”
뒤늦게 이곳이 거실이라는 걸 눈치챈 나는, 괜히 눈치를 살피듯 휙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없네?’
하지만 테이블에 앉아있던 임아린은 어느새 방으로 들어간 듯 자취를 감추었고,
‘어쩔 수 없나….’
이내 단단히 마음을 굳히며 진서원을 돌아보았다.
“집에 아린이 있잖아. 그래도 괜찮아?”
“…응.”
사실 동거를 계획했을 때부터 이미 마음먹은 일.
당사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이것만큼 가까워지기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레깅스 찢을게.”
*
다음 날.
진서원의 차례가 끝이 나고, 곧이어 돌아온 임아린의 시간.
“저기…. 아린아?”
“…….”
퇴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에서 기다리던 임아린이 내게 찰싹 달라붙어 왔다.
마치 고목에 들러붙은 매미처럼.
어째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었다.
“아린아. 그, 옷부터 좀 갈아입고….”
“…….”
“아린아?”
임아린은 대꾸조차 하기 싫다는 듯, 더더욱 꽉 끌어안으며 무언의 시위를 이어갔다.
‘대체 뭐지…?’
그렇게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길 잠시.
“…오빠, 왔어?”
“어. 서원아.”
뒤늦게 방에서 나온 진서원이 내 몰골을 확인하곤 살짝 힌트를 주었는데….
“…오빠. 그 여자가, 아까 나한테 막 화냈어.”
“아린이가?”
“…!”
“…막, 너무 시끄럽다고. 천박하다고 그랬어.”
알고 보니, 내가 없는 동안 임아린과 진서원 사이에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뭔가 했더니….’
아무래도 전날 이어진 행위로 질투심이 터져버린 모양.
어찌어찌 자초지종을 추측해낸 나는, 진서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곤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읏차….”
그리고는 침대에 엉덩이를 붙인 뒤, 여전히 얼굴을 파묻은 임아린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나지막이 물었다.
“질투했어?”
그 순간.
꾸깃─
임아린이 내 옷깃을 꽉 붙잡더니, 고개를 확 쳐들며 마침내 입을 열어왔다.
“그걸 말이라고 물어…?!”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그녀의 얼굴.
나는 흐트러진 그녀의 앞머리를 넘겨주며 담담히 말했다.
“그러게 왜 시간을 나눴어? 안 그랬으면 너도 낄 수 있었을 텐데.”
“뭐, 뭐어…?”
“같이하는 게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괜히 혼자 질투하는 것보단 낫잖아?”
임아린이 어처구니가 없단 눈빛으로 시선을 보내온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무어라 반박하진 않았다.
“아린아. 네가 원하는 게 뭔진 나도 이해하고 있어. 너 혼자만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겠지. 근데 이젠 그럴 수가 없잖아.”
과연 이보다 쓰레기 같은 발언이 또 있을까.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엔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치만….”
“적응해. 네가 날 사랑해서 다리까지 부쉈던 것처럼, 스스로 노력해서 거머쥐어.”
“그, 그 이야기는 하지 마아….”
임아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떠날 수가 없다.
나를 괴롭힌다는 이유로 살인까지 저지른 그녀가 어찌 날 떠나겠는가?
처음엔 그녀의 비밀에 놀라기도 하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외려 내게 더더욱 강렬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임아린은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절대 떠나지 않으리란 확신을.
물론 그녀에게도 임계점이 존재하기에, 너무 짓누르기만 하다 보면 반발할 수도 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또다시 폭발하여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뜻이다.
다행히 나는 그동안 극단적인 성향이 있는 설주희를 대하며 나름의 방법을 연구해왔고,
운이 좋게도 임아린은 설주희와 같은 부류였다.
“아린아.”
“…….”
“내 여자친구 중에서 너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내가 생각해봐도 아직은 없어.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임아린은 놀라울 정도로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슬쩍 눈빛만 봐도 원하는 걸 알아차리는 정도이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이렇듯 아직 아무도 그런 그녀를 뛰어넘지 못한 상황인데, 여기서 임아린이 뛰기 시작한다면 더욱 격차가 벌어지는 건 사실상 당연한 일.
나는 그 부분을 자극하며 임아린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원조를 당해낼 수 있겠냐고. 안 그래?”
“…그, 그건 그렇지마안….”
대놓고 쏟아지는 칭찬이 부끄러운 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겨준 나는, 혀끝을 살짝 내밀며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였다.
그러자.
“아….”
그녀도 신호를 알아챈 듯 곧장 입을 크게 벌리더니, 강아지처럼 앙증맞은 혓바닥을 쭉 내밀어 왔다.
“역시 아린이 밖에 없다니까?”
“헤헤….”
나는 칭찬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슬쩍 고개를 꺾었고, 움찔거리는 그녀의 혀를 덥석 머금어버렸다.
*
다음날. 이른 아침.
“…오빠. 어제, 나 못 잤어.”
웬일로 일찍 깨어난 진서원이 불만을 접수해왔다.
임아린의 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려서, 잘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아린이도 그랬을 거야. 너도 찌를 때마다 엄청 소리 지르잖아?”
“…칫.”
그렇게 거울 치료로 불만을 처리하곤 진서원과 임아린의 배웅을 받으며 여유로이 출근길에 오른 후.
“프로듀서님! 기자회견 일정에 시장님도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 왔어요!”
“갑자기요?”
“그쪽 동기한테 물어보니까, 어떻게든 수저 얹으려고 당일에 연락한 거 같더라. 어떡할래?”
오후에 예정돼있던 기자회견에 서울시장 이상흠이 끼어들었단 소식을 마주하였다.
“뭐…. 어쨌든 서울시 소속이니, 빼먹는 것도 좀 그렇네요. 그냥 알았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할게요.”
“아, 맞아. 지혁아. 이번에 유라 씨만 온다고 그랬지?”
오늘 예정된 기자회견은 바로….
“맞아. 다른 애들은 안 불렀어.”
“이야…. 내가 살다 살다 퀸즈랑 일도 다 해보고…. 사람 인생 모르네, 진짜.”
퀸즈의 서울시청 합류에 관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