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2화
과정 (1)
서울에 위치한 어느 랭크 측정소.
“카, 카메라가 너무 많은데요…?”
도지혁의 뒤를 따르던 팀 서울시청 멤버들은 주변에 쫙 깔린 기자들과 카메라에 살짝 긴장하고 말았다.
“괜히 긴장되네…. 서원아. 넌 괜찮아?”
“…응.”
동거 제도를 도입하며 혼란스러웠던 여성 관계를 정리한 뒤.
도지혁은 언론에 팀 서울시청 멤버들이 랭크를 갱신한단 소문을 퍼뜨렸다.
현재 방한나와 김나래의 종전 기록은 D랭크.
심지어 에이스로 꼽히는 진서원의 공식적인 기록은 F랭크다.
그동안 그녀들이 어떤 활약을 펼쳐온 지 알고 있던 사람들은 도지혁의 기대한 대로 많은 관심을 보여왔고,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날짜에 맞춰 랭크 측정소로 모여든 것이다.
“들어가자.”
“아, 네…!”
팀 서울시청 멤버들의 랭크 측정 순서는 김나래부터 시작하여 방한나, 진선원 순.
“이, 이상하게 나오면 어떡하죠…?”
“측정기는 거짓말 안 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 그럼 더 큰일인 거 아니에요…? 막 C랭크라도 나오면….”
리더라는 이유로 가장 첫 번째 순서에 배치된 방한나는, 그새 자신감이 뚝 떨어진 듯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는데….
‘아직도 자기 힘을 못 믿네.’
방한나의 랭크가 대충 어떻게 나올지 가늠하고 있던 도지혁은, 그녀를 조용히 토닥여주며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주었다.
“C랭크가 나오면 어때? 다르게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C랭크가 S급 괴수를 상대했단 소리잖아.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냐?”
“어어…. 그럴까요…?”
“절대 C랭크는 나올 일 없으니까, 안심해.”
“그랬으면 좋겠는데….”
“팀 서울시청 방한나 씨!”
그때, 방한나의 차례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넵…!”
“안쪽으로 들어오실게요!”
도지혁은 딱딱한 모습으로 삐걱거리며 일어나는 방한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곤, 그녀의 등에 슬쩍 손을 올리곤 가볍게 떠밀었다.
“잘하고 와.”
“한나, 파이팅! 자, 서원이도 어서!”
“…파이팅.”
“다, 다녀올게요…!”
그렇게 방한나는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측정 부스 내부로 들어섰고….
팟─
잠시 후, 결과를 알리는 전광판에 새로운 이름이 떠올랐다.
[ 이름 : 방한나 소속 : 팀 서울시청 랭크 : A (+3) ]
방한나가 무려 3단계를 뛰어넘으며 A랭크를 받아낸 것이다.
“우와…! 한나가 A랭크를 받았어요!”
“…오.”
“잘됐네.”
전광판을 지켜보던 팀 서울시청 팀원들은 성공적으로 포문을 연 방한나의 성적에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공교롭게 시간이 겹쳤던 다른 헌터들은 방한나의 기록을 시샘하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D랭크에서 A랭크라니….”
“뭐, 이상한 약이라도 쓴 거 아냐?”
“심지어 방패만 쓸 수 있다면서! 방패가 세봤자지, 뭔 A랭크래?”
물론 대기실이 그렇게 크지 않은 만큼 그들의 목소리가 팀 서울시청에게도 들려왔으나.
‘백날 떠들어봐라.’
도지혁은 그들의 질투를 외려 극찬으로 여기며 슬쩍 웃음을 짓곤 다음 차례인 김나래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주었다.
“긴장한 거 아니지?”
“조, 조금….”
“아마 예상한 만큼 나올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넵….”
사실 김나래는 이미 사전에 부탁하여 도지혁에게 가벼운 귀띔을 받았다.
자신의 능력이 가장 부족하다는 걸 눈치채고 있던 그녀이기에, 혹여 실망하지 않고자 미리 예측을 부탁했던 것이다.
“팀 서울시청 김나래 씨! 안쪽으로 들어오실게요!”
이윽고 방한나가 반대 부스로 빠져나간 듯, 곧이어 돌아온 김나래의 차례.
“…언니, 파이팅.”
“이따 보자.”
“그럼…, 먼저 가 있을게요!”
김나래는 어느덧 씩씩함을 되찾은 듯 당당히 부스 내부로 들어섰고,
팟─
이내 방한나의 밑으로 새로운 기록이 떠올랐다.
[ 이름 : 방한나 소속 : 팀 서울시청 랭크 : A (+3) ]
[ 이름 : 김나래 소속 : 팀 서울시청 랭크 : B (+2) ]
예상대로의 결과였다.
“약빨이 좀 부족했네.”
“도지혁도 한물간 거 아냐? 마족이니 어쩌니 하더니만….”
“와…. 같은 팀이 A급 나왔는데, 자기만 B급이면 존나 현타오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김나래의 결과에 조소를 흘렸다.
B랭크 정도면 자신들이 넘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괜히 김나래가 만만하게 느껴진 것이다.
“…오빠.”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던 진서원은, 드물게 적의를 드러내며 나지막이 말을 꺼냈는데….
“쟤네 다 C급이야. 별 볼 일 없는 놈들이니까, 그냥 가만있어.”
도지혁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진서원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진정시켰다.
“…응….”
그렇게 어느새 김나래의 차례도 모두 끝이 나고.
“팀 서울시청 진서원 씨!”
드디어 진서원의 차례가 돌아왔다.
“잘하고 와. 언니들이랑 기다리고 있으면, 데리러 갈게.”
“…응.”
그렇게 도지혁은 진서원을 부스 내부로 들여보낸 뒤, 손목에 달린 시계를 흘끔 바라보곤 수군거리던 헌터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뭐, 뭡니까?”
헌터들은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는 도지혁의 행동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는데….
“저희 팀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서, 명함 좀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무슨 생각인지 사람 좋은 미소를 띤 그는, 정말로 명함을 꺼내어 나눠주기 시작했다.
“팀 서울시청에 세진에 백일….”
“지, 진짜로요?”
“와….”
유명한 길드나 팀에 소속되는 건, 말 그대로 성공 가도의 지름길.
도지혁은 얼떨떨해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명함 케이스를 품에 집어넣곤, 여전히 웃음기 섞인 얼굴로 가벼이 말을 꺼냈다.
“제가 요즘에 새로운 팀을 꾸리고 있거든요. 언제든지 오디션을 보고 싶으시면 연락해주십시오.”
“저, 정말입니까!?”
“새, 새로운 팀이라니…. 혹시 직접 프로듀싱하시는 건가요?!”
헌터들은 도지혁의 권유에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싹 바꾸며 굽실거리기 시작했고,
고개를 까닥인 도지혁은 가볍게 홍보를 부탁했다.
“명함에 연락처 적혀있으니까, 주변에 많은 홍보 부탁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아, 참! 제가 오디션 조건을 말씀 안 드렸네요.”
도지혁은 뭔가 깜빡했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확인하더니, 전광판을 가리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희 서원이랑 랭크가 같거나 높으면 됩니다.”
“…예?”
“서원이라면…. 방금….”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헌터들이 전광판을 바라보는 사이, 자리를 뜨는 도지혁.
그가 가리킨 전광판엔….
[ 이름 : 방한나 소속 : 팀 서울시청 랭크 : A (+3) ]
[ 이름 : 김나래 소속 : 팀 서울시청 랭크 : B (+2) ]
[ 이름 : 진서원 소속 : 팀 서울시청 랭크 : S (+5) ]
설주희의 4단계 진급을 깨부순 역사적인 기록이 찍혀있었다.
*
진서원의 랭크 측정은 말 그대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소식을 접한 언론사는 진서원의 이야기를 앞다투어 내보내기 시작했고, 한규리와 김준형은 계속해서 쏟아지는 문의에 때아닌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기분이 어때?”
“…똑같은데.”
정작 당사자인 진서원은 별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어쨌든 그 설주희의 기록을 뛰어넘었으니,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주목은 확실히 끌었겠지.’
그렇게 온갖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제 몰이에 성공한 나는, 마왕과의 전투를 준비하는 한편 본격적인 동거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아니, 진짜로?”
나는 식탁 맞은편의 진서원과 임아린의 말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응.”
“우린 따로 지내기로 했어.”
사전에 따로 합의를 본 건지, 진서원과 임아린은 화요일과 수요일을 각각 하루씩 나눠서 지내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이렇게 나오네.’
물론 그녀들의 작전을 예측하지 못한 건 아니다.
절친한 친구 사이여도 불편할 텐데, 다짜고짜 남과 동거를 하라고 하면 당연히 불편할 테니까.
하지만.
애초에 동거 제도를 제안한 건, 그녀들의 화합을 꾀하기 위함.
굳이 뜻에 반하는 계획을 받아 줄 이유는 없었다.
“음…. 솔직히 나는 좀 반대야.”
“…왜?”
“우리가 따로 지내는 게 싫어…?”
“딱히 싫은 건 아니고, 일단 둘이 같이 지내본 다음에 조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원치 않는 동거인 만큼 불편함이 따르는 건 사실상 당연한 수순.
그러나 겨우 이틀이니, 한번 참고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 못하겠으면, 강요는 안 할게.”
“나는…. …알았어. 이번엔 그냥 지내볼게….”
“…나도.”
그렇게 두 사람을 설득하여 시작된 동거.
끝끝내 임아린과 진서원은 같은 집에서 지내되, 나를 차지하는 시간을 나누기로 하였고,
“그럼…. 오늘은 너부터 해…!”
“…나부터?”
“응…. 나는 내일 할래.”
“…좋아.”
무슨 생각인지, 임아린의 배려로 진서원이 가장 먼저 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저기, 서원아.”
“…응.”
“내려가 주면 안 돼?”
“…왜?”
“아니, 모니터가 안 보여서.”
“…이제, 보여?”
“…아니.”
진서원은 시간 배정을 마치자마자, 고목에 들러붙은 매미처럼 내게 찰싹 달라붙어 왔다.
‘얘가 원래 이렇게 애교가 많았나…?’
가슴팍과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며 살을 우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어리광부리는 아이 그 자체.
덕분에 처리하던 일감을 뒤로한 나는, 체념한 채로 그녀와 함께 인터넷 서핑을 즐기기 시작했다.
“오…. 이거 엄청 귀엽다.”
“…오빠, 강아지 좋아해?”
“귀여운 건 다 좋아하지?”
“…나는?”
“너도 좋아해.”
흡사 어린 조카를 데리고 놀아 주는 듯한 느낌.
약간 차이점이 있다면, 진서원이 주로 보는 곳은 명백히 어른용에 가까웠다.
“…너, 이런 곳도 보니?”
“…왜?”
“어… 아니, 그냥…. 어우….”
진서원은 놀랍게도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를 좋아했다.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정상적인 내용부터 온갖 기괴한 글들이 올라오는 곳이었는데….
[ 오우…! 예…! 뻑…! ]
그녀는 그중에서도 성인용 동영상이 올라오는 게시판을 가장 선호했다.
“…이거, 해본 적 있어?”
“…어? 나?”
“…해봤어?”
“아, 아니?”
“…그럼, 오늘 내가 해줄게.”
“어…. 아니, 그건 좀….”
그렇게 진서원의 평소 생활을 엿보며, 세계 각국의 교육용 동영상을 즐기길 얼마나 지났을까.
“…….”
어느새 그녀도 몸이 달아오른 듯, 발정 난 고양이처럼 엉덩이를 꼼지락거리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