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98화 (98/165)

[ 삐이이이이이이이잉───── ]

귓가에 꽂히는 날카로운 소음.

“…….”

미간을 찌푸리며 헤드폰을 끌어내린 나는, 숨을 죽인 채로 모니터 속에 드리워진 처참한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프테로돈은 분명 토벌됐다.

아직 흙먼지가 모두 가시지 않아서 제대로 판별이 되지는 않았으나, 거대한 익룡 괴수의 숨통이 끊어졌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 확신할 수 있었다.

진서원이 선보인 최초이자 최후의 일격은, 가히 S랭크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했기에.

‘…내가 뭘 본 거지…?’

나는 지휘소에서 모든 상황 똑똑히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나래의 도움을 받은 방한나가 프테로돈을 낚아채는 것까진 괜찮았다.

외려 연습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끄럽고 능숙하게 작전을 수행해낸 덕분에, 마구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문제는….

뒤이은 진서원의 공격에 있었다.

그녀의 공격은 한눈에 봐도 엄청난 마기(魔氣)를 띄고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보고 있는데도 그 불길함에 섬뜩할 정도이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천마인가?’

나는 가장 먼저 진서원이 원작 속 천마로 각성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떠올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그녀가 뜬금없이 천마로 각성했다는 게 영 이상하긴 하지만, 사실 존재 자체가 의아한 그녀라 또 무조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 서원아! ]

나는 그녀가 천마로 각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금방 접어버리고 말았다.

[ …응 ]

[ 서, 서원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

[ …몰라 ]

벗어둔 헤드폰에서 멤버들을 비롯한 진서원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기에.

천마로 각성한 것치고는 꽤 멀쩡한 반응이었다.

‘일시적인 건가?’

간단히 추측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짧은 시간이나마 천마신공을 제대로 다루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

애초에 천마신공 자체가 보다 더욱 강한 힘을 위해 악을 선택한 힘이니, 그녀도 모르게 내면의 성장을 이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됐을지 모른다.

‘…능력은 감정에 비례….’

그렇게 진서원에 관해 곰곰이 머리를 굴리길 잠시.

[ 프테로돈 토벌 완료!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

게이트 안쪽의 멤버들로부터 복귀 신호가 돌아왔다.

이러나저러나, 마지막 토벌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고생했다. 다들 상태 확인하고…. 조심히 복귀해.”

[ 알겠습니다! ]

나는 진서원에 관한 고민을 한편에 밀어둔 뒤, 일단 그녀들의 복귀를 확인하며 맞이할 준비에 나섰다.

*

팀 서울시청의 시즌 마지막 게이트 토벌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여느 게이트들과는 다른 환경에 제법 지쳤을 멤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회복하여 뒤풀이에 참여하였고,

“다들 수고했어요! 오늘만큼은 맘 편히 놀고, 맘 편히 마십시다!”

빠듯할 때까지 팀원들과 업무를 처리하던 도지혁은, 내일의 도지혁에게 업무를 미뤄두고 뒤풀이 회식에 뛰어들었다.

“규리 언니. 한 잔 받으세요!”

“아, 고마워. 나래야.”

“야, 진서원. 너 술 너무 많이 따랐잖아…!”

“…아닌데?”

“고생했다.”

“너도 수고했다.”

팀 서울시청의 뒤풀이 회식이 열린 곳은 서울에 위치한 어느 고급 호텔의 루프탑 바.

길드 내부 뒤풀이로 이쪽에 참석하지 못한 이혜리가 통째로 전세내 준 덕분에, 매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야. 지혁아. 우리 팀 기록이 생각보다 좋은데?”

“그게 좋은 수준이냐?”

“아니지. 완전 미친 기록이긴 하지.”

김준형과 도지혁은 머리를 맞대고 이번 시즌에 일궈낸 기록들을 쭉 훑어보았다.

총 12번의 게이트 토벌.

평균 게이트 수준 B랭크.

벌어낸 포인트는 약 13만 언저리.

단순히 기록만 보면 그다지 대단한 성적은 아니지만, D급 두 명과 F급 한 명으로 꾸려진 신생팀이라는 사실과 활동 기간이 짧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주 대단한 성적.

현재 페이스로 따졌을 때, 아마 풀 시즌을 뛰었다면 최소 3부는 먹고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우리 애들 잘 지켜야겠네.’

도지혁은 매우 준수한 기록에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오늘 자정에 날짜가 바뀌어 8월 1일이 되면, 공식적으로 이번 시즌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나선 3주 동안 게이트 정비를 위한 토벌 휴식 기간이 이어지는데….

보통 이 기간에 흔히 말하는 ‘이적 시장’이 열리게 되고,

본격적으로 전력 유출을 막기 위한 사람들과 더 좋은 전력을 캐내기 위한 사람들의 치열한 공방이 시작된다.

“우리 쪽에 따로 오퍼 들어온 건 아직 없지?”

“아직 없어.”

사실 이적시장은 시즌이 끝날 즈음부터 슬슬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각자의 개인 기량은 이미 시즌 내내 증명됐으니, 길드에 필요한 자원이 누구인지는 모두 계산이 끝났을 터.

보통 다른 팀보다 빠르게 영입 대상과 접촉하여 물밑 작업을 시도하거나, 달콤한 제안을 들이밀며 직접 팀의 뒤통수를 치도록 유도하기도 하는데….

이혜리가 미리 도지혁에게 접촉한 것도, 사실 그런 의미에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프로듀서님! 준형 씨! 저희 다트 한판 해요!”

그때, 술잔을 들고 나타나 뜬금없이 다트를 요구하는 한규리.

“갑자기요?”

“어서요…! 애들이 기다리고 있다구요…! 자, 준형 씨도 어서 가요!”

한창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도지혁은 김준형과 흘끔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내기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지는 팀은 보드카 샷으로 마시기!”

“좋네요. 금방 갈 테니까, 가서 오늘 다 죽었다고 전해주세요.”

“꺄앗…! 알았어요! 그럼 바로 오세요!”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표정을 띤 채로, 마시던 칵테일 잔을 챙겨 들며 김준형과 함께 멤버들에게로 향했다.

*

그날 밤.

한창 도지혁과 팀 서울시청 사람들이 뒤풀이 파티를 즐기고 있을 무렵.

설주희의 집.

“아, 미안…. 내가 좀 늦었지?”

홍유라와 설주희는 세상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 임아린을 조용히 노려보고 있었다.

“…….”

설주희는 약속 시각을 훌쩍 넘겨 도착한 임아린의 행동이 매우 거슬리게 느껴졌다.

분명 10시에 보기로 했는데, 11시가 넘어서 온 건 대놓고 기 싸움을 하겠다는 뜻.

평소였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러려니 했겠지만….

그녀의 실체를 모두 알아챈 지금은, 그녀의 의도가 엿보여서 더더욱 역겹게 느껴졌다.

“근데, 무슨 일 때문에 그래…?”

임아린은 사뭇 걱정스러운 표정을 띠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그 순간.

“임아린.”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홍유라가 선뜻 입을 열었다.

“이제 연기 그만해.”

“…으, 응…? 연기라니…. 그게 무슨….”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임아린.

결국,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다 못한 설주희가 소파를 쿵─ 내려치며 폭언을 쏟아냈다.

“이 씨발년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

임아린은 갑작스러운 폭언에 기분이 나쁘다는 듯 딱딱한 표정을 지었고,

그마저도 연기라는 걸 알아챈 홍유라는, 끓어오르는 화를 잠재우며 미리 준비해두었던 서류 봉투를 테이블에 올려 임아린 쪽으로 스윽─ 밀어주었다.

“봐.”

“…이게 뭐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서류 봉투를 집어 드는 그녀.

홍유라는 그런 그녀의 가증스러운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며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지금까지 네가 저질러온 짓들.”

그러자.

움찔─

여태껏 단 한 번도 동요하지 않던 임아린이 몸을 움찔거리며 살짝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고,

“…….”

조용히 눈을 굴리는 임아린의 행동에 무심코 입꼬리를 끌어올린 설주희는, 마치 현행범을 붙잡은 것처럼 승리를 확신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제야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에 들어오지?”

“…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저지른 짓이라니…?”

임아린은 그제야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도 묘하게 떨리는 손길로 서류 봉투에서 자료를 꺼내보았다.

그리고는….

“!”

가장 맨 윗면에 놓인 문서를 발견하곤 또다시 깜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 환영 마법을 이용한 가상 미디어 제작 ]

도지혁을 나락으로 보내버린 ‘동영상’에 관한 자료였다.

“이, 이게 무슨….”

“임아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유라는 자신들의 패를 어느 정도 내보였으리라 생각하며 싸늘히 말했다.

“이제 다 끝났어. 네가 지금까지 저질러온 짓들도 다 밝혀졌고, 확실한 증거도 다 내 손안에 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포기해.”

“즈, 증거라니…! 유라야, 나는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가증스러운 년. 진짜 연기 적당히 해. 그 짜증 나는 면상 찢어버리기 전에.”

“설주희! 대체 뭐라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임아린은 필사적으로 항의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려고 했지만, 이미 실체를 아는 두 사람에겐 그저 하찮은 발버둥으로 보일 뿐이었다.

“도지혁한테 네 입으로 이야기해.”

“지, 지혁이…? 지혁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네가 박정석 이사 죽였다고.”

“!”

홍유라는 지금까지 임아린이 해온 짓들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네가 천화 그룹에 이간질해서 도지혁 음해하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그 망할 동영상 만들어서 도지혁 강제로 내쫓고.”

또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

“혼자 독차지하려고 했다고. 네 입으로 직접 밝혀.”

싸늘한 분노를 담아 또박또박 읊어주었다.

“…무, 무슨 말을….”

물론 임아린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부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숨기지 못했고,

모든 범행이 밝혀졌음에도 발뺌하는 그녀의 모습에 분노한 설주희는, 까드득─ 이를 갈며 경고했다.

“네년이 안 하면, 우리가 할 거야. 더 좇 같은 꼴 보기 싫으면, 적당히 하고 꺼져.”

두 사람은 임아린이 곱게 물러서길 원했다.

마음 같아선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괴수들에게 밥으로 주고 싶었으나, 차마 그런 짓까지는 벌일 수가 없었기에.

하지만….

“…나, 나는 모르는 일이야…! 대체 이게 뭐냐고…!”

임아린은 끝까지 자신의 행적을 부정했다.

“너….”

“이 씨발년이 진짜…!”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설주희는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며 경고했다.

“임아린. 난 네년이 일부러 도지혁, 그 새끼 다리 부순 거 다 알고 있어.”

“…뭐, 뭐…?”

“…뭐?”

당황한 임아린과 처음 듣는 이야기에 살짝 놀란 홍유라.

설주희는 언젠가 자신이 보았던, 도지혁의 다리를 정확히 쳐다보며 일부러 강력한 마법을 날린 임아린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역겨운 년. 어떻게 그딴 짓을 저지르고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고 다녀? 넌 남의 인생 망쳐놓고 미안하지도 않니?”

“…아, 아니야! 그건 사고였어…!”

“그렇게까지 해서 도지혁 좇 맛 좀 보니까 좋았어? 응? 좋았냐고. 좋았냐고, 이 씨발년아!!!!”

“설주희! 진정해!”

“놔 봐! 저 씨발년 아가리를 찢어서…!”

“설주희!”

홍유라는 폭주하는 설주희를 가까스로 붙잡은 뒤, 사색이 된 채로 벌벌 떠는 임아린을 내려다보며 경고했다.

“임아린. 다시 말하지만, 내일까지 관계 정리해. 그리고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안 그러면 네년이 저지른 짓들 세상에 하나하나 까발릴 거야.”

설주희와 홍유라는 자신들의 계획이 먹혀들었음을 확신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임아린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난 너를 지금까지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곱게 사라질 기회를 주는 거야. …제발 날 더 실망시키지 말고. 잘 선택해.”

의리를 중시하던 홍유라는 그동안 그녀와 지내온 시간을 생각하여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

임아린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홍유라는 최선의 복수를 했다고 생각하며 임아린을 집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이제 그만….”

그런데 그때.

스윽─

갑자기 한쪽 손목을 들고 가만히 내려다보는 임아린.

“……?”

그녀의 손목엔 도지혁이 선물한 얇은 손목시계가 걸쳐져 있었고,

“…….”

그대로 잠시 시계를 바라보던 임아린은, 돌연 몸을 일으키곤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끝났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는 그녀의 얼굴.

“!”

홍유라와 설주희는 순간 귀신을 본 듯 소름이 끼치는 감각을 느꼈다.

“오늘 재미있었어.”

임아린은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챙기곤 다시 한번 시계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일부러 지혁이 다리를 부수고, 못된 술수를 부렸다니…. 정말 생각도 못 해본 방식이었어…!”

“…임아린. 너….”

뭔가 이상한 임아린의 반응에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홍유라와 설주희는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삐비비빅─ 삐비비빅─

집안에 울려 퍼지는 메마른 기계음.

“어머, 12시네.”

임아린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알림을 끄곤 홍유라와 설주희를 슥─ 흘겨보았고,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그럼…. 몸조심해?”

두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그대로 보내주고 말았다.

아니….

그녀가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 어어….”

“…윽…!”

갑자기 발작이 온 듯 머리를 감싸는 설주희와 머리카락을 콱 움켜쥐는 홍유라.

거실에 풀썩─ 쓰러진 두 사람은 마치 공포에 빠진 것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함께 몸을 벌벌 떨더니,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지, 지혁아아…!!!!”

“…아, 안 돼…. 안 돼….”

8월 1일, 0시 정각.

설주희와 홍유라의 암시가 풀려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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