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92화 (92/165)

‘경찰!’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경찰이 ‘나’를 찾아올 이유가 없으니까.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살짝 걱정스러운 눈치로 조심스레 말을 꺼내오는 한규리.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을 꺼내보았다.

“아무 일 없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근데 경찰이 저는 왜 찾는답니까?”

“그게…, 얼마 전에 일어난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는 중이라고 했어요!”

“…교통사고요?”

교통사고.

나는 교통사고를 목격한 적이 없다.

“무슨 수사과에서 나온 형사라고 했던 거 같은데….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어요…. 죄송해요….”

“그럴 수 있죠. 제가 가서 이야기해 볼게요.”

그렇게 한규리를 다독이며 업무로 복귀시킨 후.

나는 ‘형사’라는 사람이 기다린다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형사라….’

경찰 체계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교통사고의 경우 교통과에서 전담하는 걸로 알고 있다.

즉, 교통과가 아닌 수사과의 형사가 나왔다는 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뜻이 되는데….

아이러니한 점은 내가 지금까지 사고가 난 곳을 지나친 경험은 있어도, 교통사고 장면을 목격한 적은 없다는 것.

애초에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정원인가?’

하지만 큰 의미로 국가 기관에서 날 찾아왔다고 하면 말이 된다.

내가 아는 국정원은 자신들의 소속을 대놓고 드러내며 다니진 않으니까.

원작 소설에서도 국정원은 어느 영세 길드로 설주희에게 접근했었지 않은가?

‘5번 사무실….’

이윽고 형사가 기다린다는 사무실에 다다른 나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신호를 보내곤 안으로 들어섰다.

“아, 도지혁 씨?”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건네오는 장신의 여성.

“반갑습니다. 강남 경찰서 안순영 형사입니다.”

갈색 머리카락을 가볍게 모아 묶은 그녀의 얼굴엔 옅은 화장기가 감돌았는데, 조사 중이라 그런지 제복이 아닌 가벼운 사복을 입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그녀의 악수를 받아 주는 척, 곧바로 능력을 사용하여 그녀의 정보를 열어보았는데….

[ 이름 : 박해린 / 잠재 랭크 : A / 보유 능력 : 상급사격술 Lv5 ]

그 순간, 그녀가 어떤 목적으로 날 찾아왔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국정원에서 날 찾아온 것이다.

*

“그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도지혁은 일단 떠보자는 생각으로 박해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국정원에서 찾아왔다는 건, 윤재덕에 얽힌 사건을 추적해왔다는 뜻.

사실상 모든 걸 알아채고 찾아왔을 가능성이 컸다.

“아. 다른 게 아니고, 최근 벌어진 사고를 조사하던 도중에 여쭤볼게 생겨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사고요?”

“네.”

사람 좋은 얼굴의 한편 사뭇 날카로운 눈빛을 띠는 박해린.

“혹시…. 저번 주 목요일 새벽에 뭐하고 계셨습니까?”

목요일은 도지혁이 윤재덕을 잡아 보낸 날이었다.

“글쎄요….”

도지혁은 처음부터 직구로 던져오는 박해린의 행동에 내심 놀라워하며 넌지시 대답했다.

“아마 집에서 자고 있었겠죠.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확실하신가요?”

“틀릴 게 있습니까? 그보다, 저는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는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자고 있던 거랑 교통사고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

박해린은 도지혁의 태도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들의 타겟이었던 윤재덕을 잡아 경찰에 넘겨줬기에 분명 협조적으로 나올 줄 알고 일부러 정체를 알아챌 요소들을 흘리며 접근한 건데….

예상과 달리 모르쇠로 일관하는 덕분에 계획이 꼬이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박해린에게 남은 건 플랜 B뿐.

그녀는 사무실 내에 별다른 도청이나 녹음기가 없었다는 걸 떠올리곤 품속에 넣어두었던 수첩을 꺼내 들며 조심스레 정체를 밝혔다.

“사실 저는 국정원 소속 요원입니다. 윤재덕 관련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 그래서요?”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도지혁이 묘하게 담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뭐야, 이 반응….’

박해린은 또다시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고, 어느새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며 살짝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윤재덕에 관해서 알고 계시죠?”

“예. 뭐….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충 압니다.”

“왜 윤재덕을 경찰에 넘기신 겁니까?”

“제가요?”

“지난 주 목요일! 윤재덕을 경찰에 넘기시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요. 제 친구가 한 일이라….”

“…예? 친구라니….”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박해린.

정보에 의하면 복지단에 침입하여 윤재덕을 잡은 건 다름 아닌 도지혁 본인이었는데….

정작 도지혁은 마치 자신이 아닌 남의 행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근데 그 사람, 잘 잡혀갔답니까? …꽤 나쁜 사람 같던데.”

“……!”

박해린은 그제야 도지혁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가 순순히 협조하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비협조적인 이유를.

자신의 앞에 있는 건 ‘도지혁’.

윤재덕을 잡은 정체불명의 인물과는 철저하게 선을 긋겠단 의도로 느껴졌다.

“…윤재덕은 저희 쪽에서 인계받아, 제대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친구분’께서 노력해주신 덕분에요.”

“잘 됐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도지혁.

그런 그의 모습에 확신을 품은 박해린은, 애써 차분함을 되찾으며 조심스레 본론을 꺼내보았다.

“그래서…. 그 친구분은 왜 윤재덕에게 접근했을까요?”

마치 역할극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도지혁의 협조를 받아내러 온 이상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모르죠. 워낙 속을 알 수가 없는 친구라,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럼, 그 친구분이 또 활동할 계획이 있을까요?”

“글쎄요. 필요한 일이 생기면…. 또 나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도지혁의 행동에 무심코 침을 꼴깍 삼킨 박해린은, 다급히 정신을 차리며 그의 말을 천천히 되새겨보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협조하겠다는 뜻이겠지.’

이유야 어찌 됐든 이해관계만 맞으면 OK.

최근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력이 부족한 국정원으로선, 검증된 인력인 도지혁의 도움이 절실했다.

“도지혁 씨. 저희는 도…. 아니, 친구 분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민간인 손을 빌릴 정도로 급한 일입니까?”

“혹시…. 흑사회라고 아십니까?”

“예. 알 만큼은 압니다.”

“저희는 지금 그 흑사회를 소탕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게이트 폭주 사건 쪽으로 인력이 쏠려버려서, 손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 이겁니까?”

“맞습니다.”

“흐음….”

도지혁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이미 국정원을 도울 마음이 가득했다.

윤재덕을 붙잡아 넘긴 이유도, 애초에 흑사회를 소탕하기 위함이었기에.

하지만.

너무 흔쾌히 받아버리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일부러 재는 체를 하며 슬쩍 떠보았다

“나름 국가에서 하는 일을 돕는 건데, 뭐 보수는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일만 잘 마무리되면, 분명 섭섭하지 않을 만큼 지급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선금 1억. 잔금 4억. 사건 마무리 시 10억. 총 15억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총액 15억.

분명 웬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쉽게 벌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업계 선두를 달리던 도지혁에겐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금액은 아니었다.

“짜네요. 그거 세금은 뗍니까?”

“물론 면세입니다.”

도지혁은 팔짱을 꼬며 고민하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보수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겨우 15억을 덥석 받아들이기엔 너무 명분이 부족했다.

“좀 더 쳐주시죠. 저만큼은 아니어도, 제 친구가 돈이 궁한 편은 아닙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못해도 두 배는 돼야, 뭐 애국심이라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국정원이 그렇게 부유한 조직은 아닙니다만.”

“그럼 다른 사람 찾으시죠. 저 아래에 괜찮은 헌터들 많은데…, 아무나 데려다가 쓰시면 되겠네요.”

궁지에 몰린 박해린은 끙하며 나지막이 신음했다.

도지혁에게 접근한 이상, 그와의 협력은 필수 불가결.

하지만 예산은 20억이 전부였기에, 무언가 활로가 필요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한참 머리를 쥐어짜 내던 박해린은 새로운 제안을 들이밀었다.

무려 흑사회의 재산으로 인건비를 퉁 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거, 횡령 아닙니까?”

“횡령은 불법으로 가져가는 걸 횡령이라 부르죠. 전리품을 가져가는 것 정도는 용인하는 편입니다.”

요컨대, 현장에 가서 능력껏 챙기라는 이야기였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도지혁은 외려 명분 가득한 제안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뭐…. 그렇게까지 간절하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그럼 혹시…?”

“처음 제안했던 보수에 전리품까지. 이 조건이라면 제 ‘친구’랑 같이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로 극적인 타협을 이룬 직후.

“빠른 시일 내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간단히 협의를 마친 도지혁은 박해린을 배웅하고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뭔가 잊고 있던 거 같은데….’

돌아가는 길, 그는 분명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프, 프로듀서님! 어떻게 되셨어요!?”

“이야기 잘 끝났어? 뭐래? 곧 잡으러 온대?”

“그냥 간단하게 증언만 좀 해줬어요.”

“다행이다…. 진짜 깜짝 놀랐어요!”

“애들한테 너 잡혀갔다고 말해야 하나 엄청 고민했다니까?”

호들갑을 떠는 팀원들 덕분에 순간 정신이 팔려 잊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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