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56화 (56/165)

세진 길드의 캠프.

모든 팀원들과 스탭들이 숨을 죽인 채 최효민의 개인 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콰앙…! 콰아앙…! ]

3주간의 고된 연습 끝에 더블 캐스팅을 넘어 트리플 캐스팅을 익힌 최효민은 전심전력으로 마녀의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고,

[ 쿠구구구구궁……! ]

마침내 마녀의 성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 됐다…! ]

“와아아아!!!!”

“최효민이 해냈다아!!!!”

“이겼다…! 블랙 로즈가 퀸즈를 꺾었다!!!!”

환희에 찬 최효민의 목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우레와 같은 함성.

그동안 블랙 로즈의 승리만을 간절히 바라며 헌신해온 스탭들과 팀원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축하드립니다…!”

“단장님! 1등 복귀 축하드립니다!”

“저는 세진이 다시 1등을 차지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크흑….”

“다들 고생 많았어요.”

현장에 나와 있던 세진 길드의 간부들과 이혜리도 함께 기쁨을 나누며 승리를 자축했는데….

‘해냈구나…!’

물론 나도 기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말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에, 최대한 기쁨을 자제했다.

마녀의 성은 무너졌으나, 아직 남아있는 마녀들이 있고, 혹시 모를 퀸즈의 습격도 대비해야 한다.

모든 게 끝나고 축포를 터트려도 늦지 않으리라.

“효민 씨. 민주 씨랑, 인나 씨 쪽으로 합류해서 남은 괴수들부터 쓸어버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 퀸즈가 나타나면 최대한 싸움은 피하세요.”

[ 네! ]

차분함을 되찾으며 곧바로 다음 지시를 내린 나는, 곧바로 통신 채널을 바꿔 본 지휘팀의 임대섭과 짧게 의논하며 혹시 모를 변수를 되짚어보았다.

그러나….

[ 토벌 완료! 바로 복귀할게요! ]

걱정과는 다르게, 천화 길드 쪽에선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공격조차 안 한다고?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공동 토벌 구역은 법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경쟁 상대의 발목을 합법적으로 꺾어버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라는 뜻이다.

그래서 당연히 순위를 빼앗긴 천화 길드 쪽에선 블랙 로즈의 독주를 막기 위해 달려 드리라 생각했는데….

전문 프로듀서의 부재로 지휘 체계에 문제가 생긴 건지, 잔여물 토벌 과정에서도 아무런 방해가 들어오지 않았다.

[ 천화 길드 쪽에서 아예 손을 놓아버린 모양입니다. ]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임대섭의 목소리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게이트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게이트 입구에서 지키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아예 크게 우회해서 돌아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

“저였으면 그렇게까지 합니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다.

경쟁 상대가 단 1주짜리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그 모든 게 이득으로 돌아온다.

공동 토벌 구역은 그런 위험성을 내포한 곳이기에, 더더욱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 알겠습니다. 그럼, 3번 우회로 쪽으로 복귀시키겠습니다. ]

‘어떻게 나올까….’

그렇게 천화 길드의 상황을 추측하며 본대가 무사히 돌아오길 얼마나 지났을까.

“블랙 로즈 복귀했습니다!”

걱정과는 다르게 블랙 로즈는 별 탈 없이 복귀하였고,

“오후 4시 정각! 순위 갱신 중입니다!!”

때마침 시간이 정각을 가리키며, 실시간 팀 랭킹이 갱신되기 시작했다.

[   1st  블랙 로즈 (↑)   NEW!  ]

[   2nd 퀸즈 (↓)        NEW!  ]

드디어 여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만 것이다.

*

마녀의 성이 무너지며, 자신들이 패배했음을 깨달은 직후.

퀸즈의 멤버들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으며 묵묵히 게이트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

세 사람은 당연히 추가적인 지시가 내려오리라 생각했다.

남은 괴수들이라도 토벌하여 포인트를 챙기던, 블랙 로즈를 방해하여 재라도 뿌리던.

이대로 순순히 1등을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하지만….

[ 어, 어떡하죠!? ]

[ 저 미친 새끼들, 성을 통째로 부수는 게 어딨어!? 다른 사람들은 토벌하지 말라 이거야!? ]

[ 일단 기습을 해서…! ]

[ 아니, 기습은 안 돼!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

[ 역시 최대한 포인트라도 챙기는 쪽이…. ]

대처 능력이 매우 떨어지던 지휘소에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왕좌왕해가며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크게 실망한 홍유라가 그냥 복귀하겠다고 통보하며 사실상 토벌을 마쳐버렸다.

“…….”

퀸즈의 멤버들은 1등을 달성하고 처음 맞이하는 패배에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그것이 전력 차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패배가 아니라,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무력하게 패배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뼈아프게 느껴졌다.

‘…우리가…, 졌다고…?’

그중에서도 가장 실망한 건 설주희.

독보적인 선두에 달리고 있던 그녀는 이번 패배가 유독 쓰라리게 느껴졌다.

정답만이 가득하던 새파란 채점지에 오점이 찍혔으며,

그 누구도 흠잡을 수 없던 독보적인 커리어에 흠집이 나버렸기에.

물론 지금의 왕좌에 오르기까지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왕좌에서 내려오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럴 수 있어.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야.’

설주희는 뒤바뀌게 될 순위를 떠올리면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체계가 바뀐 지 얼마 안 된 팀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결과라고.

겨우 몇만 포인트 차이니까,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차이라고.

멤버들의 잘못이 아니라, 애초부터 작전을 잘못 짠 팀원들의 잘못이라고.

적어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합리화를 해가며, 불쾌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웠다.

“…….”

이윽고 다다른 게이트 입구.

화아아악---!

화아아악---!

홍유라와 임아린을 먼저 밖으로 내보낸 설주희는, 아지랑이 피듯 일렁거리는 거대한 게이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게이트 밖으로 나가도 괜찮을까.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침울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

꿀꺽-

설주희는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슬쩍 눈을 감곤 천천히 게이트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과 함께 바깥으로 빠져나온 순간.

“…!”

자신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에 놀라, 짧게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무심히 반짝거리는 여러 대의 카메라와 조용히 깜빡거리는 수십 수백 개의 눈동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였다.

설주희는 그들의 자신에게 보내오는 시선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원망인지,

아니면 실망인지.

적어도 위로의 눈빛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야! 빨리 장비 안 받아주고 뭐하냐!”

누군가 외친 목소리.

“시, 실례하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장비 팀이 퍼뜩 달려와 설주희의 장비를 조심스레 해체해주기 시작했다.

덜그럭…덜그럭…

설주희는 가만히 그들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협찬받아온 장비를 떼어냈고,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며, 여전히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시선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눈치채고 말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딜 보는 거야…?’

설주희는 그 낯설고 외로운 감각에 덜컥 두려움마저 느끼고 말았다.

타인의 시선이라면, 일상이라 표현할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에.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낯선 감정들을 두려워하고 말았다.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선망하고 우러러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잘난 사람에겐 질투하는 게 당연하니까.

인간의 감정을 모두 통달했다고 착각했던 그녀는, 낯선 무관심 앞에 어린아이가 돼버리고 말았고,

마침내 그 무관심이, 자신의 패배에서 우러나왔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겨우 한번 졌다고 이러는 거야…?’

설주희는 치밀어 오르는 모멸감에 주먹을 파르르 떨어댔다.

화려하게 게이트를 토벌하고 나왔을 땐 모두가 입을 모아 축하하고 손뼉을 쳐주며 업적을 치하해주었다.

하지만….

패배자에겐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너 때문에 졌다며, 탓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사람들은 그저 무관심한 눈빛으로 설주희를 바라보고 있었고,

설주희는 사무치는 무관심함에 정신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감각을 느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뭐가 어째!?”

이혜리와 마찬가지로 현장에 나와 있던 단장 구석일이 기함하며 주변의 이목을 모았다.

“……?”

구석일은 모여드는 시선에 괜히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한 직원을 쥐 잡듯 갈구기 시작했고,

때마침 주의를 돌릴게. 필요했던 설주희는, 구석일에게 다가가 슬쩍 말을 꺼내보았다.

“…뭔데요?”

그러자.

“어, 어어!? 아무것도 아니야…! 피곤할 텐데, 어서 옷 갈아입고 쉬어…!”

구석일이 수상할 정도로 말을 피하더니, 붙잡고 있던 직원을 슬쩍 떠밀며 멀리 보내버리려고 했다.

“…뭔데 숨겨요?”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던 설주희는, 팍 인상을 쓰며 천천히 구석일에게 다가갔다.

“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러네….”

무언가 껄끄러운 이야기인 듯 대답을 피하는 구석일.

그런 그의 행동은 이미 눌려있던 설주희의 심기를 건드렸고,

구석일마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설주희는, 무심코 싸늘한 살기를 뿜어내며 대답을 요구했다.

“당장 말해요.”

“뭐, 뭘 말하라는 건지…. 하, 하하….”

식은땀을 흘려가며 필사적으로 대답을 피하는 구석일을 지그시 바라보던 설주희는, 그의 어깨너머로 엉거주춤 서 있던 직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스윽-

눈을 마주친 직원은 목을 죄어오는 살기에 일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구석일의 당부를 무시하곤 다급히 소리쳤다.

“저, 저쪽에, 프로듀서님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프로듀서?”

“너, 너! 그걸 말하면…!”

곧장 이해하지 못한 듯 살기를 거두는 설주희와 소스라치게 놀라며 직원을 나무라는 구석일.

“그게…, 무슨 말이죠?”

뭔가 심상치 않은 걸 감지한 설주희는 다시 한번 직원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고,

“도, 도지혁 프로듀서님께서 직접 블랙 로즈를 지휘하셨다고…!”

“…뭐?”

마침내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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