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40화 (40/165)

첫 번째 팀 단위 훈련을 마친 후.

조금 일찍 훈련을 끝내고 사무실 이사를 준비하던 나는, 한규리와 김준형에게 조만간 게이트에 들어가도 될 거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게이트요?!”

“벌써?”

“실력 보니까, C급 정도는 무난하게 토벌할 거 같아.”

두 사람은 벌써 그 정도냐는 반응을 보여왔는데….

사실 훈련 기간에 비해 성장 속도가 월등히 빨랐으니, 그리 이상한 반응도 아니었다.

“근데 서원이는 괜찮아? 아직 부족하다며.”

“확실히 성장 속도가 엄청 가파르긴 한데…. 한나나 나래하고 비교하면 아직 부족하긴 해요.”

두 사람의 말대로, 현재 우리 팀의 유일한 약점은 메인 딜러인 진서원이다.

현재 그녀의 수준은 잘 쳐줘 봐야 D랭크 정도로, 이미 C급 수준을 넘보고 있는 다른 두 팀원의 비하면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같은 하위 랭크라곤 하나, 스타트를 가장 늦게 끊은 만큼 아무래도 가장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내가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걱정 마.”

나에겐 진서원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방법이 있다.

“뭔데?”

“따로 계획이라도 있으세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줄 테니까…. 아무튼, 이번 주 금요일엔 서원이랑 어디 좀 다녀올게요.”“전지훈련으로 빠지시는 거죠?”

눈치가 빠른 한규리는 이해했다는 듯 행정 처리 방식을 물어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말 내내 경비를 사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날은 좀 간단히 몸만 풀고, 교육 위주로 진행해주세요. 저희 안전 교육 밀려있지 않아요?”

“안 그래도 그거 했냐고 위에서 물어보던데…. 이번에 싹 하면 되겠다.”

그렇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무실 이전 준비를 마칠 수 있었고,

내일 아침을 기약하며, 느지막이 시청을 나섰다.

*

다음 날.

“우와아…! 프로듀서님…! 여기가 진짜 저희 사무실이에요…!?”

“좋지?”

“완전 좋아요…! 와! 엄청 큰 TV도 있어요! 소파도!”

사무실 이사 겸 안내차 팀원들을 이끌고 다 같이 세진 길드로 향한 우리는, 이혜리가 보낸 길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데?’

탁 트인 도시 전망의 새로운 사무실은, 그동안 놀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고 상당한 넓이를 자랑했다.

행정 처리를 위한 공간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 따로 나뉘어 있었는데, 공간 자체가 넓으니, 그만큼 확장성도 좋아서 웬만큼 팀원이 늘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공을 들인 거야?’

말 그대로, 이혜리가 벼르고 있었다는 티가 나는 공간이었다.

“그밖에 시설도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되고, 지급해 드린 카드만 대시면 됩니다. 따로 궁금하신 건 저한테 여쭤보셔도 되고….”

사무실까지 오며 느끼긴 했지만, 세진 길드의 사옥은 가히 상위 길드라고  칭할만했다.

기본적으로 세진 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같은 건물에 사옥을 이용했는데, 같은 대기업인 천화 길드와 비교될 정도로 압도적인 복지를 자랑했다.

천화 길드가 실리적이고 무난한 복지로 꾸며져 있었다면….

세진 길드는 ‘이런 게 있다고?’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하고 섬세한 느낌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짐이 별로 없던 덕에 빠르게 이사를 마친 우리는, 오랜만에 영양식이 아닌 중국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짜장면 엄청 오랜만에 먹는 느낌이네요.”

“그러게요. 시청에 있을 땐 자주 먹었던 거 같은데….”

친목도 다질 겸, 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다 함께 식사를 하던 도중….

“앗…!”

유난히 소스가 많이 뿌려져 있던 탕수육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으으… 오늘 처음 입은 옷인데….”

방한나의 가슴팍에 소스가 떨어지고 만 것이다.

“한나야 여기, 휴지.”

“아…. 감사합니다.”

한규리로부터 휴지를 받은 방한나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가슴팍을 슥슥 닦아냈고,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크기의 흉부를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고 젓가락을 옮기려는 찰나.

“…?”

문득, 맞은편에 앉아 방한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진서원이 눈에 들어왔다.

“…….”

한동안 방한나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들고 있던 젓가락을 가슴팍 앞에 대고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소스가 가슴에 떨어지는 걸 이해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럴 수 있지….’

진서원의 몸매도 어디서 꿀릴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방한나의 몸매가 너무 압도적일 뿐이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의 차이리라.

“…….”

그렇게 이사를 마치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길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코앞으로 찾아온 전지훈련 전날 밤.

“서원아. 옷 세 벌 다 챙겼어?”

“…네.”

“세면 용품은?”

“…아.”

나는 진서원의 숙소에 들러 훈련에 필요한 짐을 싸고 있었다.

그런데.

“…….”

무슨 일인지, 짐을 점검하던 진서원이 갑자기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따로 챙길 게 있는 건가?’

아무래도 무언갈 챙길지 말지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뭐 챙길 거 있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물건의 정체를 잠시 물어볼까 말까 고민했던 나는, 이내 너무 캐묻는 것도 좋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슬쩍 귀띔해주었다.

“2박 3일짜리 일정이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필요한 건 다 챙겨가. 거기서 구하려면 아마 어려울 거야.”

그러자 진서원이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어딘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건네왔다.

“…진짜 아무거나 다 챙겨도 돼요?”

그녀가 말하는 ‘아무거나’란 무엇일까.

평소 그녀의 생활을 되짚어보며 챙길만한 물건을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뭐 별거 있겠어?’

나는 그녀에게 무엇이든 챙겨도 좋다는 확답을 돌려주었고,

“챙기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챙겨.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서원은 묘하게 기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나는 혹시 하는 마음에, 그녀가 챙기는 물건들을 유심히 살펴봤으나….

‘…평범한데?’

이렇다 할 특별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

“서원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

“…그래도 돼요?”

“싫으면 말고. 바로 갈까?”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를 탄 우리는, 어느 휴게소에 잠시 차를 세웠다.

“…그럼. 이거랑, 이거요.”

“…통감자에 슬러시는 대체 무슨 조합이야?”

우리는 내가 마실 커피와 진서원이 고른 간식거리를 사고 차로 돌아와, 다시 출발하려고 했는데….

“…먹을래요?”

“응?”

진서원이 뜬금없이 감자 한 알을 쑤욱 들이밀어 왔다.

“…맛있어요.”

여느 때처럼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그녀의 말투.

정말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지금껏 그녀가 먼저 무언가를 권유해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진짜 나 주는 거야?”

진서원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까딱거리며 이쑤시개를 들이밀어 왔고,

나는 새삼스러운 그녀의 변화에 감탄하며 잠자코 감자 한 알을 받아먹었다.

“…맛있죠?”

“음. 네가 줘서 그런지, 더 맛있네.”

“…이것도 먹어봐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그녀는 곧이어 슬러시도 권해왔다.

그녀가 내내 물고 있던 빨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조금 그렇긴 했으나….

나는 이런 행동으로 그녀의 사회성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빌며 얌전히 빨대를 물었다.

“어우…. 시원하네.”

“…….”

진서원은 내 반응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곧장 빨대를 거두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앙증맞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빨대를 쪽쪽 빨더니.

“……?”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요하게 빨대를 우물거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휴게소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길 얼마나 지났을까.

“내리자.”

우리는 지방에 위치한 어느 야산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턴 차로 못 가니까, 조금 걷자.”

“…걸어서 가요?”

갑작스러운 산행이 영 못마땅한 듯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내오는 그녀.

나는 훈련 대신이라는 말로 그녀를 달래며 산행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기야.”

30분 정도 산을 타다 보니, 마침내 ‘입구’를 나타내는 비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원작 소설인 ‘최강고수’에 등장하는 비밀 장소였다.

‘여기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

성인 남자 정도 되는 크기의 커다란 비석엔 십이간지를 의미하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일종의 도어락과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며, 마력을 담아 순서대로 누르면 해당하는 포탈이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쿡─ 쿡─ 쿡─ 쿡─ 쿡……

그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12자리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쿠구구궁──!

이내 비석 너머로 마치 게이트가 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작은 포탈이 나타났다.

문득 희미한 복숭아 향기가 코끝에 스치는 게, 아무래도 제대로 연 것 같았다.

“들어가자.”

나는 잠시 내려놓았던 짐을 챙기곤 포탈 내부로 발을 들였다.

화아아아아악────!

그러자 특유의 나른한 감각이 온몸을 감싸더니, 은은한 복숭아 향기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커다란 봉우리 밑엔 드넓고 비옥한 평야가 시원스레 늘어져 있었고, 한쪽엔 깨끗한 강물과 아름다운 복사꽃이 한 아름 피워있었다.

이곳이 우리가 2박 3일간 훈련할 비밀 장소.

도원향이다.

*

“짐은 저쪽에 풀면 되고…. 방이 따로 없어서, 여기서 같이 잘 거야. 침대는 어느 쪽 쓸래?”

“…여기요.”

“그래, 그럼….”

진서원은 도지혁의 설명을 들으며 굴 내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한 개의 창고와 넓은 거실로 이루어진 굴 속엔 이미 누군가 사용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뭐야. 이게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는데….”

진서원은 그 흔적들이, 과거 도지혁이 남긴 거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지?’

그렇게 문득 의문을 품으며 굴 속을 돌아다니던 그때.

진서원은 굴 한쪽 벽면에 붙어있던 누군가의 사진을 발견하였다.

“……?”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은 한 장의 사진 속엔 묘하게 앳돼 보이는 두 남녀가 찍혀있었다.

묘하게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의 여인과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얼굴을 들이미는 사내.

‘…프로듀서?’

설주희와 도지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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