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3화 (13/165)

늦은 오후, 퀸즈의 사무실.

[ 이상흠 서울시장, 팀 서울시청에 아낌없는 지원 약속… ]

[ 센트럴 광장 참사의 시민 영웅, 팀 서울시청 소속이었다. ]

[ ‘퀸즈’ 출신 프로듀서, 모범 시민으로 뽑혀… ]

“잘 나가네.”

“뭐가?”

“도 프로듀서. 이번에 모범 시민으로 뽑혀서 시장한테 상 받았단다.”

“엥? 진짜?”

탕비실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던 두 직원은 휴대폰으로 도지혁과 팀 서울시청의 기사를 읽고 있었다.

“와…. 이 사람은 진짜 뭘 해도 되는구나.”

이상흠을 포섭한 도지혁은 즉시 아는 기자들을 총동원하여 준비해둔 기사를 뿌려댔는데,

일종의 미담이라 그런지, 빠르게 퍼져 나간 덕에 퀸즈 직원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근데 이 팀, 완전 신생 아냐? 설마 여기 맡으려고 나갔나?”

“…너 그거 몰라?”

“응? 뭘?”

휴대폰을 들고 있던 남직원은 주변 눈치를 살피듯 탕비실 창밖을 흘끔 쳐다보았다.

게이트 토벌을 마친 날엔 조기 퇴근이 원칙이라 탕비실에 들어올 사람도 없었지만, 그는 괜히 목소리를 죽이며 은밀히 말을 꺼냈다.

“프로듀서님. 위에서 자른 거라는 소문 있잖아.”

“…정말?”

덩달아 작아진 여직원의 목소리.

은근슬쩍 창밖을 등진 남직원은 그녀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단단히 주의를 줬다.

“이거 절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당연하지!”

“…그 왜, 우리 이번에 스폰서 싹 바뀌었잖아.”

“응응.”

“원래 상부에선 그 스폰서들로 맡기고 싶어했는데, 프로듀서가 지금까지 계속 거절해왔대.”

“아, 진짜?”

“그리고 원래 퀸즈 애들, TV 출연 같은 것도 거의 안 했잖아?”

“어, 맞아. 갑자기 다음 주에 ‘혼자사는집’ 출연한다던…. 아.”

“원래 프로듀서님이 애들 광대처럼 부리고 싶지 않다고 싹 다 거절했던 건데, 나가자마자 시키는 거래.”

“세상에….”

“아무튼 말 안 듣는 프로듀서 자르려고, 이간질해서 잘랐다는 소문이 있다더라.”

남직원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커피에 시럽을 뿌렸고,

한껏 심각해진 여직원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거, 퀸즈 애들이 알면 완전 뒤집어지는 거 아냐?”

그냥 뒤집어지는 수준이 아니다.

10년동안 이어온 우정을 한순간에 뒤흔든 대사건인데, 아마 뒤집어지는 정도로 끝나진 않으리라.

“당연히 다 죽….”

그 순간.

남직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새하얗게 질린 모습이, 마치 귀신을 본 사람 같았다.

“…?”

뭔가 이상함을 느낀 여직원이, 고개를 들어 남직원을 슬쩍 바라본 찰나.

“커피 다 뽑으셨어요?”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

소스라치게 놀란 여직원은 다급히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해보았고,

“어, 어어….”

상대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가르마를 탄 곱슬거리는 은색 장발과 사랑스러운 외모가 인상적인 여인.

임아린이었다.

꼴깍─

여직원은 온몸을 짓누르는 묘한 중압감에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 집에 가신 거 아니었어요…?”

“단장님이 부르셔서요.”

“아, 아아! 그러시구나아…! 하, 하하….”

“커피 좀 뽑아도 될까요?”

“그, 그럼요!”

여직원은 다급히 얼어붙은 남직원을 질질 끌며 자리를 내주었다.

“고마워요.”

그러자 사랑스러운 눈웃음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남기곤 커피머신을 조작하는 임아린.

“…….”

잔뜩 긴장한 채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두 직원은 생각했다.

대체 언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신들이 나눴던 이야기를 들었을 거라고.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크게 울리는 곳에서, 못 들었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삑─ 삑─

정작 임아린은 잠자코 커피머신을 매만지고 있었다.

쪼르르르르…… 삐이익─

이내 완성됐음을 알려오는 비프음과 함께 가득 차오르는 향긋한 커피 향기.

“으음…. 좋다.”

임아린은 잔에 든 에스프레소의 향기를 음미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럼, 수고하세요.”

얼어붙은 두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눈웃음을 날리며 그대로 탕비실을 나가버렸다.

*

같은 시각.

표창식이 끝나고, 뒤이은 훈련도 모두 끝마칠 즈음,

“오천 번…. 말입니까…?”

“아….”

피드백을 받던 정수인과 김나래가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을 보여왔다.

내가 예고한 훈련 내용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벌써 이러면 곤란한데.’

나는 이제 첫 번째 주도 지났으니, 슬슬 적응됐을 거라며 새로운 훈련 루틴을 추가하자고 말했다.

정수인은 찌르기 공격 5000회, 김나래는 정령 소환 후 공격 1000회.

두 사람의 현재 수준과 한계, 그리고 효율을 고려한 최적의 훈련 방식이었다.

“못하겠어?”

“아, 아닙니다!”

할 수 있다고 대답해온 두 사람은, 대답과는 달리 서로를 흘끔 바라보며 걱정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사실 내 기준으로는 이마저도 부족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두 사람의 실력을 끌어 올리고 싶다.

아무리 든든한 버팀목인 방한나가 있다곤 하지만, 방패술이 전부인 방한나에겐 공격 능력이 결여돼 있다.

두 사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방한나의 방어력이 얼마나 대단하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힘든 훈련을 시켜버리면 정말 도망칠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짠 훈련 루틴이었는데, 이것도 힘들다고 하면 조금 곤란하다.

“내가 비교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말 안 했는데…. 이건 말해줘야겠다. 너네, 퀸즈 애들이 데뷔하기 전까지 어떻게 훈련했는지 알아?”

“…?”

퀸즈의 이야기에 반응을 보이는 두 사람.

나는 슬쩍 팔짱을 꼬며 차분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매일같이 50가지의 마법을 100번씩 반복하던 임아린과 21개 검술 동작을 500번씩 휘두르던 홍유라의 이야기를.

“오, 오십 가지요…?”

“스물한 번…. 오백…. 마, 만 번!?”

두 사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여왔고, 나는 두 사람에게 선택지를 쥐여주었다.

“물론 그 훈련들도 다 내가 구상한 거야. 성과는 너희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너희가 힘들다면 훈련양을 줄여 줄게. 물론…. 그만큼 성장 속도가 느려질 거야.”

그때.

“프로듀서님!”

퇴근 준비가 다 된 듯, 저 멀리 한규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회식에 갈 시간이었다.

“…어차피 이건 다음 주부터 하는 거니까, 한번 해보고 생각해봐. 내가 괜히 회식 직전에 입맛 떨군 거 같아서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수인과 김나래는 애써 괜찮다고 이야기해왔으나, 이미 두 사람의 텐션은 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았다.

‘이만큼 조였으면 안 풀어지겠지.’

나는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그대로 다른 팀원들과 합류하였고, 우리는 인근의 고깃집에서 기념비적인 첫 번째 회식을 벌였다.

“팀 서울시청을 위하여!”

““위하여!””

김준형의 건배사와 함께 호쾌히 술잔을 비우는 팀원들.

나는 조용히 잔을 내려놓으며, 미리 따라두었던 음료수로 입을 축였다.

“어? 도지혁. 왜 안 마셔?”

그런데 그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김준형이 은근슬쩍 눈치를 주었다.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 있는 게, 나를 놀릴 생각이 다분했다.

“그러네? 프로듀서님은 술 안 드세요?”

“원래 술 안 드시나…?”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나에게로 모여들었고, 김준형은 그럴 리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아냐, 얘 술 마셔.”

“아, 맞아요!”

하필 방한나까지 있는 탓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

나는 장난기 가득한 팀원들의 시선을 모른 체하며 적당히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

“나 차 가져왔잖아.”

그러자….

“대리 부르면 되잖아!”

김준형이 절대 곱게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대리비는 누가 내고. 네가 내줄 거야?”

“소중한 팀원들이 너 축하해주겠다고 불금에 회식 참여한 건데, 이걸 빼? 와…. 도지혁, 진짜 피도 눈물도 없구나.”

“아니, 돈 이야기하니까 쏙 빠지는….”

“얘들아! 저런 놈 축하해주지 말고, 한나만 축하해주자! 한나야, 축하해!”

““와아아!!””

팀원들도 김준형의 장난에 흥이 오른 듯 덩달아 맞장구를 쳐주었고, 나는 금새 달아오른 분위기에 무심코 웃음을 흘리며 조용히 젓가락을 옮겼다.

그렇게 어느덧 점점 무르익어 가는 회식.

애초에 간단한 자리였기에 다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지는 게 전부였고, 그렇게까지 막 취한 사람도 없었다.

딱 한 명만 빼고 말이다.

“푸로두서니임…! 왜 안 마시냐구요…!”

하필 내 옆에 자리를 잡았던 그녀는 나를 붙잡고 치근거려왔는데, 붉게 물든 얼굴과 잔뜩 풀린 눈이, 누가 봐도 만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한나야. 너 엄청 취했어. 그만. 그만 마시자. 이건 내려놓고, 옳지….”

“아잇…. 딱 한 잔만 더 마실게요오…!”

술을 마셔본 경험이 별로 없는 걸까?

아무래도 자신의 주량을 훌쩍 넘겨버린 것 같았다.

“제발 물도 좀 마시고….”

“저는 술이 좋은데요오…?”

“이거 사실 술이야.”

“어, 진짜요?”

정말 몰랐다는 것처럼 눈을 땡그랗게 뜨곤 물을 걷네 받는 그녀.

“푸하아…. 진짜 술이네에?”

그런 방한나의 모습에 팀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고,

“……?”

방한나는 물 잔을 든 채로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방한나의 주사기행과 함께 어느덧 끝나버린 첫 번째 회식.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오!!”

방한나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팀원들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자, 팀원들이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다음 주에 보자!”

“주말 잘 보내…!”

“한나 잘 들어가고, 프로듀서님도 조금만 더 고생해주세요.”

“운전 조심히 해라. 한나 귀한 몸이니까.”

다른 팀원들은 반대쪽, 방한나와 나만 같은 방향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준 뒤, 연신 허리를 꾸벅이고 있는 방한나를 질질 끌며 차에 태웠다.

“안전벨트 잘 맸어?”

“으으음…. 하긴 했는데에…. 가슴이 답답해요오….”

가슴 사이로 파고든 안전띠가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며 칭얼거리는 그녀.

‘…진짜 어마어마하네….’

나는 멋대로 시선을 빼앗아 가는 괘씸한 계곡에 내심 감탄을 내뱉으며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하게 된 방한나의 집.

“아, 우리 집이다…!”

“여기야?”

그녀의 집은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원룸촌에 있었는데, 꽤 최근에 지어진 듯 외관이 깔끔했다.

“한나야. 집 다 왔으니까, 이제 들어가.”

나는 집까지 드나드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혼자 들여보내려고 했는데….

“으응…? 같이 안 가요…?”

“나도 집 가야지.”

“물 마시고 가요오….”

“물은 가면서 마실 테니까….”

“아! 물 마시라고오!”

방한나가 의자에 찰싹 달라붙으며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고,

“하아…. 그래, 가자, 가. 딱 물 한잔만 마시고 갈 거다?”

“네에…. 히히….”

결국, 어쩔 수 없이 방한나의 집안까지 들어서고 말았다.

‘…딱 여자애 방 같네.’

방한나의 자취방은 평범한 또래 여자아이들의 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아기자기한 게, 방한나의 성향이 묻어나오는 느낌이었다.

“푸하….”

그렇게 방한나가 건네온 물을 마신 나는, 적당히 그녀를 눕혀놓고 집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한나야. 물 마셨으니까, 이제 갈…. 응?”

조금 전까지 침대 끝에 앉아있던 방한나가 사라져버렸다.

‘…어디 갔지?’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고,

어느새 뒤로 돌아온 방한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나야?”

그 순간 방한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와락─!

나를 덮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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