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4화 (14/165)

순식간에 뒤집혀버린 시야.

“웁…!”

얼굴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포용감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방한나의 품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가지마요오….”

숨어있던 힘이라도 깨어났는지, 방한나가 더더욱 힘을 주며 내 뒤통수를 강하게 끌어안기 시작했다.

꼬오오옥─

일말의 틈마저 허용치 않겠다는 듯 입과 코로 밀려드는 부드러운 살결.

‘수, 숨이….’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가슴에 묻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옮겨 거대한 계곡을 덥석 움켜쥐었다.

“흐으응….”

그러자 방한나가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어댔는데….

흥분은커녕 생존 본능이 앞섰던 나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살결을 밀어냈고,

“흐읏…!”

그녀가 마치 약점을 공략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민감히 반응한 덕분에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허억…허억….”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한나의 고약한 술주정을 원망하던 찰나.

“으으음….”

제 가슴을 꼬옥 끌어안으며 통통한 허벅지를 비벼대는 방한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놀라울 정도로 비현실적인 그녀의 몸매는 그 어떠한 것보다 더없이 자극적이었으며,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킬 정도로 탐스러워 보였다.

‘미친 새끼.’

애써 눈을 돌리며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 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이불을 냉큼 집어 방한나에게 덮어주었다.

빨리 가려버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에.

“으으응…. 더워어….”

하지만 방한나는 투정을 부리며 이불을 휙 걷어차더니, 덥다는 이유로 상의까지 훌렁 걷어버렸다.

“야, 야! 아니, 얘가 진짜…!”

훤히 드러나 버린 뽀얀 복근과 얇은 허리.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좋은 말로 그녀를 달래며 다시 한번 이불을 덮어주었다.

“…한나야. 이거 덮고 자자. 안 그러면 감기 걸려.”

그러자.

방한나가 투정을 그만두곤 나를 바라보더니….

“쓰담쓰담해조.”

뜬금없는 요구를 들이밀어왔다.

“…뭐?”

“해조오…!”

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애교를 부리듯 자신의 앞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야말로 점입가경.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빨리 해주세요오….”

“…그럼 이불 덮고 잘 거야?”

“응…!”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그녀의 이불을 끌어올려 목까지 덮어 준 뒤, 침대 밑에 앉아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스윽… 스윽…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은근한 회의감이 몰려온다.

언젠가, 막 성인이 된 이후 퀸즈의 세 사람과 다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들을 붙잡고 별소릴 다 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임아린이 나를 눕히기 위해서 정말 고생했다고 들었다.

아마 지금 내 기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아….”

그렇게 딴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길 잠시.

묘하게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슬쩍 시선을 옮겨보니, 방한나가 아예 눈에 힘까지 줘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말 안 듣는 어린 조카를 재우는 느낌이었다.

‘귀엽네.’

나는 증거용 동영상을 남길 생각으로 휴대폰 꺼내기 위해 슬쩍 손을 떼어냈다.

“더 해줘.”

그러자 방한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태클을 걸어왔다.

나는 동영상을 마저 켜고 방한나를 찍으며 반대 손으로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는데….

스윽… 스윽…

그녀는 내가 동영상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좋다는 듯 눈에 힘을 줘가며 나를 응시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방한나의 머리를 쓰다듬길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눈이 꾸벅꾸벅 감기더니, 이내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술기운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후우….”

마침내 그녀가 잠든 걸 확인한 나는, 엉망이 된 방을 뒤로하고 방한나의 자취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근처 편의점에 들러 숙취해소제를 구매하여 방한나의 자취방 문에 걸려있던 우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숙취해소제를 넣어놨으니, 꺼내 마시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 이것도 보내야지.’

그녀의 귀여운 모습이 담긴 동영상도 잊지 않고 보내주었다.

*

다음 날.

주말을 맞아 텅 빈 퀸즈의 사무실.

그 어두컴컴한 사무실 한가운데, 유일하게 밝혀진 곳이 있었다.

“…….”

단장 구석일의 호출로 모인 퀸즈의 세 사람은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놓인 USB 하나 바라보았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USB였으나, 그 내용은 전혀 평범치 않았다.

무려 도지혁의 자료가 든 USB였다.

“이번엔 나 혼자 보고 적당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이걸 숨기는 건 도리가 아닌 거 같아서 이렇게 불렀다.”

구석일의 말에 슬쩍 고개를 든 홍유라는 어딘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건넸다.

“대체 누가 이런 걸 보낸 거죠?”

“…그건 보면 알 거야.”

구석일은 의미심장한 대답과 함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전에 서류 뭉치를 보내온 것처럼, 익명의 누군가가 USB를 보내왔다고.

“나도 사람을 써서 뒤를 캐보려고 했는데, 얼마나 꽁꽁 감췄는지, 아무것도 못 알아냈어.”

“…….”

홍유라는 누가 봐도 수상한 정황에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데, 보면 안다니?

“그럼, 빨리 보여줘요.”

그때, 설주희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슬쩍 팔짱을 꼬며 말했다.

“일부러 이렇게 부른 이유가 있을 거 아녜요.”

그러자 구석일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일단 보고 이야기하자며 USB 안에 들어있던 동영상을 재생했다.

[ 진짜 좆됐으니까, 말하지 마. ]

동영상은 일전과 달리, 고급 호텔로 추정되는 곳에서 시작됐다.

[ 그러게, 그런 애 만나지 말고 나만 보라니까…. ]

얼굴에 모자이크가 걸린 여성은 우아한 웃음을 흘리며 도지혁의 가슴팍을 슬슬 쓰다듬었고,

도지혁은 그런 여성이 귀찮다는 듯 흘겨보며 말했다.

[ 내가 그딴 쓰레기 년인 줄 알았어? 그리고. 나 이제 누나도 못 믿어. ]

[ 날 못 믿으면, 누굴 믿어? ]

[ 임신한 거 숨기다가 걸려놓고 양심도 없지? ]

누나라고 불린 여성은 이젠 모두 지난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도지혁을 달래주었는데….

“…임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주희는 저도 모르게 민감히 반응하고 말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보여 주는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

여성이 슬쩍 질문을 건넸다.

[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 뭘? ]

[ 퀸즈 애들. 이제 연락 안 할 거야? ]

[ 내가 그 년들하고 연락을 왜 해? 이제 남인데. ]

[ 정말? ]

[ 그럼 거짓말이겠어? 어차피 그 년들은 나 없으면 망해. 한번 좆돼봐야 정신을 차리지. ]

동영상 속 도지혁은 폭언을 쏟아내며 퀸즈의 세 사람을 모욕했고,

여태 입을 다물고 있던 임아린이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흣….”

“…아린아….”

홍유라가 임아린을 토닥여주며 위로해주자, 보다 못한 설주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분노를 터트렸다.

“도지혁…. 이 개새끼…! 절대 가만 안 둬…!”

그렇게 단장실 안의 분위기가 엉망으로 치닫던 그 순간.

[ 그럼…. 진짜 세진에 들어갈 거야? ]

[ 응. ]

[ 언제…? ]

[ 당장은 말고…. 좀 잠잠해지면 들어가야지. 바로 들어가면 괜히 의심받을 거 아냐. ]

모니터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안 들어가면 안 돼? ]

[ 왜? ]

[ 거기 단장이 너 좋아하잖아. 네 주변에 자꾸 여자 늘어나는 거 싫어. ]

[ 누나가 내 여자친구도 아닌데 왜 싫어. ]

[ 그럼…, 여자친구 할까? ]

[ 그만 만나고 싶다고? ]

[ …자, 장난이지…. ]

잔뜩 기가 죽어버린 여성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이불 아래로 기어들었고, 도지혁이 익숙하다는 듯 여성의 머리를 움켜쥠과 동시에 동영상은 끝이 나버렸다.

“…….”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임아린과 믿을 수 없다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짓는 홍유라.

그리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싸늘한 살기를 뿜어대는 설주희까지.

세 사람은 비로소 보면 안다는 구석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받았던 첫 번째 동영상은 도지혁의 추악한 진실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도지혁은 퀸즈에서 나가게 됐고, 이번에 두 번째 동영상이 도착했다.

동영상 속 도지혁은 의문의 여성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처럼 보였는데, 이전과 다르게 여성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여성은 도지혁이 세진 길드에 들어가는 걸 못마땅해했다.

즉.

첫 번째 동영상은 세진 길드가 이간질을 위해 보냈다는 걸 추측할 수 있고,

두 번째 동영상은 도지혁이 세진 길드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여성이 보내왔다는 걸로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건 모두 억측에 가까웠지만….

또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지금껏 세진 길드의 단장 이혜리가 도지혁에게 여러 번 접근해왔으며,

도지혁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절대 가만 안 둬.”

설주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기만하고 모욕했던 도지혁도, 함부로 이간질을 시도한 세진 길드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단장님. 당장 법적 조치 취하고, 세진 길드에 성명문 발표하세요.”

“어, 어?”

“싹 다 죽이라고요. 안 그러면 진짜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 같으니까.”

“주, 주희야! 일단 진정하고…! 이건 추측일 뿐이니까….”

구석일은 설주희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진땀을 뻘뻘 흘리며 그녀를 설득했다.

하지만….

설주희의 분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니다…. 그냥 두세요.”

“그, 그래! 일단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제가 얼굴 보고 ‘직접’ 이야기할게요.”

“…어?”

설주희는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기세로 자리를 박차며 단장실을 나섰고,

“히익…!”

구석일은 순간 창백해진 얼굴로 맞은편에서 울고 있던 임아린을 흘끔 쳐다보더니….

“주, 주희야! 가면 안 돼!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어! 제발 부탁이다…!”

몸까지 내던져가며 다급히 설주희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다.

“이거 놔요.”

“아, 안 돼! 주희야! 이러면 모두가 곤란해져! 제발 조금만 화를 식히고….”

“놔.”

“히, 히익…. 주, 주희야…. 우리 팀에 딸린 식구들을 생각해봐! 모두 너만 바라보고…!”

그렇게 구석일과 설주희가 씨름하고 있는 사이….

잠자코 앉아있던 홍유라가 묘한 눈빛으로 옆자리에 앉아 울고 있는 임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설주희의 발목에 매달려,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 구석일을 흘끔 쳐다보았다.

*

띵동─ 띵동─

“…?”

뜬금없이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에 무심코 눈이 뜨인 나는,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흘끔 바라보았다.

시간은 오후 1시.

주말 1시에 찾아올만한 사람은 없었다.

‘택배도 안 시켰는데….’

띵동─ 띵동─

계속해서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에 무심코 한숨을 푹 내쉰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인터폰을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프로듀서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열어주세요…. ]

작은 인터폰 화면 속, 다짜고짜 사과를 건네오는 그녀의 모습에 잠이 확 달아나고 말았다.

[ 프로듀서니임!!! ]

방한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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