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기묘한 전투
뱅트손의 명령에 따라 출동한 기사와 영지군 역시 뱅트손과 같은 의견이었다.
출동한 병력만으로도 적을 제거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의견에 다들 동의하고 있었다.
오히려 왜 이리 호들갑이냐는 불만을 가진 자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단 한 사람이 천인대를 몰살하다시피 했다는 소문 따위는 믿지도 않았다.
기사가 벌이는 전투에 대한 낭만이 있고 거기에 전투 경험까지 없는 애송이라면 모를까, 전투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은 그냥 웃고 넘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배고프고 위험했던 스케티의 영역으로부터의 후퇴를 경험했고, 일부는 영지전이나 도적 토벌전 등 평소에도 소규모 전투를 계속 겪어온 베테랑이었다.
전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견해는 대부분 일치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적군의 숫자는 절대 백인대를 넘을 수 없다.
아주 뛰어난 기사라고 하더라도 체력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예외가 있다면 상대방이 공포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 정도?
공황에 빠져서 도망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적이라면 아무리 많은 숫자의 적이라고 하더라도 패주시킬 가능성이 있다고들 했다.
천인대의 몰살이라는 어이없는 패배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했다.
병사들을 지휘해 본 기사들은 전멸한 천인대가 여러 용병대를 섞어서 다시 편성 중이었다고 하니, 용병들끼리의 갈등 때문에 군율이 무너져서 발생한 참사가 아닌가 하고 추정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적이 한 명이라는 것은 과장이거나 뭔가 잘못된 보고였을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실제로는 기사단 하나가 공격해 온 것인데, 보고 과정에서 와전되어서 한 명에 의해 천인대가 무너졌다는 말까지 나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현실적인 가정과 논리적인 추정은 가짜 몸이 그들의 눈앞에 등장했을 때 무너졌다.
보고도, 소문도 모두 사실이었다.
단 한 명.
단단히 준비하고 출동한 기사들 앞에 등장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싸듯 함께 움직이는 말들만이 소문과 다른 부분이었다.
뱅트손의 토벌대에서 가장 선두에 선 것은 기사로 이루어진 기마부대였다.
30명으로 구성된 완편 기마부대 6개가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한꺼번에 몰려왔다.
토벌 부대가 이동해 온 도로는 뱅트손의 직할령을 관통하는 중심도로라서 아주 넓고 잘 관리된 관도였다.
10마리씩 3열.
관도를 꽉 채운다면 그런 식으로 나란히 서면 될 정도의 넓이였다.
“어떻게 합니까?”
“뭘?”
“계획대로 관도를 가로막고 3열로 돌격합니까?”
“저기 있는 한 명을 상대로? 이봐. 부관 우리는 기사야. 병사가 아니라고.”
상대해야 할 적이 단 한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선임 기사는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분기가 섞인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냥 밟아버린다. 선두 거창!”
“거창!”
“이 열부터는 알아서 해라.”
이동하던 대형 그대로 돌격할 참이었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고 있던 5명의 기사는 사람 키의 3배 정도 되는 창을 동시에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달리던 말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말발굽의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30명의 기사는 말과 함께 한덩어리로 뭉쳐서 적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창으로 찌르고 둔기로 내려치고 말발굽으로 밟을 작정이었다.
적을 아예 고깃덩어리를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30명의 완편 기사단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돌진하는 모습은 기사단의 결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북소리치듯 울리는 말발굽 소리조차 폭력적으로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곧 창에 꿰이고 말발굽에 밟힐 적의 얼굴은 너무도 태평했다.
심지어 그 주변의 말들조차 태연하게 투레질이나 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겁이 많기로 소문난 말이 살기를 풍기며 몰려오는 적들을 보면서도 겁을 먹기는커녕 흥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평소 말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온 기사들은 무엇인가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20미터? 아니면 30미터?
그 정도의 거리가 되어서야 비로소 말 위의 적이 반응했다.
가짜 몸은 되는대로 온갖 것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무기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온갖 것이었다.
그의 옆에 모여있던 말들은 그에게 가까이 접근했다가 죽어버린 기병이나 기사의 말들이다.
당연하겠지만 말에는 온갖 물건이 실려 있다.
바로 그 온갖 물건을 던진 것이다.
주먹 절반 정도 크기의 돌멩이가 날아가고,
말 옆에 매달려 있던 검집이 날아가고,
단검도 날아가고,
투구도 날아갔다.
채찍도 날아가고,
돈주머니도 날아가고,
안장도 날아가고,
둔기도 날아갔다.
온갖 물건이 1초에 두세 개씩 연달아 날아갔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공격이었다.
그리고 날아가는 물건에 무지막지한 속도가 곱해지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공격은 치명적인 공격이 되어 버렸다.
선두에서 돌격하던 선임기사는 자신을 향해 무엇인가가 날아왔다는 것을 인식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날아오는 물건에 반응해서 몸이 움찔하고 반응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날아오는 물건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가 맞은 것은 돌멩이였다
날아온 돌멩이는 잘 만들어진 판금갑옷에 구멍을 내고 그의 가슴에도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돌격해오던 기사의 가슴 역시 박살을 냈다.
선임기사는 통증을 느낄 사이도 없이 즉사해버렸다.
다른 기사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은 운명에 처했다.
30명에 달하던 기사들은 어어 사이에 모두 말에서 떨어져 버렸다.
살아남은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장면을 보면 일단 부정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뭔가 잘못 보았다고 생각하든가 아니면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로는 뭔가 다른 일이라고 논리적인 설명을 붙이기도 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멀리 있는 적이 무엇인가를 던지는 것을 보았고, 기사들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음에도 둘을 연관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판금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가 날아온 무엇인가에 맞아서 말에서 떨어진다니!
화살을 맞아도 튕겨내는 것이 판금 갑옷이다.
그래서 30미터 정도 뒤에서 후속하던 두 번째 기사단의 선임 기사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했다.
“머리를 숙여! 허공에 밧줄을 매어 놓았다!”
그러나 불과 몇 초 뒤에 그들 역시 같은 운명에 처했다.
허공에 밧줄을 매어 놓았다고 판단했던 선임 기사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을 사이도 없이 즉사했다.
그가 얻어 맞은 것은 철로 된 건틀릿이었다.
쇳덩어리에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그는 머리가 아예 날아가 버렸다.
이 정도라면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
6개의 기사단 중 2개가 순식간에 죽어 나갔고, 그 이유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나마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반응했다.
관도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관도를 벗어난 것이다.
관도의 좌우로 흩어진 기사단은 분노로 눈이 시뻘게진 채 가짜 몸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기사단이 뭉쳐서 돌격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가려서 멀리 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기사들이 흩어져서 사방에서 돌격하기 시작하니 비로소 시야가 트여서 멀리 뒤에 있던 뱅트손까지도 전장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볼 수 있었다.
백인대가 아니라 백 명이 넘는 기사를 상대로도 일방적인 학살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여전히 온갖 물건이 날아갔다.
온갖 물건이라고 하지만 날아갈 때는 무엇이 날아가는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기사들은 연달아 말에서 떨어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다 .
사방에서 공격한다고 하지만, 기사들은 아직 가짜 몸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기사가 10미터 정도였다.
그 대가로 그는 상반신이 아예 날아가 버렸다 .
결국, 아직 죽지 않은 기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납득을 하고 말았다.
돌멩이에 맞아서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날아온 방패에 맞아서 목이 잘려 나가는 동료를 보게 되면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판금갑옷이라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결국 기사들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후퇴를 명령해야 할 선임기사들이 가장 먼저 죽어 나간 후라서 명령권을 가진 기사조차 없었기에 제멋대로 전장에서 이탈한 것이다
공포에 잡아먹힌 기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러나 가짜 몸은 도망치는 기사들을 그대로 놓아줄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에게 대화의 상대가 될 만한 자는 하나뿐이었다.
도망치던 기사들이 하나하나 말에서 떨어졌다.
대부분 등이 박살이 났고, 일부는 머리가 박살이 났다.
끝까지 살아서 도망친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
마지막 기사는 200미터가 넘는 거리를 도망치고도 장화에 맞아 죽었다.
그것으로 기사단은 전멸했다.
6개의 완편 기사단.
180명의 기사가 몰살당했다.
뱅트손은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는 동안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제법 전투를 치러보았고, 거인 기사를 만들어내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경험도 해보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전투는 낯설었다.
아니, 기괴했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전혀 전투답지 않은 전투였다.
그러나 뱅트손은 저자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저자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줄 생각이었다면 그것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당장 그의 영지병들부터가 심각하게 동요했다.
대를 이어 세습되는 특권을 가진 영지병들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부대가 와해되고 탈영병이 속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멀쩡한 것은 그의 거인 기사들뿐이었다.
인간적인 감정이 무디어진 그의 거인 기사들만이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
당장이라고 그가 명령을 내리면 거인 기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적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뱅트손은 망설이고 있었다.
저 자에게까지 갈 동안 얼마나 많은 거인 기사들이 죽어나갈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을 탄 180명의 기사들이 달려들었음에도 저자의 몸에 손도 대지 못했다.
그렇다면 350명의 거인 기사들이라면 어떨까?
과연 몇이나 죽지않고 저 자에게 도달할 수 있을까?
뱅트손은 근래에 자신이 모든 면에서 너무 경솔하고, 조급해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후퇴하는 것도 곤란했다.
황제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기 이전에 저자가 과연 후퇴를 용납할지 의문스러웠다.
도주하는 기사들을 모조리 죽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대답은 아무래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뱅트손이 결정하기 전에 가짜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가짜 몸은 뱅트손의 토벌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