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69화 (169/248)

169. 습격은 성공

“어? 이게 무슨 냄새지?”

블레인과 같이 있던 수인족 부하 하나가 킁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인족이 냄새에 민감하다고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게다가 며칠씩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지내다 보면 아무리 냄새를 잘 맡는 코라고 하더라도 주변의 냄새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 익숙해진다기보다는 마비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블레인과 같이 있었던 부하들 중 몇 안 되는 수인족도 마찬가지였다.

예민했던 코는 창고의 묵은 곡물 냄새, 병사들의 땀에 쩔은 옷 냄새, 가죽에서 나는 악취,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서 나는 온갖 냄새로 인해 마비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니듯 수인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냄새에 금방 항복하고 후각을 잃은 수인족도 있었지만 한 명은 여전히 주변의 냄새로 인해 며칠째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자신의 코에서 느껴지는 낯선 냄새에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며 일어선 것이다.

코가 마비되었을지는 몰라도 귀까지 마비되지는 않은 수인족들은 그의 의문섞인 혼자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성격 급한 수인족 하나가 덩달아 일어나며 무기를 잡자, 그 주변의 기사들은 수인족, 인간 할 것 없이 우르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냄새라니?”

느긋하게 쉬고 있다가 어수선해지는 부하들을 본 블레인이 놀라서 고함을 치자, 처음에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며 중얼거리던 수인족이 즉시 다가왔다.

“지금까지 맡던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납니다. 블레인 남작님. 여기 있는 놈들 냄새는 아닙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녀석들 냄새는 다 기억하는데 분명히 처음 맡는 냄새입니다.”

“우리 편 냄새가 아니라고?”

“예. 다른 곳에서 전령이라도 온 것이 아니라면 이거 아무래도······”

“이 시간에 전령은 무슨. 누군지 모르겠지만 간이 커도 진짜 큰 놈이 여기까지 기어 온 모양이군. 머리도 나쁘지 않아서 이곳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온 모양이지만, 창고에 누가 있을지는 예상을 못했을 거다. 다들 무기를 챙겨!”

블레인의 명령에 아직 눈치를 보고 있던 기사들까지 무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적이다! 컥!”

“적이 들어왔다!”

외곽 경계병이 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블레인은 생각보다 빠르게 침입자를 찾아낸 외곽 경계병에게 포상을 내려야 겠다고 생각하며 손짓했다.

“뭣들 하고 있나? 당장 나가서 놈들을 처리해!”

우르르 몰려 나가는 부하들의 뒤를 따라 블레인 역시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분명히 외곽 경계병으로 남겨 놓은 인원이 20명 정도였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점호를 했기 때문에 확실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인원은 3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3명의 병사조차 그가 보고 있는 앞에서 목이 날아갔다.

글자 그대로 목이 날아간 것이다.

사람 키의 두 배 가까운 창을 휘두르는 기사의 창이 크게 반원을 그리는 순간 그의 병사가 들고 있던 창과 칼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도 못했다.

함께 잘려서 바닥에 뒹굴었다.

물론 그 짧은 순간에 20명이 다 죽은 것은 아니다.

아직 좌우에서 달려오고 있는 경계병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적의 침입을 눈치채고 밖으로 나오는 그 짧은 순간에 절반에 달하는 병력이 삭제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칼과 창이 함께 잘려 나갔다는 것이다.

마치 벌목도로 아직 굵지 않은 생나무를 단숨에 베어버리는 것처럼 제련된 철로 만들어진 강철 무기가 연달아 잘려나갔다.

청동이나 황동같이 무른 금속이 아니라 제련된 철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원로원의 괴물노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원로원의 노인들 중 몇 명은 그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신기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보여준 것 중에 저것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아직 어린 시절 청동으로 된 컵을 단칼에 자르면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으스대던 그에게 원로원의 노인 하나가 상대방의 칼을 자르는 법을 보여주겠다면서 자신이 가진 칼을 노인의 단검으로 모두 토막 쳐 버린 적이 있었다.

들고 있던 장검이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잘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질려버린 그는 장검의 손잡이만 남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했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아스워드와 달리 그는 감히 원로원의 노인들을 경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함부로 전투의 일선에 서지도 않았다.

겨우 4명의 선제후의 중의 하나에 불과한 자신의 가문에도 저런 실력자들이 있는데 다른 가문까지 생각하면?

그리고 가문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생각한다면?

세상은 넓고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일신의 실력을 올리기 보다는 뛰어난 사람을 휘하에 두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기사조차 아래에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어쩌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두려움이 몰아닥쳤다.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는 개인으로 숫자를 이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블레인은 겨우 병사 몇 명을 토막쳤을 뿐인 적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더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창고 밖으로 나온 블레인이 멈칫하기는 했지만 그의 부하들은 거침없이 침입자를 향해 달려갔다.

모두 기사급의 인재였고, 블레인이 신경써서 끌어모은 자들이기도 했다.

아직 경험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행세하는 집안의 유력한 후계자이거나 적어도 차순위 후계자 정도는 되는 자들이었다.

블레인이 생각하는 미래를 위해 중요한 자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야전을 돌아다니면서도 진짜 위험한 곳은 피했었던 것인데 하필이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후방에서 이 모양이었다.

창의 든 연합자치령의 기사와 자신의 부하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자가 부딪히는 순간.

블레인은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

내 뒤를 따르는 부하는 불과 4명이었다.

그리고 그중의 하나는 마법사로 육체적인 능력은 별 볼 일 없는 자였다.

되도록 빨리 목표를 달성하고 도망치지 않는다면 숫자의 파도에 떠밀려서 익사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최선의 최선을 다해야 했다.

피요트르에게 공작군의 창고를 불지를 것을 명령하며 공작군의 경계병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외곽 경계에 기사를 둘리 없으니 코를 높이 쳐들며 킁킁 대던 2명의 수인족을 제외한다면 모두 병사일 것이다.

나는 수인족을 향해 창을 뻗었다.

나머지는 부하 기사들에게 맡겼다.

아무리 숙련된 병사라고 해도 병사는 병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에 맞선다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수인족만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면 외곽의 경계병은 걱정할 것이 없다.

문제는 창고 안에 있는 자들.

50명에 달하는 매복의 존재다.

최소한 기사 몇 명이 섞여 있는 정예 병사 집단으로 봐야 한다.

저들이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 꽤나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4명의 기사만으로 기사가 섞인 공작군을 상대하는 동안 창고를 태우는 일은 전적으로 피요트르가 해야 할 일이 된다.

나는 창고를 태우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라는 피요트르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뻗은 창끝에 걸린 수인족은 상당히 빠른 움직임을 가진 자였다.

과연 수인족이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빨라도 창끝이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채찍도 소리의 속도를 돌파하며 공기를 찢는데 내가 직접 휘두르는 창이 그 정도 속도를 못 낼 리가.

반원을 그린 창에 달린 언월도 형식의 칼날은 수인족의 목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두 명의 수인족은 자신들의 몸뚱이가 쓰러지는 모습을 바닥에 구르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에 과시하듯 철창을 흔들어 칼날에 묻어있던 피를 털어냈다.

내가 쓰고 있는 철창의 한쪽 끝은 언월도 형식의 칼이 달려 있고, 다른 쪽은 날카로운 창촉이 붙어 있다.

잘만 쓰면 꽤나 유용한 기형창이고, 철창의 단단함 역시 운석철이 섞여 있어서 웬만한 철은 단숨에 잘라낼 정도다.

게다가 칼마르에서 알아주는 뛰어난 야장이 붙어서 단련을 거듭한 것이라서 잘 깨지지도 않는다.

이런 무기를 일개 병사로 막는다는 것은 어불설성이다.

내 부하 기사들이 각자 공작군의 외곽 경계병을 처리하는 동안 나 역시 내 앞을 가로막는 세 명의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두 명의 수인족이 한순간에 목이 잘려 죽는 것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병사들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쩌면 무심히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나를 보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공포에 사로잡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이상할 정도로 순순히 내가 휘두르는 창날에 몸을 맡겼다.

앞으로 들이댄 창과 칼도 함께였다.

3명의 병사가 우르르 쓰러지자마자 창고에서 튀어나온 공작군의 기사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법 빠르고 강력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제법일 뿐이었다.

나는 그가 내리치는 칼날을 무시하고 먼저 창끝으로 그의 가슴을 찔러 버렸다.

그 이후에야 무너지는 그를 어깨로 받으며 그대로 옆으로 던졌다.

아무리 내가 병사들에게 철창을 휘두르다 틈을 보였다고 해도, 그런 정도의 ‘제법 빠른’ 속도로는 그 틈 사이를 파고들 수 없다.

그는 무리한 짓을 한 대가로 그의 목숨을 잃었다.

일격에 죽어버린 그를 필두로 달려들던 기사들이 잠깐 주춤하며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모두 40명에 달하는 자들.

대부분 화려한 갑옷과 무기를 갖춘 자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라고 해도 풍기는 기세가 절대 일반 병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창고 안에 있는 자들이 모두 기사였다고?

이게 말이 되나?

우리의 예상과 달리 창고 안의 병력은 야습을 가정한 매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재빠르게 기사들의 뒤편을 훑었다.

과연 뒤로 물러서는 화려한 갑옷의 기사 하나가 보였다.

그의 옆에는 호위 기사임이 분명한 자들이 10여 명이나 몰려 있었다.

호위 기사가 10명에, 따라다니는 기사가 40명에 달한다고?

아르보그 공작이 행방불명되었다고 알려진 지금 그럴만한 지위를 가진 자가 얼마나 있을까?

나는 뜻밖의 대어를 발견했음을 깨달았다.

식량을 불태운 후에 노릴만한 목표였다.

어디까지나 식량을 불태운 후에.

내 마음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피요트르의 낭랑한 소리가 어둠을 꿰뚫었다.

“내 의지에 따라, 그리고 세상의 의지에 기대어, 밝음과 뜨거움이 함께 하길.”

순간, 창고가 불길에 휩싸였다.

저기 보이는 창고는 나무로 지은 건물이 아니다.

비록 뼈대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천으로 뒤집어씌운 천막에 지나 않는다.

그런데 지금 그 천막 창고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불길에 휩싸여서 한꺼번에 불에 타고 있었다.

나무를 몇 길이나 될 정도로 쌓아놓고 캠프파이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저런 불길이라면 안에 있는 식량이 어떤 상황일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창백해지는 기사들의 얼굴을 보면 내 손의 창을 분해해서 양손에 나누어 쥐었다.

한쪽은 언월도 형식의 칼날이 달린 단창을, 다른 쪽은 끝이 뾰족한 단창이었다.

그리고 아직 불타는 창고를 보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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