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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61화 (161/248)

161. 너무 늦은 지원

정찰을 했던 기사가 1만 명이라는 숫자를 이야기했지만, 그게 사람의 숫자를 일일이 세어서 나온 숫자일 리는 없지 않은가.

아마도 천막의 숫자를 보고 추산한 숫자일 것이다.

나는 내게 보고를 하고 있던 두 명의 기사에게 다시 확인을 했다.

“1만 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파악한 것인가?”

“천막의 크기와 숫자를 보고 어림잡은 숫자입니다. 어차피 저희나 저쪽이나 사용하는 천막은 비슷한 것이라서 천막 하나에 병사가 몇 명이 지내는 지는 상식입니다. 천막의 숫자를 알면 병사들의 전체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아르보그 공작군의 지휘부에 제법 영리한 자가 하나 있는 모양이다.

이런 눈속임도 다 하고.

나는 혹시 기사들이 내 예측을 부정할 만한 근거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질문을 했다.

“만약 말이야. 그곳에 있는 천막들을 그냥 빈 천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뭔가 이상한 점을 지적할 수 있겠나? 빈 천막이 아니라는 증거를 댈 수 있을까?”

내 질문에 기사들은 얼어붙었다.

내 질문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들도 알아챈 것이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왔을 사람들이 창백해져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답변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

결국 그들 중 좀 더 나이가 많은 쪽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만약 그곳의 천막들이 모두 빈 천막이라고 가정한다면······ 저희가 주둔지 내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외곽 멀리서 천막의 숫자를 어림잡은 것에 불과하니까······ 빈 천막이라는 것을 부정할 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주둔지의 외곽에서 돌아다니는 병사들의 숫자는 제법 되어 보였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수백에 지나지 않습니다. 빈 천막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려고 주둔지 내부로 접근하는 것을 막은 것이라면 그렇게 많이 경계병을 세워 놓은 것도 말이 됩니다.”

두 명의 기사는 번갈아 가면서 내 가정에 대답을 했다.

최악이었다.

지휘부의 천막에 있는 귀족들 중 기사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앞에 있는 아르보그 공작군이 허장성세로 세워놓은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면 진짜는 아돈슨 쪽으로 몰려갔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다들 머릿속에서 각개격파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적막이 천막을 채웠다.

나는 기사들과 비슷하게 굳어 있는 엘리아슨에게 고개를 돌렸다.

“엘리아슨 경. 우리가 예상했던 적들의 최대 숫자가 얼마였습니까?”

“3만에서 5만이었습니다.”

“그렇지. 지슬리 공작령에 가 있던 병력의 규모를 생각하면 우리와 비슷하거나 약간 많을 것이고, 숙련도와 전투 경험은 우리보다 월등하게 뛰어날 것이라고 예상들을 했지요. 대신 전투 후에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행군을 해서 피로가 심할 것이니, 전체적인 전투력은 비슷하리라는 예측에 다들 동의를 했습니다.”

원래 예측은 6만 명이었다.

그러나 트럭을 타고 움직여도 낙오가 나오는데, 자기 발로 걸어서 움직이는 중세의 군대가 낙오가 없을 리가 있나.

나에게 조언한 귀족들은 적게 잡아도 20% 많게는 50%까지 낙오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양쪽 합쳐서 8만 전후다.

그것도 거의 비슷한 숫자의 병력으로.

이런 상황이면 어지간히 병신짓을 하지 않는 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일은 잘 나오지 않는다.

적당히 치고받으면서 일진일퇴, 승리와 패배를 주고 받다가 적당히 합의하고 후퇴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나는 너무 일방적으로 지지만 않는다면 지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된다.

정치적인 부분은 고생을 좀 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지더라도 이기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 연합자치령에서 양쪽 합계 8만에 달하는 병력이 날뛰게 되면 그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될까?

장담컨대 적어도 한세대는 외부로 원정을 나간다는 것을 꿈도 꿀 수 없게 될 것이다.

초토화된 영지를 생각하면 과연 세력을 유지할 수나 있을까 의문이다.

초한지를 읽어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는 일선에서 싸우는 장수들에게 시선이 가지만, 나이가 들면 후방에서 병참을 담당했던 소하를 높이 평가하게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꼭 그럴까?

다르게 생각해보면 소하가 끊임없이 병사와 물자를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은 본진이 털리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항우 쪽에서도 한신같은 자가 하나 툭 튀어나와서 후방에서 분탕질을 쳤으면 그런 병참의 마법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 내키지 않은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보그 공작의 세력권으로 원정을 나온 것이다.

아르보그 공작의 세력권 내에서 전투를 치른다는 것만으로도 아르보그 공작의 파벌에게 큰 피해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르보그 공작의 파벌은 계속 큰 피해를 입어왔다.

지슬리 공작령으로의 원정에서 입은 피해,

막시밀리안 파벌의 이탈,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작령이 전쟁터가 되면서 입는 피해.

이 세 가지 중 가장 심각한 타격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야말로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최후의 일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약화된 아르보그 공작령을 중부의 공작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까?

전쟁을 통해 결속력이 강화된 귀족연합자치령은 가만히 있을까?

설마 그럴 리가.

아르보그 공작령은 중부의 뱅트손과 동부의 귀족연합자치령 사이에 낀 채 지속적으로 공격을 당하면서 천천히 말라죽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한가지만 달성하면 이 행복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지나치게 크게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아돈슨의 실력을 믿어야 하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돈슨이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상대방은 숫자도 훨씬 많고, 좀 더 정예병이고, 심지어 거인족과 수인족까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잘지는 정도가 최선이다.

패배한 후 질서있게 후퇴할 수 있다면 기적이다.

그러나 대놓고 아돈슨이 패배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엘리아슨 경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규모와 전력이 만만하지 않음을 이곳에 있는 귀족들에게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각각 2만 명으로 구성된 두 갈래의 진격로를 정했지만, 지금까지 무리없이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르보그 공작군이 적극적인 전투를 기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막사 안의 귀족들이 모두 긴장한 채 내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내 명령에 따라야 할 자들이다.

그러니 납득시키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으로 예상되는 적군이 있습니다. 병력의 규모를 속이려고 했지만 정찰을 나선 기사들의 분투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빠르게 적들의 실제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적들의 목표에서 후순위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3만 정도로 추산되는 적들의 본대는 아돈슨 경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내 말에 귀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돈슨에게 구원병을 파견하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가 아돈슨 경을 구원하러 가는 것은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 말도 없이 열심히 달려가봐야 전투가 끝난 후에나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지친 우리는 몰살당하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설마 그냥 후퇴하자는 겁니까? 아니면 여기에 눌러앉았다가 포위라도 당하자는 겁니까?”

성질 급한 귀족 하나가 채근하듯 내게 물어왔다.

이것은 아직 내가 충분한 권위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전투 이후로는 막시밀리안 파벌에 속했던 귀족들에게 내가 제법 강한 발언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끼어드는 일은 없게 되지 않을까?

“기병과 일부 용병 부대를 먼저 보내서 패배한 병력을 수습하고 추격해 오는 적을 견제할 생각입니다. 그 이후는 아돈슨 경이 얼마나 잘 싸웠는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나는 지휘부에 있던 귀족들 이외에도 종군하고 있는 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다들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천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거느린 자들이다.

이들이 데려온 기사들의 숫자도 만만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정찰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이유도 기사들을 말에 태워서 정찰병으로 써 먹고 있어서 그렇다.

평소처럼 기마 용병이나 말탄 영지군을 정찰병으로 돌렸다면 이렇게 빠르게 정보를 입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장 이번에 복귀한 정찰조만 보아도 기사들은 부상을 입더라도 살아서 복귀했지만 일반 병사는 모두 죽었다.

나는 기마병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는 모조리 아돈슨 경이 있는 방향으로 출동시켰다.

정찰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 자들도 있어서 숫자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사와 병사 합쳐서 천삼백기가 넘는 규모였다.

그리고 5천에 달하는 병사도 출발시켰다.

대부분 막시밀리안 파벌에 속했던 자들이다.

아무래도 뒤에 남겨놓기가 좀 그래서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엘리아슨에게는 평소처럼 나머지 병력을 맡기고 목책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만약 아돈슨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던 도시를 점령한 후에 아르보그 공작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르보그 공작군이 먼저 그 도시를 점령했다면 전면적인 후퇴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아돈슨이 정말 잘 했기를 기대하며 기사들과 함께 출발했다.

우리쪽 주둔지에서 아돈슨이 말했던 도시까지는 말로 달려서 하루 거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에 가까이 갈 때까지도 후퇴해오는 병사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설마 예상외로 이긴 것일까?

아니면 후퇴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몰살당한 것일까?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말을 재촉했다.

결국 멀리서 거대한 연기가 솟아오르는 도시가 눈에 들어와서야 줄줄이 후퇴해오는 병사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나는 윌리엄 백작이다. 선임이 누군가?”

“가우위스 용병대의 메슨입니다. 십인대의 선임이지요.”

얼굴에는 검댕이 묻었고, 갑옷은 피로 얼룩져 있는 중년의 용병이었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는 비겁자는 아니었다.

십인대의 선임치고는 나이가 많지만 경력보다는 실력을 더 쳐주는 용병들의 특성상 그럭저럭 자기 몫은 하는 자일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가?”

“일단 헤필드는 점령했었습니다. 점령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놈들이 몰려왔었지요. 이놈의 도시가 성벽도 없는 병신이라서 도시에 불을 지르고 도시에서 싸웠습니다. 결국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자 후퇴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식량 창고는 어떻게 되었나?”

내 질문에 그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윗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흔들더니 불만에 찬 어투로 대답했다.

“그 거대한 창고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불을 질렀습니다. 놈들이 나타나자마자 대장이, 그러니까 가우위스 대장이 지시를 받았다면서 창고에 불을 놨습니다.”

“다 탔다는 말인가?”

“다 타기는요. 그거 다 타다려면 며칠은 타야 할 겁니다. 어쩌면 열흘 넘게 탈지도 모르지요. 말이 창고지 그게 무슨 작은 산 만해가지고. 어휴. 아까워서 그걸.”

메슨이라는 용병의 말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식량 창고가 아르보그 공작군에게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돈슨이 뭐가 중요한지 알고 빠르게 행동해 준 덕분이다.

“아돈슨 경은? 살아있나?”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명령을 받자마자 빠져나온 터라.”

멀리 도시에서 아직도 금속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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