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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15화 (115/248)

115. 전투가 끝났다

내가 던진 칼은 철로 된 창을 들고 나를 향해 달려오던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뻔히 보이는 공격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던지는 무기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덩치 큰 기사는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온 칼을 간신히 쳐냈다.

그리고 나는 그사이에 나를 향해 달려들던 실력없어 보이는 기사를 들이박았다.

사람과 사람이 충돌하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갑옷을 입은 사람의 무게와 달려오는 속도를 생각해 본다면 주먹으로 치거나 발로 차는 것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파괴적일 수 있다.

몸통 박치기를 가슴에 당한 상대는 충격량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갔다.

거의 오미터는 더 날아가서 바닥을 굴렀는데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죽었거나 기절한 모양이다.

4명의 병사와 1명의 기사가 한순간에 쓸려나가자 잠깐 내 주위에 공백이 생겼다.

그러나 그 공백을 잠시도 참지 못하고 덩치 큰 기사가 난입해 왔다.

그는 나를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철창으로 강하게 찔러 왔다.

창대까지 철로 된 창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고, 실제로도 잘 사용한다는 의미다.

큰 덩치답게 힘도 좋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 힘은 어디까지나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볼 때나 평가해 줄 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우 힘이 좋은 만큼 민첩성이 떨어진다.

내 눈앞의 기사 역시 일반적인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를 겨누고 찔러온 철창을 살짝 빗겨내며 덩치 큰 기사에게 바싹 붙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나를 보던 그는 재빠르게 철창을 버리고 나를 잡으려고 했다.

판단은 좋았지만 역시 너무 느렸다.

나는 허벅지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그대로 그의 겨드랑이 밑을 찌르고 한바퀴 돌려버렸다.

그것으로 덩치는 큰 기사는 끝이 났다.

그는 나를 잡으려던 모습 그대로 무릎을 꿇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유달리 덩치가 커서 멀리서도 잘 보이던 기사였다.

덕분에 그 혼전 가운데서도 내가 그를 단숨에 쓰러뜨리자 경악하는 얼굴로 주춤 물러서는 병사들이 여럿 있었다.

이름을 외치는 것을 보니 아마 나름 유명세도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적들의 시선이 내게 몰린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내 앞쪽 팔에 감겨 있던 비도집의 남은 비도 전부를 함리 백작군의 병사들을 향해 날리며 무언의 협박을 했다.

너희는 다 죽을 거다.

네 옆의 병사가 죽는 것처럼.

이렇게 빛이 부족한 야간 전투에서는 기사조차도 투척무기를 부담스러워한다.

하물며 병사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뭔가 휙 하고 지나는 순간에 옆에 있는 동료가 죽어 넘어지는 것이니, 그 두려움은 칼끝을 목에 들이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내 협박은 효과가 있었다.

연달아 날아가는 비도에 주변의 병사들도 연달아 쓰러졌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화톳불로 밝히는 범위 밖으로 한사코 몸을 빼려는 자들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우르르 무너져서 사방으로 흩어질 흐름이었다.

그때 내성 방면에서 불길이 오르기 시작했다.

제법 커다란 불길이었다.

*

성문 앞에 있던 함리 백작군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낮에 느꼈던 분노와 전의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후들후들 떨리는 팔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뒤로 조금씩 엉거주춤 물러서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다른 자들보다 한발 먼저 돌격해 온 연합 자치령의 기사들은 무시무시한 실력을 내보였다.

평소에는 그렇게 거들먹거리고 세상에 다시 없는 실력자 행세를 하던 함리 백작의 기사들이 연달아 죽어 나갔다.

특히, 가장 먼저 함리 백작군의 진영에 뛰어들어서 벌레를 눌러죽이는 것처럼 손쉽게 병사들을 죽여대던 기사는 그냥 봐도 규격 외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손 아래에서는 함리 백작의 기사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거인 기사 토르니도, 민첩한 탐비도, 힘이 센 해비그슨도 앗 하는 사이에 죽어나갔다.

그에게는 병사나 기사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몇 안 되는 연합 자치령의 기사가 아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 몰려온 연합 자치령 소속의 군대가 진짜 문제였다.

눈앞에서 몰려오는 연합 자치령의 군대는 척 보기에도 정예였다.

제대로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무섭게 달려드는 용병들의 실력은 범상치 않았다.

방금 잠에서 깬 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아직 안 된 함리 백작의 병사들은 연신 뒤로 밀리며 죽어갔다.

아직은 눈을 번득이는 기사와 선임 병사들이 남아 있기에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오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성문 앞의 함리 백작군을 향한 도움의 손길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다.

성벽 밖에서는 함성을 지르는 적들이 있고, 불화살도 계속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제 곧 성벽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리라는 것은 아무리 전투 경험이 없는 병사라도 단숨에 알아챌 정도였다.

성벽 위의 동료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했다.

멀리 내성에서 이런 상황을 알고 지원을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이라서 자다가 깨어보니 바로 코앞까지 연합자치령의 군대가 몰려온 상황이지 않은가.

내성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병사들을 파견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 싶었다.

함리 백작군은 연신 밀려나면서도 주변을 살피며 벌벌 떨었다.

성문이 깨지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온 병사들인지 공포스럽기만 했다.

자신들 앞의 성문은 깨지지 않았지만 어딘가 작은 성문이라도 깨졌다는 것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이미 성 내에 들어온 적의 숫자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해도 성문 앞에서 야영을 하던 자신들 못지않은 숫자 같았다.

이 정도라면 눈앞의 가장 큰 성문이 깨지든 깨지지 않든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머리가 좀 돌아간다는 병사들이 이런 생각을 떠올렸을 때 한쪽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단숨에 공포가 전염됐다.

연합 자치령의 병력과 전투를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냥 아주, 아주 잠깐이었다.

그런데 이런 난장판이라니!

함리 백작의 병사들을 지휘하려고 애쓰던 기사들은 미칠 것 같은 조바심과 분노, 공포에 사로잡힌 채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그들에게 멀리 내성 방향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

그 모습을 본 함리 백작령의 병사들은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었다.

갑자기 커다란 함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함리 백작성 정면의 가장 큰 성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성문 앞을 점거한 병사들이 성문을 천천히 밀고 있었다.

그들을 막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성벽 위의 함리 백작군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성벽에서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내려오는 계단이 연합자치령의 병사들로 막힌 경우라면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물론 가장 높은 곳은 10미터가 넘고, 낮은 곳이라고 해도 5미터는 넘는 계단에서 뛰어내린 자들 중 멀쩡하게 걸을 수 있는 자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연합 자치령의 병사들에게 잡혀서 죽거나 포로가 되어 갑옷을 빼앗기고 손발이 묶인 채 성벽 아래에 엎어져 있어야 했다.

내성에 불길이 오르고 성문이 열리는 것을 목격한 함리 백작군의 병사들은 더 이상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둠은 그들의 뒤에 따라붙은 적의 손길로부터 그들의 패주를 보호해 주었다.

물론 운이 좋은 자, 한정이었다.

연합 자치령의 용병들은 용병들답게 승기를 잡자마자 거세게 함리 백작군을 몰아붙이며 포로를 잡기 시작했다.

포로의 무기와 갑옷은 전리품으로 빼앗고, 포로들은 손발을 묶어서 한곳에 모아두었다.

포로들의 처우는 높으신 분들이 결정할 문제지만 전리품은 그들의 권리였다.

칼마르의 사위, 백작부군 윌리엄 공과 함께 초기부터 종군한 용병들은 이미 충분히 벌어들인 재산에 더해 다시 한번 큰 돈을 벌게 된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베르그렌의 용병 역시 그동안의 손해를 벌충할 정도는 되었다.

윌리엄을 향한 그들의 충성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잠시 후 완전히 열린 성문으로 연합 자치령의 군대가 일제히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합 자치령의 영지병이 주축이 된 그들은 용병들이 이미 잔치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성을 향해 달렸다.

한 번 깨끗하게 비운 잔칫상에 기웃거리기 보다는 새로운 잔칫상에 가서 참가하는 것이 더 낫다는 고참병의 고함소리가 그럴 듯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을 세우고 싶어하는 기사님들의 입장도 내성으로 직행하는 이유였다.

내성에는 아직 함리 백작과 그의 병사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

변경백이라면 영주성의 내성을 외성 못지않게 요새로 건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제국 남부 지역의 영지성에 있는 내성은 그냥 규모가 큰 저택인 경우가 흔하다.

항구가 아니라면 외국과 직접 맞닿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함리 백작의 영주성 또한 별 차이가 없었다.

외성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제법 성벽을 쌓아서 방어력을 갖췄지만 내성은 튼튼하게 만든 저택에 지나지 않았다.

병사들이 사다리를 기대어놓고 창문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으로 내성은 금방 뚫려 버렸다.

내성의 성문 역시 성문이라기보다는 저택의 문에 더 가까워서 신체 건강한 병사가 도끼질로 부쉈다고 한다.

밤중에 당한 기습에 함리 백작의 내성은 어이없게 함락되어 버렸다.

이곳에 있던 병사들은 아예 저항도 제대로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저택의 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진 후였다.

결국 용병이고 영지병이고 간에 모조리 밖으로 후퇴하도록 해야 했다.

“노렌 경. 안에 들어갔던 용병은 다 철수했나?”

“예. 백작님. 몇 놈 안 보이기는 하는데 전투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함리 백작을 추적하는 백인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저택에서 철수 후 주변 경계 중입니다.”

용병 대장 중 가장 선임인 노렌에게 내성에서의 전투에 대해 확인하자마자 엘리아슨 경이 다가왔다.

그가 거느린 영지병 역시 내성에 들어갔다가 막 나온 참이었다.

“엘리아슨 경. 영지병은 손실이 어떻습니까?”

“내성 안으로 들어갔던 몇 명이 빈 것 같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점고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투가 있었습니까?”

“전투가 아니라 화재에 휩쓸린 정황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에는 경험이 부족하니까 말입니다.”

약탈에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못 빠져 나온 경우다.

아무래도 약탈에 대해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이런 식이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것 같았다.

다 이긴 전투를 지거나 도망가는 적을 섬멸하지 못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단 이곳을 정리하도록 합시다. 본격적인 추적은 그 이후 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함리 백작성을 점령했기에 적의 헛점을 제대로 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바르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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