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37화 (37/248)

37. 반역자 모건의 집을 덮치다.

허리의 걸쇠에 전투용 망치를 걸었다.

손에 들고 다니기에도, 등에 지고 다니기에도 불편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은 좀, 체통이 없어보인다고나 할까.

내가 근육을 과시하고픈 용병도 아니고.

망치머리는 성인주먹의 2개를 모아놓은 크기다.

한쪽은 망치고 다른 한쪽은 스파이크.

생긴 것도 흉악하고, 파괴력도 흉악한 녀석이다.

투구 정도는 단숨에 꿰뚫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크리스토퍼가 증명해 주었다.

자기 무기에 맞아 죽은 불쌍한 크리스토퍼.

어쨌든 그가 준 무기는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오늘도 잘 써먹을 생각이었다.

그런 내 옆에는 경비대의 대장인 아렉슨이 불퉁한 표정으로 함께 했다.

첫 날에는 영지군을, 둘째 날에는 시의회와 시청을 털어버린 내 행적이 짜하게 소문이 나서 셋째 날인 오늘은 경비대 건물의 입구에까지 마중을 나와 준것이다.

"먼저 내 사무실로 가시겠소?"

"아닙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바쁩니다. 제가 요청한 사람들을 먼저 보고 싶습니다."

"경비 5조와 6조는 경비대의 연병장에서 대기 중이고 3개 조의 경비대가 따로 출동대기 중이오."

사적인 대화로 친분을 나누면서 감찰을 나온 내게 기름칠을 해보겠다는 것인데, 이 눈치없는 사내에게는 조금 무리한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실망을 하니 이거 참.

오늘 이 사람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지옥을 보게 될 거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러시면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나는 20명의 경비대원이 대기하고 있는 연병장으로 향했다.

"이쪽은 경비대의 사무와 관리를 맡고 있는 룬딘 경이오."

"처음 뵙겠습니다. 감찰관님."

"잘 부탁드립니다. 룬딘 경.

나는 룬딘 경과 인사를 나눈 후 경비대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2개조 20명.

1개조는 조장과 부조장 그리고 8명의 조원으로 이루어진다.

경비대는 원래가 부수적으로 생기는 수입도 많고 안정적인 직업이다.

물론 위험한 일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얼마나 있겠나.

그래서 일단 경비대에 들어온 사람은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결과 경비대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같이 근무한 사람들이다.

서로의 사정은 물론 가족간의 일까지 다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뭔가 문제가 생겼으면 대충 뭐가 원인이고 누가 엮인 것인지 다들 대략 감은 잡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곳에 모인 경비대원들은 내가 왜 하필 그들을 콕 집어서 집합을 요구했는지 어느정도 눈치는 챈 상황이었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구나.

우리 중에 반역자가 있구나.

그리고 그 자는 아마도······

과연 6조의 경비조장의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다.

억지로 태연함을 위장하고 있지만 눈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이런저런 사람을 많이 만난 경험에 의하면

저런 눈동자를 하고 있는 사람은 꺼릴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미니맵께서도 저 놈이 위험한 놈이라고 가리키고 있지 않으신가 말이다.

"5조 조장?"

"예. 감찰관님"

"드라멘 용병단을 수색체포 할 때 원래 담당 구역을 맡지 않고 다른 구역을 맡은 이유가 뭔가?"

"6조 조장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5조 조장은 꺼릴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의 목소리는 긴장했을 지언정 숨기는 것은 없어 보였다.

"좋아. 6조 조장. 왜 담당구역의 교체를 요구했나?"

"최근에 신입 조원들을 받아서 주택가에서는 제대로 된 수색이 힘들거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좀 더 탐문하기 좋은 지역을 원했던 겁니다."

"신입 조원들이라는 자들이 저 친구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내 손가락의 끝에는 아직 얼굴의 멍이 다 안 빠진 경비대원 2명이 겁먹은 표정으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있었다.

"자네들이 클럽 붉은풍차가 포함된 지역의 탐문을 담당했던 경비대원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누가 자네들에게 해당 구역을 배당했나?"

"조장의 지시였습니다."

"선임없이 너희들끼리만 보냈나?"

"예. 그렇습니다."

나는 다시 6조 조장을 향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입 2명이 2인 1조로 수색에 투입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인가?"

"그것은 제 불찰입니다. 신입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자,"

"개소리는 정도껏 하고."

"예?"

내 띠거운 말투에 6조 조장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룬딘 경."

"예. 감찰관님."

"6조 조장은 누구의 연줄로 경비대에 들어왔습니까?"

"1년 전에 경비대를 떠난 모건 경의 추천이 있었습니다."

"그 이외에 추천하거나 보증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6조 조장을 향해 물었다.

"자네는 모건 경과 어떤 관계가 있나?"

"친척 어른이 되십니다."

"구역 변경은 모건 경이 지시했나?"

"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밭 갈러 가다가 갑자기 오크라도 마주친 농부같았다.

나는 6조 조장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5조 조장에게 명령했다.

"반역자다! 즉시 이 자를 구금하라. 그리고 6조는 부조장의 인솔 하에 영내 대기 하도록. 영내에서 이탈할 경우 반역죄에 연좌된다."

경악하는 아렉슨과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룬딘을 앞에 두고 5조 조장은 즉시 내 명령을 이행했다.

"아닙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끌려가는 6조 조장은 필사적으로 항변했지만 그 항변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6조의 조원들조차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반역자 끄나풀의 저항은 미약했다.

그렇다면 반역자 본체의 저항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나는 허리의 전투 망치를 툭툭 친 후,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렉슨에게 말을 걸었다.

"아렉슨 경은 나와 함께 모건 경을 만나러 갑시다."

우리는 경비대에 속한 기사 몇 명과 경비대 3개 조를 데리고 모건 경의 집으로 향했다.

모건 경의 집으로 가는 동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아렉슨 경은 자신의 부하가,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던 상관이 반역 혐의로 잡혀간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를 붙들고 앉아서 시시콜콜 설명할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렉슨 경은 경비대장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컸다.

여백작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아렉슨 경은 모건 경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건 경의 집은 영주성 근처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영주성에 가까이 저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도시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돈도 돈이지만 애초에 물량이 없다. 물량이 있어도 알음알음 끼리끼리 거래하기 때문에 외지인에게는 언제나 물량이 없는 것이다.

내부인에게도 권력에 가까운 순서로 차례가 돌아간다.

모건 경은 경비대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권력자 집단에서는 아직 밀려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저택의 외부 정문이 근사하게 생겼군. 부숴."

내 명령에 경비대원 몇이 정문의 경첩에 붙어서 도끼질을 했다.

주변 사람들까지 보는 앞에서 정문은 불쾌한 소음을 내며 뒤로 넘어갔다.

그 위를 밟고 지나서 저택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정문을 부수고, 넘어 뜨리고 하는 과정에서 소음이 장난아니게 난 때문인지 저택의 사용인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그리고 잔뜩 화가 나서 몰려 왔던 사용인들은 박살나서 넘어간 외부 정문과 살기등등하게 몰려오는 경비대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위축되어 버렸다.

경비대원들은 사용인들을 한쪽으로 몰고, 아직 저택에서 나오지 않는 자들도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곳은 모건 경의 자택입니다. 경비대의 분들이신 것 같은데 예의를 지켜주십시오."

집사로 보이는 안경쟁이가 뒤늦게 튀어나와서 항의했지만 우리 경비대원들은 가차없었다.

안경쟁이는 멱살이 잡힌 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조장 하나가 반역죄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온 참인데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지금은 빠릿빠릿하게 굴 때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렉슨 경은 기사들과 함께 들어가서 모건 경과 그 가족을 억류하도록 하십시오. 저는 사용인들을 신문하고 따라 가겠습니다. 음. 그리고 아렉슨 경. 이것은 그냥 말씀드리는 겁니다. 모건 경은 반역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모건 경과의 친분은 익히 알고 있지만 태도를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렉슨 경에게 명령할 때 미니맵에서 이동하는 빨간 점이 보였다.

나는 즉시 3조 조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

"3조장. 몇 명 데리고 가서 탈출로를 막아야 겠다. 저택 뒤 쪽의 오른쪽에 보면 작은 문이 보일 거다. 탈출용 쪽문이다. 만약 거기로 나오는 놈이 있으면 잡아와라. 목숨만 붙여 놓으면 된다."

미니맵에게는 언제나 감사할 뿐이다.

잠시 후 모건 경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끌어낸 후 모조리 창고로 집어넣었다.

도망치려다가 칼침을 맞고 묶여온 놈은 그대로 경비대 감옥으로 직송했다.

나는 저택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집사부터 불러 들였다.

*

2조장은 생각했다.

뱀같은 자다.

웃는 얼굴로 친근하게 굴 때는 그냥 이웃집 청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그의 본 모습이 아니었다.

명령을 내릴 때의 그는 냉혹하고 가차없었다.

집사부터 시작해서 몇 명의 사용인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엿보인 그의 태도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죽여야 한다면 몇 명이든 죽일 수 있다는, 그것도 여상하게 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왜 이런 자를 자비로우신 백작님께서 가까이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유능했다.

몇 명의 사용인을 신문하더니 대번에 하녀 하나를 콕 찍어 냈다.

"숙녀분은 모건 경을 개인적으로 시중 든다고 하던데 맞나?"

"예. 그리고 가족분들도."

"집사와 마부의 증언에 의하면 모건 경은 한 달에 한 번 전체 사용인들에게 이틀간의 휴가를 준다고 하더군. 자비로운 처사라고 말들 하지만 내게는 굉장히 특이하게 들려. 그런데 너는 그때 같이 쉬지 않고 다른 날 쉬더군. 이유가 뭐지?"

"모건 경에게 차도 드려야 하고, 누군가는 시중을 들어야 하니까요."

하녀는 벌벌 떨면서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강단이 있는 여자였다.

윌리엄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하녀를 향해 상체를 숙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방문객은 어디서 모건 경과 만나나?"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에게는 손톱이 열 개가 있지. 발톱도 열 개 였던가? 손톱을 빼면 손으로 물건을 잡지 못 해. 발톱이 없으면 걷지를 못하지. 고통 때문에 그렇다던가. 그리고 손톱과 발톱을 모두 합하면 20개. 계산이 이게 맞나?"

마치 1 +1 = 2 이고, 2 + 2 = 4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는 탁자의 가장자리를 뜯어내고 있었다.

마치 장난처럼.

맨손으로 나무판자를 뜯어내?

사람이 저게 가능한가?

숨을 들이키는 2조장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했다.

그 때 그들의 눈 앞에 앉아 있던 하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도 자신처럼 공포에 질려 있었다.

"손가락은 관절이 3개지. 탁, 탁, 탁. 3번을 자를 수 있다는 이야기야. 손톱보다 많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손톱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나는데 손가락은 다시 자라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럼 손가락이 모두 없는 하녀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 손으로 개인적인 시중을 들 수 있을까?"

윌리엄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모건은 반역자다. 백작님을 배신했지. 그리고 칼마르에 사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 뿐 아니라 자네나 자네의 가족도 백작님의 적에게 팔아 먹은 셈이야. 모건은 파멸할 거다. 그리고 설사 어떻게 어떻게 해서 살아나도 손가락을 다 잘린 충성스러운 하녀를 위해 자비를 베풀 상황은 절대로 아닐 걸.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하녀는 계속 울기만 했다.

"아직 말을 할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러면 우리 손톱부터 시작해 볼까? 손톱은 나중에 다시 자라니까 괜찮을 거야."

그 말에 하녀는 윌리엄을 보며 헐떡 거렸다.

하녀는 그 짧은 순간에 몇 백미터는 전력을 달린 사람처럼 땀에 젖고 지쳐 있었다.

윌리엄의 눈빛에 득의가 서렸다.

"2조장. 우리 숙녀분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줄 수 있겠나?"

물을 마신 하녀는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토해냈다.

2조장은 절대로 절대로 윌리엄과 척지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

*

영업맨은 능숙한 배우가 되어야 한다.

내가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배운 교훈 중의 하나다.

나중에는 아예 연극 수업까지 끊어 주더만.

그리고 나는 연극 수업에서도 우등생이었다.

그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유대인을 신문하는 게슈타포라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고 열연을 했더니 감명받은 하녀가 울면서 아는 것을 다 불어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메소드 연기는 나와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러면 결국 모건 경의 서재를 뒤지면 되는 거였군. 2조장은 나를 따라오고 1조장이 선임으로 주변을 통제하게. 도주자는 죽여도 좋다."

나는 모건 경과 그의 가족을 억류해 놓은 아렉슨 경에게로 갔다.

전투 망치를 쓸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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