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이거 레벨업일지도?
이것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면 지금은 사람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육식 동물이 앞에서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앞에서 시선을 받는 것 만으로도 위축되리라.
휙.
아무런 사전 동작도 없이 단숨에 날듯이 다가온다.
가만히 있으면 분명히 엉킨다.
찬찬히. 찬찬히.
서두르지 말자.
눈 앞의 존재는 일가를 이룬 자다.
성급하게 굴면 말린다.
나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바로 내 코 앞에 떨어진 마스터 요한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턱을 향해 치솟아올라오는 살기가 내 신경을 가속시켰다.
늦었다.
늦었어!
턱을 보호하기 위해 움츠린 양손에 대포알이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이 강타했다.
올려찬 발에 간신히 턱에 직격당하는 것은 모면했지만 내 양발이 땅에서 붕 뜨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양 손으로 마스터 요한의 발을 잡으며 충격을 완화한 대가였다.
나는 몸을 띄운 김에 그대로 그 힘에 편승하여 뒤로 몸을 띄웠다.
그러나 마스터 요한은 집요했다.
빠르게 나를 따라잡으며 연달아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양 허벅지와 종아리에 수십 개의 펀치가 연달아 꽂혔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주먹을 쳐 냈지만 공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연달아 두들기는 주먹소리가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짧은 유영을 마치고 땅에 내려섰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방금 전과 똑같이 바로 코앞에서 마스터 요한과 이마를 맞대고 서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니, 차이는 있었다.
내 허벅지와 종아리의 감각이 둔해졌다.
분명히 움직임도 느려졌을 거다.
바지를 벗어보면 부항이라도 뜬 것처럼 피멍이 온통 울긋불긋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아직 납득을 못하는 모양이군."
다시 주먹이다!
양 손의 주먹이 연달아 내 양쪽관자놀이를 노리고 휘어지듯이 날아왔다.
쓸데없는 짓을!
이 정도는 보인다고.
나는 손바닥으로 주먹을 받아내며 주먹의 방향을 밖으로 틀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마스터 요한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별이 번쩍 했다.
주먹이 아니라 팔꿈치가 머리를 강타했다.
비틀!
억지로 뒤로 물러서는 나를 향해 마스터 요한이 바싹 붙은 채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과 몸통과의 거리가 손가락 하나 만큼도 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주먹은 퍽퍽 소리를 내며 연달아 꽂혀들었다.
미는 것도 아니고 때리는 것을 이 거리에서?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게 정말 가능한건가?
소설에서나 보던 것 아니었나?
급소를 보호하며 연신 물러났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서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나는 마스터 요한의 위쪽 팔에 손을 뻗었다.
잡고 이대로 눌러 버리자!
그 순간.
옆구리에 가해지는 격통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며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좌우 옆구리에 연달아 틀어박히는 무릎은 망치나 다름없었다.
아니, 오함마로 옆구리를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였다.
반격할 틈이 나지 않았다.
마스터 요한의 상완을 잡았던 손도 옆구리를 향해 찍어오는 상대의 무릎을 막느라고 공격의 여유가 없었다.
"역시. 마스터 요한."
"일방적이군. 일방적이야."
"그래도 윌리엄 경도 맷집이 대단하긴 하네. 아직도 버티잖아!"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귀는 열려 있어서인지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아무리 내가 일방적으로 기사들을 압도했다고 해도, 마스터 요한에게 이렇게까지 형편없이 털리면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실력좋은 기사A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영지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하고 압도적인 기사이자 백작의 측근.
이런 그림을 그렸는데!
멀리 떨어져도, 가까이 붙어도 맞는다.
잡을 틈을 주지 않는다.
잡으면 여유가 생긴 손이나 발로 가격한다.
도대체가 이자는!
*
이 녀석. 진짜 단단하군. 아니, 미끌미끌해.
마스터 요한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눈 앞의 기사를 두들겨 팼다.
이 정도로 마음 놓고 상대방을 두들겨 본지가 꽤나 오랜만 이었다.
확실히 구사하는 기술은 일반적인 기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능숙하지만 뛰어나지는 않았다.
좋은 눈과 힘,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그것을 메꿨을 뿐이다.
어디서 오랫동안 실전이라도 겪었는지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고 임기응변에 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넘치는 살기에 비해 몸을 사리는 것이 역력했다.
실력에 아직 확신이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격을 대부분 흘려내고 있었다.
현란할 정도로 연속적으로 때려대는 주먹과 무릎치기를 몸을 비틀면서 타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제대로 타격이 들어간 것은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가격했을 때 뿐이었다. 그것도 순간적으로 머리를 틀어서 타격의 일부를 흘려내 버렸다.
감탄할 정도의 감각이고 임기응변이었다.
그리고 정말 단단하면서도 매끄러운 방어력이었다.
한 대만 쳐도 픽픽 나가떨어지는 기사들을 가르치다가 이런 놈을 보니 과연 때릴 맛이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놈! 이 놈!
마스터 요한은 마음에 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짓궃을 정도로 다양한 방향으로 윌리엄을 공격했다.
주먹으로 치고, 손으로 당기고, 팔꿈치로 때리고, 무릎으로 갈긴다.
간혹 킥을 내지르고 올려친다.
이마가 붙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서 다리를 툭툭 건드리며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윌리엄을 지치게 만들었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몸을 때리는 공격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아무리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해도 맞는 것은 맞는 것이고 충격은 누적된다.
윌리엄은 천천히 몸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졌다.
마스터 요한은 드디어 이 단단하고 미끌거리는 놈을 다 잡아간다고 생각했다.
실로 오랜만에 손맛이 찰지게 맛있는 상대였다.
이런 기분이라면 이 재수없는 놈이 여백작의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도 당분간은 참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였다.
뭔가가 변했다.
때리는 느낌이 달라졌다.
단단하고 미끌거리던 것이 탄력있고 미끌거린다.
훨씬 더.
게다가 때려도 충격이 전혀 안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마스터 요한은 얼굴을 굳혔다.
*
열이 받고, 열이 받고, 열이 또 받았다.
불길이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만 같다.
아무리 냉정해지려고 해도 안 된다.
저 빌어먹을 아재는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내 약점을 찾은 것이다.
상대를 보고, 피하고, 공격하는 것은 우리 둘 다 같은 수준이었다.
서로 마주보고 주먹질을 해보니 알겠더라.
보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같은 수준이니 서로 뻔한 공방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아마 옆에서 보기에는 약속대련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수십년을 수련해서 지역의 네임드가 되었다는 사람이나 상태창을 가진 나나 별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서로 아주 가까이 붙어서 서로의 공격을 보지 못할 때,
나는 수련의 깊이가 다르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느꼈을 때는 이미 상대의 주먹이, 발이, 팔꿈치가, 무릎이 나를 치기 바로 직전이었다.
덕분에 어떻게든 비비적대면서 치명타는 안 맞고 버텼지만 아예 안 맞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 두드려 맞았다.
맞고 또 맞았다.
반격을 할 수가 없었다.
반격을 하려고 해도 귀신같이 역카운터를 넣는다.
정타를 맞고 정신이 저 멀리 날아가기 싫다면 반격보다는 방어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시야의 사각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하나하나가 내게 시험이었다.
시험에 합격하면 막아내는 것이고
시험에 불합격하면 얻어맞는 것이다.
계속 맞고 또 맞았다.
여전히 불길이 내 속에서 치솟아 오르고
상대의 공격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무엇인가가 변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간질거리는 이 느낌,
멀리서 어른거리는 감각,
잡힐듯 말듯.
그렇다.
문득, 나는 보지 않고도 본다는 의미를 깨달았다.
허리 아래에서 쳐 올라오는 무릎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가슴에, 옆구리에 살짝 닿아 있는 주먹이 끊어 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 하나의 눈을 더 뜬 것 같았다.
보고, 잡고, 밀어낸다.
지금까지 나를 타격하던 공격은 더 이상 내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천천히 무너져가던 내 몸도 버틸만 했다.
타타 타타탁!
나는 내 몸을 연달아 타격하던 주먹을 손으로 쳐내며 훌쩍 뒤로 물러섰다.
굳어진 표정의 마스터 요한이 보인다.
"달라졌군."
나는 말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불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다
마스터 요한은 눈에서 푸른 광채가 일렁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감각방어를 깨우칠 수 있지? 인간이 맞기는 한건가? 혹시 용족 혼혈이라도 되나?"
"인간 맞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에는 개인차가 있는 거겠지요."
이를테면,
상태창을 가지고 있는 자와 없는 자.
신비를 가지고 있는 자와 없는 자.
그런 종류의 개인차 말이다.
나는 나이 들어서 저런 음흉한 중년은 되지 말아야지.
열심히 무술 수련을 해서 강자가 된 것처럼 굴었지만, 모르긴 몰라도 저 푸른 광채를 보니 단순히 무술 수련만으로 저런 수준이 된 것이 아니다.
마스터 요한 역시 나처럼 뭔가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
신비일까?
그게 뭐든 이제 그와 나는 동등하다.
그러니 한 번 제대로 붙어봐야겠다.
이번에는 내가 날듯이 마스터 요한에게 접근했다.
아직 공중에 떠 있는 내게 현란한 발차기가 날아왔지만,
다 보인다.
나는 마스터 요한의 다리를 찍어 버리며 그의 얼굴을 향해 다리를 쭉 뻗었다.
고개를 돌려 내 공격을 피하는 순간,
그대로 떨어지며 그의 상박을 잡았다.
마스터 요한은 내 팔을 풀려고 했지만 단단하게 얽힌 팔을 푸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더 힘이 세니까.
나는 그대로 상대방을 아래로 찍어 눌렀다.
아무 기술이 필요없는 순수한 힘으로 말이다.
필사적으로 버티는 마스터 요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로 찍어 눌렀다.
우리의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마스터 요한은 힘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팔을 풀려고 했지만 그의 상완을 단단하게 잡은 내 손아귀는 프레스로 누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대치의 결말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배를 대고 깔리는 모습을.
그게 싫다면 다리가 부러지든지 허리가 부러지든지 하겠지.
나는 천천히 무너지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자는 왜 포기하지 않지?
그 때 누군가가 내게 와서 부딪쳤다.
전력을 다해 달려와서 몸을 던진 자는 버크였다.
그는 내게 부딪친 후 오히려 뒤로 튕겨져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저런. 타박상 때문에 통증이 심할텐데.
머리가 식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났다.
나는 아직 움켜쥐고 있던 마스터 요한의 팔에서 손을 뗀다.
마스터 요한은 한 쪽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팔은 아직 경련하고 있었다.
"대련은 끝난 거군요."
"그래."
"괜찮으십니까?"
"오랜만에 스승님께 배울 때의 생각이 났다네. 반쯤 죽다 살아난 적이 몇 번 있었지. 그런데 자네는 괜찮은가?"
나는 괜찮은가
뭔가에 잡아먹힐 뻔 했다.
설마 상태창 부작용인가?
버크 경이 아니었다면 사고칠 뻔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나는 나다.
불길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감찰관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는.
다음은 시의회다.
빨간 점 2개가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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