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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나 (3)

“제가 모시겠습니다.”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인물이 강현수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망했다.’

구진수는 일이 아주 크게 꼬였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목표였던 강현수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기는 했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언론의 자유가 있는 세상 아니겠는가?

“당신 누군지는 몰라도 법과 원칙을 우습게 여기면 곤란해! 정치권에 인맥이 있다고 세상이 호락호락해 보여!”

70~80년대면 몰라도 지금은 21세기였다.

정치인이라고, 검찰이라고. 경찰이라고, 재벌이라고.

갑질을 하고 월권을 하면?

더 큰 화를 입는 세상 아니겠는가?

하지만.

“구진수 씨, 어떤 나라의 지령을 받고 저분을 뒷조사하고 직접 접근까지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행위는 플레이어 특별법에 의거 국가이적죄와 국가간첩죄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예? 국가이적죄와 간첩죄요?”

너무 엄청난 이야기가 나오자 구진수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저 공갈 협박 좀 하고 용돈 좀 두둑하게 벌어 보려고 했을 뿐인데.

도대체 왜 플레이어 특별법이 나오고 국가이적죄와 간첩죄 같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그거 국가반역죄 같은 거랑 연결되는 거 아닌가요?”

“크게 보면 내란죄에 해당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겁니다! 저는 단지 개인적인 부탁을 받고!”

“자세한 진술은 국정원에 가서 하시죠.”

국정원 요원의 무감정한 대답에, 구진수는 넋이 완전히 나가 버렸다.

* * *

강현수의 지시를 받은 국정원은 검찰과 경찰의 협조를 받아 그간 구진수라는 인물이 저지른 범죄를 탈탈 털었다.

‘역시 처음일 리가 없지.’

구진수는 이미 공갈죄, 협박죄, 명예훼손죄, 사기죄 등의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 있는 전과 7범이었다.

그럼에도 새사람이 되기는커녕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처럼 계속해서 온갖 범죄를 저질러 왔다.

‘그동안은 어떻게 잘 감췄던 것 같지만.’

검찰과 경찰이 구진수의 탐정 사무실과 자택을 탈탈 털었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피 추적까지 해서 구진수가 웹하드에 보관하고 있던 정보까지 탈탈 털었다.

그 결과.

‘이거 완전 쓰레기네.’

온갖 강력 범죄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감옥에서 꽤 오래 살아야겠네.’

강현수에게 콩밥 어쩌고 하더니.

자기가 콩밥을 먹게 생겼다.

‘이쪽도 쉽지는 않을 것 같고.’

구진수가 저지른 범죄 중에는 송하나의 친부인 송중구에게 돈을 받고 저지른 일도 있었다.

관계도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듯했다.

‘이걸로 실형까지는 안 가겠네.’

구진수가 송중구의 지시를 받고 저지른 일은 대부분 누군가에 대한 뒷조사였다.

그렇기에 송하나의 친부 송중구는 벌금형 정도를 선고받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게 끝일 경우고.’

송중구가 구진수가 준 정보를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건 전혀 별개의 사건이었다.

“저, 구진수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할지?”

그때 국정원 직원이 강현수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뭐라고 처벌 수위를 정하겠습니까? 그냥 법대로만 하세요, 법대로.”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송하나 님의 친부인 송중구 씨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말하는 뉘앙스가 그냥 덮을 수도 있다는 투였다.

“법대로 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범죄자를 잡았고 공범은 추가 범죄가 의심스러운 상황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냥 조사를 중단하고 사건을 덮는 경우도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원칙대로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강현수의 말에 국정원 직원이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송하나의 친부라.’

구진수의 일로 인해 강현수는 송하나의 친부인 송중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름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던 구진수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쓰레기 같은 놈.’

송중구는 송하나를 딸로 생각하지 않았다.

귀찮은 혹이자 자신의 돈을 축내는 기생충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송하나가 성공한 비공식 랭커처럼 보이자.

관계를 회복해 편하게 돈을 뜯어낼 수 있는 ATM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마음 같아서는 법이고 뭐고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데.’

강현수가 나서면?

송중구를 알거지로 만드는 건 물론, 소리 소문 없이 제거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건 내가 나설 일이 아니지.’

어쩌다 보니 엮이기는 했지만, 이건 송하나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굳이 강현수와의 친분이 아니더라도 송하나는 귀환자 중에 손꼽히는 실력자이자 비공식 랭커였다.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도 최대한 편의를 봐줘야 하는 대상이었고.

스스로의 권력, 재력, 무력만으로도 언제든지 친부인 송중구를 단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나가 내버려 두는데 내가 나설 수는 없지.’

아, 물론 구진수를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밝혀진 범죄 혐의는 전혀 별개의 사건이었다.

그건 송하나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법이 단죄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뭐, 그간 해 온 짓거리를 보면, 혐의 없음이 나오기가 힘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송하나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그간 송중구라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징벌이었다.

‘문제는 송중구의 속마음을 하나한테 알려 주느냐 하는 건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건 강현수라고 해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든 일이었다.

송하나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송중구의 거짓 사과에 넘어갈 수도 있…….

“큭큭!”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강현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지.’

송하나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똑똑하고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지.’

튜토리얼에서 건달이었던 오성혁을 일행에 합류시키며 고기 방패 역할을 배정했던 송하나다.

첫 살인의 충격도 금방 극복했고.

여린 마음에 적에게 어설픈 자비를 베푼 적도 없었다.

회귀 전 송하나의 칭호는 무려 살황.

‘나 때문에 칭호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송하나가 수많은 혈전을 겪고 살아남은 강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귀환자의 가장 무서운 점은 경험이지.’

단순히 몬스터와 마족과의 전투만이 아니라 같은 인간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을 버텨 냈다.

그런 송하나가 어설픈 눈속임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오히려 괜한 헛수작을 부렸다가는.

‘화를 입기 십상이지.’

* * *

‘끈질기네.’

송하나는 계속해서 연락해 오는 친부 송중구와 계모 배수영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서 한집에 살 때.

송하나가 직접 겪은 친부 송중구와 계모 배수영은 인간이 아닌 악마 같은 존재였다.

귀환 후 찾아가 그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송하나로서는 큰 자비를 베푼 셈이었다.

사실 이복동생 송영우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도.’

그렇기에 무시했다.

한데 송영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었다.

송중구와 배수영의 사과를 받았을 때의 미묘한 기분이 떠올랐다.

‘만약 진심이었으면.’

그랬다면?

송하나는 동생인 송영우와 조카인 송하은의 얼굴을 봐서라도 두 사람을 용서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진심일 리가 없지.’

송하나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애초에 진심이라고 믿은 적은 없었다.

사람이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믿고 싶었는데.’

진심이었으면 했다.

이미 깨진 관계지만 어떻게든 이어 붙이고 싶었다.

‘미안해, 현수야.’

송하나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가족상은?

바로 강현수의 가족이었다.

사랑과 신뢰가 있고.

서로 배려하고 의지가 되는.

강현수의 가족은 낯선 존재인 송하나에게까지 따듯한 품을 내주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강현수에게 가족사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송영우를 만나고.

송중구과 배수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괜한 기대를 해 버렸어.’

송하나가 피식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연기를 못하면 차라리 참을성이라도 있든지.’

송중구과 배수영은 잠시도 쉬지 않고 송하나에게 연락을 취했다.

번호를 차단했음에도.

다른 번호로 수시로 전화를 걸었고 문자를 보냈다.

말은 사과였지만.

‘이건 강요지.’

진심으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거라면?

송하나의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자신들이 잘못을 뉘우쳤다는 사실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둘 다 욕심은 많아도 참을성은 없지.’

사과를 빙자한 강요.

처음에는 그저 잘못했다고만 하던 문자의 내용도.

어느새 뉘앙스가 바뀌어 있었다.

마치 송하나에게.

-윗사람이 이만큼 사과했으니 이제 고집 그만 부리고 받아들여.

-어서 다 잊었다고 말해.

-용서한다고 해.

-영우와 하은이를 생각해서라도 고집 그만 부려.

-다 지난 옛날 일이야.

-너만 잊으면 그만이야.

용서를 강요하듯이 말이다.

이러니.

‘모르는 척 속아 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잖아.’

동생 송영우와 조카 송하은을 생각해서라도.

과거의 일은 넘어가려고 했다.

그냥 모르는 척 살았으면 했다.

그런데.

왜 이리 탐욕이 넘쳐흘러 스스로 자신들의 무덤을 판단 말인가.

송하나의 두 눈에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제대로 경고를 해야겠어.’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애써 억누르고 있던 자신의 인내심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의 송하나는.

부모의 학대와 폭력 앞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던 여린 소녀가 아니다.

오히려 얼마든지 자신이 당했던 것 이상으로 되갚아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다.

“당신 아들 때문에 내 딸이 이상해졌다니까!”

그때 송하나의 귀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친부 송중구의 목소리였다.

“남의 가정을 이렇게 파탄 내도 되는 거예요!”

계모 배수영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누구신데 갑자기 찾아와 행패를 부리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송하나의 귀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강수혁과 박영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송하나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욕심이 많고 참을성이 없는 자들인 건 알았지만.

설마 강현수의 부모님인 강수혁과 박영숙을 찾아와 행패를 부릴 줄은 몰랐다.

자신의 집을 찾아오면 몰라도.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강현수의 부모님인 강수혁과 박영숙의 집을 찾아왔다는 말인가?

그리고.

“나 송하나 아버지 되는 사람이오! 착한 내 딸이 당신 아들 때문에 엇나가고 있다 이 말이야! 어디서 제비 새끼가 내 딸을 넘봐!”

“전 송하나 엄마예요!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남의 집 귀한 딸을 저렇게 만든 거예요!”

도대체 무슨 권리로 자신의 부모라 주장하며.

“아마 내 딸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모양인데! 당신들 같은 거지새끼한테 한 푼이라도 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앞으로 자식새끼 교육 똑바로 시켜요! 이후로 당신 아들이 우리 딸을 만나는 게 눈에 띄기라도 하면, 이 정도로 안 끝나!”

자신에게 큰 사랑을 선물해 준 강수혁과 박영숙에게 큰소리를 치며 모욕을 준단 말인가?

‘역시 다시 만나는 게 아니었어.’

그리고.

‘괜한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니었어.’

저들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동생 송영우와 조카 송하은을 생각해 참고 넘기려 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어.’

또한 저 인두겁을 뒤집어쓴 자들에게.

‘경고는 무슨.’

경고보다는 철저한 징벌이 필요했다.

두 번 다시 저딴 짓을 할 수 없는 징벌 말이다.

감정이 동요되고 정제되지 못한 살기와 칠흑빛 마력이 송하나의 전신에 넘실거렸다.

‘일단 떼어 놓자.’

송하나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금은 강수혁과 박영숙이 저 짐승들에게 모욕당하는 걸 막는 게 먼저였다.

저 두 짐승은 지금도 목소리를 높이며 강수혁과 박영숙을 모욕하고 있었다.

그때.

“당신들 부모 맞아?”

노기로 가득 찬 강수혁의 말이 송하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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