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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나 (2)

송하나는 전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이어 갔다.

던전을 가고.

강현수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종종 강현수와 데이트를 하고.

그러나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종종 남동생 송영우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송영우의 딸 송하은의 경우는?

“고모! 고모! 나 이거 해 줘!”

낯설 만도 한데, 송하나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송영우의 아내, 송하나에게는 올케가 되는 이영선 역시 참 좋은 사람이었다.

갑자기 생겨난 시누이의 존재가 싫을 만도 한데.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왔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조금은 달라진 일상을 누리던 중.

모르는 010 번호로 전화가 왔고.

받았는데.

-아비다.

전혀 반갑지 않은 인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뚝.

송하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문자가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어릴 때 못 할 짓을 많이 해 미안하다. 사과한다 등등.

송하나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절대 사과할 인간이 아니야.’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다.

특히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변하기 어렵다.

송하나의 기억 속에 있는 친부라는 존재는?

절대 송하나에게 사과 같은 걸 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연락이 왔다.

전화번호를 차단하면, 다른 번호로 연락이 왔다.

결국 송하나가 송영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알려 줬지?”

-어, 아버지가 계속 물어보셔서.

“나 만났다고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이야기한 게 아니라, 하은이가 고모 만난 걸 자랑하다가.

“자꾸 전화하면 번호 바꿔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송하나가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송영우 가족과의 만남을 피하지는 않았다.

굳이 그런 인간 때문에 자신이 바뀔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고모, 이번에 하은이 생일에 올 거지?”

어린 조카의 천진난만한 물음에는 차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고.

결국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들과 억지로 대면해야 했다.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구나.”

송하나의 친부 송중구가 덤덤한 어조로 말했고.

“이제라도 왕래하면서 지내자.”

송하나의 계모 배수영이 살갑게 말했다.

그러나 송하나는 두 사람에게 일절 관심이 없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건 어린 조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함이었을 뿐, 친부와 계모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

친부와 계모는 사과를 했고.

송하나는 무시했다.

* * *

“하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송하나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진심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평생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과를 받은 기분은.

참 미묘했다.

친부는 친모와 이혼하며 자신을 버렸다.

친모 역시 자신을 버렸다.

서로 열렬히 사랑해 결혼하고, 송하나를 낳은 부모의 사랑은 금방 식었고.

이혼했으며.

어린 송하나는 두 사람의 새 출발을 방해하는, 귀찮은 짐덩어리밖에 되지 않았다.

송하나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어렸을 때 친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재혼했고.

송하나는 존재한 적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명절 때 종종 친부와 계모를 만나면, 두 사람은 송하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러던 중 초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친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혀 슬프지 않았다. 그저 원망스러웠을 뿐.

중학생 때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세상에 혼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 후 친부와 계모의 집에 들어가 함께 살았다.

무시, 모욕, 폭행.

온갖 학대가 이어졌다.

친부에게 송하나는 증오스러운 여자의 딸이자, 어리석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해 주는 존재였고.

계모에게 송하나는 꼴 보기 싫은 남편 전처의 딸이자.

자신의 아들에게 온전히 전해져야 할 유산을 빼앗아 갈 기생충 같은 존재였다.

그런 송하나를 챙겨 주고 정을 나눠 준 건 이복 남동생인 송영우뿐이었다.

송하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독립을 선언했고.

친부와 계모 모두 환영했다.

그 후 가족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아틀란티스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송하나는 쭉 혼자였다.

* * *

“하나 고년, 내가 그렇게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눈썹 하나 꿈쩍 안 하네.”

배수영이 얼굴을 구기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아비가 체면까지 구겨 가면서 딸년한테 미안하다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 주지는 못할망정 대답도 안 해? 역시 제 어미를 닮아서 영 싸가지가 없어.”

송중구 역시 방금 전까지 웃던 낯을 지우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데 하나 고년이 정말 그렇게 부자야?”

“영우가 하나한테 선물받았다는 방패 아이템이 A랭크였어.”

몇 년 전이었다면?

개당 최소 몇백억 단위에 팔렸을 아이템이다.

연속적으로 대규모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며 고랭크 아이템이 대거 풀리고.

장인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급증하며 가격이 대거 폭락하기는 했지만.

“지금 시세로도 최소 10억 이상은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야.”

주인만 잘 만나면, 최대 30억까지도 받을 수 있는 게 바로 A랭크 아이템이다.

“그런 아이템을 그냥 영우한테 쓰라고 줬다고. 그럼 얼마나 부자겠어?”

송중구의 말에 배수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십수 년 만에 재회한 배다른 동생에게 수십억짜리 아이템을 그냥 줄 정도의 재력이라면?

최소 천억 이상.

어쩌면 수천억이나 최대 조 단위의 자산가일 수도 있다.

“그년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벌었지?”

“고레벨 플레이어인 영우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고 했으니까, 아마 비공식 랭커겠지. 배은망덕한 년. 그렇게 성공했으면서 그동안 낳아 준 아버지를 모른 척해.”

“친모는 죽었다고 했지? 혹시 이부동생이라도 있어?”

“없어.”

“그나마 다행이네. 그럼 유일한 피붙이가 당신이랑 영우뿐이라는 거 아니야.”

“아마 그럴 거야. 웬 놈팡이 놈만 들러붙지 않았으면.”

“그러네. 결혼하거나 애라도 낳으면 그 재산 다 날아가는 거 아니야.”

“그건 막아야지.”

“어떻게?”

“들러붙는 놈이 있으면 떼어 내면 그만이지.”

송중구의 눈이 탐욕에 불타올랐다.

송하나는 오래전에 잊고 살았던 존재였다.

처음 아들 송영우가 송하나를 만났다고 했을 때는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괜히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돈을 달라고 거치적거리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송하나가 고레벨 플레이어인 아들 송영우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라고 한다.

몬스터 부산물 사업을 하는 송영우로서는 귀가 번뜩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하는 사업 자체가 전적으로 송영우가 속한 중소 길드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

비슷한 규모의 중소 길드 하나가 추가되면?

사업 규모를 더 늘릴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업 규모 좀 늘려 볼 목적으로 아들 송영우에게 송하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는데.

설마 비공식 랭커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일단 계속 이런 자리를 만들어 보자고. 그년이 독하기는 해도. 영우한테는 무르잖아. 오늘 보니까 하은이한테도 그런 것 같고.”

“알았어요. 대신 영우한테는 비밀로 해요. 알면 난리 칠 게 뻔하잖아요.”

“그래야지. 순해 빠져서. 이게 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 그걸 모르고 말이야.”

송중구와 배수영이 짙은 탐욕에 물든 눈으로 어떻게 송하나의 환심을 살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 * *

‘누구지?’

강현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정보원이지?’

강현수를 미행하는 인물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

‘정신이 나간 건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등.

수많은 강대국들이 강현수에게 무릎을 꿇었다.

당연히 그중에는 진심이 아닌 거짓으로 강현수의 힘에 억눌려.

울며 겨자 먹기로 무릎을 꿇은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감히 강현수에게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고.

강현수의 정보를 캐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간이 큰 놈이네.’

강현수의 눈빛에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하지 못하게 해 주지.’

휘익!

결정을 내린 강현수가 몸을 움직였고, 미행하던 인물을 제압했다.

“아악! 파, 팔 부러져요! 제발 좀 놔주세요!”

제압당한 인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냈다.

“이 정도로는 안 부러져. 어느 국가의 지시로 미행을 한 거지?”

강현수의 물음에.

“예? 국가요? 저는 사설탐정인데요?”

“사설탐정? 의뢰인은?”

강현수는 어느 국가인지는 몰라도 머리를 꽤 썼다고 생각했다.

‘CIA에 넘겨야 하나? 그래도 한국인이니까 국정원이 나으려나?’

강현수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송중구 사장님입니다! 따님 곁을 맴도는 놈팡이가 있다고 뒷조사를 해 달라고 하셔서!”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송중구 사장? 딸?”

“송하나 씨 남자 친구시지 않습니까? 여자 친구분 아버님이 의뢰하신 일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배후가 등장하자 강현수는 순간 멍해졌다.

“하!”

헛웃음을 터트린 강현수가 사설탐정을 풀어 줬다.

그간 국제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설마 이런 이유로 뒷조사를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에 대해서 뭘 알아내서 보고했지? 그대로 읊어 봐.”

강현수의 지시에.

“하, 이분이 너무 폭력적이고 고압적이시네. 여자 친구 가족이 그 사실을 알면 좋아할까? 그리고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하지? 또 나 팔 부러진 것 같은데. 당신 플레이어잖아? 플레이어가 일반인한테 상해를 가하면 가중처벌 되는 거 몰라? 콩밥 한번 먹고 싶어?”

사설탐정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당장 경찰 불러! 당신 콩밥 먹고 싶지 않으면 합의금 왕창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으면서 자해 공갈에 협박까지 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모르고 내 뒷조사를 한 것 같아서 가볍게 넘어가려고 했더니.’

강현수를 미행하고 뒷조사를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거기다.

‘질이 좋은 녀석 같지는 않네.’

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말이 사설탐정이지 다른 사람 약점 잡아 공갈 협박하는 게 주업인 양아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강현수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또 어느새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신고받고 왔습니다.”

경찰까지 출동했다.

“잘 오셨습니다. 저 사람이 플레이어인데, 저를 폭행했습니다.”

사설탐정이 주절주절 떠들며 강현수를 순식간에 범죄자로 만들었다.

“일단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경찰의 말에 강현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사설탐정을 데리고 달의 그림자 스킬을 사용하는 거였다.

그게 아니면, 그냥 사설탐정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제거해 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지만.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니까.’

그러나 이번 일을 가볍게 넘길 생각도 없었다.

‘하는 꼴을 보니 그동안 불법적인 일을 적잖이 한 것 같은데.’

그걸 모조리 싹싹 털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아고, 나 죽네! 팔이 제대로 부러진 것 같아요!”

경찰차에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도 자칭 사설탐정은 죽겠다고 목소리로 높였다.

“그럼 병원으로 먼저 갈까요?”

그러나 경찰의 물음에는.

“아닙니다! 이놈이 한 짓에 대한 진술과 고소장 접수가 먼저죠!”

칼같이 대답했다.

강현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건방진 놈.’

사설탐정 구진수는 그런 강현수를 바라보며 이를 빡빡 갈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흐뭇해했다.

‘송 사장한테 제대로 보너스 받을 수 있겠어.’

구진수는 말만 사설탐정이지 사실상 온갖 구린 일을 해 주고 돈을 챙기는 양아치였다.

특히 송중구 사장과는 꽤 오래전부터 합을 맞춰 온 사이였다.

‘딸 옆에 붙은 놈팡이 놈 약점을 찾아 달라고 했지.’

만들어 주면 더 좋다고 했다.

그래서 구진수는 이번 기회에 저 건방진 놈에게 빨간 줄을 제대로 그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출소에 도착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경찰 쪽에는 협조 공문 보냈습니다. 확인하셨습니까?”

갑자기 국정원 요원이 등장했고.

“예, 확인했습니다.”

총경인 경찰서장이 동네 파출소에 직접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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